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PULSE 고동치지 않는 인공심장

HOW DOCTORS REINVENTED THE HUMAN HEART

미코(Meeko)라는 이름의 송아지가 볏짚에 코를 비비고 있다.

왠지 따분해 보이면서도 사람들이 클립보드를 들고 주변을 에워싼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이유가 궁금한 듯한 모습이었다.




14시간 전, 필자는 의사들이 미코의 심장을 적출해 접시 위에 올려놓는 것을 똑똑히 지켜봤다. 하지만 심장을 들어낸 미코는 지금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볏짚을 씹으며 꼬리로 파리를 쫓고 있었다. 팔팔하게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이보다 더 놀라운 점은 이 녀석의 머리 위에 부착된 생체징후 모니터의 맥박 그래프가 일직선을 보이고 있다는 거였다. 모니터상으로 미코는 분명 사망한 상태다.

필자는 가슴에 청진기를 대 봤다. 심장이 뛰는 소리 대신 마치 치과용 드릴이 작동하고 있는 것 같은 기계소리가 전해졌다. 심장이 아닌 무언가가 미코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심장질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다. 미국에서만 최대 500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공급되는 이식용 심장의 수는 연간 2,000개에 불과하다. 이 같은 현실을 타개할 가장 확실한 대책은 인공심장의 개발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쉽게 말해 심장은 인체의 펌프다. 그리고 인류가 최초로 펌프를 발명한 것은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다. 지렛대를 사용해 강물을 길어 올리는 방아두레박의 발명이 펌프의 효시다.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펌프의 성능도 일취월장했다. 이제는 수㎞ 지하의 물을 끌어올리고, 아주 작은 기기에 들어가는 정밀한 펌프도 만들 수 있다.

이와 관련 의사들은 1940년대 중반에 이르러 사람을 위한 인공심장 개발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6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아직 완벽한 인공심장은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이유를 알고 싶다면 1㎏짜리 아령을 들고 운동을 해보자. 1㎏이니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쉬지 않고 할 수 있을까.

20분? 1시간? 혹은 2시간?

이제 생각해보자. 인간의 심장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24시간 고동친다. 1년이면 약 3,500만번이나 된다. 죽는 순간까지 절대 쉬는 법이 없다.

맞다. 인공심장 개발의 최대 문제는 이렇듯 쉼 없는 작동능력의 확보에 있다. 모든 첨단기술을 동원하고도 현재까지 금속과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공심장을 18개월 이상 작동시키는 데 성공한 사례가 없다.

인공심장 개발의 선구자들 중에는 놀랍게도 복화술사인 폴 윈첼이 포함돼 있다. 그는 만화영화 '개구쟁이 스머프'의 가가멜, '곰돌이 푸'의 호랑이 티거를 연기한 성우이기도 하다. 윈첼은 TV에 출연하지 않을 때면 항상 특허를 받기 위해 발명품을 연구했다. 그가 평생 받은 특허는 무려 30가지나 된다. 특히 그중에는 음식물 등을 잘못 삼켜서 기도에 걸렸을 때 흉부에 강한 압박을 가해 이물질을 뱉어내게 하는 응급처치법 '하임 리히법'의 창시자 헨리 하임리히 박사와 공동 개발한 인공심장도 있다.

그때부터 1982년 최초의 인공심장 '자빅-7(Javik-7)'이 나올 때까지 대부분의 발명가들은 심장의 두근거림을 모방하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다. 즉 그들은 두근거림만을 모방한 인공심장으로 산소가 부족한 혈액을 심실에 모아, 폐에서 산소를 충전시킨 뒤 산소가 풍부해진 혈액을 또 다른 심실에 공급, 온 몸으로 전달하는 실제 심장의 모든 역할을 대체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금속과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공심장을 가지고 실제 심장의 작동 원리를 똑같이 재현하는 데는 몇 가지 심각한 제약이 따른다. 자빅-7을 비롯해 지금껏 개발된 후속모델들은 체외에 별도로 공기압축기를 부착해야 한다. 이 공기압축기는 환자의 피부를 관통하는 공기호스를 통해 자빅-7의 심실 속 기낭에 공기를 채워서 혈액을 폐로 보낸다. 그 다음 또 다른 심실에 설치된 기낭을 채워 체내 곳곳으로 혈액을 보낸다. 이 과정에서 두 개의 기낭은 번갈아가며 부푼다.

이는 물론 유효한 방법이다. 하지만 사용자는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공기압축기를 24시간 끼고 살아야 한다. 심장마비로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삶의 질 측면에서는 별로 좋은 방법이라 하기 어렵다. 자빅-7을 이용해 112일 동안 생명을 유지했던 바니 클라크는 사용기간 중 수차례나 의사들에게 자신을 안락사 시켜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안락사가 아니더라도 클라크는 112일 이상 버텨내기 힘들었다. 자빅-7의 기낭과 여타 작동부품들이 빠르게 마모됐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자빅-7이 등장한지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인공심장은 실제 심장을 이식받을 때까지 버티는 용도로밖에 여겨지고 있지 않다.

문제는 이식할 심장을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 심장 기증자는 반드시 양호한 건강 상태에서 사망한 사람이어야 한다. 안전 벨트와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마련되는 등 교통안전기준이 엄격해지면서 이런 심장을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그러나 심장의 수요는 인구와 질병 증가에 따라 나날이 늘어만 간다. 게다가 양호한 심장을 기증받았다고 해도 환자는 조직 거부 반응이라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다소 우스운 비유지만 심장의 두근거림을 재연하는 인공심장의 개발은 새처럼 날갯짓하는 항공기를 설계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행위와도 유사하다. 인간이 만들고자 하는 것에 대해 항상 자연이 최적의 모범적 설계를 보여주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최신형 인공심장은 심장의 근육, 즉 심근(心筋)을 전혀 모방하지 않고 있다. 소형 프로펠러처럼 윙윙 돌면서 일정한 속도로 피를 온몸에 순환시켜 줄 뿐이다.

인간의 몸은 5억년간의 진화 끝에 심장이 한번씩 뛸 때마다 단속적으로 펌프질돼서 체내를 순환하는 혈액의 흐름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피의 흐름이 생명유지에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50여 마리의 송아지와 3명의 인간이 에어콘 속의 프레온 가스처럼 혈액을 지속적으로 체내에 순환시켜 주는 인공심장을 부착하고도 아무 문제없이 살고 있는 비결이다.


1982년 최초의 인공심장이 개발됐지만 현재까지도 인공심장은 실제 심장을 이식받을 때까지 '버티는' 용도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 휴스턴의 텍사스메디컬센터는 도시 속의 도시다. 이곳에는 13개의 병원과 21개의 학교가 있으며 총면적이 뉴욕 센트럴파크 보다도 크다. 10만여명의 사람들이 여기서 일하는데 보도를 거닐거나 경전철을 타고 건물들 사이를 누비다 보면 마치 우주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드라마 세트장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 든다.

건물들 사이에 버티고 선 텍사스심장연구소(THI)에서 필자는 빌리 콘 박사를 찾았다. 그의 사무실은 '엄마에게 혼날 게 뻔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벽과 바닥에는 온통 스케치, 공구, 금속, 전선, 조각품, 트럼프 카드, 다윈의 진화론 피규어 세트 같은 물건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정전기 발전기에서는 시종 번개가 뿜어져 나왔다. 괴짜 중학생들이 만든 과학서클 룸 같은 꼬락서니였다.

콘 박사의 책상 위에는 심장의 입체 모형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캐비닛에는 이상하게 생긴 작은 금속 조각들이 뾰루지 마냥 붙어 있었다.

콘 박사는 그것들이 희토류 자석이라고 일러주더니 온 힘을 다해 하나를 떼어내서 필자의 손에 쥐어 줬다. 고작 지우개만한 크기였지만 필자가 손바닥을 펴자 자석은 총알처럼 날아가 캐비닛에 다시 들러붙었다.

"보시다시피 자력이 엄청나죠."

콘 박사는 환자의 몸 속 깊숙이 들어간 카테터를 이동시키기 위해 희토류 자석을 사용한 최초의 인물이다. 이 자석을 활용, 환자의 몸에 전혀 상처를 내지 않고 동맥 속으로 카테터를 넣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는 바닥에 굴러다니던 서류들을 집어 들어서는 뒷면에 그림을 그려가며 한 시간 동안이나 희토류 자석 의료기기와 그 작동 방식에 대해 설명해줬다.

그의 사무실 한쪽 벽에는 커피숍에나 있음직한 티스푼 4개가 떡하니 걸려 있었다. 그중 멀쩡한 것은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 3개는 가느다란 구멍들이 뚫려 있었다. 이는 수술 도구였다. 수년 전 콘 박사는 심장 수술 시 심장을 고정시키는 용도로 쓰기 위해 자신의 집 차고에서 이 스푼들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심장을 정지시키고 환자를 심폐기(pump-oxygenator)에 연결시키는 방식이 일반적 심장수술법이었다. 그러나 이는 다소 위험한 방식이다. 콘 박사의 스푼을 쓰면 의사들은 심장을 정지시키지 않고도 절개 또는 봉합이 필요한 곳을 찾을 수 있다. 스푼에 뚫린 틈을 통해 심장 표면이 일부 드러나고, 나머지 부분은 여전히 스푼 아래에서 고동치게 된다. 그는 이 아이디어를 다듬어 의료기 제작회사에 팔았고 이 회사는 이를 상용화해 전 세계에 수출했다.


카테터(catheter) - 늑막강, 복막강, 소화관, 방광 등의 내용액 배출을 측정하기 위해 체강 및 내강이 있는 장기 내로 삽입되는 고무 또는 금속 소재의 가느다란 관.


"사람을 달에 보내는 NASA가 왜 혈액 순환 펌프 하나 제대로 못 만들까요?" "그때는 연구비 지원을 엄청나게 많이 받았거든요."


콘 박사는 형 존과 함께 차고에서 로켓을 만들며 자랐다. 형은 IBM 최고의 기술자로, 콘 박사는 심장전문의로 성장했지만 두 사람은 지금도 로켓을 만든다고 한다. 필자가 사무실에 놓여있던 다이버용 작살총처럼 생긴 물건에 눈을 돌리자 그가 말했다.

"그게 뭔지 궁금하시죠? 창고에 있던 오래된 부품들을 가지고 만든 겁니다. 심장을 넣는 데 쓰는 도구예요."

그는 20분간 숨도 쉬지 않은 채 의사들이 왜 그런 도구를 써야 하는 지를 떠들어댔다. 결론은 그가 송아지 미코에게 이식한 연속적 혈류 공급 방식의 인공심장 때문이었다. 콘 박사는 그 인공심장에 푹 매료된 상태였다. 이 인공심장처럼 터빈을 사용해 병든 심장을 보조하는 기술은 1990년대 중반부터 의료계의 표준으로 정착됐지만 현재 콘 박사는 동료 연구자인 O.H. 버드 프레이저 박사와 함께 '연속 혈류(continuous-flow)' 인공심장으로 실제 심장을 완전히 대체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콘 박사는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인 잡동사니를 뒤져서 필자의 손에 두 개의 회색 금속 원통을 쥐어 줬다. 그가 개발한 터빈이었다. 두 원통은 흰색 튜브로 연결돼 있었고 각각에는 고무 처리가 된 데이크론 폴리 에스터 직물로 만든 원뿔이 달려 있었다.

콘 박사의 설명이 뒤따랐다. 원뿔은 기존 심장을 적출하고 남아있는 심방(心房)과 봉합되는 부분이어서 설계하기가 매우 까다롭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인공심장에 쓰이는 소재는 혈액에 닿았을 때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야 함은 당연하고, 구조에 변형이 일어났을 때도 즉시 원래 형태로 복원돼야 한다. 또한 제한된 공간 내에서 형성이 가능해야 하며 인체에 봉합해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덧붙여 주사바늘이 관통해도 혈액이 새어나가서는 안 된다.

"저는 인공심장이 체내에서 원활히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 의류 원단 상점이나 건축용품점에서 데이크론 섬유와 상온 경화형 실리콘 고무 (RTV)를 구입했어요. 제작은 집 차고에서 저 혼자 다 했죠. 그걸 본 아내가 인형 옷을 만드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연속 혈류 인공심장은 기존 인공심장의 최대 난제였던 수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콘 박사가 필자에게 보여준 터빈은 그의 실험실에서 무려 8년간이나 멈추지 않고 작동 중에 있으며 부품 마모의 징후도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이 인공심장은 비디오테이프 크기의 배터리만으로 계속해서 작동된다. 환자들은 이 배터리를 어깨나 등, 겨드랑이의 전용 주머니에 넣어 휴대한다. 다소 거추장스럽기는 해도 식기세척기만큼 큰 소리를 내는 공기압축기를 하루 종일 품고 사는 것보다는 100배 낫다.

콘 박사의 설명을 들으며 이 모든 것이 이론적으로는 타당해 보였다.

그렇지만 고동치지 않는 인공심장으로 생명을 유지한다는 아이디어는 다소 이해하기 힘들었다. 말장난처럼 느껴지기조차 했다. 맥박이라는 가장 기본적 생체징후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다는 것일까.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핸드메이드 심장
연구팀은 인공심장 제작을 위해 상용 좌심실 보조기(LVAD)에서 펌프를 떼어왔다. 다른 구성품은 건축용품점에서 사거나 직접 제작했다.


프레이저 박사가 실용적 인공심장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 데에는 1960년대의 어느 날 밤 겪은 충격적인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열의 넘치는 의대생이었던 그는 전설적인 심장 전문의인 마이클 드베이키 박사가 24세 남성 환자의 가슴을 절개한 후 새로운 심장판 막을 이식하는 수술을 직접 지켜봤다. 그런데 그날 밤 늦게 환자의 심장이 멈췄다. 프레이저 박사는 아직은 따뜻하지만 멈춰버린 심장을 손으로 움켜잡고 강제로 심장을 박동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그가 심장을 잡았다가 놓는 것을 반복하는 동안 환자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절대로 동작을 멈추면 안 됐다. 이제는 THI의 거물급 연구자가 된 그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드베이키 교수가 제게 그만하라는 지시를 내렸어요. 하지만 저는 그만두고 싶지 않았죠. 환자가 줄곧 눈을 뜬 채로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쥔 저를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결국 제가 동작을 멈추면서 환자는 숨을 거뒀어요. 그때 생각했죠. 어떻게든 이런 환자들을 살릴 수 있는 도구를 만들고 싶다고 말이에요."

인공심장 개발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인물은 의사이자 엔지니어인 리처드 웜플러 박사다. 의료 선교를 위해 이집트로 날아간 그는 1976년 엘 바야드라는 마을에서 연속 혈류 인공심장 개발의 길로 뛰어들었다.

그곳에서 그는 마을 주민들이 아르키메데스의 나선식 펌프를 사용해 우물에서 물을 긷는 것을 봤다. 기원전 230년경 발명된 그 펌프는 파이프 속에 와인 코르크 따개처럼 생긴 나선형 축을 넣은 간단한 구조지만 송곳을 돌리면 물이 끌어올려진다. 웜플러 박사는 그 광경을 잊을 수 없었고 10년이 지나지 않았을 무렵, 나선식 펌프를 이용해 맥박이 뛰지 않고도 체내에 혈액을 돌게 해주는 장치를 개발해 냈다.

1980년대 초 그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당시 유명한 심장 전문의이던 프레이저 박사에게 알려줬다. 그 당시 심장학계의 최대 이슈는 소형 펌프를 환자의 심장에 장착, 좌심실의 기능을 보조하는 아이디어였다. 비록 심장 전체를 대체하는 수준이 아니며 폐로 혈액을 보내서 혈액에 산소를 재공급해주는 우심실의 기능은 여전히 환자의 실제 심장이 해야 했지만 말이다.

의사들은 이런 방식으로 운용되는 펌프를 좌심실 보조기(LVAD)라 불렀다. 하지만 LVAD에는 문제가 있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기압축기가 필요했으며 심장처럼 고동치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부품들이 비교적 빠르게 마모됐다.

프레이저 박사와 웜플러 박사는 아르키메데스의 나선식 펌프를 사용하면 LVAD보다 수명이 길고, 편리한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류 심장학계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국제심장·폐이식학회 (ISHLT)의 학회지에서는 프레이저 박사의 논문을 실어주려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기억에 의하면, 학회지 측은 논문에는 약간의 관심이 있지만 의료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 같은 내용을 게재 하더라도 심장질환 치료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였다.


그녀는 72일간의 병원생활을 끝내고 멈춰버린 심장을 몸속에 간직한 채 무사히 두 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두 개의 심장
인공심장 이식을 위해서는 원래의 심장을 적출해야 한다. 송아지의 심장 적출 후 인공심장이 이식될 때까지 생명 유지는 심폐기를 통해 이뤄진다.


아르키메데스의 나선식 펌프를 혈액 순환에 사용할 경우 예견되는 가장 큰 문제는 혈액 자체에 손상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다수 사람은 혈액 세포가 20만개당 하나 꼴로 파괴되는 수준까지 견딜 수 있다. 반면 연속 혈류 터빈은 고속 회전하는 믹서기처럼 작동되는 탓에 적혈구를 마구 갈아버릴 개연성이 높다.

이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프레이저 박사는 나선식 펌프에 기반한 연속 혈류 펌프를 송아지에게 이식해보기 시작했다.

일단은 완전한 인공심장으로서가 아닌 LVAD로서 였다. 동물 체내에 장착된 펌프는 회전식 케이블을 통해 체외의 모터와 연결돼 있었다. 어떤 사람도 선뜻 자기 몸에 장착하고 싶지 않은 조잡한 장치였다.

그러나 이 펌프는 프레이저 박사의 아이디어가 타당하며 혈액에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 이유는 혈구를 고속으로 쏘아 보내기 때문이라는 게 프레이저 박사의 이론이다.

그가 송아지를 가지고 실험하는 동안 미 항공우주국(NASA)의 엔지니어 데이비드 소시에는 프레이저 박사의 옛 스승인 드베이키 박사로부터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수술경과 파악을 위해 THI에서 드베이키 박사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프레이저 박사의 계획을 접하게 됐다. 몇 년 전 소시에는 우주왕복선 관련 업무를 맡았는데 주엔진에 연료를 공급하는 펌프의 장착이 그의 임무였다. 그는 바로 그 펌프의 특징을 잘 분석하면 더욱 성능이 우수하고, 체외 모터가 필요 없는 혈액 펌프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후 소시에는 NASA와 THI 소속 베일러의과대학의 합동 연구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나사와 모터를 사람 가슴 속에 들어갈 만한 작은 케이스에 넣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문제였다. 문제 해결이 쉽지 않자 한 의사는 NASA 엔지니어에게 이런 농담을 던졌다.

"사람을 달에 보내는 당신들이 왜 연속식 혈액 펌프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할까요."

그러자 엔지니어는 이렇게 답했다. "그때는 연구비 지원을 엄청나게 많이 받았거든요."


연구를 시작한 지 11년이 지난 1995년 NASA와 베일러의대 연구팀은 제품 상용화를 위해 마이크로메드(MicroMed)라는 기업을 설립했다. 그로부터 3년 후 의료진은 유럽에서 자신들이 개발한 펌프를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굳이 유럽까지 간 것은 미 식품의약국(FDA)이 미국 내 연속식 혈액 펌프 이식에 대해 승인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재 마이크로메드의 최대 경쟁자는 미 캘리포니아 소재 토라텍 (Thoratec)이다. 이 회사도 아르키메데스의 나선식 펌프에 기초한 연속식 혈액 펌프를 개발, FDA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이와 관련 마이크로메드는 2000년대 버블경제시대를 거치며 앱솔루트 캐피탈 매니지먼트라는 헤지펀드에 인수됐다. 이후 혈액 펌프 개발은 거의 끝장날 지경에 이르렀고 마이크로메드 경영진은 사기 혐의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앱솔 루트는 혈액 펌프에 돈을 쓰지 않으려 했다. 이렇게 자중지란에 빠져있는 동안 후발주자였던 토라텍이 마이크로메드를 앞질렀고 '하트메이트 Ⅱ (HeartMate Ⅱ)'라는 혈액 펌프의 임상시험에 돌입했다.

이 펌프에는 회전축이 달려 있고 케이스 내부에 전기 코일이 들어 있다. 콘 박사가 필자에게 쥐어줬던 금속 원통과 비슷하게 생긴 물건이다.

코일에 전류가 흐르면 펌프가 분당 8,000~1만2,000회 회전하는데 회전축에는 합성루비 베어링이 달려 있으며 인간의 혈액을 윤활제로 쓴다.

휴대형 배터리에 연결된 이 펌프는 환자가 비교적 정상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해준다. 무엇보다도 심장을 이식 받을 때까지의 버티는 용도가 아닌 환자의 몸속에 영구적으로 장착, 사용할 수 있다. 물론 환자의 실제 심장도 함께 작동하며 연속식 혈액 펌프가 심장의 원활한 작동을 돕는다.

한편 프레이저 박사는 콘 박사의 연구에 동참하기 위해 2004년 THI로 오기 전인 2003년 11월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 영어로 간신히 의사소통이 되는 중앙아메리카 출신의 한 젊은 환자에게 승인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하트메이트 Ⅱ를 이식했는데 후속치료를 위해 병원 재방문이 필요함을 설명했지만 환자나 가족 중 누구도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 청년은 퇴원 후 사라졌고 무려 8개월 뒤에야 다시 나타났다.

당시 프레이저 박사는 환자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맥박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밀 검진 장비를 사용 해봤지만 맥박 소리 비슷한 것조차 들을 수 없었다. 심장은 아주 약하게 떨리고 있었을 뿐 사실상 정지된 것과 다름없었다.

주지하다시피 하트메이트 II는 심장 기능 보조 장치이지 인공심장이 아니다. 하지만 이 환자의 몸에선 사실상 인공심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산소가 충분한 혈액을 온몸으로 보내는 좌심실의 기능을 도우는 것에 더해 그 혈액이 체내 곳곳에 퍼질 만큼 강하게 밀어냈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심장에서 혈액을 받아 폐로 보낸 뒤 다시 심장으로 되돌려 온몸으로 내보내는 기능을 완벽히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청년은 자신의 몸 상태가 완벽히 좋았기 때문에 후속치료를 받으러 오지 않았다고 말하더군요."


토라텍은 2008년 FDA로부터 하트메이트 II의 승인을 받았다. 현재까지 이 회사의 연속 혈류 LVAD를 장착한 환자는 1만1,000여명이나 된다. 여기에는 미국 전 부통령 딕 체니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앞서 말한 중앙아메리카 청년과 같은 경우는 극도로 드물다.

언론에서는 체니 전 부통령의 맥박이 뛰지 않는 상태라고 보도했지만 사실 그를 포함해 대다수 환자들은 맥박이 뛸 때 생기는 주기적인 파동을 느낀다는 것이 콘 박사의 설명이다. 그들의 심장은 지금도 쉼 없이 뛰고 있다.

의료계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던 일, 즉 심부전 치료를 실현한 것이야말로 연속 혈류 LVAD의 가장 놀라운 점이다. 지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심장의 이상은 고칠 수 없다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연속 혈류 LVAD는 심장에 가해지는 부하를 줄여 심장마비 등에 의해 손상을 입은 심장이 심벽 조직을 재생하고 다시 건강해지는 데 도움을 줬다. 다수의 이식 경험을 갖고 있는 프레이저 박사는 필자에게 자신의 환자들이 농구를 하거나 힙합댄스대회에 출전한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콘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충분히 건강이 호전되면서 LVAD를 제거해도 생존 가능한 환자들도 많았어요. 이는 마치 부러진 발목에 석고 깁스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발목이 다 나으면 떼어버릴 수 있는 거예요. 사실 이 정도까지 효과가 있을 줄은 저희도 미처 몰랐습니다."

다만 이와는 반대로 연속 혈류 LVAD의 이식에도 불구하고 치유되지 않는 사례도 분명 있다. 상태가 계속 악화되는 이런 환자들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은 기증 받은 심장이나 인공심장의 이식이다.

프레이저 박사와 콘 박사는 중앙아메리카 청년의 사례에서 연속식 혈류 터빈으로 LVAD를 넘어 인공심장의 개발도 불가능하지 않음을 깨달았지만 이 같은 방식은 과거 누구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필자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체는 분명히 심장의 맥박을 통해 전달되는 혈류에 적합하도록 진화해왔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지는 못하지만 맥박에도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콘 박사는 맥박이 없어지면 림프계에 문제가 생길 개연성이 있다고 밝혔다. 혈관을 흐르는 혈액과 달리 림프가 지나는 통로는 독자적인 동력원이 없으며 동맥 주변에서 맥박을 동력원으로 삼아 이동하는 탓이다. 그러나 극소수지만 맥박 없이도 살고 있는 환자를 알고 있는 콘 박사는 웃음 지으며 설명했다.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맥박이 없는 연속적인 혈류가 림프계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습니다."


하트메이트 II는 심장 기능 보조 장치이지 인공심장이 아니다. 하지만 청년의 몸에서는 사실상 인공심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권총 아니죠
토라텍이 개발한 심장보조장치 '하트메이트Ⅱ'의 이식 모습. 체내에 영구적으로 이식되는 이 장치는 2008년 FDA 승인을 획득했다.



웜 플러 박사는 뉴욕주 북부에 살고 있는 라헬 엘머 레거라는 여성을 언급하면서 필자에게 꼭 만나보라고 권했다. 그녀는 기능이 멈춘 심장을 달고도 생존해 있는 기적적 케이스라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그녀를 찾아갔다.

2009년 심장판막 대체 수술을 받았을 때 레거는 5살과 2살짜리 딸을 둔 36세의 엄마였다. 이렇다 할 증상은 없었지만 심장전문의들은 그녀가 어렸을 적부터 발견된 심장 잡음을 꼭 치료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대동맥과 좌심실의 경계에 있는 대동맥판이 막힌다는 것이었다.

결국 레거는 뉴욕 로체스터에 있는 스트롱 메모리얼병원을 찾았다.

당초 7~10일 정도만 입원하면 될 줄 알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수술 후 그녀의 심장은 다시 뛰지 않았고 14시간 동안 심폐기에 의존해 생사의 갈림길에 서야 했다. 의사는 레거의 남편인 팀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부인이 살아서 병원을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팀이 치료실에 있는 아내를 봤을 때 그녀는 토라텍이 개발한 대형 체외 원심분리펌프인 센트리매그(CentriMags) 두 대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전자제품 속에 파묻혀 있는 듯 보였다고 한다.

레거의 몸속에 혈전들이 많아지면서 의료진은 왼쪽의 센트리매그를 떼어내고 하트메이트 Ⅱ의 이식을 결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녀의 몸은 바로 회복됐고 오른쪽의 센트리매그도 떼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심장은 다시 뛰지 않았다. 온몸으로 혈액을 힘차게 보내는 것은 하트메이트 Ⅱ였다. 그럼에도 레거는 72일간의 입원을 끝내고 멈춰버린 심장을 간직한 채 무사히 두 딸이 있는 집으로 향했다.

필자는 클린턴이라는 마을에서 그녀를 만났다. 남편이 성공회 사제여서 19세기풍 교회 옆에 지은 사제관에서 살고 있었다. 직접 보기 전까지 필자는 레거가 병색이 완연한 모습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현관문을 열어주며 악수를 청하는 그녀는 누가 봐도 볼에 홍조를 띈 건강한 여성이었다. 키가 150㎝ 정도로 작았지만 눈빛은 강했고 목소리도 컸다. 다른 사람과의 차이라면 등에 배낭을 메고 있고 배낭에 연결된 전선이 셔츠 속으로 이어져 있다는 점 정도였다.

그녀는 딸들의 그림으로 장식한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손목을 내밀고는 만져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따스하긴 했지만 죽은 사람처럼 맥박은 없었다. 그래도 몸 상태는 지극히 정상이었고 여느 엄마처럼 딸들을 돌본다. 만보기를 차고 매일 3㎞를 걷기도 한다고 했다. 맥박이 없지만 림프계를 포함한 신체의 어떤 부위에서도 이상 증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심장 잡음 (heart murmur) - 심실 또는 소혈관에서 대혈관으로 혈류가 통과할 때 정상 혈류가 장애를 받아 생기는 소용돌이에 의해 발생하는 잡음. 심잡음(心雜音)이라고도 한다.


그녀가 등에 메고 있는 작은 배낭 안에는 두 개의 리튬이온 배터리와 하트메이트 Ⅱ의 컴퓨터 제어장치가 들어 있다. 이 기기들은 레거의 옆구리에 뚫린 구멍으로 체내의 하트메이트 Ⅱ와 연결돼 있다. 때문에 그녀는 어떤 때라도 배낭을 벗지 않는다.

"한번은 사촌이 실수로 배터리를 완전히 분리한 적이 있었어요. 배터리를 교환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제가 한눈을 판 사이에 동시에 배터리 두 개를 모두 분리한 거예요. 원래는 하나만 분리하고 새 배터리를 끼운 뒤 다시 남은 하나를 교체해야 하거든요. 저는 놀라서 '그러면 안 돼!'라고 소리쳤고 기기에서는 요란한 경보음이 울렸죠."

사촌이 새 배터리를 연결해 정신을 차릴 때까지 10초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한다. 사촌도 혼이 나가서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중앙아메리카 청년과 레거로 인해 사람이 맥박 없이도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음이 입증됐다. 프레이저 박사와 콘 박사는 현재 이렇게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우연히' 나타난 결과를 '의도적으로' 이루고자 한다. 힘을 잃고 생명을 위협하는 심장을 단순히 보조하는 대신 좌심실과 우심실 역할을 하는 두 개의 연속식 혈류 터빈으로 완전히 교체해 버리려는 것이다.

작년 3월 두 사람은 오랫동안 기다려 온 기회를 잡았다. 크레이그 루이스라는 55세의 심유전분증(cardiac amyloidosis) 환자가 THI에 나타난 것. 이 질병은 몸에서 악성 단백질이 생산돼 장기 속에 축적되는 매우 위험한 희귀병이다. 콘 박사는 이렇게 축적된 단백질을 '분해되지 않는 폐기물'이라 부른다.

완벽한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루이스는 이로 인해 불과 1년도 안 돼서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다. 의사들은 그의 몸에 심폐기를 연결하고 인공신장을 달았지만 심정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 기계에 의존한 생명 연장은 더 이상 답이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콘 박사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기계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5일이 한계예요. 그런데 루이스는 무려 14일이나 된 상태였죠. 심장 이식을 해봐야 살아날 가망이 없었어요. 유전분증이 이식된 심장을 공격할 테니까요. 그때 우리가 개발한 장비를 사용해보겠냐고 제안했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루이스는 이식에 동의했고 콘 박사는 병든 심장을 제거한 뒤 그 자리에 하트메이트 Ⅱ 2대를 이식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 루이스는 침대 위에 앉아 가족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됐다.

안타깝게도 최종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유전분증에 의한 신부전증이 급속히 악화되며 5주만에 의식을 잃었다. 콘 박사의 말이다.

"가족들의 요청으로 인공 심장을 정지하고 그를 떠나보냈습니다. 그러나 루이스는 5주간 더 생존했어요. 사랑하는 가족들과 작별할 시간을 번 거죠."


프레이저 박사와 콘 박사는 현재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우연히' 나타난 결과를 '의도적으로' 이루고자 한다. 심장을 단순히 보조하는 대신 완전히 교체해 버리려는 것이다.




동물 실험
콘 박사와 프레이저 박사[작은 사진]는 연속식 혈류 인공심장을 50마리의 송아지에게 이식했다. 그 송아지 중 일부는 수술 후 최대 3개월을 살았다.


송아지 미코의 수술실. 콘 박사와 함께 들어선 수술실에는 흉강을 드러낸 미코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에 참가한 사람은 총 28명.

심폐기 조작 기술자, 마취 의사, 수의사, 사진사, 의대생 등이 총망라돼 있었다. 대규모 칵테일파티가 열린 듯 이들 모두는 미코 주변을 돌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다만 모두가 수술복을 입고 있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참석자 중에는 헤지펀드에 인수당한 뒤 무너졌지만 이제는 다시 살아난 마이크로메드의 브라이언 린치 부사장도 있었다. 그를 비롯한 마이크로메드 초창기 멤버들은 헤지펀드로부터 회사를 헐값에 인수했으며 새로운 설계를 통해 나선식 펌프에 들어가는 나선형 축을 자석으로 대체했다. 축의 크기를 줄이는 대신 나선을 더 크게 해 균일한 회전력을 꾀하기 위함이었다. 린치 부사장은 이 기술과 실리카 카바이드 베어링을 이용해 혈전 발생 가능성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콘 박사는 바로 이 마이크로메드의 최신 연속식 혈액 펌프를 미코의 가슴에 넣을 예정이었다. 대형 평면 TV에 콘 박사의 이마에 부착된 카메라가 연결돼 있어 우리는 콘 박사의 시각에서 수술의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특히 의대생들은 얼마나 열중하던지 눈이 빠질 지경이었다.

오히려 필자는 그들보다 더 가까이에서 더 정확하게 수술을 살폈다. 콘 박사가 자기 옆에 서있어도 된다고 허락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미코의 펄떡거리는 붉은 심장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콘 박사는 전열식 메스를 가지고 미코의 심장 주변 조직을 벗겨냈다.

조직이 하나하나 벗겨질수록 심장은 더 강하게 뛰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콘 박사가 "연결해!"라고 소리쳤다. 심폐기를 미코에게 연결하라는 신호였다.

이윽고 심폐기의 굵은 투명 튜브가 미코의 몸에서 나온 짙은 자주색 피로 채워졌다. 다른 한쪽의 투명 튜브에서는 밝은 붉은색의 혈액이 송아지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이후 콘 박사는 메스를 깊고 빠르게 밀어 넣어 심장을 적출해서는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정맥과 동맥이 붙어있는 심방 일부는 아직 미코의 몸속에 남겨뒀다.

적출된 심장은 옆의 선반에 올려놓는 동안에도 계속 고동치고 있었다. 소관상동맥 안에 피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콘 박사는 마스크 위로 드러난 눈으로 필자를 흘깃 보며 말했다.

"지금 '이 사람 간 되게 크네'라고 생각하시죠?" 사실이었다. 그날 이후 필자는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으니 말이다.

콘 박사는 신속한 동작으로 고무가 입혀진 데이크론 재질의 이음고리를 소의 동맥에 봉합했다. 얼핏 보면 평범한 바늘과 실을 이용한 옛날 기술처럼 보였다. 신속하지만 평범한 로우테크의 극치였다. 불과 몇 분 사이에 그는 흰색 도넛처럼 생긴 이음고리 두 개를 정위치에 연결했다.

그런 다음 그는 염수가 든 그릇 속에서 터빈을 꺼내들었다. 고무가 입혀진 데이크론 소재 '인형옷'이 터빈에 매달려 있었다. '인체용 사용승인이 나지 않았음'이라는 각인이 찍혀 있었지만 하트메이트Ⅱ보다는 확실히 작았다. 마이크로메드가 자랑스러워하는 또 다른 장점이었다. 콘 박사는 평소와 같은 능숙한 솜씨로 '인형옷'을 동맥에 설치한 이음고리에 봉합했다.


로우테크 (low tech) - 별다른 기술력이 필요치 않은 저차원적 기술.


터빈이 작동하고 심폐기가 멈추는 장면은 그리 드라마틱해 보이지 않았다. 수술 시작 이후 2시간이 넘게 지나서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시점 이후 혈압 모니터에는 120/80이라는 숫자 대신 78이라는 하나의 숫자만이 표시됐다.

"보통 혈압은 심장 수축기와 확장기 등 두 시점을 측정합니다. 이른바 수축기 혈압과 확장기 혈압이죠. 보시다시피 이제 미코는 하나의 혈압만 존재합니다. 맥박도 한 번 체크해 볼까요?"

맥박 그래프는 당연히 일직선이었다. 콘 박사는 수술을 끝내고도 계속 마법 같은 기술을 선보이며 나를 매혹시켰다. 수술실을 나와 연구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는 주머니에 있던 1달러 지폐 5장을 꺼냈다. "1달러짜리 5장입니다. 그렇죠?"

그가 지폐 5장을 들고 손바닥을 빠르게 뒤집자 1달러들은 100달러들로 변해 있었다. 소매 속에 미리 100달러짜리를 숨겨놓았을 리는 없었다.

그는 여전히 반팔 수술복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또 사무실로 돌아온 그는 책상 위의 트럼프 카드 중 한 장을 뽑아서 펴보라고 했다. 필자는 다이아몬드 10을 뽑았다. 그는 또 필자에게 손가락으로 허공에 무엇이든 모양을 그려보라고 했다. 나는 삼각형을 그렸다. 그런 다음에는 마음속에 한가지 색깔을 생각하되 자신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녹색을 떠올렸다.

그때 그가 카드 무더기 속에서 카드 한 장을 빼냈다. 다이아몬드 10이었다. 게다가 그 위에는 녹색 삼각형이 그려져 있었다. 필자는 심장이 멎을 뻔했다.

그날 저녁 콘 박사는 식당에서 커피를 마시며 왜 마술을 보여줬는지를 알려줬다. SF 소설가 아서 C. 클라크의 '매우 진보된 기술은 마술과 구별할 수 없다'라는 유명한 격언을 반박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말을 이어갔다.

"자, 이제 테이블 위의 소금병을 사라지게 해볼게요. 보통은 실크 천을 사용하지만 지금은 종이타월밖에는 없네요. 이것으로 해보죠."

그는 소금병을 타월로 감쌌다. "이제 소금병이 테이블을 통과해 바닥으로 떨어질 겁니다. 잘 보세요."

그러던 중 갑자기 그의 동작이 어색해졌다. 타월로 감싼 소금병을 테이블 위에 '탁' 소리를 내며 올려놓더니 미안하다며 후추를 담은 종이봉지 여러 개를 함께 올렸다. 그리고 잠깐 생각하다가 다시 후추 봉지를 치워버렸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뭔가가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소금병을 감싼 종이 타월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타월은 속에 아무것도 없는 듯 평평하게 펴졌고 테이블 아래에 소금병이 떨어져 구르는 소리가 났다.

"자, 이제 마술의 비법을 알려 드리죠."

뭔가 일이 꼬인 듯 후추 봉지를 올려놓았다가 치운 행동은 사실 필자의 주의를 딴 곳으로 흩트리기 위한 트릭이었다. 그 행동을 하면서 필자가 모르게 소금병을 꺼내 테이블 밑에 숨기고는 종이타월을 내리칠 때 떨어뜨린 것이었다.

"모두가 사전에 짜인 각본이에요. 제가 했던 모든 말과 손동작이 속임수를 위한 장치죠. 아무런 개연성이 없어 보이고, 때로는 실수인 듯 해도 사실은 각본에 있는 겁니다."

그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부드럽게 웃었다.

"심장 수술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각본대로죠. 제가 옛날 방식으로 이음고리를 미코의 가슴에 꿰매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저의 모든 동작은 미리 계획돼 있었고 많은 실험과 연습을 거친 산물입니다."

그의 설명은 계속됐다. "손을 8도 굽히고 바늘을 찔러 넣고, 손을 22도 돌리고 바늘을 10㎝ 빼내고, 손바닥을 뒤집은 뒤 손을 왼쪽으로 1.3㎝ 옮깁니다. 수술 시 봉합하는 동작도 이렇게 매우 정밀해요. 약간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죠. 심장전문의는 수술의 전과정에 필요한 엄청나게 길고 복잡한 각본을 모두 외운 뒤 순서대로 정확하게 실행하는 것입니다."


"보통 혈압은 수축기 혈압과 확장기 혈압을 측정해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이제 미코는 하나의 혈압만 존재합니다."


완벽한 각본
인공심장 수술은 무수한 실험과 연습의 산물이다. 얼핏보면 가슴 속에 심장을 넣고 실과 바늘로 꿰매는 평범한 기술로 보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콘 박사의 사무실로 돌아가면서 필자는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연속식 혈류 인공심장을 이식받는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는지 물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의학계와 의료장비 업계가 이 인공 심장을 승인하라고 FDA를 재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험업계가 인공심장을 승인하려는 FDA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보험업계는 값비싼 새로운 치료법을 실시하거나 위독한 환자들의 생명 연장에 돈을 부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콘 박사는 두 입장 중 어느 쪽도 아니었다.

"FDA는 결정이 매우 어려운 일을 맡은 겁니다. 저는 그저 그들이 사려 깊게 처신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는 아직 이 기술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컴퓨터 제어장치 두 대로 두 개의 터빈을 작동시키는 것은 매우 거추장스럽고 불편하다는 것.

"모든 것을 하나의 장비로 통합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약 3~4년이 소요될 것으로 봐요. 이후 FDA의 승인 획득에도 추가적으로 6~7년은 걸리겠죠."

그러나 연속식 혈액 터빈의 구조적 타당성만큼은 이미 입증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래서 실용화의 지연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밝혔다. 그것은 과학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했다.

"1903년 라이트 형제는 불과 240m를 비행했을 뿐이에요. 그리고 상업용 항공운송은 1920년에야 시작됐고요."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말했다. "아참! 이것 좀 보세요."

그는 난장판이 된 책상 위를 뒤져서는 작은 카드보드지 상자를 꺼냈다. 상자의 뚜껑에 연속식 혈류 인공심장의 사진을 붙이더니 사진 아래에 사이즈를 뜻하는 S, M, L, XL이라는 문자를 적었다.

"멋져 보이지 않나요?"

콘 박사는 필자의 동의를 구하는 듯한 눈길로 상자를 들어 보였다.

"물론 농담입니다만 저는 환자가 이런 물건을 대형할인점에서 사오면 의사가 이식해주는 시대를 꿈꿔요. 그만큼 간단히 인공심장을 이식할 수 있는 시대, 1년에 10만명에게 이식해주는 시대를 말입니다."

사람들이 새를 모방하겠다는 생각을 버릴 때까지 인간의 동력비행은 불가능했다. 인체의 가장 중요한 기관인 심장을 기계로 대체하는 것 역시 실제 심장의 맥박을 모방하겠다는 생각을 버릴 때까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제 드디어 인공심장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았다고 봅니다. 남은 것은 맥박을 재현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하는 거예요."



STORY BY DAN BAUM
PHOTOGRAPHS BY JACK THO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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