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으로 운명을 바꾼 빌바오 시

정경원의 '디자인 이야기'

디자인으로 도시 브랜드가치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빌바오 시의 디자인경영에 대한 관심이 식지 않고 있다.
정경원 카이스트 디자인학과장


세계 곳곳에서 '도시 디자인 신화'가 이어지고 있다. 디자인으로 도시의 경관을 개선하고,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어 도시 경쟁력과 시민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해마다 4월에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 9월에는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12월이면 홍콩에서 '비즈니스 오브 디자인 위크'가 열린다.

특히 홍콩은 2012년을 '디자인의 해'로 지정하고 '디자인이 이끄는 도시(City Driven by Design)'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디자인 역량 강화에 나섰다. 홍콩 정부의 목표는 디자인 인재 양성, 디자인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 더 나은 삶, 우수 디자인 표창 등으로 모든 산업에서 디자인 붐을 일으켜 도시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홍콩의 디자인 역량과 중국의 제조 능력이 결합되면 커다란 시너지가 나게 될 것을 내다보고 있다.


▶ 전통산업의 몰락이 가져온 위기

스페인 북부, 대서양에 인접한 바스카 지역의 중심 도시 빌바오는 유럽의 대표적인 철강 도시였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제철 산업을 일으켜 큰 부(富)를 축적했다, 1898년에 이미 '아틀레틱 빌바오' 축구단을 창립했으며, 1980년대 초에는 인구가 43만 명이 넘을 만큼 번창했다.

그러나 그 무렵부터 신일본제철과 포항제철 등 극동지역에서 양질의 강철 제품들이 수입됨에 따라 제철 산업의 경쟁력이 상실되기 시작했다. 더욱이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잇따른 테러로 도시의 기능이 침체되었다. 설상가상으로 1983년 대홍수로 네르비온 강이 범람하여 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되어 8만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됨에 따라 실업률이 전체 인구의 25%에 달했다.


▶ 퇴락한 도시를 되살려라
1985년 법률가, 건축가 등 15명의 민간전문가들로 구성된 '빌바오 도시재생협회(SURBISA)'를 설립했다. 이 협회는 도시 재생을 위해 역사 보존 구역을 설정하고, 구역 내 건물의 개축에 필요한 비용의 20~60%를 지원하는 등 비상대책기구 역할을 했다.

시는 1987년 도시 재생 기본계획을 수립한 데 이어 새로운 주력산업 육성 전략을 모색했다. 철강과 조선 등 기존 주력산업에 연연하지 않고 금융, 하이테크, 문화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1989년 은행·행정·기업 등 각계 대표 120여 명이 참여하는 민간 전문가 협의체인 '빌바오 메트로폴리 30'이 구성되었고, 1992년 중앙정부와 바스크 정부가 50%씩 출자하여 '빌바오리아 2000 개발공사'를 설립해 도시 재생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되었다.


▶ 구겐하임 미술관의 유치
바스크 주 정부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유럽 분관 유치에 나섰다. 유명한 미술관을 앞세워 관광객을 끌어들임으로써 문화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언론과 95%가 넘는 시민들의 거센 반대에 직면했다. 가뜩이나 도시의 재정이 어려운데 1억 달러나 들여 투자 대비 회수(Return on Investment: ROI)가 불투명한 미술관을 짓는 것은 위험하다는 게 반대 논리였다. 또한 비엔나, 잘츠부르크 등 유럽의 쟁쟁한 도시들과 유치 경쟁을 한다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1991년 빌바오 시는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에 성공했으며, 솔로몬 구겐하임 재단은 국제 지명 공모를 통해 선정된 프랭크 게리에게 건물 디자인을 맡겼다. 게리는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이른바 '해체주의적인 건물'을 디자인했다. 비정형적인 형태들이 어우러진 빌바오 미술관은 0.5㎜ 두께의 티타늄 판으로 마감되어 햇빛의 방향에 따라 표면의 색채가 달라진다. 3개 층에 연면적 1만1,000평방미터의 미술관은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19개의 전시공간으로 구성되었다. 모든 전시실은 자연 채광되어 편안하고 자연스런 분위기를 조성하고, 전시품을 감상하기 편하도록 고려되었다.


▶ 세계 언론의 호평에 관람객 쇄도
1997년 10월 개관되자 이 독특하게 디자인된 미술관은 세계의 언론으로부터 '20세기 최고의 건축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은 '금속으로 만든 꽃'이라고 극찬하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전 세계에서 관람객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개관 첫해에만 130만 명이 쇄도하여 관광 수입이 1억 4,000만 달러에 달해 미술관 건립에 투자한 비용을 모두 회수했다. 특히 초호화 유람선인 크루즈가 입항하면서 관광수입도 크게 늘어났다. 2006년까지 9년 동안 986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해 19억 달러(약 2조1,000억 원)에 달하는 경제적인 효과가 나타나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s)'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 통합적 도시 혁신 및 디자인 전략
이처럼 빌바오 시가 기적에 가까운 성과를 올리게 된 이면에는 치밀한 도시 디자인 전략이 깔려 있다. 단지 저명한 건축가가 디자인한 독특한 건물의 후광에 기대지 않고 지하철, 공항, 기차역 등을 포함하여 도시 전체의 인프라를 하나의 시스템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특히 새로운 시설을 건립할 때 가장 훌륭한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건축가를 선정하기 위해 국적이나 인종을 따지지 않는 열린 자세로 임했다. 1988년 착공하여 1995년 개통된 빌바오 지하철은 국제 공모에서 당선된 영국의 노만 포스터의 작품이다. 유리와 강철로 만든 유려한 곡선 형태의 지하철 캐노피는 언제 보아도 산뜻한 느낌을 주는 훌륭한 디자인의 전형이다. 2000년 11월에 개관했으며 '라 팔로마(비둘기)'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빌바오 공항은 스페인의 저명한 건축가인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가 디자인했다. 하늘로 날아오를 것처럼 날렵한 외관과 기둥이 없는 내부 공간 등으로 세계에서 가장 멋진 공항들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 장기간 일관되게 추진
사회간접자본(SOC)의 구축은 오랜 기간이 소요되기 마련이다. 계획의 수립에서부터 부지의 확고, 디자인, 건설, 시공, 감리 등의 절차를 모두 잘 마무리하여 명품 시설을 만들려면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빌바오의 성공 요인은 장기간에 걸쳐 일관되게 모든 계획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본 아레소Ibon Areso 부시장이 있다. 건축가 출신인 아레소 부시장은 통합적 도시혁신전략과 친환경 디자인의 융합이 가져다 주는 시너지 효과에 주목했다.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빌바오리아 2000'의 설립은 물론 구겐하임 미술관 등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시장이 교체되어도 그는 계속 자리에 남아 모든 프로젝트들을 조화롭게 추진했기에 빌바오다운 정체성이 형성된 것이다.


2008년 7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게리가 자신이 디자인한 미술관은 물론 포스터의 지하철, 스털링의 기차역, 칼라트라바의 공항 등의 시너지가 없었다면 "빌바오 효과는 허튼소리(The Bilbao Effect is Bullshit)"라고 주장한 것을 직시해야 한다.


정경원 교수는…
한국 디자인 진흥원장을 역임한 정경원 교수는 국내 산업디자인 분야를 대표하는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 본부장(부시장)을 지냈으며 현재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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