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혈액 세포들의 작용기전은 상당부분 밝혀졌다. 하지만 혈액 응고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혈소판은 예외다. 연구자들은 혈소판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길이 없었다. 적어도 크리스티 헤인즈 박사가 혈소판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그랬다는 얘기다.
헤인즈 박사팀은 현미경을 이용해 혈소판을 완벽히 분리, 극소형 전극 위에 올려놓는데 성공한 최초의 연구팀이다. 이 기술을 통해 혈소판이 화학적 자극을 받을 때 방출되는 전달 분자(messenger molecule)들을 관찰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껏 혈소판들의 의사소통 방식, 혈소판 조작을 통한 혈액 응고 제어법, 새로운 혈소판 장애 치료법을 연구할 수 있는 길을 텄다.
특히 운이 좋다면 이 기술로 암의 전이를 막을 비책을 찾을 수도 있다. 많은 연구자들은 암세포가 혈소판에 몸을 숨긴 채 혈액을 타고 온몸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혈소판이 일종의 트로이목마처럼 작용한다는 겁니다. 인체가 암세포의 전이를 감지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거죠."
헤인즈 박사는 혈소판 연구 외에 인체면역 시스템을 모사한 마이크로칩 개발에도 나선 상태다. 면역세포들의 소통방식을 밝혀내기 위함이다. 그녀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던 노스웨스턴대학의 리처드 반 듀엔 교수는 헤인즈 박사의 성공은 엄격하고 창의적인 실험 설계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