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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없는 노조의 욕망

억대 연봉 대기업 노조 ‘이익집단’ 전락

노동·연대 의미 실종 ‘내몫챙기기’ 골몰

공동체 속 협력·신뢰 등 기본가치 망각

‘노조=약자’ 무조건적 法보호 벗어나야

수정 2026-05-28 07:03

입력 2026-05-28 06:00

지면 34면
한영일

한영일

논설위원

미국의 사회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1995년에 출간한 ‘노동의 종말(The End of Work)’에서 21세기 중반에는 디지털과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부분 대체할 것으로 내다봤다. 인터넷이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시절, 그는 ‘접속의 시대’가 사회의 뿌리를 흔들어 노동자의 기회와 책임을 재정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디지털 사회가 창출한 가치는 사회적으로 배분돼야 하며 공동체의 협력과 신뢰가 핵심 화두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 진단은 현실이 돼 우리 앞에 닥쳤다.

요즘 대한민국 사회의 핫이슈인 성과급 논쟁은 리프킨이 전망한 ‘우울한 예언’의 한 단면이다. 삼성전자 노사는 파업 직전에야 영업이익의 12%, 무려 36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을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방식에 합의했다. 1인당 최대 6억 원의 보상이 이뤄진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빅테크들의 갑작스러운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폭발에 힘입어 올 1분기에만 영업이익 57조 원이라는 상상 초월의 실적을 올렸다. 분기를 거듭할수록 이익 규모가 늘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가만 보면 아이러니하다. 삼성전자 경영진은 불과 1년 전만 해도 실적 부진을 이유로 “근원적 기술력을 회복하겠다”고 연거푸 반성문을 써야 했다. 그런 회사가 어떻게 이토록 빠르게 반전했는가. 냉정히 말해 기술력의 극적인 회복이라기보다 AI 전환이라는 거대한 외부 환경의 갑작스러운 변화 덕분이었다. 노조원들이 만들어낸 노동의 가치가 온전히 대박 실적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번 논란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 노사 간 사후중재에 나섰던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한 방송에 출연해 이번 사태를 “욕망의 충돌”이라 규정했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의 강성 노동운동가였던 장관의 입에서 나온 ‘욕망’이라는 표현은 의미심장하다. 지금껏 파업 으름장을 놓던 대부분 노조의 언어는 ‘생존권’ ‘구조조정’ ‘양극화’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평균 연봉이 1억 원을 훌쩍 넘는 조합원들이 막대한 보상을 주장하는 상황을 기존의 노동 문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마저 노조에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리프킨의 지적대로 AI와 로봇의 등장으로 인간의 노동 자체가 종말을 향해 가듯 노조 역시 일종의 거대한 ‘이익집단’으로 변한 것이나 다름없다.

‘노조의 전락’을 부추긴 데는 우리나라 특유의 경직된 노동 제도가 있다는 것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AI 3강을 부르짖고 있지만 정작 노동조합법은 제조업 시대에 머물러 있다. 거대 노조들은 이미 정부조차 어쩌지 못하는 ‘노동 권력’이 됐지만 노조라는 간판만 달면 ‘약자 프레임’으로 법의 비호를 받는다. 노조에 ‘파업 특권’을 보장해준 노란봉투법이 그러하듯 말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일용직 노동자와 특수고용직이나 플랫폼 종사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대기업 노조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돌이킬 수 없이 싸늘해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몸을 불사른 정신은 물론 나보다 사회적 약자(협력사)도 생각하는 연대의 대의도 사라졌다. 그 대신 회사 주주마저 무시하는 개인주의와 조직 논리만이 그 자리를 꿰찼다. 노동은 가고 욕망만 남은 셈이다.

최근 ‘영업이익 N%’를 요구하며 파업 깃발을 드는 노조들이 하나같이 대기업 소속이라는 사실이 이를 대변한다. 더 서글픈 것은 그동안 ‘사회적 연대’를 외쳐온 양대 노총이 이 귀족 노조들의 폭주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점이다. 비겁한 방조다. 이제 우리 사회는 묵직한 질문을 받아들었다. 단지 자신들의 몫을 키우는 데만 몰두하는 거대 노조를 언제까지 법과 제도로 보호만 해야 하는가.

AI와 로봇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렇다고 기술의 진보를 ‘붉은 깃발’을 들고 무작정 막아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분명한 것이 있다. 기술 발전의 과실을 특정 집단이 독식하는 것은 정의도, 공정도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직장인이라면 꿈조차 꿀 수 없는 비현실적 성과급을 챙긴 삼성전자 노조가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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