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구본혁 기자 nbgkoo@sed.co.kr
우리나라가 향후 달 탐사를 포함해 지구궤도 밖의 먼 우주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세 가지 핵심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위성체(탐사선)와 발사체, 그리고 이들을 쏘아 올릴 수 있는 우주센터 및 발사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위성체 개발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지만 발사체의 경우 나로호를 통해 이제 첫 걸음마를 뗐다. 그나마 나로호 역시 잘 알려진 것처럼 2단 로켓(고체 킥모터)만 우리나라가 개발했을 뿐 1단은 러시아의 것을 그대로 받아서 사용했으며 기술이전도 전혀 받지 못했다.
독자 발사체 기술 확보 필수
국내 항공우주공학계 전문가들은 우주발사체의 핵심 부품을 해외에 전적으로 의존해야한다는 현실이 독자 개발을 어렵게 하는 최대 한계로 지목한다. 그동안은 개발속도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막대한 투자비를 들여 직접 개발하는 것보다 해외 우주강국들의 부품을 수입해 사용하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권세진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대형 발사체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의 군사기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기술이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진정한 우주강국으로 나아가려면 과학위성과 다목적 실용위성을 쏘아 올린 경험을 토대로 독자적인 발사체 기술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당초 예정보다 2년 앞당겨 오는 2018년 발사를 목표로 세운 한국형 발사체(KSLV-Ⅱ)가 우리나라의 우주강국 도약을 가늠할 시금석이 될 전망된다. KSLV-Ⅱ는 나로호로부터 얻은 기술을 토대로 항우연이 2010년부터 독자 개발하고 있는 발사체로 총 1조5,449억원이 투입되는 거대 프로젝트다.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2014년까지는 설계 기간으로 7톤급 액체 엔진의 개발이 핵심 목표다. 2단계는 강력한 추진력을 낼 수 있는 75톤급 로켓엔진을 개발하게 된다. 그리고 2018년까지 진행될 3단계는 75톤급 엔진 4기를 하나로 묶는 클러스터링 기술을 개발한 뒤 최종적으로 2회의 발사를 시도할 예정이다.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면 KSLV-Ⅱ는 아리랑 시리즈와 같은 1.5톤급 실용위성을 고도 700~800㎞의 저궤도에 올려놓는 것을 시작으로 향후 추진될 달 탐사프로젝트에도 활용될 전망이다. 즉 KSLV-Ⅱ는 위성 발사와 달 탐사를 통해 화성·목성 등 외계행성 탐사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미래 우리나라 우주개발계획의 근간이 될 우주발사체인 셈이다.
특히 KSLV-Ⅱ의 발사에 성공할 경우 미국, 러시아 등 선진국들과의 우주개발 공동연구에 참여할 수도 있어 우주강국 도약 속도를 배가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KSLV-Ⅱ의 연구개발(R&D)을 성공으로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예산, 인력 등에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와는 반대로 우주·항공 분야의 연구개발 예산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2013년 정부 R&D 투자방향 및 기준(안) 공청회' 자료에 의하면 우주·항공분야의 투자규모는 각각 15%, 21%나 줄었다. 우주개발 예산만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07년 3,500억원에서 지난해 2,400억원으로 5년간 31%라는 대폭적 감소가 나타났다.
특히 최근 2년간의 연평균 우주개발 예산 증가율은 -23%다. 우리나라보다 심각한 경기침체기를 겪고 있는 미국(5%), 프랑스(-9%), 일본(4%)과 비교해도 창피한 수준이다. 이 같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중국은 지난 2년간 우주분야의 투자규모를 평균 15%나 늘렸다.
나로호 발사와 맞물려 자주 언급된 사실이지만 인력의 부족도 심각하다. 나로호 개발에 참여한 국내 인력은 항우연의 연구진 200여명과 산업체를 포함해 40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로호 개발을 함께 한 러시아 흐루니체프의 임직원이 4만5,000여명, 엔진을 개발한 회사의 직원도 2,000여명이나 된다. 인력 양성의 시급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 항우연의 자료를 보면 국내 우주개발 인력은 2008년 2,253명, 2009년 2,085명, 2010년 2,140명으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예비 인력으로 볼 수 있는 항공우주 관련학과 졸업생도 2011년 107명에 불과했으며, 그나마 이들 중 우주항공분야에 취업한 학생은 49명뿐이다.
권 교수는 "주요 우주 선진국들의 인적·물적 투자규모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경쟁국들을 앞서기 위해서는 적어도 관련예산을 2배 이상 늘리고 민간참여를 확대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민간 산업체를 육성함으로써 우주개발의 탄탄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권 교수의 지적은 대다수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사실상 그동안 국내 항공우주기술 R&D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항우연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나로호도 대한항공, 한화, 두원중공업 등 150여개 민간기업이 참여하기는 했지만 항우연이 개발과 발사 운영을 총괄했다. 그러나 연구부터 개발까지 국책연구소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 시스템은 민간 우주산업체의 육성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장영근 한국항공대학 교수는 "국책연구소가 설계부터 조립시험까지 모든 것을 주도하고 관여하면 산업체는 부품 납품업자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역할분담으로는 경쟁국을 따라잡기가 힘들다"고 피력했다.
지금과 달리 정부나 국책연구소는 우주산업의 큰 그림을 그려서 판로를 개척해주고, 민간 산업체는 부품 설계에서 제작·조립을 통해 완제품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을 키워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 변혁의 효과는 우주강국들이 몸소 증명하고 있다. 현재 모든 우주강국들은 민간 산업체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보유하고 있는 것. 일례로 미국은 미 항공우주국(NASA)라는 우주개발의 아이콘이 있음에도 보잉 등 민간기업들이 국제우주정거장(ISS)의 건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군수기업으로 더 유명한 록히드마틴도 바이킹, 보이저 등의 NASA의 우주탐사선을 개발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할 때 우주항공분야의 산업화는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발사체나 위성 기술을 갖추고 제작하는 것 자체가 민간기업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장기간의 연구개발 과정과 막대한 예산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설령 역량이 있는 기업이라도 발사체 및 위성 수요가 한정돼 있는 우리나라에서 우주산업에 뛰어드는 것은 엄청난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이에 대해 김승조 항우연 원장은 "항우연의 기본적 역할은 항공우주과학을 연구하는 것이지만 항공우주산업의 터전을 닦고, 개발된 기술을 산업체에 이전하는 역할도 중요하다고 본다"며 "단기적 성과를 중시하는 국내 산업 환경에서 우주항공분야의 민간 산업화는 다소 이른 감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