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은 기술과 미래성장동력을 가졌어도 충분하고 원활한 에너지의 공급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마치 휘발유 없는 슈퍼카를 가진 것처럼 말이다.
이 점에서 화석연료 고갈과 고유가 기조, 온실가스 배출과 지구온난화에 따른 일련의 에너지 위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같은 위기 극복을 위해 전 세계는 현재 지속가능한 성장을 모토로 에너지 혁신에 범국가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김청한 기자 best@hmgp.co.kr,
대덕=구본혁 기자 nbgkoo@sed.co.kr
REDOX FLOW BATTERY
3. 레독스 흐름 전지
신재생에너지 발전의 난제 풀어줄 막강 구원투수
태양광, 풍력 등으로 대변되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스템의 성패는 사실상 효율과 안정성에서 판가름된다. 일정한 출력을 내는 기존 화석연료 발전에 비해 신재생에너지는 주변 환경이나 날씨 등에 따라 발전량이 불규칙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통제 불능성은 상용화의 큰 걸림돌이 된다.
난제의 해결을 위해 절실하게 요구되는 기술이 바로 대용량 2차 전지다. 대용량 2차 전지의 도움을 받으면 발전효율이 좋을 때 잉여 전력을 저장했다가 효율이 낮을 때 그 전력을 보태는 방식으로 일정한 출력의 유지가 가능하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에너지저장센터 진창수 박사팀이 국내 최초로 개발·제작·실 증에 성공한 '레독스 흐름 전지(RFB) 시스템'은 이 점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의 아킬레스건을 없애줄 최고의 구원투수로 지목받고 있다.
RFB는 전해질의 전기화학적 가역반응을 통해 충전과 방전을 반복, 대용량의 에너지를 장기간 저장해 사용할 수 있는 2차 전지를 말한다. 진 박사는 "RFB는 전해질 내 이온들의 산화·환원 전위차를 이용해 전기에너지를 저장한다"며 "전해액의 화학적 에너지를 직접 전지에너지로 저장하는 전기화학적 축전기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런 RFB의 최대 강점은 단연 탁월한 전력 저장능력과 장수명. 하지만 이외에도 장점은 하나 둘이 아니다. 전지의 스택과 전해질 저장 탱크가 서로 독립적으로 구성돼 있어 설계 및 설치가 자유로우며 전기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스택은 상온에서 작동되는데다 수명이 무려 20년 이상이다. 전해질을 이루는 활성물질인 바나듐(V) 역시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하다.
진 박사는 "전해질 저장탱크의 크기를 늘리는 만큼 저장용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대용량화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급격한 전력 수요 증대에 대응하는 부하 평준화 기능, 정전 및 순간적인 저전압 억제 기능까지 있어 신재생에너지 발전과 접목하면 최상의 효용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진 박사팀의 RFB는 수많은 실험을 거쳐 전해질이 흘러가는 경로를 최적화함으로써 효율이 기존의 RFB들보다 뛰어나다. 진 박사에 따르면 5㎾급 스택을 가지고 성능 시험을 실시한 결과,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과 비교해 5~10% 더 우수한 효율이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제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상용성 분석을 위한 시험대에 RFB를 올려놓을 방침이다.
작년 말 개소한 제주 글로벌 신재생에너지 연구센터를 활용, 제주의 풍력발전과 연계하여 실험실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 성능 검증을 추진하고 있는 것.
진 박사는 "제주 센터에서의 운용 결과를 바탕으로 성능의 고도화를 꾀할 예정"이라며 "이와 함께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해 산학연이 연계하는 방향으로 RFB의 활성화를 앞당기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SOLAR HOUSE
4. 제로에너지 솔라하우스
에너지 자급자족하는 그린하우스 뜬다
주택, 빌딩 등 건축물은 지구에서 소비되는 에너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건물의 에너지 다이어트 없이는 온실가스 감축도, 에너지 위기 극복도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 것이다. 유럽연합(EU)이 2019년부터 모든 신축 주택을 에너지 자급자족형 '제로 에너지 주택'으로 건설키로 하는 등 세계 각국이 에너지 자립 주택의 개발과 건설에 매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제로 에너지 솔라하우스(ZeSH)Ⅱ'가 제로 에너지 주택의 미래를 제시하는 전형으로 평가받으며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 개발한 ZeSH Ⅱ는 건물에너지 저감 기술과 신재생에너지 기술이 최적화 설계된 친환경 미래 주택 기술이다.
지난 2000년부터 주택 에너지 저감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에너지 자립형 주택 기술을 연구해 온 에너지연은 2002년 ZeSH Ⅰ의 개발에 성공, 2005년 '제로 에너지 타운'을 실증 운영한 결과를 바탕으로 ZeSH Ⅱ를 완성했다.
연구를 주도한 백남춘 태양열지열연구센터장은 "ZeSH Ⅱ는 20% 수준의 추가 비용으로 85% 이상의 에너지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ZeSH Ⅰ의 단점이었던 값비싼 건축비와 낮은 에너지 자립도의 해결을 위해 비용 대비 에너지 절감 효과가 적은 기술을 제거하고 모니터링 기술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ZeSH Ⅱ에는 외부로 유출되는 에너지를 최소화한 슈퍼 단열기술과 고효율 창호, 태양에너지로 난방 부하를 줄인 자연형 태양열 기술, 겨울에는 외부의 찬 공기를 예열하고 여름에는 더운 공기를 냉각시켜 실내로 유입시키는 환기배열 회수 기술 등이 채용돼 있다.
특히 태양열 집열기를 수직으로 세운 벽면 일체형 태양열 집열 장치는 가장 혁신적 기술로 꼽힌다. 백 센터장은 "집열기를 주택 남측 벽면에 수직으로 설치, 동절기에는 집열량이 많고 하절기에는 적어지도록 했다"며 "기존의 지붕 설치식 집열기와 달리 여름철 과열을 막으면서 충분한 설치 공간 확보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유럽 등지에서 집열기의 수직 적용 사례가 많지만 건물 일체형으로의 상용화는 ZeSH Ⅱ가 최초다.
또한 신재생 하이브리드 시스템도 눈에 띄는 기술이다. 이는 태양광·태양열·지열 등의 신재생 에너지원을 냉·난방과 급탕, 전력 생산에 활용하는 설비들을 하나로 모듈화한 것이다. 백 센터장은 "각 시스템을 별도로 설치하지 않아도 돼 비용절감과 공간 활용도 증대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전했다.
에너지연은 이미 정액기술료 7억원과 경상 기술료(순매출액의 0.3%)를 받는 조건으로 한화건설에 관련기술을 이전했으며 향후 전북 고창군에 건설될 '에너지 자립형 농어촌 뉴타운 조성 사업'을 통해 본격적인 상용화에 착수할 방침이다.
백 센터장은 "우리나라도 세계적 추세에 맞춰 건물의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건축 트렌드가 빠르게 전환될 것"이라며 "친환경 신재생에너지를 건물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연구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CARBON CAPTURE
5. CO₂포집·고순도 수소 생산
온실가스로 친환경 수소 연료 생산
석유, 석탄 등의 화석연료는 현 인류에게 있어 필수적인 에너지원이다. 그러나 이산화탄소(CO₂)를 발생시켜 지구온난화 등 심각한 기후변화를 초래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50년까지 화석연료의 비중이 전체 에너지의 70% 이상을 유지할 전망이다.
이 난제를 풀 해법으로 세계 각국은 'CO₂포집·저장(CCS)'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화력 발전소, 제철소 등 대형 배출원에서 나오는 CO₂를 포집·격리·저장하는 CCS를 통해 화 석연료의 환경유해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기존 CCS 기술은 CO₂포집 비용이 1톤당 40~60달러로 비싸고 폐수가 발생한다는 게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백 박사는 "기존 CCS가 배기가스에 함유된 CO₂를 포집하는 반면 이 기술은 연소되기 전의 화석연료로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CO₂를 포집한다"며 "석탄, 바이오매스 등 품질이 낮은 탄화수소계 연료를 원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석탄가스화복합발전(IGCC)에 적용되는 이 기술은 석탄을 가스화해서 생성된 수소, 일산화탄소 합성가스를 수소와 CO₂로 전환한 뒤 분리막을 활용해 수소를 추출하는 동시에 CO₂를 포집하는 메커니즘이다. 이렇게 추출된 수소는 연료전지 발전소 또는 수소연료전지차의 연료로 쓸 수 있으며 포집된 CO₂는 지중이나 해저에 반영구적으로 저장된다.
특히 연구팀은 기존 분리막보다 투과 성능이 개선된 팔라듐계(Pd-Cu) 분리막을 개발, 합성가스 처리량을 7배 이상 향상시켰고 분리막을 초박막화해 고가의 팔라듐 사용량도 10 분의 1로 줄였다. 백 박사는 "500㎿급 화력발 전소에 적용할 경우 기존 분리막은 1,200억원이나 필요했지만 새로 개발된 것은 60억원이면 돼 경제성이 탁월하다"며 "덕분에 CO₂포집 비용을 톤당 10달러까지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연구팀은 가스처리능력이 분당 2ℓ인 실험실 규모의 공정과 시간당 1,000ℓ의 탄화수소를 처리하는 파일럿 설비로 공정기술의 타당성 실증을 완료한 상태다. 백 박사는 "오는 2025년경 국내에 건설되는 4기의 IGCC 플랜트와 연계, 본격 상용화를 앞당길 예정"이라며 "연간 220만톤의 CO₂저감과 약 2조6,000억원에 달하는 수출시장을 선점하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백 박사팀의 분리막 이용 CO₂포집 공정기술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작년 선정한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 중 톱 5에 오르며 기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