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반 공백인데 임명은 하세월… 계엄 후 잊혀진 ‘경찰 수장’
1년 4개월간 수장 공백 사태
중수청 출범 앞두고 불만 속출
리더십부재로 경찰 비위도 잇따라
입력 2026-05-31 12:00
12·3 비상계엄의 여파로 1년 4개월가량 이어진 경찰 수장 공백 사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간 대통령 선거 등 선거철만 되면 ‘경찰청장 장관급 격상’ 등 공약이 나오는 등 경찰 수장 자리는 14만 경찰의 표심을 잡기 위한 수단이 돼왔다. 그러나 이러한 얘기는 대선 이후에 쏙 들어가 사실상 없는 일이 돼버린데다, 장관급 격상은 고사하고 1년 반 가까이 비워져 있는 수장 자리는 채워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경찰 내부에서는 계속해 밀리고 있는 인사로 일선 경찰관들의 근무 동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최근 경찰관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각종 비위들이 리더십의 부재로 인한 것이라는 진단이 나오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18일 헌법재판소는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 봉쇄를 지시한 조지호 전 경찰청장에 대해 파면을 선고했다. 비상계엄 이후 청장의 직무가 정지된 이후로 1년가량 대행체제가 이어져 왔던 경찰 입장에서는 조 청장 파면 이후 내부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안정시켜 줄 새 수장의 등장이 간절했었다. 이호영 전 경찰청 차장에 이은 유재성 경찰청 차장의 직무대리 체제가 이어지는 등 우리나라 치안 수장의 공백 사태가 1년 4개월 이상 이어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신임 경찰청장 인선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경찰청장의 공백은 단순히 ‘수장이 없다’는 의미로 끝나지 않는다. 경찰청장이 ‘경찰의 꽃’이라고 불리는 총경들을 각 일선 경찰서장에 배치하는 등 주도권을 가지고 인사를 해야 경찰 내부에서도 활기가 돌 수 있지만 정기인사 자체가 상당 기간 미뤄져왔다. 총경 승진 인사도 지난달 말 겨우 났으며 이마저도 승진자만 발표한 상태이다. 총경 전보 인사는 내달 3일 치러지는 지방선거 이후에나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일선 경찰서장뿐만 아니라 각 시도경찰청 과장급 자리들도 마찬가지다. ‘곧 인사가 날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각 부서 담당 업무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경찰 내부의 전언이다. 서울의 한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경찰관은 “전보인사가 곧 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다들 마음이 둥둥 떠 있는 느낌이다. 갈 사람은 물론 남아있는 사람들도 ‘어차피 곧 담당자가 바뀔텐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며 “문제는 그런 상황이 수개월 째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정말 인사가 나겠지’가 몇개월 째 이어지고 있는데 수사가 제대로 돌아갈 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최근 터져나오고 있는 경찰 수사력 문제 또한 수장의 공백으로 인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천헌금’ 등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김병기 무소속 의원의 경우 수개월 째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경찰은 ‘마무리되는 사건 먼저 순차적으로 송치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기존 투자자들에게 상장 계획이 없다고 속인 뒤 지분을 거둬들여 막대한 이익을 얻은 혐의를 받는 방시혁 하이브 의장에 대해서도 경찰은 두 차례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두 번 모두 반려돼 수사력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수장의 공백은 기강 해이로도 이어진다. 잇따른 수사 무마 논란으로 수사·형사 책임자와 지구대 및 파출소 관서장들을 전격 교체하는 등 고육책을 쓰고 있는 강남경찰서 문제나, 공공기관 차량 2부제 적용을 피해 긴급출동에 쓰이는 관용 전기차를 출퇴근에 사용했다는 사실이 적발돼 대기발령 조치된 서울 성동경찰서장 문제 등 경찰 내부에서 잇따라 비위가 터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농협경제지주에서 발생한 전직 간부의 여직원 성추행 사건이나 경기 남양주에서 발생한 40대 남성의 20대 여성 스토킹 살인사건, 고(故) 김창민 감독 폭행치사 사건 등 최근 민생 사건에서 나온 경찰의 부실수사 정황도 경찰청장 리더십 부재가 무관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경찰청장 공백으로 다양한 문제가 터지다 보니 경찰 내부에서도 불만이 쌓이고 있다. 다른 정부 부처는 대부분 수장이 임명돼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단일 조직 중 가장 큰 경찰은 사실상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오는 10월 중대범죄수사청의 출범을 앞두고 경찰청장이 앞장서 경찰 수사권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지만 무기력하게 정부의 방향대로 끌려다니고 있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그간 대선 등 주요 선거 국면마다 정치권에서는 14만 경찰의 표심을 잡기 위해 경찰청장을 장관급으로 대우해주겠다고 하는 등 각종 유인책을 내놨지만 정작 실현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장관급 격상은 커녕 수장조차 임명하고 있지 않는 것은 사실상 경찰을 기만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당초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경찰청장과 국가수사본부장 등 경찰 조직 수장들에 대해 60세 정년 이후에도 임기를 보장하는 내용의 ‘경찰공무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경찰청장 인선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었지만, 법제사법위원회가 심사를 무기한 보류하며 이 또한 제동이 걸린 상태다. 강력한 후보로 거론돼왔던 유 차장과 박성주 국가수사본부장은 1966년생으로 모두 올해가 정년이다. 경찰청장 임기인 2년 도중 정년을 맞아 퇴임하는 일이 없도록 연령 정년 적용을 배제하는 법안이 통과됐을 경우 인선도 속도를 낼 수 있었겠지만 사실상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서울의 한 간부급 경찰관은 “경찰 수장 자리를 이렇게 오래 비워뒀다는 것은 정부가 경찰 조직을 신경쓰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며 “수사와 관련한 정책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고 수사 조직에 대한 개편도 앞둔 상황을 수장 없이 맞이한다는 것은 불리하다. 조속히 경찰청장이 임명돼 조직이 안정화 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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