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개발 최전선 30년…권도엽 전 장관이 말하는 국가 운영의 원칙
결핵 이겨낸 시골 소년, 국토해양부 장관까지 오른 인생 항해
부동산 정책·국토 개발 현장에서 기록한 대한민국 성장사
“시장은 공급이 답” 정치와 정책 사이에서 소신 지킨 공직자의 증언
“항로는 제도가 만들고, 목적지는 신뢰가 결정한다.”
수정 2026-06-04 15:35
입력 2026-06-04 12:22
대한민국 국토 개발과 주택 정책의 최전선에서 30여 년을 보낸 저자가 자신의 삶과 공직 경험, 그리고 국가 운영에 대한 철학을 담아 ‘국가라는 배 위에서’(예스플랜)를 출간했다. 단순한 회고록을 너머 산업화 이후 대한민국의 성장 과정과 그 이면의 정책 결정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에 가깝다.
이야기는 저자가 ‘찢어지게’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보릿고개를 겪으며 성장한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 폐결핵 진단을 받았다. 대학 졸업 때까지 이어진 긴 투병은 오히려 그의 인생관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죽음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며 얻은 담담함과 독립적인 사고는 훗날 공직 사회에서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소신의 토대가 됐다고 회고한다.
행정고시 합격 후 공직에 입문한 그는 건설부와 건설교통부, 국토해양부를 거치며 한국 사회의 성장 과정과 굴절을 직접 경험했다. 구포 열차 사고,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IMF 외환위기 등 국가적 위기 상황을 현장에서 지켜보며 국가 시스템의 중요성을 체감했다고 말한다. 특히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조직의 성패는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으며, 전문성과 책임감을 갖춘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저자의 소신이다. 주택정책과장과 주택국장, 차관보 등을 지내며 부동산 정책의 최전선을 누빈 그는 집값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과 관료사회의 치열한 논쟁을 생생하게 전한다. 당시 정치권은 집값 상승의 원인을 투기 수요에서 찾으며 세금 강화와 분양가 상한제 등 규제책을 내놓았지만, 저자는 압도적인 공급 확대가 근본 해법이라고 맞섰다. 당정협의회에서 여당 지도부와 격론을 벌이고, 고위 당정회의에서 총리로부터 “당신이 내 밑에 있었으면 벌써 잘렸다”는 질책까지 들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저자는 집값은 규제나 세금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서울의 평균 용적률이 파리·도쿄·뉴욕 등 주요 도시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도 업무시설과 상업시설은 계속 늘려 사람을 도심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며, 이를 ‘국가 공간 전략의 실패’라고 진단한다. 수요가 집중되는 지역에 충분한 주택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 한 집값 안정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규제로 억눌렀던 집값이 다시 들썩이고 있는 현 시점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후반부에서는 장관 재임 시절 추진한 4대강 사업 마무리, 경인아라뱃길 개통, 여수세계박람회 개최 등의 경험을 소개하며 국가 인프라 정책의 의미를 되짚는다. 동시에 저출산과 지방소멸, 인공지능(AI) 시대의 산업 재편 등 미래 과제에 대한 견해도 제시한다.
특히 저자는 국가 운영의 핵심 가치로 ‘신뢰’를 강조한다. 인프라는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며, 제도 역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와 행정, 부동산과 국토 개발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 속에서도 저자가 끝까지 붙들었던 가치 역시 신뢰와 책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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