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BY Luke Mitchell
ILLUSTRATION BY Ryan Snook
가상현실화는 현실 세계의 발전을 꾀할 강력한 도구다. 유전자에서 제트기에 이르기까지 현실 세계를 모든 것을 숫자로 바꾼다면 분석과 조작이 한층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두 건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가상현실화가 현실 세계, 특히 식량 문제에 있어 매머드급 재난을 몰고 올 수 있다고 한다.
일례로 뉴욕시티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유명 푸드저널리스트 프레드 코프먼은 자신의 신간 ‘농업 투기(Bet the farm)’에서 현 식량 생산시스템의 모순을 낱낱이 밝혔다. 책의 내용을 보면 지난 2008년 지구에서 생산된 식량은 당시 전 세계 인구의 두 배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많았다. 그러나 2008년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인구수가 10억명을 돌파한 해였다.
식량 생산량이 늘어나는데 어떻게 굶주리는 사람들도 느는 걸까. 코프먼은 식량이 갈수록 가상현실화, 다른 말로 금융화되고 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사람들이 데이터시스템을 이용해 식량의 합리적 분배 방법을 찾는 대신 가상화시킨 식량을 투기 대상으로 삼아 거래했다는 것. 마치 금융 상품처럼 말이다. 바로 이것이 가격 급등을 초래, 식량이 불필요한 곳에 과잉 공급되거나 창고에서 잠자면서 굶주가림이 확산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같은 식량의 가상화 문제는 현대에 더 심각한 결과를 유발할 수 있다. 지구촌의 식량 순생산량은 줄어들고, 순소비량은 증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투자전략가 제러미 그랜섬이 작년 네이처지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곡식 생산성이 매년 1.2% 낮아지면서 이제는 세2013계 인구증가율과 비슷해졌다. 적절한 분배로도 기아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아졌으며 식량난의 안전지대도 사실상 없어진 것이다.
코프먼에게 해법을 물었더니 원자재 시장의 기술을 경쟁이 아닌 조정에 사용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이미 유엔(UN)이 최근 런칭한 농산물시장정보시스템(AMIS, www.amis-outlook.org)을 통해 그 길을 걷고 있다고 설명했다. AMIS를 보면 쓸데없이 추측을 하지 않고도 전 세계의 식량 보유량, 지난해 소비량과 잔량, 공급과잉 또는 공급부족 여부 등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카우프만은 말한다.
“기술은 인간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부응하도록 활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식량을 데이터화해 합리적 분배에 활용하는 대신 금융상품처럼 투기의 대상으로 삼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