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금융시장 휘어잡을 주요 변수 주목하라

유럽 재정위기·한미 FTA에 따른 영향 분석

세계 경제는 갈림길에 서 있다.
유럽의 재정위기를 비롯해 2011년 세계 금융시장을 흔들었던 미국의 침체, 중국의 경착륙과 같은 문제가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한국형 헤지펀드가 처음으로 도입되어 자산시장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또 한-EU FTA에 이어 한-미 FTA 비준안이 통과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정치적으론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을 한 해에 같이 치른다. 베이비 부머들의 은퇴는 가속되고 있고, 부동산 시장의 정체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포춘코리아가 이 중 국내 금융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거대 변수 두 가지를 뽑아 각각의 요소에 현미경을 들이댔다. 유럽 재정위기와 한-미 FTA가 그것이다.

차병선 기자 acha@hk.co.kr, 정운섭 기자 sup@hk.co.kr

유럽 재정위기

2011년 세계 금융산업을 강타한 카운터펀치는 유럽 재정위기였다. 아직도 세계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렇다면 2012년에는 나아질까? 글로벌 금융시장의 레이더 역할을 맡고 있는 국제금융센터를 찾아 이성한 소장에게 조언을 구했다. 이 소장은 사건의 발단부터 되짚어 주었다.

재정위기의 씨앗은 유로존 출범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이성한 소장은 말한다. “경쟁력이 약한 남유럽 국가와 경쟁력 강한 독일 같은 국가가 하나의 환율로 묶이다 보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쪽은 경제가 잘 되고 반대쪽은 피폐해졌습니다.” 이후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벌어지면서 유럽에도 불똥이 튀었다. 화약고에 불이 붙은 것. “가뜩이나 국가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겁니다. 은행에 구제금융을 투입하고,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해 재정을 투입하다 보니 재정적자폭이 확대됐습니다. 과거 사회복지 정책을 과도하게 늘려놓은 것도 부담으로 돌아왔죠.”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국가부도 사태를 염려할 지경에 이르렀다.

2011년을 상황을 되돌아보자. 위기는 연초부터 예상됐다. 적지 않은 전문가가 미국의 더블딥을 우려했고, 2010년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와 아일랜드도 주시하고 있었다. 2011년 초에는 포르투갈도 두 손을 벌렸다. 다행히 미국은 하반기 들어 거시 지표가 개선되었다. 문제는 유럽이었다.

이미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에 또 한 번 재정위기가 닥쳐왔다. 기존에 받은 돈이 부족했다. 또 이태리와 스페인도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었다. 유럽 정상들은 회담을 가지며 해결책을 모색했다. 12월에는 재정규율을 강화하는 합의안을 내놓았지만, 시장에선 해결책이 되지 못할 것이란 반응이 나타났다. 결국 위기는 2012년까지 이어지는 상황이다.

“머들링 스루 (muddling through)라고 하죠. 진흙탕을 헤쳐나가는 것처럼 힘겹지만 조금씩 나아질 전망입니다”

중국도 성장률이 2011년 1사분기 9.7%에서 3분기 9.1%로 낮아졌다. 4분기에는 더욱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 역시 6~7% 성장은 유지했지만, 10월 산업생산이 전년대비 5% 떨어졌다. 소위 신흥국도 선진국 침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디커플링은 고사하고 커플링이 강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돌아보면 유럽재정위기가 전 세계를 흔들고, 변동성을 크게 해 이머징 마켓에 갔던 글로벌 자금이 안전자산을 좇아 미국 쪽으로 움직였다고 정리할 수 있다.

국내 금융시장에 미친 여파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주식시장에서 유럽 자금을 중심으로 연초대비 9조 원 이상(2011년 11월 기준)이 빠져나갔다.

채권시장도 유럽자금이 일부 빠져나가긴 했지만 전체 규모는 오히려 10~11조 원이 불어났다. 주식·채권 시장 전체를 놓고 보면 1~2조원 정도가 유입된 셈이다.

12월 들어 채권 3조 원 정도가 추가로 빠져나갔지만, 이는 재투자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는 돈이다. 만기가 도래해 국내 최대 외국인 기관투자자인 템플턴에서 빠져나간 돈이기 때문이다. 2011년 전체적으로 보면 1~2조 원이 나간 정도다.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을 고려하면 국내 시장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내년은 어떨까?

2012년에도 유럽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각국 정상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유로존은 17개국, EU는 27개국이다. 합의안이 나오더라도 국가마다 비준을 거쳐야 한다. 또 분야별로 나라 간 이해관계가 다르다. 시간이 걸릴수록 각 나라에 부담은 커진다. 이태리의 경우엔 국채수익률이 6%를 넘고 있다. 국채가 안 팔린다기보다 매매가가 하락해 수익률이 커지는 것이다. 리스크가 줄지 않으면 국채 발행에 더 큰 부담이 간다. 결국 해결책을 마련하더라도 한동안 어려움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만성질환이란 뜻이다.

또 한 가지 유럽 은행들은 2012년 6월까지 핵심 자기자본비율을 9%까지 늘려야 한다. 유럽은행감독청이 내린 조치다. 자기자본비율을 늘리기 가장 쉬운 방법은 자본금을 키우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 신용도가 떨어진 상황에 시장에서 자금을 끌어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에서 지원을 받는 것도 달갑지 않다. 부실은행으로 낙인 찍힐 우려가 있다.

결국 은행들은 대출금을 회수하거나 총자산을 줄임으로써 자기자본비율을 올리는 방법을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2012년 상반기에 유럽 은행들이 자금을 회수한다면, 아시아, 신흥국에서도 자금 회수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계 경기 회복이 더뎌질 수 있어요.” 이 소장은 말한다. “유럽 국가들은 재정적자를 줄이는 동시에 경제를 성장시켜야 하는 양립하기 어려운 목표를 달성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수출업체에게도 부담이 예상된다. 국내 수출 물량 중 EU국가 비중은 30% 정도다. 미국보다도 크다. 한-EU FTA를 통해 수출환경이 개선되긴 했지만, EU경제가 침체되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EU가 침체되면 또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도 침체된다. 우리나라에도 간접적인 여파가 미치게 된다.

현재로선 유럽 재정위기 여파가 어느 정도일지 단언하기 어렵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유로존 해체다. 그렇지만 2012년에 현실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최선의 시나리오는 점진적인 호전이다. “유럽 정상들의 조치들이 있습니다.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통한 자금확충, 유럽안정기구(ESM)의 조기 출범, 유럽중앙은행(ECB)의 규율 강화 등의 조치가 원만히 합의되고 진행된다면 재정위기 사태는 차츰 안정될 수 있을 겁니다.” 이 소장의 말이다.

몇 차례 예견되는 고비는 다음과 같다. 먼저 3월에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이때까지 재정협약(GDP 대비 재정적자비율이 3% 이상 올라가거나 GDP 대비 정부부채비율이 60% 이상 올라가면 자동적으로 제재되는 협약)에 대한 구체적인 안을 마련하고, 각 나라별로 국내 비준을 마쳐야 한다.

또 이태리와 스페인 국채 만기가 대거 도래한다. 차환이 원활히 진행되는지 지켜봐야 한다. 6월 말까지는 유럽 은행들이 핵심자기자본비율 9%를 맞춰야 한다. 은행들이 이를 잘 수행하는지, 그 과정에서 중국과 신흥국으로 디레버리징(부채를 줄이기 위해 자금 회수를 하는 과정)이 일어나는지 관찰해야 한다.

2011년 국내 금융시장에서 1~2조 원이 유출됐다.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을 고려하면 유럽 재정위기가 국내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2012년 금융시장 전망은 상저하고다. 이 소장은 말한다. “일단 1사분기 혹은 상반기까지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만 하반기에는 최악의 국면은 벗어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머들링 스루muddling through라고 하죠. 진흙탕을 헤쳐나가는 것처럼 힘겹지만 조금씩 나아질 전망입니다.

물론 이런 전망에는 유럽 위기가 점차 풀려간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상황이 나빠지면 달라지겠죠.” 변동성도 상반기에는 높다가 서서히 안정될 전망이다. 하지만 유럽 은행들이 디레버리징으로 신흥국 자금을 빼내가면 신흥국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다만 이 소장은 유럽의 긴축이 향후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미국과 중국 시장은 어떨까? 미국 경제지표는 개선되고 있다. 2011년에 미국은 9% 이상 실업률을 계속 유지하다 11월 8.6%로 떨어졌다. 소비자심리지수, 제조업지수(PMI) 같은 경제지표도 좋아지고 있다. 이 소장은 “더블딥에 대한 우려가 줄어들면서 2011년 변동성의 한 축을 차지했던 미국 시장이 다소 안정되는 추세”라며 “하지만 2012년엔 유럽재정 위기의 영향을 함께 겪을 수 밖에 없고, 부동산 시장 리스크도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부동산은 모기지 연체비율, 차압비율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다. 수출 역시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감소하고 있다. “중국의 성장률도 2012년 상반기쯤에는 8%대로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중국이 그동안 부동산 시장 안정화 대책을 쓰거나 금리, 지급준비율을 많이 올려놨기 때문에 정책적 대응 여지는 많습니다. 경착륙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과 중국 리스크는 유럽에 비해 크지 않다는 말이다.

국내 투자자를 위한 조언도 들을 수 있었다. 이 소장은 “국제금융센터 소장이 투자조언을 하는 건 적절치 않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조언을 한다”는 조건을 달고 한마디를 귀띔했다. “전 주위 사람에게 큰 흐름을 보고 장기 투자를 하라고 권합니다. 주가 수준이 충분히 빠졌다고 생각되면 그 시점에 들어가라는 교과서적인 이야기죠.” 그 시점은 언제일까? 이 소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시장에서 답을 찾으세요.”

한미 FTA

결론은 났다. 눈물·콧물이 얼룩지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한-미 FTA 이행 법안이 통과됐다. 이젠 책상 앞에 앉아 한-미 FTA가 국내 증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조용히 계산기를 두드려볼 시간이다. 한-미 FTA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최대 규모의 무역협정이다. 산업연구원은 이번 무역협정이 향후 15년간 전 세계 무역수지 흑자에 연평균 27억7,000만 달러가량의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대미 무역수지에선 향후 15년 동안 연평균 1억4,000만 달러의 흑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제조업에선 연평균 5억7,000억 달러의 흑자가, 농수산업에선 연평균 4억3,000만 달러의 적자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가장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분야는 자동차 산업이다. 하나대투증권 투자전략부 양경식 이사는 말한다. “미국과의 교역은 대체로 규모가 큰 업체들에 의해 주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대미 수출품목의 65%가 최종재라는 현 상황이 국내 경제의 주력산업인 자동차 산업의 호전을 예상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어요.”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율은 발효 즉시 4%(현재 8%)로 낮아진다. 그 후 4년 차까지 2.5% 관세를 부과하다가 5년 차부터는 완전히 폐지된다. 미국산 자동차 관세는 발효 후 2~4년 차까지 4%로 인하된 뒤 5년 차부터 없어진다. 자동차부문 대미 수출의 38%를 차지하는 자동차부품에 대한 관세는 발효 즉시 철폐된다. 미국이 한국 자동차 시장의 8배 규모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보다 득이 많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업계 전문가 대다수도 자동차 주식이 수혜를 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투자증권 서성문 연구원의 말이다. “미국 수출비중은 기아차가 현대차보다 더 높습니다. 하지만 내수시장 개별소비세율 인하는 높은 대형차 비중을 고려해 볼 때 기아차보다 현대차에게 좀 더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차와 기아차에 대해 목표주가를 32만 원과 10만5,000원으로 제시합니다.”

일각에선 완성차 업체보다 부품업체의 수혜 정도가 상대적으로 더 클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발효 즉시 철폐되는 관세 덕분에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대미 수출이 호조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부품업체는 해외 공장의 생산원가가 즉각적으로 개선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관계자는 말한다. “반조립제품 수출 비중이 높은 현대모비스, 한라공조, 평화정공, 화신 등을 주목할 만합니다. GM처럼 북미에 생산시설을 둔 기업에 대한 직수출이 늘어 만도, 에스엘, S&T대우와 같은 기업들도 중장기적으로 수혜를 볼 겁니다.”

그 외 증권가에선 넥센타이어와 한국타이어 등도 수혜주로 꼽고 있다. 타이어 역시 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총 4%의 관세가 없어지게 된다.

인적 교류와 국제 무역량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항공, 해운 업계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수혜효과는 해운주보단 항공주가 더 클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 관계자는 말한다. “무역량 증가에 따라 컨테이너 수출입 물동량도 증가할 것이라 기대되고 있지만, 해운업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한-미 물동량 비중이 그리 높지 않은 편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해운주보단 항공주에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질 것입니다.”

섬유업종 역시 수혜업종으로 꼽히고 있다. 하나대투증권 양경식 이사는 말한다. “섬유수입품 관세 완전 철폐까지는 아직 5년이 남았지만, 결국에는 가중평균 13% 수준인 미국 수출 관세가 사라지게 됩니다. 국내 섬유업체들의 가격경쟁력에 큰 보탬이 될 겁니다.” 이런 기대감을 반영하듯 한-미FTA 이행 법안 통과 후 주요 수출 섬유주들이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수혜주로는 웰크론과 전방, 대한방직과 동일방직이 꼽히고 있다.

그 외 IT업종 중에선 가전제품이나 휴대폰 관련종목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법안이 발효되면 TV(5%), 백색가전(1~2%)에 부과되던 관세가 사라져 삼성전자나 LG전자에 긍정적인 수출여건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 가전제품이 국내에 들어올 때도 관세가 철폐되기 때문에 국내 시장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 뒤따르고 있다.

다수의 투자전문가들이 여러 FTA 수혜주에 대해 중장기적으로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즉각적인 효과에는 의문부호를 달았다. 일부 업종을 제외한 대부분은 발효 후 일정 시간이 지나야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증시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선 기업들에게 실질적인 손익이 발생해야 하는데, 전문가들은 그런 실적이 실제로 반영되기까진 만만치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빛이 있다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다. 지난 11월 18일 한-미 FTA 이행 법안이 통과되기 나흘 전, 서울 장충체육관에 국내 제약업계 종사자 1만여 명이 집결했다. 2012년 정부가 시행하는 약값 인하정책과 한-미 FTA 협정에 대한 부당성을 주장하는 자리였다. 제약업계 114년 역사상 처음 있는 궐기대회였다.

제약업계가 비준안에서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대목은 ‘허가특허 연계제도’ 도입이다. 특허권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복제의약품의 제조와 시판을 유보하는 제도다. 미국 대형 제약사의 신약 특허권 강화를 인정하는 내용으로, 복제의약품 매출 비중이 높은 국내 제약사에겐 전적으로 불리한 조항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 업체가 제네릭의약품으로 불리는 복제약이나 개량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이에 따라 약값이 오를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궐기대회에 참여했던 국내 제약사 직원은 말한다. “외국 신약을 바탕으로 국내 제약사가 개발 중인 복제약이나 개량신약에 대해 다국적 제약사가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하면 그 즉시 허가 절차가 중단됩니다.

상대적으로 외국 신약에 비해 가격이 싼 복제약이나 개량 신약은 중단되는 기간만큼 출시가 늦춰지거나 생산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커져요. 그 기간 동안에는 국내 소비자들이 값비싼 오리지널 약을 구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정부도 인지하고 있다. 정부 역시 한미FTA로 제약업계의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회 보고자료에 따르면, 한미FTA 발효 이후 국내 복제의약품 생산은 10년 동안 연평균 686억~1,197억 원 정도 감소하게 된다. 시장 위축에 따른 소득 감소 규모도 457억~797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협정 발효 후 제약업계의 대미 수입은 10년간 연평균 1,923만 달러 증가하는 반면, 수출은 같은 기간 연평균 334만 달러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복제약 시판 허가·특허연계 이행 의무를 3년 동안 유예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는 국내 제약업계의 충격을 덜기에 역부족이라는 게 다수 투자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렇다고 모두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일부 제약사는 관세 폐지로 인해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을 전망이다.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관계자의 말이다. “중기적으로 보면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근거도 분명 존재합니다. 미국으로 의약품 완제품이나 원료를 수출하는 회사는 혜택을 볼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수입한 원료를 완제품으로 가공해 다시 미국으로 수출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수입이나 수출 모두 관세가 폐지되니 수익성에 한결 여유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한미약품과 유한양행 그리고 녹십자가 그런 회사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일각에선 완성차 업체보다 부품업체의 수혜 정도가 상대적으로 더 클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발효 즉시 철폐되는 관세 덕분에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대미 수출이 호조를 보일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내 음식료 업종 역시 일부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소재식품 분야에선 채유 및 대두박용 대두의 수입관세 487%가 즉시 철폐된다. 이 품목을 원료로 사용하는, 혹은 직접 생산하는 국내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투자전문가들은 국내 시장이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리서치 센터 이경주 연구원은 말한다. ”안정적인 생산이 판매의 열쇠인 대두유와 사료부문에서는 단순히 원료 수입이 늘어나기보다는 새로운 외부 경쟁자가 국내에 생산시설을 갖춘 뒤 미국산 대두와 옥수수를 수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도 공장 건설 시간과 유통망, 브랜드 구축에 소요되는 시간과 자금을 고려하면, 당장에 국내에서 제품을 팔기란 쉽지 않을 거예요. 국내 기업들의 제품가격이 비용에 비해 이미 낮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충분한 시장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봅니다.”

맥주 수입관세 30%도 단계적으로 철폐된다. 하지만 7년이라는 소요기간이 있기 때문에 그 사이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 하지만 와인 수입관세가 즉시 사라지는 만큼 맥주와 소주와 같은 주종 전반의 판매가 일부 위축시킬 수 있다. 국내 수입주류업체 한 관계자는 “와인이 가격 경쟁력을 갖추면, 맥주와 소주처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대중성을 가지게 된다”며 “와인의 국내 저변이 확대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투자전문가들은 화장품과 미디어업종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현재 8%의 관세가 적용되고 있는 수입화장품 가격이 떨어지면, 국내 화장품도 가격인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진다는 판단에서다.

방송부문은 국내 케이블방송국에 대한 미국 자본의 간접 투자한도가 법안 발효 후 3년 동안 100%까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다수의 해외 방송국들의 국내 진출이 점쳐지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방송제작 수요 상승으로 제작비가 오르고 광고 수익이 분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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