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식 골인 판독시스템

FIFA GOAL LINE TECHNOLOGY

축구경기만큼 1점 차이로 승부가 결정되는 일이 많은 구기종목도 없다. 그만큼 축구에서 한 골은 승패와 직결된다. 하지만 심판도 사람이다 보니 국제경기에서조차 심심찮게 오심 논란이 불거져 나온다. 최근 국제축구연맹(FIFA)은 골인 판정 오심 논란을 완벽히 잠재울 특급 용병을 지원받았다.

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el@hanmail.net


국가대항 축구경기는 사실상 국가의 자존심을 건 총성 없는 전쟁과 다름없다. 그렇기에 월드컵, 유로컵, 아시안컵 등 국제경기에서의 오심 시비는 자칫 큰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 한국과 일본, 잉글랜드와 프랑스, 호주와 뉴질랜드, 네덜란드와 독일 등 역사적으로 앙숙 관계인 국가가 맞붙은 경우에서라면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하지만 심판들의 능력이 아무리 일취월장했다고는 해도 오심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인간의 능력에는 결국 한계가 있는 탓이다. 특히 촬영장비와 촬영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TV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현장의 심판보다 훨씬 다양한 각도에서, 슬로모션으로 정확한 상황을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오심 시비는 오히려 더 자주 빈발하고 있다.


오심으로 점철된 축구 역사

지난 2000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결승전. 이날 승부차기에서 나온 심판의 오심 하나가 우승컵의 주인을 바꿔놓았다. 당시 나이지리아 빅터 입케바 선수의 슛이 골대에 맞고 골라인 근처에 떨어졌고, 심판은 노골을 선언했다. 이 판정에 힘입어 카메룬이 1점차의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TV방송국의 슬로모션 리플레이 영상에 의하면 분명한 골인이었다.

2005년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토트넘 핫스퍼 간의 경기에서도 논란이 된 오심이 일어났다. 토트넘의 미드필더 페드로 멘데스 선수가 날린 41m 장거리 슛을 맨체스터의 골키퍼가 골라인에서 1m 가까이 들어간 곳에서 쳐낸 것. 분명한 골인이었지만 주심도, 선심도 이 광경을 보지 못했다.

이 경기는 FIFA에게 상당한 부담을 안겨줬다. 그리고 고심 끝에 아디다스가 개발한 전자식 골인판정시스템의 테스트를 결정했다. 그동안의 입장에서 벗어나 인간, 즉 심판이 아닌 과학기술을 통해 오심 문제를 해결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아디다스의 시스템은 축구공에 마이크로칩, 골라인에는 센서를 장착해 축구공이 골라인을 통과하면 주심에게 신호를 보내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2007년과 2008년 페루 청소년 월드컵에서 시범 운용되는 등 오랜 기간의 테스트에도 불구하고 결국 퇴출 결정이 내려졌다. 정확도가 95%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오류가 있는 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니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전자식 판정시스템의 도입은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FIFA를 괴롭히는 오심 시비는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앞서 맨체스터와 토트넘 같은 수준의 심각한 오심이 터졌다. 앙숙 관계인 독일과 영국의 16강전에서였다. 잉글랜드의 프랭크 램파드 선수가 찬 공이 크로스바를 맞고 골라인 안쪽에 떨어진 뒤 튕겨 나왔지만 주심이 골로 인정하지 않은 것. 이 오심으로 분위기를 넘겨준 영국은 독일에 1-4로 대패했다.

결국 연이은 오심에 대응하기 위해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은 전자식 골인 판독기술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이윽고 2010년 10월에는 축구 규정과 경기방식을 결정하는 국제축구평의회(IFAB)가 골라인기술(Goal Line Technology, GLT)의 4대 기준을 확정 발표했다. 공이 골라인을 넘어갔는지 여부만 판독할 것, 정확한 판독이 가능할 것, 1초 이내로 판독할 것, 판독 결과는 심판들에게만 통보될 것이 그 기준이었다.

이렇게 10개 기업이 지원한 연구 테스트가 2011년 2월까지 진행됐다. 하지만 IFAB는 2011년 10개 기업 모두가 기준 충족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이후 IFAB는 9개 회사의 지원을 다시 받았고 작년 3월 스위스재료과학기술연구소(EMPA)가 수행한 1차 테스트 결과. 9개 기업 중 2개 기업이 합격 기준을 통과했다. 독일 프라운호퍼 IIS의 '골레프(GoalRef)'와 영국 호크아이 이노베이션의 '호크아이(Ha자-Eye)'가 그 주인공이었다.

두 기술은 2차 실전테스트 역시 훌륭히 통과했고 작년 7월 IFAB는 만장일치로 골레프와 호크아이를 GLT로 공식 승인했다. 전자식 골인 판정기술이 본격적으로 FIFA 경기에 활용될 기반이 마련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골레프 ┃ 자기장 간섭 감지해 0.1초 판정

골레프는 프라운호퍼 IIS와 덴마크의 원천기술 보유기업이 공동 개발한 작품이다. 저주파 자기장을 사용해 골인 여부를 판단하는 무선 기반 감지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FIFA의 경기 규정에 따르면 골인은 축구공 전체가 골라인을 넘어가야 한다. 골라인에 '조금이라도' 걸쳐 있으면 골인이 아니다. 바로 이점 때문에 육안으로의 판단이 쉽지 않은 것인데 골레프는 이 문제의 해결에 주안점을 두고 개발됐다.

구체적으로 골레프는 두 개의 저주파 자기장으로 골인을 판단한다. 첫 번째 자기장은 골대 안쪽에 설치한 전자장 안테나를 통해 골라인 안쪽에 형성된다. 두 번째 자기장은 구리코일로 이뤄진 수동전자회로를 내장한 축구공이 만든다. 축구공이 골대에 접근하면 공 내외에 자기장이 형성되는 것.

이 상태에서 공이 골대 속으로 들어가면 두 자기장 사이에 간섭이 일어나 골대 안쪽 자기장에 변화가 생기는데 골대에 설치된 코일이 이를 감지해 공이 완전히 골라인을 넘었는지를 판단하는 메커니즘이다.

만일 공 전체가 골라인을 넘어섰다고 확인되면 골대의 안테나가 즉각 주심의 손목시계에 'GOAL'이라는 문제메시지를 전송한다. 심판이 확인하지 못했을 때를 대비해 손목시계는 메시지를 전송받으면 진동으로 그 사실을 알린다.

골레프의 강점은 영상시스템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만큼 골인 판정에 걸리는 시간이 매우 짧다. 프라운호퍼 IIS에 의하면 0.1초 이내다. 골인 판정에서 문자메시지 전송까지 걸리는 시간도 약 0.5초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판정과 신호전달이 완료되는 셈이다. 프라운호퍼 IIS는 또 문자메시지를 암호화해 심판에게 전송되는 도중에 탈취 또는 변조될 가능성을 봉쇄했다.

골레프의 장점은 더 있다. 이 시스템의 센서는 기존에 시판되고 있는 모든 축구공에 이식이 가능할 정도로 심플하다. 전체 시스템의 설치비용도 호크아이와 비교해 저렴하다. 승인 직전까지 갔다가 미역국을 마셨던 독일 IT기업 카이로스의 GTL 시스템이 고가의 전용 마이크로칩을 사용하고, 아디다스의 전용구만 사용해야 했다는 점과는 다르다.


호크아이 ┃ 시각 이미지로 삼각측량

골레프의 자기장에 맞서는 호크아이의 무기는 그 이름에 걸맞게 고속 비디오카메라다. 카메라가 촬영한 시각 이미지와 타이밍 데이터를 삼각 측량해 골인 여부를 판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골레프가 촉각이라면 호크아이는 시각 중심의 시스템인 것이다.

기술의 핵심인 카메라는 경기장 외곽을 둘러싸며 12개가 설치된다. 하프라인을 중심으로 각각 6개씩 자기쪽의 골대를 향해 있는 이 카메라는 일반 TV 카메라의 20배에 달하는 초당 500프레임의 촬영 능력을 자랑한다.

판정 방법은 이렇다. 카메라가 축구공의 위치를 실시간 촬영, 공의 위치 데이터를 확보한다. 이 데이터는 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에 미리 입력된 경기장 지형이나 게임 규칙 정보와 통합 분석된다. 분석의 첫 단계는 각 카메라가 촬영한 모든 프레임에서 공의 이미지와 일치하는 화소들을 골라낸다. 이후 동일 시점에 공을 촬영한 두 대의 카메라 영상을 통해 경기장 내에 공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삼각측량을 적용해 공의 3차원 위치정보를 계산해낸다.

이런 식으로 여러 프레임을 연속적으로 촬영하면 공의 비행경로를 기록할 수 있으며 미래의 위치도 예측 가능하다. 경기장 지형 정보를 토대로 공이 어디로 날아갈지 미리 예견할 수 있다는 예기다. 공 추적 시스템의 경우 백엔드 데이터베이스 및 아카이브 기능과 결합되어 있어 개별 선수와 경기에 대한 추세 분석 및 통계 추출, 그리고 비교도 가능하다.

영상 분석 기술이기는 해도 정확도는 물론 판정 속도에서도 골레프에 뒤지지 않는다. 데이터 처리 및 판정에 걸리는 시간이 1초 이내다. 오차범위는 3.6㎜로 무시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호크아이의 장점은 공이나 골대 등에 별도의 장치를 장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 골라인에 공이 통과하느냐 마느냐만 따지는 골레프와는 달리 경기장 전체를 비행하는 공의 궤적을 추적하는 시스템인데다 이를 영상으로 만들어 시현할 수 있어 TV를 통한 경기 방송에 훨씬 잘 어울린다. 심판뿐만 아니라 시청자, 코칭스태프들에게까지 실시간 경기정보를 전송할 수 있다.

특히 경기장 내에 있는 공의 위치로 판정을 내리는 만큼 골대가 없는 크리켓, 테니스 등의 다른 구기종목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단점이라면 공의 25% 이상이 카메라에 보여야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선수나 심판에 의해 모든 카메라로부터 공이 가려질 때는 판정이 불가능할 수 있다. 고가의 장비인 고속 카메라를 경기장에 다수 배치해야 하며, 카메라의 축구공 인식률을 높이기 위해 골대의 네트를 검은색으로 교체해야 하는 등 돈이 많이 들어간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만나요

FIFA의 승인을 얻은 두 시스템은 2012년 12월 6일부터 16일까지 일본에서 개최된 2012 FIFA 클럽 월드컵 대회에서 실전 데뷔무대를 치렀다. 골레프 시스템은 인터내셔널 스타디움 요코하마, 호크아이 시스템은 토요타 스타디움에 설치돼 심판의 특급 도우미로 나섰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당시 대회에서는 오심을 유발할 수 있는 애매한 상황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 시스템의 효용성도 확실히 검증해 볼 여지가 적었다.

GLT 예찬론자들은 이 기술에 의해 축구경기 중 오심 시비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 강조한다. 그러나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앞서도 잠시 밝혔듯이 제프 블래터 회장은 한동안 이 기술의 도입을 강력히 반대했었다. 기술 자체의 오류 가능성은 차치하고라도 GLT가 경기결과에 미치는 심판의 영향력을 감소시켜 선수들에 대한 권위도 낮아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경기 중 심판의 권위가 떨어지면 이따금씩 일어나는 오심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또 새로운 기술에 맞춰 경기 규칙을 개정해야 하는데다 인간이 일으킨 무의적 실수에 대해 토론하는 즐거움(?)이 사라진다는 주장도 있다. 이들은 현재의 슬로모션 리플레이만 잘 활용해도 오심의 30%를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마냥 저렴하다고는 할 수 없는 장비의 가격이 축구에 대한 사람들의 친근감을 반감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원래 축구라는 게임은 적절한 넓이의 땅과 골대, 공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저비용 스포츠다. 가난한 국가, 가난한 아이들이 축구를 통해 세계적인 선수도 성장할 수 있었던 토대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물론 지금 와서 GLT의 도입에 대한 잘잘못이나 효용성을 따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미 FIFA의 승인이 내려졌고, 국제대회에서 이들을 만나볼 기회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2년 뒤에 열리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골레프와 호크아이는 심판들의 동반자로서 오심 논란을 없애는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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