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칙폭폭 자율주행자동차

AUTONOMOUS ROAD TRAINS

자율주행자동차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와 함께 인류가 오랜 기간 꿈꿔왔던 로망이다. 이를 위한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고는 있지만 아직 실용화 단계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이런 와중에 유럽연합(EU)에서 독특한 개념의 자율주행자동차 시스템 개발을 발표했다.

사르트르(SARTRE)로 명명된 이 프로젝트는 열차를 모방, 개미들이 페로몬을 쫒아 줄지어 가듯 앞 차량을 쫒아가는 방식이다.

완벽한 개념의 자율주행차량은 아니지만 이미 시험주행에 성공했을 만큼 조기 상용화가 가능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현재의 자동차는 엄밀히 말해 '자동'차라고 할 수 없다. 사람이 시동을 걸고, 핸들을 돌리고,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밟고, 기어를 바꿔 줘야만 움직이는 피곤한 기계다. 또한 운전 중에는 주변의 차량이나 사람, 장애물을 끊임없이 관찰해야 한다. 이를 생각하면 오히려 '수동차'라 부르는 게 더 합당해 보일 정도다.

일견 당연한 사실에 굳이 트집을 잡는 것은 인간이 일일이 자동차의 운전을 조작함에 따라 발생하는 위험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동차의 최대 시속을 감안할 때 운전자가 1초만 방심해도 엄청난 덩치의 쇳덩어리가 수십 m에 달하는 거리를 아무런 제약 없이 질주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설령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더라도 인간의 반사신경과 운동신경으로는 자동차를 완벽히 안전하게 제어하지 못한다.

다소간의 논리적 비약을 하자면 오늘날의 도로 위에는 하루에도 수백, 수천만대의 강철 흉기들이 오가고 있는 셈이다. 비약적인 자동차 및 교통안전기술을 발전에도 불구하고 운전 미숙, 주의태만, 능력 부족, 그리고 불가항력적 외부 요인까지 겹치면서 무수한 교통사고들이 빈발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게다가 고도로 첨단화된 현재의 자동차 운전석은 운전자를 운전에 집중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계기판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내비게이션, 카스테레오, 냉난방 장치, 전동 카시트 등을 만지작거리느라 바쁘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동차가 첨단화되고 많은 편의장치가 탑재될수록 더 많은 시선 분산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운전대를 잡은 인간은 사고에 더해 도로상에서 크고 작은 실수들을 연발하기 마련이다. 원하는 곳에서 좌회전을 하지 못해 우왕좌왕거리거나, 차선을 헛갈려서 급작스럽게 끼어들기를 하고, 초행길 느림보 운전으로 다른 운전자들을 괴롭힌다.

이는 실질적인 인적·물적 손해를 유발하지 않았더라도 시간과 연료의 낭비를 초래하는 비효율적 행위다.

세계 각국이 인간 운전자의 결점을 보완하는 지능형 교통시스템(ITS), 궁극적으로 자율주행 자동차 시스템의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럽연합(EU)의 '사르트르 (SARTRE) 프로젝트'도 그중 하나다.


따라와~
사르트르 시스템은 베테랑 운전자가 운전하는 선도 차량을 따라 여러 대의 후속 차량이 원격 자율 조종되는 방식이다.



97만9,307건
2010년 국내 교통사고 발생 건수. 총 5,505명의 사망자와 153만3,609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선도 차량 따라 앞으로 나란히
동명 철학자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이 프로젝트는 '환경을 위한 안전한 도로주행 열차 (SAfe Road TRains for the Environment)'라는 영어 문장의 약자다. EU의 지원을 받는 '프레임워크 7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런칭됐으며 고속도로 위에서 자율주행시스템을 실현함으로서 더욱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환경적으로 우수한 자동차 수송체계의 구축이 목표다.

프로젝트 예산은 총 640만 유로로 영국의 리카르도 UK, 스웨덴의 볼보자동차와 볼보 테크놀로지, SP 기술연구소, 스페인의 어플러스 이디아다와 로보티커 테크날리아, 독일의 IKA 연구소 등 유럽 4개국 7개 기업 및 연구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사르트르 프로젝트에서 말하는 도로주행 열차라는 개념은 무엇일까. 철도 위를 달리는 열차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열차는 맨 앞에 기관차가 위치하고, 그 뒤에 여러 대의 객차 또는 화차를 연결해 끌고 간다. 바로 이와 비슷한 상태를 도로 위의 자동차로 구현하겠다는 게 사르트르 프로젝트의 핵심 골자다. 앞서 달리고 있는 선두 차량에 뒤쪽의 차량들이 끌려가는 형태로 자율주행을 구현하겠다는 얘기다.

다만 열차와 달리 사르트르 시스템에서는 각 차량들이 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대신 무선통신시스템을 통해 앞차와 적정거리를 유지하며 선도 차량을 쫓게 된다.

이때 후방 차량의 운전자는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 운전대와 액셀러레이터, 브레이크, 기어에서 손을 떼고 편안하게 주변 경치를 감상하면 된다. 책이나 신문을 읽거나 모자란 잠을 청해도 전혀 상관없다.

물론 목적지가 다른 앞차를 계속 쫓아갈 수만은 없으므로 운전자는 언제든 차량 통제권을 되찾아 행렬을 벗어나서 독자적으로 운전할 수 있다. 그러다가 다시 방향이 같은 행렬을 만나면 그 꽁무니에 달라붙어 자율주행 모드로 전환하면 된다.

결국 사르트르는 모든 조작과 이동 방향 및 경로를 운전자가 책임져야 하는 현재의 수동시스템과 모든 것을 차량 스스로 알아서 하는 완전 자율주행시스템의 중단단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인적요소 연구 결과, 이러한 시스템은 최대 15대의 차량을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사르트르 프로젝트에서는 6~8대 수준을 적용할 계획이다.

앞서도 언급했듯 각 차량은 일단의 행렬에 자유롭게 유·출입될 수 있어야 하므로 자신이 속한 행렬은 물론 다른 행렬들이나 단독 주행하고 있는 차량들과도 무선통신을 이용해 충분히 상호작용해야만 한다. 때문에 각각의 차량 행렬들은 레이더와 카메라, 레이저 등 다양한 센서를 사용해 차량 자체와 주변상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를 상호 공유, 대열을 유지하면서 선도 차량에 의한 후속 차량의 자율운전을 구현하는 것이다.

초기연구에서는 이를 충족시킨 상태에서 안전한 이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차량 간 최소 간격이 10m나 됐다. 하지만 연구팀은 현재 최신 센서와 무선통신기술, 제어기술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차간 거리 축소 방안을 모색 중이다. 차간 거리가 줄어들수록 더 많은 차량을 도로에 수용할 수 있어 교통체증 완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연구팀은 별도의 소프트웨어 클라이언트를 채용하여 아직 행렬에 끼지 못한 차량들을 적절한 행렬로 유도하는 임무를 수행토록 할 방침이다.

이 시스템에서는 선도 차량의 책임이 막중한 만큼 아무나 선두에 설수는 없다. 베테랑 트럭 운전사, 운전교육학원 강사 등 프로급 운전자에게만 선도 차량의 자격이 부여된다. 또한 선도 차량의 차선 이탈에 따른 연쇄 사고를 막을 추가적인 안전장치와 운전 숙련도가 떨어지는 초보 운전자들의 원활한 행렬 유입과 이탈을 도와줄 보조시스템도 연구되고 있다.

이와 관련 연구팀은 만에 하나 선도 차량이나 후속 차량에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사르트르 자율주행 시스템은 인간보다 반응시간이 짧기 때문에 연쇄추돌과 같은 대형사고의 발생 개연성이 적다고 설명한다. 특히 이 시스템은 도로나 도로 주변 인프라에 대한 물리적 개선을 최소화할 수 있어 상당한 투자비용 절감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21.5건
2010년 도로 10㎞당 교통사고 발생 건수. 대구, 광주, 서울이 각각 59.9건, 54.9건, 51.2건으로 가장 높은 빈도를 보였다.


이동식 호텔
사르트르 프로젝트와 같은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 계획이 실현되면 자동차와 네트워크, 스마트 기기와의 융합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연구목표와 연구계획
사르트르 프로젝트의 연구목표는 크게 4단계 로 구분된다. 도로 및 도로 주변의 인프라 구조 변경 없이 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 행렬을 운용할 수 있는 최적의 전략 수립, 이렇게 수립된 전략을 실제 도로에서 평가하여 프로토타입 기술의 개량·발전·통합, 시스템 도입에 따른 환경· 안전·교통체증 개선 효과 측정, 사르트르 시스템을 활용한 새로운 비즈니스모델 제시가 그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2009년 9월부터 2010년 5월까지 사르트르 시스템의 정확한 개념을 정립했다. 이 기간 동안 운용전략, 안전성, 시스템 세부사양 등의 분석을 마쳤고 전체 시스템의 구성품과 모듈의 개념 정립 및 임무 배분, 차량 간의 연결 방식 등도 결정됐다.

이후 작년 11월까지는 실행 단계로 1단계에서 결정된 프로토타입 시스템의 개발과 통합이 이뤄졌다. 이때 차량의 외부 시점을 제공하는 센서 시스템의 통합, 후속 차량들의 위치를 제어하는 통제 메커니즘의 개발과 통합, 차량 행렬 전반을 관리할 프로그램 개발이 수행됐다.

올해 7월까지는 3단계 타당성 검토가 진행될 예정이다. 실험실과 주행 실험장을 통해 프로젝트가 표방한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그리고 시스템을 이루는 하부체계가 잘 통합되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새로운 시스템 평가 도구의 파악, 실제 또는 실제에 가까운 교통 상황 속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문제점 파악과 해결방안 제시, 시스템 통합과 경계 조건의 확립, 연비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본 완성된 시스템의 부가가치 평가 등이 전개된다.

3단계와 맞물려 올 3월부터 사업이 종료되는 8월말까지는 사르트르 시스템이 정말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시스템인지, 친환경과 안전성 이외의 부수적 효과는 무엇인지 등이 최종 평가된다. 또한 사르트르가 어떤 상업적 잠재력을 갖고 있고 잠재력이 발휘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제 교통 상황에서 얼마만한 효과가 있는지, 그리고 이 시스템을 사용하려면 어떤 정책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하는지를 파악하게 된다.

한편 주지하다시피 현재 사르트르는 오직 고속도로에서의 운용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이는 지방도로나 시내도로의 경우 보행자, 신호등 등 고속도로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얼핏 생각하면 과연 이 같은 시스템이 현실 세계에 구현 가능할지 의구심이 들 수 있겠지만 연구팀은 이미 시스템에 필요한 모든 기술, 그러니까 차량 장착 센서에 의한 데이터 감지 및 전송, 무선 통신망에 의한 차량 원격조종 및 자율주행 등의 기술이 상당부분 완비돼 있다고 밝히고 있다.

단지 실직적 시스템의 적용에 필요한 제도적 뒷받침과 시민들의 수용이 이뤄지는 기간을 감안할 때 본격적인 실용화에는 앞으로 약 10 년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또한 사르트르 시스템이 실용화되는 시점에는 고속도로의 저속 및 중속 차로에서부터 적용이 이뤄질 것이며 아예 전용 차로를 만들어 그곳에서만 운용하게 될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자동차 사고 80% 감소 기대
사르트르 시스템의 실용화를 통해 우리는 어떤 이득을 누릴 수 있을까. 연구진에 따르면 인적 요소에 기인한 자동차 사고의 80%가 감소되고 차량 연비의 20% 개선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자율주행 시스템은 인간에 비해 반응성이 훨씬 우수하며, 좁혀진 차간거리로 인한 교통체증 개선, 공기저항 감소 등의 효과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만큼 연료 소비량 감소와 유해배기 가스 배출량 저감도 기대된다.

이외에도 사르트르는 자동차의 쓰임새 자체를 바꿔 놓을 수 있다.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멀티태스킹 공간으로서 말이다. 이제까지 운전자는 운전에만 신경 쓰느라 차 안에서 다른 일은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아니 다른 일을 하면 안됐다. 그러나 사르트르 시스템에서라면 운전은 선도 차량에게 맡기고, 운전자는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뭔가 더 창의적인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다.

특히나 자동차와 네트워크 간의 융합이 가속화될수록 이러한 트렌드는 더욱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사르트르 시스템만 구현된다면 자동차 내에 지금보다 훨씬 큰 DMB, 지금보다 더 우수한 카스테레오, 이동하면서도 업무를 볼 수 있는 워크스테이션 등 이런저런 기기들을 구비해 놓고 활용할 수 있다. 가정의 홈시어터처럼 자가용에 카시어터를 설치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당연한 얘기지만 단순히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딴짓'을 더 잘할 수 있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동차는 근본적으로 이동 수단이다. 그리고 주변 환경을 기록하고 무선통신을 통해 다른 차량과 소통하는 능력이야 말로 사르트르 시스템의 근본 성립 요건이다. 그렇다면 이를 통해 자동차가 알아낸 주변 정보들을 운전자의 입맛에 맞춰 가공해 활용하는, 다시 말해 자동차를 달리는 정보 수집 및 검색장치로 쓸 수도 있지 않을까.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사르트르 시스템이 적용된 후속 차량을 타고 다니다가 근사해 보이는 맛집을 발견했다. 운전자는 차량에 연결된 인터넷으로 맛집의 외부 사진이나 상호를 입력하여 전화번호나 찾아가는 방법, 고객들의 평가 등을 차량의 디스플레이 화면으로 볼 수 있다. 필요하면 이 내용을 저장하거나 출력할 수도 있다. 이외에도 머리를 굴려보면 무수한 용처가 떠오를 수 있다.

좀 더 멀리 내다본다면 사르트르 시스템을 비롯한 각종 ITS는 대중교통 시스템의 판도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차량보다 더욱 우수한 안전성과 정시성, 경제성을 제공함으로서 고객들에게는 더욱 믿고 탈 수 있는 대중 교통을, 사업주에게는 더 많은 이윤을 보장하게 된다.

또한 자율 주행 시스템을 응용해 현재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시간이나 지역에서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게끔 할 수 있다. 도로 위에서도 마치 철도와도 같은 안전함과 신뢰성, 정시성을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

자동차가 발명된 지는 이제 100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자동차는 과학기술에 힘입어 인공지능을 장착하고 인간의 '발'이 아닌 '친구'의 위치로까지 성장하려 하고 있다.

사르트르 시스템을 비롯한 각종 자율주행 자동차가 열어갈 미래 도로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 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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