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군용 비살상 무기의 세계

"전투는 살인에 관한 것이다."라는 어느 군인의 유명한 말도 있지만 오늘날의 군대는 갈수록 상대를 죽여서는 안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강대국 간의 전쟁 가능성이 사라지고 점차 평화유지나 치안유지, 재해현장 대민 지원, 폭동 진압 등 전쟁이 아닌 활동에 군대가 투입되는 빈도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사망에 이르게 해선 안 되는 군인은 과연 어떤 무기를 써야 할까. 과학은 그에 대해 '비살상 무기(Nonlethal weaponry)'라는 답을 선사했다.


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왜 비살상 무기인가?
오늘날의 군사 작전 환경은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상황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 이후 강대국 간의 전면전은 사실상 사라지고, 모든 전쟁은 약소국 간의 국지전이나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일방적 경기가 돼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각국의 군대는 치열한 전투 현장에 투입되기 보다는 분쟁지역의 치안유지와 정전협정 준수 여부 감시 등 전쟁 이외의 작전(OOTW)에 파견돼 무장 전투원이 아닌 비무장 민간인들을 상대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상대방에게 살상 무기를 사용하거나 살상 무기 사용을 경고해봐야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무기를 잘못 사용했다가 비전투원에 대한 공격 행위를 금하는 국제법은 물론, 국내외적 여론의 질타를 받아 국익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지난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중국군이 시위대를 유혈 진압해 국제적 지탄을 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무기라고는 살상 무기 밖에 없었던 과거의 군대들은 새로운 환경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 신무기의 개발에 뛰어들었다. 인명을 해치지 않고 상대를 완벽히 제압할 수 있는 '비살상 무기'였다.

군인에게 상당한 전투력을 제공해 주면서도 인명 살상과 재물 파괴를 최대한으로 억제하는 비살상 무기는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가장 안전하게 국력을 시현하고 국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인명 살상과 재물 파괴를 최대한으로 억제하는 비살상 무기는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가장 안전하게 국력을 시현하고 국익을 추구할 수 있는 최적의 해법이다.


지향성 에너지 병기
현재 개발된 비살상 무기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지향성 에너지 무기인 '능동방어시스템(ADS, Active Denial System)'이다.

지난 2004년 미군과의 계약에 따라 군수기업 레이시온이 개발한 이 무기는 쉽게 말해 초대형 전자레인지라고 보면 된다. 95㎓ 주파수, 3.2㎜ 파장의 초고주파 빔을 특정 지점에 집중시켜 발사하는데 빔을 맞은 사람은 전자레인지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체내 수분과 지방이 뜨거워지며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게 된다. 이 능력을 바탕으로 경계선 방어, 시위 진압 등 시위대나 폭도, 테러리스트의 접근을 차단하는 용도로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인체에 유해하지는 않을까. ADS의 빔은 가정용 전자레인지와 보다 주파수가 훨씬 높고, 파장이 짧다. 때문에 빔이 인체 내부 깊은 곳까지 들어가지 않고 피부로부터 0.4㎜ 정도까지만 투과된다. 그러니 내부 장기가 바싹 구워질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빔의 사정권에서 벗어나는 순간, 곧바로 온도가 내려가며 고통도 사라진다고 한다. 물론 ADS의 초고주파는 표적의 피부 온도를 44~58℃까지 높이는 만큼 오래 피격되면 화상을 입을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ADS로 표적을 무력화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표적과의 거리, 표적의 재질(?), 그리고 운용 요원이 설정한 주파수와 출력에 따라 다르다. 다만 인체 실험 결과, 대다수 사람은 피격된 후 3~5초 내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체 실험에 참가해 직접 ADS 맞아본 미 공군연구소의 대변인에 따르면 사격이 이뤄진 순간에 피부가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고, 뜨거움이 급속도로 커져갔다고 설명한 바 있다.

실험에는 현재까지 70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참가해 1만 이상이 진행됐으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전문가들로부터 '부상당할 위험성이 낮은 고효율 비살상 무기'라는 판정을 받았다. 실제로 ADS는 콘택트렌즈, 야간투시경 등을 착용한 사람들의 시력을 손상시킨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고 화장품 등을 바른 사람에게도 그렇지 않은 사람과 동일한 효과를 발휘했다. 특히 남성의 생식기에 대한 영향도 확인된 바 없었다. 화상의 경우 2도 화상을 입은 사례가 전체 1만건의 실험에서 0.1%도 안 되는 단 6건에 불과했다.

굳이 단점을 찾자면 장애인, 유아 등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빔의 사정권에서 빨리 벗어나지 못해 과도하게 오랜 시간 고통을 당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알루미늄 호일 등 반사성이 높은 소재의 옷을 입으면 고통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 정도다.

현재의 ADS는 군용 험비 차량에 탑재돼 운용되는 대형 장비다. 이에 미 경찰과 해병대는 시위 진압 상황에서 간편히 사용할 수 있도록 소형화 연구를 지원하고 있으며, 러시아에서도 ADS와유사한 개념의 장비를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LRAD를 활용하면 군사지역인지 모르고 접근하는 민간인 선박에게 수백m 밖에서 육성 경고를 보낼 수도 있다.


음파 대포
아마 무협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음공(音攻), 혹은 사자후(獅子吼)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사람이 내지르는 소리에 내력을 실어 상대를 제압하는 무술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는 허구가 아니다. 과학적으로 충분한 근거를 갖추고 있다.

고강도 음파를 접하면 내이에서 신경충격을 일으키고, 인간의 뇌는 이것을 음파로 인식하게 되는데 내이는 공간 지각력도 관장하고 있어 고강도 음파로 내이를 포화시키면 공간지각에 이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음파는 인체 내의 여러 장기를 공명시켜 다양한 생리적 현상을 유발하고, 심해지면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특히 음파 중에서도 이 같은 효과가 뛰어난 것은 20㎐ 이하의 저주파다.

가청주파수 이하는 터라 인간은 이 저주파를 들을 수는 없지만 진동은 몸으로 느끼게 된다. 이를 강력하게 증폭해 발신할 경우 건물이나 차량도 투과해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 방향 감각 상실, 감각 및 운동기능 저하 등의 영향을 줄 수 있다. 동물실험의 결과로는 일시적 호흡정지까지 유발 가능하다. 그러나 비가청 저주파를 사용하려면 다수의 스피커와 엄청난 전력이 필요해 실용적 방법은 아니다.

그래서 현재 개발된 것이 '장거리 지향성 음향기기(LRAD, Long Range Acoustic Device)'다. 미국 LRAD 코퍼레이션의 작품으로 ADS가 초저주파를 사용한다면 LRAD는 가청주파수 대역의 고강도 음파를 쓴다. 레이저를 쏘듯 고강도 음파를 특정 표적을 향해 집중 발사하는 것이다. 주변의 소음 여부와 관계없이 멀리까지 소리를 쏘아 보내는 일종의 음파 대포라고 할 수 있다.

LRAD가 발사하는 음파는 100m 밖의 상대에게 엄청난 고통을 일으킬 수 있는 수준이다. 육상에서는 약 300m, 해상에서는 약 500m의 표적에게까지 최소한 극심한 두통을 유발한다. 만일 100m 이내에서 직격되면 자칫 영구적 청력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LRAD는 현재 미 육군과 해군, 해병대, 해안경비대에서 사용 중이며 육상과 해상, 공중의 다양한 플랫폼에 설치가 가능하다. 음파 공격뿐만 아니라 경고메시지 송출, 선전 방송을 보내는 목적으로도 쓸 수 있어 쓸모가 많다. 실제로 LRAD를 활용하면 군사지역인지 모르고 접근하는 민간인 선박에게 수백m 밖에서 육성 경고를 보낼 수도 있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고출력 초저주파 변조기를 비살상 무기 목적으로 개발 중이다. 20㎑ 이하의 음파를 발신하는 1~2m 너비의 접시 모양을 한 이 장비는 출력값의 조절이 가능하다. 저출력에서는 적을 단순히 불편하게 만들 뿐이지만 고출력으로 발사하면 구토와 복통, 어지럼증을 유발하며 최고 출력에서는 뼈를 공진시켜 극도의 고통을 선사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미국의 피카티니 조병창에서 휴대가 가능한 크기의 비살상 음파 무기인 '혐오적 가청 음향기기(A3D)'를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품 방어선
음파 무기도 그렇지만 비살상 무기 중에는 공상과학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것도 있다. 일례로 미 해병대는 지난 2001년부터 통행거부시스템(MDS)이라는 명칭으로, 병사 개인이 휴대하면서 건물의 창이나 문, 복도 등에 바르는 형태의 비살상 무기를 연구해 왔다. 거품 형태의 이 무기를 살포하면 사람이나 차량의 통행이 불가능해진다. 대형화시켜서 차량에 탑재해 운용하면 교차로, 인도 등 넓은 지역을 봉쇄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 신기한 물질의 정체는 시추 이수(drilling mud) 첨가제, 응결제, 물을 적정 비율로 섞은 혼합물이다. 일단 살포되면 그 장소의 마찰력을 사라지게 한다. 쉽게 말해 표면이 극도로 미끄러워진다는 얘기다. 사람이 길을 걷고, 자동차가 도로를 질주할 수 있는 것도 사실 지면과의 마찰력에 의한 것이므로 이렇게 마찰력이 사라지면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타일, 나무 바닥, 계단 등 평탄한 표면은 물론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심지어 풀밭에서도 효과를 발휘한다고 한다.

이밖에 '펄스에너지발사기(PEP)'라는 무기도 연구되고 있다. 원래 대테러부대에서는 실내 돌입 직전에 적을 일시적으로 무력화하기 위해 강력한 충격파를 발생하는 섬광 수류탄을 사용했지만 이는 특정 표적이 아닌 해당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작용, 인질들까지 피해를 입는다는 한계가 있다. PEP는 이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레이저로 타깃의 몸에 강력한 플라즈마 펄스를 전달, 행동을 일시적으로 무력화시켜 개별 표적을 제압할 수 있다. 레이저가 표적에 부딪칠 때 발생하는 플라즈마가 주변의 공기 온도를 급속도로 높여, 공기를 팽창시키는 메커니즘이다.

미 정부는 이 무기체계의 개발에 317만3,000달러를 지원했으며, 현재는 기술적 타당성 검증을 완료하고 기술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비 무게가 200㎏이 넘는다는 단점은 있지만 향후 소형화가 이뤄지면 대테러 장비로 탁월한 효용성을 낼 수 있을 전망이다.

이렇듯 다양한 비살상 무기의 존재와 연구개발은 인명의 소중함과 인권 보호 측면에서 긍정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비살상 무기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보내기도 한다. 우선 비살상 무기 특유의 태생적 한계, 즉 살상력이 미약하다는 문제를 들 수 있다. 이 때문에 살상 무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상살 무기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용이하다. 예를 들어보자. 살상 무기인 소총탄을 100% 막아줄 방탄조끼는 가격도 비싸고, 착용도 거추장스럽다. 또한 얼굴, 팔다리 등 보호하지 못하는 부위도 있다. 반면 비살상 무기인 최루탄은 방독면 하나면 완벽히 방호된다.

비살상 무기의 오남용도 우려스러운 부분으로 꼽힌다. 목숨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오히려 무분별한 사용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맥락에서 비살상 무기가 고문의 도구로 악용될 개연성도 완전히 배재키 어렵다. 결과적으로 모든 무기시스템이 그러하듯 비살상 무기 또한 명확한 활용 규칙을 마련하는 것이 '비살상'이라는 원래의 의미와 가치를 살릴 수 있는 방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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