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의 절대강자 농심 아성은 왜 흔들리나

1등의 덫

농심은 절대 강자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 라면 시장을 지배해왔다. 그러나 그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 삼양과 한국야쿠르트의 도전이 거세다. 정작 농심을 다급하게 만든 건 농심 자신이다. 농심은 혁신의 기회를 놓쳤고, 도전 대신 수성을 선택했다. 농심은 여전히 1등이다. 1등이라 불안하다.

신기주 기자 jerry114@hk.co.kr


농심도 꼬꼬면을 출시할 수 있었다. 지난 3월 28일 방송된 ‘남자의 자격 : 라면의 달인’편의 심사에는 한국야쿠르트뿐만 아니라 농심과 삼양 관계자들이 모두 참석했다. 정작 1등은 샐러드라면이 차지했지만 농심과 삼양과 한국야쿠르트 관계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꼬꼬면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제품화하기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맛도 차별화됐기 때문이었다. 라면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꼬꼬면을 상품화한다면 이경규와 ‘남자의 자격’이 깔아 놓은 사전 마케팅 효과까지 톡톡히 누릴 수 있었다. 이미 KBS 홈페이지는 꼬꼬면을 먹어보고 싶다는 시청자 의견으로 도배가 되다시피 하고 있었다.
농심은 꼬꼬면을 외면했다. 때마침 농심은 비장의 무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신라면 블랙이었다. 1986년에 출시된 신라면은 25년 동안 한국 라면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OS와 맞먹는 시장 지배력을 보여줬다. 농심은 이 신라면을 고급화하기로 결정했다. 설렁탕 한 그릇에 맞먹는 맛과 영양을 갖춘 라면을 출시하겠다는 게 농심의 포부였다. 사골 육수라면은 농심이 오랜 동안 공을 들여온 분야였다. 이미 사리곰탕면을 출시한 적도 있었다. 쇠고기 육수의 틀에서 좀 더 라면 맛을 일신시키자면 사골 육수가 답일 수 있었다. 신라면 블랙은 4월에 출시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3년을 준비한 일이었다. 결국 농심은 꼬꼬면을 포기했다. 한국야쿠르트가 꼬꼬면을 생산하기로 했다.


민심의 변심
지난 9월 초 농심은 신라면 블랙의 생산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4월 15일 신라면 블랙이 첫 출시되고 6개월 만의 일이었다. 농심 측은 이렇게 밝혔다. “신라면 블랙의 매출 규모가 미진해서 팔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가 됐습니다. 더 이상 생산하는 건 어렵다고 판단됩니다.” 1983년 안성탕면을 출시하면서 당시 1위였던 삼양식품을 추월하는 데 성공한 이래 농심은 출시하는 라면마다대박을 터뜨리다시피 했다. 농심 역시 감자탕면 같은 실패 사례가 있다. 그러나 신라면 블랙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참패였다.

한국야쿠르트의 꼬꼬면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꼬꼬면의 하루 생산량은 45만 개가 넘는다. 지금까지 2,000만 개가 넘게 팔려나갔다. 한국야쿠르트가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는데도 물량이 달릴 정도다. 꼬꼬면의 2011년 예상 매출액은 300억 원이 넘는다. 이미 꼬꼬면은 판매량에서 신라면을 제외한 농심의 모든 라면 제품을 제쳤다. 순식간에 판매량 2위 브랜드로 등극했다. 이젠 꼬꼬면이 신라면처럼 스테디셀러의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신라면 블랙이 실패한 건 농심이 1위 기업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시장 점유율이 70%가 넘는 절대 강자였기 때문이었다. 농심 관계자는 말했다. “농심은 라면 업계 1위 기업입니다. 선두 기업
과 후발 주자는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2010년을 기준으로 라면 판매 1위부터 7위까지 제품 가운데 6개가 농심의 제품들이었다. 1위 신라면은 2010년 한 해 동안 4억4,718개가 팔려나갔다. 2위 안성탕면은 2억1,117개가 팔렸다. 3위는 1억9,546개가 팔린 삼양라면이었다. 덕분에 삼양은 겨우 라면 종가의 체면을 세웠다. 다시 4위와 5위가 너구리 우동과 짜파게티였다. 6위와 7위 역시 육개장 사발면과 신라면컵이었다. 농심은 봉지라면 시장뿐만 아니라 용기라면 시장까지도 석권하고 있었다.

농심도 민심은 알고 있었다. 민심은 새로운 라면 맛을 원하고 있었다.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에 나온 신기한 라면 한 그릇을 먹고 싶다는 시청자 의견이 빗발쳤다는 사실부터가 소비자가 다른 라면 맛에 굶주려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이미 광대한 영토를 가진 농심은 민심이 크게 흔들리는 걸 원하지 않았다. 소비자들의 입맛이 농심의 조리법 영역 밖으로 나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한번 나간 입맛은 돌아오지 않는 법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농심이 꼬꼬면을 버리고 신라면 블랙에 올인했던 이유였다. 꼬꼬면은 닭육수로 국물을 낸 라면이었다. 농심은 쇠고기육수를 사용한 라면으로 오늘날의 라면 왕국을 세웠다. 닭육수 라면 맛은 애당초 삼양식품의 전매특허였다. 농심은 라면 육수는 쇠고기 육수라는 등식을 뿌리내리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렇게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농심은 소비자의 입맛을 길들여왔다. 이제 와서 농심 스스로 닭육수 라면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스스로 세운 방책에 구멍을 내는 일이었다. 삼양의 닭육수 라면에서 농심의 쇠고기 육수로 한 번 바뀐 소비자의 입맛은 25년 동안이나 그대로다.

대신 농심은 소비자들이 자기네 주력 상품의 파생 상품을 재차 구매하기를 바랐다. 같은 라면이지만 조금 더 비싼 라면을 선택해주면 더 좋았다. 먹고 살기가 좋아지면서 라면 소비량도 줄고 있었다. 절대적인 시장 점유율을 확보한 농심으로선 이제 영업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밀가루 가격 상승 같은 원가 상승 요인이 겹치면서 라면의 영업 이익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농심은 더 이상 확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라면 시장을 크게 장악했다. 이제 라면이란 제품의 값어치를 올리지 않고서는 더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신라면 블랙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제품이었다. 지난 25년 동안 소비자들의 입맛을 길들여온 매운 쇠고기 육수 맛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봉지 라면 가격의 심리적 저항선인 1,000원을 뛰어넘겠다는계산이었다.

농심은 처음에 2008년 무렵부터 신라면 블랙 개발에 들어갔다. 이미 사골 육수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검토가 있었던 터였다. 2008년은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세계 경제가 어수선할 때였지만 한국 내수 경기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때였다. 경보음만 요란하게 울렸지 말 그대로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아직 튼튼했다. 농심이 프리미엄 전략을 선택한건 당연한 일이었다. 농심 관계자는 말했다. “라면 소비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예전엔 면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의 절반 가까이가 일주일에 두세 번은 라면을 먹었어요. 이젠 일주일에 두세 번씩 라면을 먹는 소비자가 과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라면을 덜 먹게 됐는지 조사해봤습니다. 한결 같이 영양이 부족한 음식이기 때문이라는 반응이 나왔죠.” 결국 경제 여건상 소비자들이 조금 더 비싼 라면을 먹을 호주머니 준비는 돼 있는데 양질의 라면이 없기 때문에 라면 소비가 줄었다는 결론이 났다. 설렁탕 한 그릇의 영양을 담았다는 신라면 블랙은 그렇게만들어졌다. 개당 1,600원이라는 신라면 블랙의 가격 역시 그렇게 결정됐다.

신라면 블랙은 구태여 신라면일 필요도 없었다. 전혀 새로운 브랜드로 선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농심은 1위 브랜드의 유리함을 한껏 이용하려고 했다. 신라면에 대한 소비자들의 충성도를 활용해서 조금 더 비싼 라면도 덜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결국 신라면 블랙은 제품 개발 목적부터 이름 붙이기와 마케팅까지 업계 1위라는 농심의 지위가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업계 1위 농심은 라면으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었다.


농심의 욕심
농심은 민심을 잘못 읽었다. 소비자들이 원한 건 영양이 아니었다. 새로운 라면이었다. 하지만 그건 농심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스스로의 시장점유율을 훼손하면서까지 신제품을 출시할 수는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농심의 몫이 아니었다. 실제로 라면 시장은 한국야쿠르트의 꼬꼬면과 삼양의 나가사끼 짬뽕 같은 맑은 국물 라면이 잇달아 출시되면서 요동치고 있다. 1980년대 삼양에서 농심으로 맛의 패러다임이 전환됐듯이, 이젠 붉은 쇠고기 육수에서 다양한 색깔과 맛을 지닌 육수로 다양화되는 시기다. 윈도우OS의 20년 아성이 모바일 격변기를 맞으면서 애플과 구글에게 주도권을 내줬듯이 라면 시장에서도 플랫폼 교체기가 시작됐다. 소비자들은 여전히 농심의 신라면을 사랑했지만 이젠 조금 다른 라면도 먹고 싶어했다. 농심의 경쟁자들에겐 역전을 노려볼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었다. 수성을 해야 하는 입장인 농심으로선 어찌 해볼 수 없는 부분이었다. 태블릿PC를 먼저 개발한 건 마이크로소프트였지만 아이패드를 보편화시킨 건 도전자 애플이었다는 사실과 이치가 같다. 1위 기업의 딜레마였다.

정작 농심의 패착은 라면 가격에 있었다. 한국에 라면이 처음 소개된 건 1963년이었다. 삼양 창업주인 전중윤(92) 명예회장은 길거리에서 5원짜리 꿀꿀이죽을 먹으며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라면을 생산하기로 마음 먹었다. 우여곡절 끝에 라면을 만들었지만 소비자들은 라면이 뭔지도 잘 몰랐다. 봉지에 실 같은 면이 들어 있다고 해서 봉제용 실이 아니냐는 문의가 들어왔을 정도였다. 게다가 가격은 10원이었다. 이 가격으론 도무지 버틸 수가 없었다. 결국 삼양라면을 판매한 지 1년 반 만에 파산 일보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전중윤 회장은 라면 가격만큼은 올리려고 하지않았다. 애초에 라면은 서민용 먹거리로 만들어졌다. 가격을 올려 받는다는 건 스스로 창업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었다. 반세기 가까이 흘렀지만 여전히 라면은 서민용 먹거리다. 당시엔 10원이었던 심리적 가격 저항선이 1,000원이 됐을 뿐이다. 라면 한 개당 가격이 1,000원을 넘는다는 건 국민 정서법에 위배되는 일이다. 더 이상 라면이 배 곯는 국민들의 영양식이 아니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함부로 올려서는 안 되는 물건 값이 있단 얘기다.


라면 업계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1,000원으론 이젠 담배 한 갑도 사기 힘들다.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그만큼 인플레이션 압박이 심하다. 그런데도 라면 한개의 가격은 1,000원을 넘길 수가 없다. 원가 상승 압박도 상당하다. 하지만 밀가루 가격이 폭등해도 라면 가격을 올리긴 어렵다. 농심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았다. 신라면 블랙을 1,600원에내놓았다는 건 모험이었다. 농심의 선택은 라면이라는 상품의 본질을 훼손하는 일이었다. 라면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다. 서민의 먹거리다. 농심은 라면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서민 음식이라는 수식어를 거부하려고 들었다. 그냥 여느 제품처럼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프리미엄 전략이란 시대의 경영 전략을 채택했다. 좀 더 고급스럽게 포장해서 더 비싸게 파는방식이었다. 라면에서도 통할 줄 알았다. 반세기 가까이 라면을 만들어왔는데도 쉽게 라면의 본질을 저버렸다. 농심의 변심이었다.

시기도 안 좋았다. 정부가 물가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던 무렵이었다. 이마트 피자나 통큰 치킨 같은 서민 경제 관련 논쟁들이 불거져 나오던 무렵이었다. 인플레이션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선상태였다. 하지만 쉽게 금리를 올리긴 어려운 처지였다. 결국 정부는 기업들을 압박해서 물가를 잡아보려는 시도를 했다. 거기에 걸려든 게 농심이었다. 서민 물가와 직결된 라면을 생산하는 제조사로선 숙명적인 일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신라면 블랙의 허위과장 광고를 문제 삼았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라면 하나의 영양 상태를 점검하는 일은 전례가 없었다. 결국 6월 2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농심이 신라면 블랙의 영양 성분을 과장 광고했다며 1억5,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농심이 신라면 블랙에 설렁탕 한 그릇의 영양을 담았다고 광고한 게문제가 됐다. 농심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소비자 단체들은 농심이 별다른 추가 노력 없이 그저 포장만 바꾼 신라면 블랙을 만들어서 기존 신라면보다 두 배가 넘는 가격을 받으려고 했다고 비난했다. 이미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가 결정 난 이상 농심으로서도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손욱 회장은 농심의 보수적인 체질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지나친 성과 중심주의와 상명하복식 일방 소통 문화를 바꾸려고 여러 가지 제도를 시행했다.


농심의 변심
“최근 농심은 2015년 매출 4조 원대의 글로벌 식품기업이 되겠다는 비전을 발표했습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체질 만들기의 첫단추를 끼웠다고 봅니다. 앞으로 4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 체질화될 것입니다. 삼성에 입사해 농심에 오기 전까지 수십 년간 해온 일이 경영혁신입니다. 여러 회사에서 혁신을 시도했는데 이제 농심을 혁신의 성공모델, 베스트 프랙티스로 만드는 게 꿈입니다.” 2008년 말 당시 손욱 농심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농심은 2015년 매출 4조 원 달성과 글로벌 식품 기업 도약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하지만 2010년 농심의 매출은 1조8,951억 원에 머물렀다. 2008년 1조6,758억 원이었던 매출이 2009년에는 1조8,455억 원으로 늘어났었지만 2009년 대비 2010년 매출은 답보 상태나 다름없었다. 2011년 상반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더 부진했다. 매출은 9,974억원으로 전년 대비 5.4% 늘었다. 영업이익은 644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5.7%나 줄었다. 농심이 야심차게 선언했던 2015년 매출 4조 원 시대는 요원한 일이 되어 가고 있다.

2008년 3월 손욱 회장이 농심의 지휘봉을 맡을 무렵 농심은 변화와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지난 30년 동안 농심은 라면 업계 절대 강자라는 위치를 누려왔다. 식품 업계는 보수적이다. 소비자들의 입맛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식품 브랜드에 대한 신뢰는 한순간에 불신으로 뒤바뀔 수 있다. 농심 역시 삼양식품이 유지 파동으로 몰락하는 걸 똑똑히 지켜봤다. 소비자들은 먹거리에 대해선 지나치리만치 민감하다. 식품 업계는 공정의 작은 변화조차 부담스러워한다. 1위 업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게 최선책이었다. 게다가 농심은 어쩔 수 없이 내수 지향성 기업일 수밖에 없었다. 나라마다 입맛이 다르다. 자국민의 입맛에 맞춘 먹거리를 우선적으로 개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농심이 내수 시장에 머물면서 변화를 마다하는 사이에 농심 주변의 수 많은 한국 기업들이 세계적으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한국 기업 생태계도 글로벌화하고 있었다. 국내 식품시장 역시 포화 상태로 접어들고 있었다. 농심의 매출은 조금이나마 늘고 있었지만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성장을 위해선 과감한 혁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식품 업계 내부에선 혁신이 불가능했다. 오랜 시간 식품 업계에 몸 담은 전문 경영인들은 혁신보단 수성이 체질화돼 있었다. 손욱 회장은 농심이 찾아낸 돌파구였다. 40년 동안 삼성그룹에 몸 담으면서 신경영 혁신을 주도했던 손욱 회장이야말로 농심을 변화시켜줄 적임자라고 여겼다.

손욱 회장은 취임 1년을 즈음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삼성은 주로 전자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으로 상품 등 모든 부문이 글로벌 경쟁을 업으로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글로벌 경영이라는 문화를 갖게 됐습니다. 즉 무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대응하는 구조와 시스템으로 조직화됐고 모든 회사의 중심이 글로벌 관점에서의 시스템과 프로세스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를 움직이기 위해 교육 프로그램도 체계적으로 잘 잡혀있고 글로벌 프로세스도 가장 잘돼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덧붙였다. “반면 식품기업은 나라마다 먹거리가 다르기 때문에 내수지향형입니다. 조직문화도 내부지향적으로 되고 벤치마킹도 안에서 하게 됩니다. 때문에 변화의 패러다임이 늦게 옵니다. 예컨대 1980년대쯤 있었던 삼성의 변화 같은 것이 농심에겐 이제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손욱 회장은 농심의 보수적인 체질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일단 지나친 성과 중심주의와 상명하복식 일방 소통 문화를 바꾸려고 여러 가지제도를 시행했다. 와우미팅도 그런 제도 가운데 하나였다. 직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고 소통하는 방식이었다. 잭 웰치가 GE를 이끌면서 사내에 도입했던 제도였다. 손욱 회장은농심이 성장하려면 농심의 조직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고 봤다. 당장의 성과보단 장기적인 비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여겼다.

손욱 회장의 농심 개혁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손욱 회장은 취임 1년 6개월 만인 2009년 말 전격 사퇴했다. 사실상 경질이 아니냐는 분석도 흘러나왔다. 자진 사퇴를 발표하기 전부터 결재 라인에서 배제됐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수십 년 전통의 농심을 개혁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던 경영인이 불과 2년도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났다. 기대에 못미친 실적 때문이란 분석이 컸다. 급기야 신춘호(79) 농심 창업주가 손욱 회장을 불신임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평소 대외 활동이 잦은 손욱 회장의 행보를 못마땅하게 여겼단 해석이었다.

신춘호 농심 창업주는 은둔형 경영자다. 손욱 회장이 대외 활동에 집중하면서도 기대에 부응하는 경영 실적을 내놓지 못한 게 문제일 수도 있었다. 사실 손욱 회장한테 농심의 지휘봉을 맡긴 건신춘호 창업주였다. 당초 농심의 경영 자문을 맡았던 손욱 회장한테 직접 농심을 혁신해달라고 부탁했다. 불과 2년 만에 서로 처지가 바뀐 셈이었다. 손욱 회장은 이런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사실 그동안 농심은 라면 업계에서 시장 점유율이 73%에 이르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기가 20여년간 지속되면서 구성원들이 안주하고 자만에 빠지는 경향이 생겼습니다.과거의 농심 선배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도전정신으로 직장생활을 해왔지만, 현재의 후배들은 선배들이 쌓아올린 성과 속에서 안주한 면이 있습니다. 남들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20여 년 동안 거의 정체되다시피 했습니다. 때문에 회사의 역동성을 찾아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손욱 회장은 그런 농심의 보수성을 역동성으로 바꿔놓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의 농심 개혁은 실패했다.

어쩌면 손욱 회장의 개혁은 농심이 더 큰 회사로 변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었다. 하지만 농심은 단기 실적에 급급한 나머지 손욱의 개혁 성과들을 미처 체질화하지 못했다. 대신 답보상태에 있는 대차대조표 수치들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기 위한 묘책들만 찾았다. 그게 신라면 블랙이었고, 라면 값 인상 시도였다. 손욱 회장이 물러난 이후 농심은 라면값 인상을 위해 백방으로노력했다. 당장 영업이익이 떨어지고 있으니 제품 가격을 올려서라도 수치를 만회하겠다는 단선적인 전략이었다. 하지만 정부와 여론의 저항 앞에서 번번이 무산됐다. 얼마간 라면 값을 올린 적도 있었지만 농심으로선 성에 안 차는 수준이었다. 오히려 농심의 꾸준한 라면 값 인상 시도가 소비자 여론을 악화시킨 측면이 있었다. 소비자들에게 원가 인상 압력을 납득시키기보단 1등 기업이 서민 먹거리 가격을 자꾸만 올리려고 한다는 반감만 키웠다.

신라면 블랙이 출시된 직후부터 농심의 꼼수라는 비판 여론이 일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안 믿을 판이었다. 농심이 설사 프리미엄 라면 시장을 개척하고 싶었다고 해도 소비자들에겐 또 다른 농심의 가격 인상 전략으로 밖에 비치지 않았다. 농심은 2008년 새우깡에서 쥐머리가 나오면서 창사 이래 가장 큰 고난을 겪었다. 식품업체는 먹거리 소비자들 사이에서 불신이 싹트는 순간 벼랑 끝에 몰리게 된다. 소비자들의 무서움을 잘 아는 농심은 급격한 변화와 혁신을 부담스러워한다. 그저 실수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어쩌면 신라면 블랙은 손욱 회장의개혁 실패의 부작용이다. 농심은 변심했다.


1등 기업은 1등 전략을 쓸 수 있어서 1등을 지켜내기가 쉽다. 그러나 1등이기 때문에 쓸 수 없는 2등과 3등 전략은 있게 마련이다. 도전과 혁신은 1등이 쓰기 어려운 전략이다. 바로 이때 1등의 위기가 시작된다.


농심의 상심
영원한 1등은 없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역전도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 식품 업계에서도 2011년은 반란의 해다. 동서식품은 커미믹스 시장의 농심이었다. 시장 점유율이 80%가 넘었다. 동서식품의 시장 점유율은 올해 처음 80% 아래로 떨어졌다. 남양유업의 선전 때문이다. 더구나 남양유업은 올해 처음 커피믹스 시장에 진출했다. 순식간에 2위였던 한국네슬레를 누르고 시장점유율 11.3%로 차석을 빼앗았다. 맥주 시장에서도 격전이 치러지고 있다. 부동의 1위 하이트맥주를 과거의 왕자 오비맥주가 맹추격하는 양상이다. 남양유업이 반전을 이룰 수 있었던 건 변화를 선점했기 때문이다. 남양유업은 식품첨가물을 뺀 깨끗한 커피믹스를 시장에 내놓았다. 화학첨가물인 카제인나트륨 대신 천연카제인을 사용했다. 동서식품 역시 천연 재료를 선호하는 요즘의 웰빙 트렌드를 모르지 않았다. 단지 시장 점유율 80%에 안주했을 뿐, 변화를 기회로 삼는 데에는 굼떴다. 농심이 꼬꼬면을 놓치고 신라면 블랙을 선택했고 한국야쿠르트가 재빨리 꼬꼬면을출시한 것과 같은 상황이다.

세계적인 소비재 식품 회사인 P&G는 1980년대부터 PFE(Proudly found elsewhere)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연구개발을 내부에서만 닫힌 구조로 진행하고 있을 때 P&G는 외부에서 찾아낸 사업 아이디어나 신제품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풍토를 정착시켰다. 내부 연구개발자들을 존중하면서도 더 넓은 두뇌 시장을 활용하는 전략이었다. 결국 P&G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제품군을 거느린 소비재와 식품 제조사가 될 수 있었다. 어떤 아이디어든 받아들이고 성공시킨 덕분에 가장 많은 1등 제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농심의 1등 제품들은 대부분 1980년대에 잉태됐다. 대부분 농심 내부의 연구개발 성과였다. 하지만 이젠 전혀 다른 연구개발 방식이 필요하다. 애플의 애플리케이션 시장은 개방형 기술 혁신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손욱 전 회장도 리더십 센터와 연구개발센터를 하나로 묶어서 개방적 연구개발을 시도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었다.

1등 기업은 1등 전략을 쓸 수 있어서 1등을 지켜내기가 쉽다. 그러나 1등이기 때문에 쓸 수 없는 2등과 3등 전략은 있게 마련이다. 도전과 혁신은 1등이 쓰기 어려운 전략이다. 바로 이때 1등의위기가 시작된다. 농심은 혁신을 시도했지만 스스로 그 혁신을 좌초시켰다. 대신 과거의 방식으로 수성하는 길을 선택했다. 신라면 블랙의 실패와 경쟁사들의 위협적인 도전에도 불구하고 농심은 여전히 1등이다. 그래서 아직은 유리하지만 그래서 여전히 불리하다.


PHOTOGRAPH BY LEE JONG CHUL
사진 한국일보 DB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