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온 핵융합 무한동력장치

ANDREA ROSSI'S BLACK BOX INFINITE ENERGY

이탈리아의 한 발명가가 지구촌의 에너지난을 영원히 종식시킬 무한에너지 발생장치를 개발했다고 공표, 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인류의 오랜 난제가 드디어 해결되는 것일까. 이토록 간단히?

BY STEVE FEATHERSTONE



2011년 1월 14일. 안드레아 로시라는 61세의 이탈리아 발명가가 볼로냐에 위치한 한 창고에서 매우 인상적인 시연행사를 열었다. 이날의 주인공은 알루미늄 호일에 싸인 이상한 기계였다.

로시는 이것이 약칭 'E-캣(E-Cat)'으로 불리는 '에너지 촉매장치(Energy atalyzer)'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속에는 니켈(Ni) 분말과 소량의 수소 가스, 그리고 자신이 개발한 비밀 촉매가 들어있다고 밝혔다.

그가 E-캣의 스위치를 켜고 이 혼합물들을 가열하자 미스터리하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반응이 일어나며 엄청난 열이 발생했다. 급기야 이 열에 의해 물이 끓어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 고온의 스팀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게 로시의 주장이었다.

사실 E-캣은 기존과는 다른 방식, 다시 말해 1억℃에 달하는 고온 환경이 아닌 일상적 기온 하에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상온 핵융합' 장치를 지칭하는 용어다. 이론상 상온 핵융합은 고온 핵융합처럼 방사능 부산물을 전혀 남기지 않은 채 무한한 에너지를 값싸게 얻을 수 있는 꿈의 기술로 꼽히는데 로시가 바로 그런 기계를 시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석유와 천연가스 기업들은 당장 문을 닫아야할 처지로 전락한다.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유인 우주탐사도 가능해진다. 아니 하룻밤 사이 세상 전체를 뒤바꿀 일대 혁명이 일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선되어 초청된 40명의 언론인과 과학자들은 로시의 E-캣이 무려한 시간 동안 스팀을 내뿜는 광경을 지켜봤다. 이때 로마에서 날아온 이탈리아 국립핵물리학연구소(INFN)의 프란체스코 셀라니 박사는 분광계를 꺼내 감마선 방출량이 높아지는지 여부를 확인하려 했다. 감마선은 로시의 E-캣이 핵반응에 의해 작동되고 있음을 확인할 증거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로시는 분광계를 끌 것을 요구하며 E-캣의 비밀을 신비의 영역으로 남겨두길 원했다.

퇴짜를 맞기는 했지만 셀라니 박사는 3주 후 제16회 국제상온핵융합학술대회(ICCF)에서 그날의 관찰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로시의 E-캣을 '블랙박스'라고 부르며 투입된 에너지보다 15~20배 많은 에너지를 산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추측이 옳다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처음 한 번만 에너지를 투입하면 생산된 에너지 중 일부를 재투입하는 형태로 무한히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에너지 시대가 개막한 이래 무수한 과학자들이 추구해왔던 무한동력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고령의 발명가가 창고에서 홀로 작업해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핵융합로를 만들었다고? 이걸 믿어야할까.


안드레아 로시의 상온 핵융합 장치 개발이 사실이라면 전 세계 석유회사들은 당장 문을 닫아야할지 모른다.


과학자들이 핵융합 에너지의 상용화를 위해 연구를 시작한 것은 50여 년 전이다. 핵융합은 가벼운 원자 두 개의 핵이 합쳐져 무거운 원소가 될 때 감소된 질량이 막대한 열에너지로 변환되는 현상을 이용하며, 태양과 동일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얻는다고 하여 핵융합로를 인공태양이라고도 부른다.

실제로 내부 온도가 1,500만℃에 달하는 태양은 수소 원자들의 핵이 결합, 헬륨과 삼중수소를 만들어내는 고온 핵융합을 통해 열과 빛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다. 이 같은 고온 핵융합을 지구상에서 구현하는 건 결코 간단치 않다.

원소들을 1억℃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로 만들어야 하는 탓이다. 당연히 엄청난 에너지와 수십억 달러짜리 장비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아직은 산출 에너지가 극소량에 불과해 상용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이런 가운데 지난 1989년 물리학계를 들썩이게 만든 사건이 터졌다. 영국 사우스햄튼대학의 마틴 플라이슈만 박사와 미국 유타대학의 스탠리 폰즈 박사가 기자회견을 열고 저렴한 실험 장비만으로 실온에서 중수소의 핵융합에 성공했다고 밝힌 것.

실험방법은 믿기지 않을 만큼 간단했다. 팔라듐(Pd)과 백금(Pt) 전극을 중수 속에 넣어 전류를 흘리면 된다. 그러면 중수속 중수소의 핵이 팔라듐의 격자형 원자 구조 사이에 끼어들면서 융합이 이뤄져 헬륨이 된다는 게 두 사람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이때 투입된 전력량보다 1,000배는 많은 열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이 즉각 이 실험의 재현에 나섰음은 자명하다.

그러나 성공한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다수 연구팀은 두 사람의 열에너지 측정 방법이 잘못됐다거나 중수의 온도가 전혀 올라가지 않는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결국 플라이슈만과 폰즈 박사는 언론과 학계의 맹비난을 받았고, 미 에너지부(DOE)는 상온 핵융합 연구에 공적 자금을 지원하지 말 것을 권고하는 혹평 가득한 리포트를 발표하기까지 했다. 그 이후 주류 과학계에서 상온 핵융합 연구는 자취를 감췄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손을 뗀 것은 아니다. 정부 산하 연구소, 사립 연구소, 자신의 차고 실험실 등에서 1989년의 실험을 재현하려는 연구자가 지금도 수백 명에 이른다. 단지 이들은 자신의 연구를 더 이상 상온 핵융합이라 칭하지 않는다. 응집물질 핵 과학, 격자에너지 핵반응, 화학적 핵반응 등 다른 명칭을 사용한다. 최근에는 '저에너지 핵반응(LENR)'이라는 명칭이 가장 일반적이다.

정체성 위기라고도 볼 수 있는 현 상황은 상온 핵융합 연구자들조차 상온 핵융합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정확히 모른다는 데서 비롯됐다. 아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실험과정에서 엄청난 열과 중성자 선속, 알파입자(헬륨의 원자핵), 핵변환 등 핵반응의 여러 징후들이 발견된다는 게 전부다. 그나마 이 징후들도 일정치 않다. 어떤 실험에서는 감마선이 측정됐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핵변환의 증거가 관찰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한번은 200W의 전기가 생산됐다가 다음번 실험에서는 1W로 뚝 떨어지기도 한다.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물증은 넘쳐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누구도 딱 부러지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인 셈이다.

그래서 많은 LENR 연구자들은 이 신비스러운 반응의 정체가 핵융합이 아닐 수 있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객관적으로 봐도 이것이 훨씬 타당한 논리다. 플라이슈만 박사와 폰즈 박사가 수소폭탄의 폭발 기전이기도 한 핵융합을 진짜로 일으킨 것이었다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방사능 피폭에 의해 사망했어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2005년 미국 노스이스턴대학의 물리학자인 앨런 위돔 박사와 격자에너지 연구기업 라티스에너지의 루이스 라르센 CEO는 LENR과 관련해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들은 팔라듐, 니켈 등의 금속과 수소 사이에 생긴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 저에너지 중성자들이 주변의 원자핵에 붙들렸고, 그 결과 방사능의 방출 없이 고열이 발생한 것이라 설명한다.

다만 LENR 연구자 중 일부는 이러한 이론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연구결과를 단시간 내 상용화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다. 안드레아 로시 역시 그런 부류에 속한다. 특히나 로시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자신의 무한동력장치에 대해 대외적 신뢰성을 인정받기에는 치명적 결점이 많은 인물이다.

1980년대 그는 생활 쓰레기와 산업 폐기물을 석유로 바꿔준다는 마법의 기계를 발명했다고 천명하며 언론과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이 기계는 한 번도 석유를 생산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공장 내 저장탱크에 보관돼 있었던 7만7,000톤의 유독성 슬러지가 누출되면서 환경법 위반으로 당국의 수사를 받았다. 이 슬러지를 완벽히 정화하려면 5,000만 달러가 필요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로시는 금 밀거래 혐의로 기소 당해 6개월간 징역을 살았으며 그가 졸업한 미국 켄싱턴대학은 1996년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의해 폐교 조치된, 학위를 남발하는 3류 대학이었다.

로시가 E-캣을 발표했을 때 상온 핵융합의 가능성을 믿고 있던 학자들은 그의 얼룩진 과거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그를 지원했다. 일례로인도 최초의 핵폭탄을 개발한 연구팀의 일원이었던 마하데바 스리니바산 박사는 로시를 국제학회에 초청해 강연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또 로시의 시연을 지켜봤던 스위스의 유명한 물리학 교수 한명은 E-캣의 내부에서 핵반응이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고 공개적으로 밝혔고, 미 항공 우주국(NASA)는 E-캣을 테스트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미 해군연구소(NRL)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비공개 시연회를 주선했으며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브라이언 조지프슨 박사는 "E-캣이야 말로 금세기 가장 중요한 기술적 진보일 수 있다"는 발언이 담긴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의혹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이자 아마도 마지막이 될 개연성이 높은 2011년 10월의 공개 시연회 이후 로시가 논란의 소지가 큰 발언과 지키지 못할 약속들을 남발한 탓이다. 먼저 그는 미국 플로리다주에 최첨단 설비를 갖춘 E-캣 생산공장을 운영하겠다고 했지만 그가 소유한 부동산은 마이애미 해안 인근에 위치한 콘도한 채 뿐이었으며, 확실한 투자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또한 E-캣의 실체 규명을 위한 실험에 동의했다가 파기하는 행동을 반복했다.

이렇게 신뢰성이 떨어지면서 조지프슨 박사는 최근 조시의 E-캣을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의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고, 과거 조시를 지지했던 블로거들은 인터넷을 통한 지원사격을 중단했다. 사기 행각이 들통났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지만 올 여름까지 로시는 자신의 E-캣과 관련한 믿기 어려운 주장을 이어갔다. 마치 거짓말을 숨기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기꾼처럼 말이다.

중수 (重水, heavy water, D2O) 중수소(D2)와 산소(O)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물. 수소(H2)와 산소(O)가 결합한 일반적인 물(H2O)보다 무거우며 끓는점과 어는점이 높아 원자로의 감속재로 쓰인다.
중성자 선속 (neutron flux) 특정 지점을 통과하는 중성자의 수. 중성자의 강도를 나타낸다.
핵변환 (nuclear transmutation) 질소 핵이 산소 핵이 되는 등 특정 핵종이 다른 핵종으로 변하는 현상.


겉치레 가득한 웹사이트, 어설픈 시연, 사기 전과 등 모든 정황은 그가 사기꾼임을 소리 없이 부르짖고 있다.


필자가 얼마 전 로시의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를 믿는 사람이 있었다는 지인의 말이 농담인줄 알았다. 그에 관한 모든 것, 즉 겉치레 가득한 웹사이트부터 어설프기 짝이 없는 시연회, 사기 전과 등을 고려하면 두말할 나위 없는 사기꾼이 틀림없었다. 그런데도 그를 취재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렇다 할 자격조차 없는 사기 전과자가 어떻게 학계 연구자들을 속일 수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첫 취재 장소는 버지니아주 윌리엄앤메리대학에서 열린 LENR 학회였다. 이 분야의 유명 연구자 50여명과 NASA가 파견한 공학자들이 참석한 학회의 분위기는 고등학교 동창회 마냥 화기애애했다.

첫날 필자는 난해하기 그지없는 LENR 이론과 실험에 대한 발표를 맨 앞자리에서 경청하며 한 마디라도 더 알아듣기 위해 필사적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NASA 랭글리연구센터의 항공우주공학자 존 마틴 박사를 만나 로시에 대해 물었다. 그는 로시의 행적을 열심히 추적해왔기에 필자의 궁금증에 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로시는 남들을 현혹시키는 장사꾼 기질이 꽤 뛰어난 사람이에요. 하지만 비장의 카드는 따로 있다고 봐요. 학계에서 유명한 연구자와 매우 밀접한 사이였다는 게 그겁니다."

그가 말한 연구자는 바로 볼로냐대학의 물리학 교수였던 세르지오 포카르디 박사로 로시에게 유료 컨설턴트 역할을 해주면서 필요할 때면 사진 모델로도 나섰던 인물이다. 로시가 왕성히 활동했던 시기에 포카르디 박사는 학회에 함께 참가하며 굳은 유대감을 과시했다.

"포카르디 박사는 1990년대에 이탈리아 시에나대학의 생물물리학자 프란체스코 피아텔리 교수와 팀을 이뤄 니켈-수소 LENR 시스템의 가능성을 최초로 발견한 LENR 분야의 선구자에요. 로시의 E-캣에도 이 시스템이 채용됐는데 피아텔리 교수로부터 시작된 이론적 타당성이 로시의 부족한 신뢰도를 채워줬던 거죠."

점심시간이 되어 함께 식사를 하던 미주리대학 연구부 부처장인 로버트 던컨 박사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그는 로시가 자격이 없는 연구자인 건 부인할 수 없지만 로시가 수행한 수백 건의 LENR 실험에서 높은 열이 방출됐다는 점을 필자에게 주지시켰다. "로시는 아마도 뭔가 실증적인 증거를 갖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학회 마지막 날, 랭글리연구센터의 수석과 학자 데니스 부시넬 박사가 LENR 연구의 현황을 요약 정리했다. 좋든 싫든 로시와 같은 사람들이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차고에서 이뤄지고 있는 에디슨적인 LENR 실험들은 과학계와 공학계에서 수행하는 엄격한 연구 과정을 우회해 곧장 산업화될 겁니다. 또한 매우 많은 대형 투자자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1㎾ 수준의 에너지만 생산할 수 있어도 세상은 하룻밤 사이 완전히 바뀔 것입니다."

부시넬 박사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지구를 너무 심하게 망쳐놨습니다. LENR은 우리가 지은 죄를 씻을 수 있는, 제가 아는 몇 안 되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필자는 3일간 학회에 참가한 모든 LENR 연구자에게 말을 걸어봤는데 놀랍게도 로시를 사기꾼이라 표현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설령 로시가 E-캣의 정확한 원리나 제어 방식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뭔가를 갖고 있다는 게 그들의 공통된 판단이었다.

정말로 로시는 그 어떤 진짜배기를 숨기고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를 확실히 알아낼 방법은 이탈리아에 가보는 것뿐이었다.

3일간 학회에 참가한 모든 LENR 연구자에게 말을 걸어봤지만 놀랍게도 로시를 사기꾼이라 표현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집에 돌아온 필자는 로시의 블로그에 나와 있는 이메일로 연락을 취했다. 메일 제목에는 '핵물리학 학회지'라는 단어를 넣었다. 대외적 공개 활동을 멈추고 블로그의 댓글로만 지지자들과 교류하고 있던 그를 유혹하기 위함이었다.

메일을 보낸 그날 답장이 날아왔다. 볼로냐에 위치한 자신의 공장에서 개인적으로 E-캣을 시연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필자는 취재날짜를 정하고 이탈리아행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7월의 이탈리아 날씨는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뜨거웠다. 에어컨을 한껏 가동한 렌트카를 타고 볼로냐의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노트북을 열고 이메일을 확인했다. 로시로부터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인터뷰를 취소하겠다는 간단한 메시지였다. 이유에 대한 설명은 일절 없었다.

그의 성격이 변덕스럽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 반응은 출발 전에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곧바로 매우 당혹스럽다는 취지의 메일을 보냈고,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다음과 같은 답장을 받았다.

"반복해서 말해왔듯 누구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연구를 해야지, 적들이나 경쟁자들과 논쟁할 시간이 없어요. 제 연구결과는 호사가들이 아니라 고객들에 의해 판단될 것입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재차 그를 설득하는 메일을 발송한 뒤 구글 맵스를 이용해 그가 이탈리아에 설립한 EFA라는 회사의 위치를 검색했다. 내비게이션에 의존해 찾아간 EFA의 사무실은 낡은 3층 건물의 한편에 있었다. 아무리 봐도 사무공간으로 보이지 않는 그곳의 입구에 앉아있는 여직원에게 말하니 필자의 이름을 받아 적어 옆방으로 들어갔다. 방에서 나온 그녀는 로시가 곧 외근을 나갈 예정이어서 지금은 만나기 어렵다고 전했다. 하지만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주차장 입구 근처에 차를 주차해놓고 3~4시간이나 기다렸다.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실망감에 호텔로 돌아오니 로시의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그는 필자가 자신을 비방하는 중상모략자(?)들과 만날 계획임을 들었다고 밝혔다. LENR에 비판적 시각을 가진 볼로냐 인근 대학 연구자들과 미팅 약속이 돼 있었던 것을 누군가 알려줬던 모양이었다. 그는 또 필자가 스토리의 긴장감을 의도적으로 향상시키고자 자신과 비판론자들의 대결구도를 부각시키려 한다고 의심했다. 그를 설득하기 위해 밤늦도록 이메일을 주고받았지만 로시는 끝내 인터뷰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반가운 메일이 날아왔다.

"당신이 정직하다는 걸 이제 알겠소."

로시는 결국 인터뷰를 수용했다. 약을 올리려고 했는지 비판적 시각의 연구자들과 만나기로 약속했던 그날, 그 시간에 인터뷰를 하겠다고 일방 통보했지만 말이다.


핵력 (nuclear force) 양성자, 중성자 같은 원자핵의 핵자 사이에 작용하는 결합력.


로시의 공장은 볼로냐 외곽의 저층 빌딩들 사이에 있는 한 창고였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가 악수를 청하며 필자를 맞았다.

"어제 제가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면 사과드려요. 아시겠지만 제 적들은 정말 지독한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그랬던 겁니다. 잊어주세요."

그는 가장 먼저 창고 뒤쪽으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알루미늄 포일에 싸인 라면박스보다 조금 큰 10㎾급 E-캣 모듈 하나가 넓은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로시에 의하면 이 모듈에는 D사이즈 건전지 크기의 스테인리스 소재 반응로 3개가 내장돼 있다. 또 각 반응로에는 100g의 니켈 분말, 소량의 수소 기체, 로시가 개발한 비밀 촉매가 들어 있다.

기본적으로 E-캣은 일종의 보일러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그 작동원리는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텔레포트 장치만큼 수수께끼투성이다.

"E-캣 내부에서 일어나는 상온 핵융합 반응은 낮은 수준의 감마선을 방출해요. 반응로를 감싸고 있는 납 방호벽이 이 감마선을 열에너지로 전환, 물을 끓여서 고온 스팀을 생산하는 거죠."

그의 설명에서 '감마선'은 꼭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다. E-캣에서 진짜로 감마선이 방출된다면 LENR이 지닌 최대 수수께끼, 즉 LENR이 핵반응이라면 왜 방사선이 없는지에 대한 답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로시는 자신의 E-캣을 다른 독립기관이 시험해보는 것을 거부했다. 그의 말대로 E-캣이 진짜라고 해도 그 속에서 뭐가 튀어나올지는 그 자신도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싶었다. 작년에는 1억 5,000만 달러 정도의 투자를 염두에 두고 있던 개인투자자들이 E-캣을 시연을 보던 중 난리가 난 적도 있다. E-캣의 이음매가 벌어지며 수증기와 물이 뿜어져 나온 것. 폭발을 우려해 시연장을 서둘러 빠져나가는 투자자들을 향해 그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아무튼 로시는 1시간가량 E-캣을 예열했다. 벽의 콘센트에 전원플러그를 꼽아서 말이다. 그는 이 예열 과정이 핵반응을 시작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비판론자들은 시연회 내내 코드가 연결돼 있었던 점을 들어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었다. 핵융합 발전이 아닌 콘센트에서 동력을 끌어 썼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일부는 E-캣에 외부로부터 동력을 전달받을 수 있는 전선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이를 인식했던 탓인지 로시는 테이블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모듈에서 튀어나온 모든 전선에 전류계를 가져다 댔다.

"디스플레이를 보세요. 0암페어에요. 보이시죠?"

그리고는 전원 코드를 분리해서 과장된 몸짓으로 흔들어 보인 다음 모듈 상단부에 꽂은 탐침을 통해 온도 데이터를 기록하고 있던 노트북 너머로 던져버렸다. 노트북 화면의 데이터상으로 모듈의 온도는 140℃까지 올라간 뒤 그 근방에서 유지되고 있었다. 로시는 E-캣이 자율모드로 가동 중이라 설명했다. 생산된 열에너지의 일부를 동력으로 재사용해 외부의 에너지 공급 없이 자가발전하고 있다는 뜻이다.

E-캣은 한 시간 가까이 약 140℃를 유지하며 작동됐다. 왜 열이 생기는지, 이 열이 핵반응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10㎾급 크기의 E-캣 모듈이라면 한 시간이 아니라 최소 1주일은 자립모드로 작동돼야 발생된 열이 반응로 속 재료들의 화학적 발열반응일 뿐이라는 의혹을 떨칠 수 있다.


오프 더 레코드를 요구했다.

로시의 애매모호한 말투로 표현하면 '모 유명 대학'에서 산업용 초고온 장비인 '핫 캣(Hot Cat)'을 검증했다. 실험 자료를 보여 달라는 요청에는 "자료를 공개하지 않기로 '모 유명 대학'과 합의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자료를 발표할 권한은 그 대학에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아마도 세계적 과학저널 '네이처'에 관련 보고서가 실릴 수도 있다는 추측을 보탰다. 필자는 다시 물었다.

"그럼 그 보고서는 언제쯤 발표될까요? 6개월? 아니면 1년 정도 걸릴까요?"
로시는 못 믿겠다는 투의 뉘앙스를 느꼈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아닙니다. 늦어도 9월에는 나올 겁니다. 보고서가 나오면 꼭 보내드리죠."

오프 더 레코드 (off-the-record)기록에 남기지 않는다는 약속 하에 이뤄진 비공식 발언. 기자는 취재원이 오프 더 레코드로 언급한 내용은 기사화하거나 공표해서는 안 된다.


"UFO를 목격한 사람은 부지기수에요. 하지만 그게 UFO의 존재를 입증하는 증거는 아닙니다."


필자의 스케줄을 밀고한 이름 모를 첩자 때문에 로시의 적들 중에서도 두목급으로 분류되는 피렌체대학 물리학과 교수인 우고 바르디 박사와의 만남은 다른 날 이뤄졌다.

1989년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의 연구자였던 그는 플라이슈만과 폰즈 박사의 상온 핵융합 성공 소식을 듣고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연구실 부장이 거짓일 것이라 일축했음에도 어떻게든 두 박사의 실험을 재현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다른 수천 명의 연구자들처럼 그 또한 재현에 실패하면서 상온 핵융합은 그의 머리에서 사라졌다. 그러던 중 2011년 로시의 소식을 들었을 때 바르디 박사는 쓴웃음이 지어졌다고 했다.

"이 친구가 뭔가 대단한 걸 발명한 건 아닐까 하고 아주 잠시 마음이 흔들리기는 했어요. 하지만 그건 사기에요. 로시의 E-캣은 작동할 턱이 없어요."
"왜 그토록 확신하는 거죠?"
"핵융합 반응이 생성하는 에너지는 실로 엄청납니다. 보일러 따위를 만들 수준이 아니에요. 핵무기라면 모를까요."

이는 상온 핵융합에 비관적인 학자들이 가진 가장 기본적 논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지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LENR 학계에 회자되는 한 학설에 의하면 저에너지 핵반응은 태양이나 고온 핵융합과 같은 열핵반응 수준의 방사능을 만들지 못한다. 물론 바르디 박사의 시각에서 이 설명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아무리 많은 연구자가 상온 핵융합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더라도 신경조차 쓰지 않을 것이라 강조했다. 그들은 자기기만에 빠진 것에 불과하다는 판단에서다.

"UFO를 목격한 사람은 부지기수에요. 하지만 그게 UFO의 존재를 입증하는 증거는 아닙니다."

다음 날 필자는 기차를 타고 로마로 갔다. 또 다른 LENR 비판론자 두 명과의 만남이 예정돼 있었다. 천재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의 모교인 로마 라 사피엔자대학 물리학과 지안카를로 루오코 교수와 안토니오 폴로사 교수가 그 주인공.

필자가 루오코 교수에게 던진 첫 질문은 플라이슈만-폰즈 실험을 재현해 봤는지 였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여러 LENR 과학자들의 연구 내용들은 잘 알고 계시겠죠?"
그가 살짝 손을 들며 반문했다.
"잠시 만요. 왜 그 사람들을 과학자라고 부르시는 거죠?"
그는 필자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대답했다.
LENR을 연구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창고에서 일하는 개인연구자일 뿐 절대로 과학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LENR 연구에 공적 자금이 투입되거나 LENR의 오류를 입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제 시간이 낭비되지 않는 한 그들이 뭘 하든 상관없습니다."

이 같은 방관자적 발언에 필자는 트집쟁이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LENR 연구자에게 유리한 증거들을 하나씩 열거했다. 두 교수는 정중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반박했다.
"예기치 않은 열이 나왔다고요? 정상적 화학반응의 결과에요... 위돔-라르센 이론이요? 다른 이론들을 짜깁기한 부분적으로 옳은 이론일 뿐 전체적으로는 틀린 이론입니다. ..."

폴로사 교수는 플라이슈만-폰즈 실험을 재현하려고 했던 최초의 물리학자들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 사람들이 사소한 성과라도 하나 얻으려면 평생 동안 상용 핵융합 연구를 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성과가 있었지 않나요?"
"그렇긴 하죠. 하지만 그건 조금 다른 문제예요. LENR 연구자들의 자질을 봐야 해요."

두 교수의 논지를 요약하면 이랬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자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인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 거대강입자가속기(LHC)의 대부로 불리는 카를로 루비아 박사도 이탈리아 상온 핵융합 연구를 지지하고는 있지만 상온 핵융합이 가능함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그가 못한 것을 창고 연구자들이 무슨 수로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폴로사 교수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 사람들은 시간낭비를 하고 있어요. 그들이 과학이 아닌 종교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한 이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자신이 믿는 바를 보여주고 말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기차역으로 돌아가면서 바르디 박사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상온 핵융합 문제를 '상극 간의 충돌'이라 표현했다. 양측 모두 상대방이 틀렸다고 확신하고, 자신은 확실한 경험적 증거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적절한 비유 같았다. 그리고 이를 감안하면 로시의 행보는 어쩌면 나름대로 현명한 선택으로 볼 수도 있다. '과학'과 '믿음'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약삭빠름이 현재까지 그가 지탱할 수 있었던 사실상 유일한 힘이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머무른 마지막 날, 필자는 LENR 분야의 열혈 연구자인 이탈리아 국립핵물리학연구소(INFN)의 프란체스코 셀라니 박사를 만나러 갔다. 기차역으로 마중 나온 그는 필자를 태우고 프라스카티에 위치한 INFN로 차를 몰았다.

그곳의 한 연구실에서 그는 LENR 전지를 만들고 있었다. 바닥에는 금속 부스러기가 잔뜩 널브러져 있고, 테이블 위에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을 가진 유리 실린더들이 수십 개나 놓여 있는 곳이었다. 필자의 몸이 테이블 쪽으로 쏠리자 그가 주의를 줬다.
"조심하세요. 매우 뜨겁습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주사바늘처럼 생긴 좁은 유리 실린더가 눕혀져 있었다. 셀라니 박사가 '특별 반응로'라고 부르는 그 상온 핵융합 반응로는 무려 6주일 간 쉬지 않고 작동 중이라고 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열기가 느껴졌지만 설명을 듣기 전에는 실린더 속 코일 전선에서 핵반응이 일어나고 있다고 알아채기 어려웠다.

그는 구리와 니켈의 합금인 콘스탄탄(constantan) 코일로 1년 가까이 다각적인 실험을 해왔다. 준비과정과 실험결과도 상세히 남겼다. 그중에는 코일의 부드러운 표면을 거칠게 만들면 수소원자의 흡수가 향상된다는 내용도 있었다.
"수소가 이 코일의 격자형 원자 구조 속으로 들어가 자가발전이 가능할 정도의 열을 내려면 가동 후 이틀 정도 기다려야 한답니다."

현재 이 장치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는 5~10W 정도. 로시의 E-캣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지만 셀라니 박사의 장치는 언제든 끄고, 켤 수 있으며 매 시간마다 열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비교우위가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아니 가장 중요한 사실은 모든 연구가 비밀리에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든 당장이라도 그의 실험을 재현할 수 있다. 이런 그의 연구실에는 과학이 있을 뿐 믿음이 설 자리는 없었다. 이를 증명하듯 그는 실험일지를 꺼내 콘스탄탄 코일의 저항 감소와 열 발생량 증가 사이의 상관관계를 보여줬다.
"실험장비에 실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지에 적힌 건 무엇이든, 그리고 언제든 재현 가능합니다."

셀라니 박사는 얼마 후에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특별 반응로를 가져갈 계획이라 귀띔했다. 전 세계 주요 연구소와 거래하고 있는 다국적 제어·계측장비 전문기업 내셔널 인스트루먼트(NI)가 주최하는 연례 학회에서 시연하기 위해서였다. NI는 셀라니 박사 외에도 여러 LENR 연구자와 관련기업들을 초청했다. 다행스럽게도 LENR의 상용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로시 한 명 만은 아닌 것이다.

이 학회는 로시의 등장 이후 LENR 학계에서 가장 큰 뉴스거리로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은 이 학회를 일종의 커밍아웃 파티로 취급했지만 적어도 LENR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주목을 받게 됐다고 믿었다. 여기에는 로시도 일익을 담당했다. 한 번도 학회에 초청받지는 못했지만 그의 언론플레이가 NI의 최고경영자 제임스 트루처드의 눈에 들면서 NI가 LENR에 관심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8월 트루처드를 만났을 때 그는 셀라니 박사를 포함한 여러 LENR 연구자들이 실험을 매우 정밀하고 투명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데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저는 우리가 큰 혁신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혁신이 내일 찾아올지, 아니면 10년 후에 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주 먼 미래는 아닐 거라고 봅니다."

필자는 INFN의 연구실에서 셀라니 박사에게 NI가 어떤 이유로 당신을 초청한 것이라 생각하는지 물었었다.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난장판이 된 연구실 안을 둘러봤다. 마치 상온 핵융합 연구를 시작한 초기부터 현재까지 타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조금씩 진보를 거듭해 왔던 발자취를 되짚어 보기라도 하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양쪽 어깨를 위로 치켜들며 대답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