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 구원투수 아닌 선발투수로…토스 같은 유니콘 더 만들어야”
[신보 창립 50주년…윤대희 전 이사장 인터뷰]
1976년 출범해 코로나 팬데믹 등
위기 닥칠때마다 등판해 기업 지원
다자무역 붕괴 등 교역환경 급변속
100조 규모 금융지원 기관 발돋움
스타트업 육성 등 역할 변화할 때
수정 2026-06-04 23:42
입력 2026-06-04 17:41
“한국 경제의 위기 때마다 신용보증기금이 구원투수로 나섰는데 앞으로는 미래 성장 동력을 먼저 발굴하는 선발투수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선도적으로 치고 나갈 수 있는 신보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지요.”
1976년 출범해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은 신용보증기금은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등 나라에 큰 위기가 닥칠 때마다 구원 등판했다. 담보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채무를 보증하는 금융기관으로서 위기에 가장 취약한 곳에 정책 자금을 공급해 위기 극복의 원동력을 제공한 것이다. 최근 지정학적 리스크와 통상 갈등이라는 구조적 전환기 속에서 신보는 다른 금융 공공기관들처럼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국가전략산업을 뒷받침하고 신성장 동력을 위해 신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코로나19 위기 대응의 선봉에 섰던 윤대희 전 신보 이사장은 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의 글로벌 상황은 연속 누적형 복합 위기(polycrisis·폴리크라이시스)”라고 먼저 진단했다. 충격 강도는 낮지만 미중 패권 전쟁과 지정학적 갈등, 글로벌 공급망 분절화 등 구조적 요인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이전 위기가 회복되기 전에 새로운 충격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다자주의 무역 질서가 자국 중심의 공급망으로 바뀌는 근본적인 교역 환경 변화는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굉장한 위험 요인”이라며 “앞으로 대외 충격이 올 때마다 버텨내려면 구조 개혁을 통해 취약 부문인 내수 체제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 전 이사장은 이를 위한 해답 중 하나가 스타트업이라고 보고 있다. 이사장 재임 당시 전담 부서 ‘4.0 창업부’를 신설하고 스타트업 전문 보육 공간인 ‘프론트원(Front1)’을 개소하는 등 신보의 지원 체계 패러다임을 스타트업 중심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네이버, 셀트리온이 지금 한국을 먹여 살리고 있다”며 “지금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탄생하는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신보 본점을 스타트업 지원 공간인 프론트원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윤 전 이사장은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신보의 역할 강화라고 보고 있다. 그는 “생산적 금융을 통해 혁신적인 자원 배분이 이뤄지려면 초기 스타트업이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신보가 지원해야 한다”며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지금 당장 정책 보증기관을 찾아가서 상담부터 받으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윤 전 이사장은 또한 “단기 유동성 공급 위주로 선제적으로 위기를 관리하면서 기업 체질을 개선하는 산업·경영 전반의 구조 재설계를 견인하는 조력자로 진화할 때”라며 “확장적 보증 기조로 전환하기보다는 혁신 스타트업의 스케일업 지원, 국가첨단전략산업 육성 등을 중점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승건 토스 대표가 창업 초기 신보 문을 두드렸던 일화는 유명하다. 신보는 이 대표에게 신용보증 6억 3000만 원을 지원해 데스밸리(death valley·죽음의 계곡)를 넘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토스뿐만 아니라 야놀자·오늘의집·에이블리코퍼레이션·리디북스·지피클럽·리벨리온·퓨리오사AI·무신사 등 국내 대표 스타트업 9곳이 신보 지원을 거쳐 유니콘 기업으로 거듭났다.
그는 “과거 실적보다 미래 가치 중심의 심사로 유망 기업에 자금을 우선 공급해 중견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성장 사다리를 구축해야 한다”며 “특히 초기 스타트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데스밸리를 극복할 수 있도록 단계별 맞춤형 지원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보는 물론이고 기술보증기금까지 국내 정책 보증기관들은 스타트업을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을 완전히 갖춰놓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장선에서 윤 전 이사장은 신용평가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재임 시절 추진했던 한국형 페이덱스와 인공지능(AI) 기반 기업분석시스템(BASA) 등 주요 사업은 혁신 기업 지원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한국형 페이덱스는 재무제표가 아닌 상거래 비금융 데이터를 실시간 지표로 만들어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한 프로그램이다. 국내 최초 지능형 기업 분석 솔루션 BASA는 141만 개 기업 정보를 보유해 연간 조회 수 46만 건을 기록하고 있다.
윤 전 이사장은 “신보 직원들이 기업을 조사하면서 쌓은 방대한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고민한 끝에 BASA를 만들었다”며 “데이터도 하나의 공공재인 만큼 정부는 물론이고 기술보증기금이나 중소기업중앙회 등 다른 기관까지 자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최원목 전 이사장과 강승준 이사장이 전임자가 시작한 사업을 발전시키고 강화했다는 점에서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보는 1972년 ‘8·3 긴급조치’ 이후 대기업에 금융이 집중되고 담보 능력이 낮아 위험한 중소기업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자금 융통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됐다. 설립 당시 일반 보증 1600억 원을 취급했던 신보는 지난해 말 기준 신용보증 66조 원, 신용보험 22조 원, 산업기반신용보증 3조 원, 유동화보증 12조 원 등 100조 원 규모의 금융을 지원하는 규모로 확대됐다. 1989년 기술보증기금, 2004년 한국주택금융공사, 2005년 한국기업데이터 등으로 일부 기능을 이관하고도 세계 최대 규모의 신용보증기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신보 역할이 커지는 과정에서 보증 시스템 때문에 제때 퇴출돼야 할 중소기업들이 시장에 남아 자원 배분을 왜곡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에 윤 전 이사장은 “보증 제도가 시장을 왜곡하는 영향보다 기업들이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순기능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신보를 이끌었던 윤 전 이사장은 팬데믹 위기 극복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당시 정부가 편성한 175조 원 규모의 ‘민생·금융 안정 패키지 프로그램’ 가운데 신보가 맡은 정책 금융만 36조 7000억 원으로 전체의 20%를 차지했다. 2022년 말 기준 역대 최대 보증 총량인 83조 4000억 원을 운용했다. 신보가 지원한 적 없던 중견·대기업을 위한 ‘코로나19 피해 대응 프라이머리 담보부채권(P-CBO)’과 ‘기업어음(CP) 차환발행 기업 특별보증’ 등 과거에는 볼 수 없던 파격적인 조치로 적극 대응했다. P-CBO는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가 자금시장에서 유통될 수 있도록 신용을 보강한 것이다.
위기 때마다 신보가 주목을 받는 것은 보증의 승수 효과 덕분이다. 운용배수 10배 기준으로 신보에 1조 원을 공급하면 실제 중소기업엔 10조 원이 지원된다. 올해 일반 보증 운용배수 목표는 12.5배 이내다. 윤 전 이사장은 “운용배수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위기 때 신보가 나서지 않으면 기관이 필요할 때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며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윤 전 이사장은 “다가올 100년은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국민 신뢰를 받는 혁신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기를 기대한다”며 “신보인 특유의 헌신과 열정으로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길 바라며 전임 이사장으로서 변치 않는 애정으로 응원하겠다”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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