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우리 국민의 밥상과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공기업이다. 지난해 이름을 바꿔 '농수산'에 '식품'을 더했다. 책임이 더 커진 셈이다. aT가 앞으로 어떤 일을 추진할지 김재수 사장을 통해 알아봤다.
하제헌 기자 azzuru@hk.co.kr 사진 윤관식 기자 newface1003@naver.com
양재동 한국농수산식품공사 사옥 6층 사장실에서는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넓은 화훼공판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우리나라 농수산식품을 책임지는 공기업 사장실 위치로는 더 이상 없을 듯했다.
김재수 aT사장은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으로 재직하던 2011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G20 농업장관회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 훈장을 받았다. 김 사장은 농업통이다. 행정고시(21회) 합격 이후 대부분의 관료 생활을 농림수산부에서 했다. 특히 유통과장, 유통국장을 지내면서 진작부터 aT와 인연이 깊었다. 그는 농촌진흥청장을 거쳐 2011년 7월 농림수산부 제1차관을 끝으로 관복을 벗고 aT 사장으로 부임했다. aT사장에 취임 이후 김재수 사장은 숨가쁜 나날을 보냈다. 원래 조직 기능에 식품산업을 육성하는 사업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aT가 앞으로 할 일과 농업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으면서 예정된 인터뷰 시간을 훌쩍 넘겼다. 다음은 김재수 사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지난해 사명을 바꿨다. 이유가 무엇인가.
이제는 단순한 농업 생산에서 식품산업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농수산물유통공사'에 '식품'을 더했다. 우리가 다루게 될 '식품'분야는 농수산물 생산 이후 저장, 가공, 유통, 수출까지 포함하는 산업이다. 그 동안 aT가 가진 기능은 가격 변동에 따라 외국서 들여온 농산물을 방출하는 것 정도로 업무 영역이 협소했다. 현재는 식품 관련 영역 일까지 하고 있어 인원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작년까지 615명이던 인원을 증원해서 현재 650명으로 늘렸다. 지방 지사나 해외 파견 인원을 빼면 본사에는 300명 정도가 일하고 있다. 지금은 농수산물 수출도 해야 하고 면류, 음료, 설탕, 커피, 조제품 등 식품 수출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광고, 홍보, 판촉 등 모든걸 해야 하니 인력 부족에 허덕이는 게 사실이다.
식품기업에 대한 지원 방향과 방법은 어떻게 되나.
식품기업 가운데 대규모 기업 즉, CJ나 농심 등은 지원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 대기업들은 스스로 비즈니스를 잘해나가고 있다. 문제가 되는 건 연간 매출액 10억 원 미만의 영세 기업이다. 우리나라 식품기업의 95%가 5인 이하 사업장이다. 이들 기업에 공공기관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들은 주로 마케팅, 홍보, 해외 수출 시장 정보, 박람회 참여 부분에서 컨설팅을 원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4월 식품기업지원센터를 설립했다. 식품기업지원센터는 식품기업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를 원스톱으로 해결해 준다. 우리 내부 전문가와 식품영양학과 교수들, 유관기관 등 외부 전문가들을 동원해 자문위원을 꾸려 시설에서부터 경영진단까지 해준다. 여기에 자금융자도 지원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R&D 기능이 없다. 그래서 식품과 관련된 사람들이 연구 풀을 만들어 지원해야 한다. 그게 우리의 과제다.
지난해 4월 식품기업지원센터를 설립했다. 식품기업지원센터는 식품기업이 겪는 여러 문제를 원스톱으로 해결해 준다.
농협과 aT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농협은 기본적으로 생산자 단체로 농민만을 고려하는 기관이다. aT는 준정부기관으로 공무원들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한다. aT는 농민의 이익과 도시 소비자의 이익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농민이나 농협 입장에선 농산물 가격이 올라갈수록 좋겠지만, 그럴 경우 소비자 입장에선 불만이 생길 수 있다. 이때 aT가 조정을 통해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제어한다. 농민과 소비자 이익을 조정하는 기능이라 쉽지 않다.
농협과 겹치는 업무 영역은 없는가.
농협은 우리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지는 않는다. 다만 식품기업에 일부 자금융자를 해주고 있지만 그 대상이 다르다. 농협은 농민들에게 자금을 지원하지만 aT는 영세 식품업체들을 대상으로 한다. 근본적으로 농수산물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농협과 aT가 같지만 기관의 정체성 측면에서 다르다. aT는 수익성을 추구하는 기관이 아니다.
장바구니 물가에 대해서는 정부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aT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물가는 어느 정부에서나 중요한 과제다. 국내 농산물 생산이 적어서 가격이 오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일기 변화 등으로 인해 부족분이 커져 가격이 오르는 경우도 빈번하다. 예를 들어 국내 고추 수요는 20만 톤 정도가 적당하나 생산은 절반 밖에 안 된다. 이런 것들은 aT가 수입을 통해 공급량을 늘려준다.
농산물값의 상당 부분이 인건비나 기름값, 물류비, 포장비 등 생산과 직접 관계되지 않은 부분에 의해 올라도 소비자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배추를 가지고 물가를 상징적으로 가늠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배추가 전체 농수산물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1.7%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농산물 가격에 대해 소비자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지만 생산자는 '너무 싸다'고 여겨 인식의 격차가 있다. 그래서 농산물이 참 어렵다.
생산과 소비의 중간에 끼어 있는 유통과정 때문에 농수산물 가격이 오른다는 불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농수산물 가격 문제를 유통에서 풀어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과거에는 중간상인들이 후려치기도 많이 하고 가격을 제대로 안 쳐준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경매제도를 실시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생겼다. 공정성은 확보됐지만 가격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 커진 것이다. 그래서 정가매매 제도 등을 병행하고 있다. 법률상에는 여러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시장에서 한꺼번에 시행되기는 역부족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유통과정에서의 문제를 지적하지만 이것은 중간 거래상의 기능을 간과한 짧은 생각이다. 배추 씻는 사람에 들어가는 인건비, 트럭 운반 물류비 등 사소한 곳에서도 비용이 발생한다. 오프라인상에서 이런 비용들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것은 넌센스다. 우리나라 농수산물 거래에서 유통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42%다. 58%만이 농어민한테 가는 것이다. 그 부분을 실물유통에서 줄이기가 어렵다. 그 부분을 줄이려고 aT가 만든 게 바로 사이버거래시스템이다. 사이버거래는 산지와 소비지 간에 가격이 결정되면 중간유통업자들의 개입이 생략된다.
사이버거래시스템은 소비자들에겐 아직 생소한 것 같다.
원래 사이버거래시스템을 통해 B2C가 많이 이뤄져야 하지만 아직까지 미미하다. 사이버거래는 가정에서도 할 수 있다. 사실 현재 가정에서는 aT가 시행하는 사이버거래를 거치지 않고도 온라인상 직거래를 많이 하고 있다. 사이버거래는 그동안 급식 비리 등의 문제가 발생한 학교에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사이버거래시스템을 이용하면 사전에 급식 비리 문제를 차단할 수 있다. 전국 학교의 36% 정도가 사이버거래에 참여했다. 지난해 사이버거래 규모는 1조 원을 넘었다. 가락시장 거래 규모가 연간 4조 원 정도니 상당히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안정적인 농수산물 수급을 위해 조기대응시스템을 도입했다. 어떤 시스템인가.
1차 농산물인 배추, 무, 마늘, 양파 등은 수확이 거의 마무리될 때 수급 판단을 하면 늦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조기대응시스템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파종 시기 혹은 재배 중간 시점에서 수급 예측을 통해 생산량이 적을 것으로 예측되면 적색경보를 울린다. 그러면 미리 해당 농수산물을 수입한다. 조기 대응 시스템의 핵심은 생산 전망을 잘 예측하는 것이다.
결국 조기대응시스템은 현지 생산자 측과 긴밀한 협조가 필요할 듯하다.
현지 확인은 물론 유통 상인과의 면담, 행정기관의 보고서 등도 모아서 분석한다. 올해는 수급조절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조금 더 정확성을 기할 예정이다. 농산물 생산 예측은 전문기관에서 모니터를 해도 수시로 작황이 바뀌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 사전 예측을 하기 힘든 분야다. 선진국들은 그래서 보통 수요보다 생산을 조금 많이 하고 있다. 생산을 더 많이 하면 가격이 떨어진다. 선진국에서는 이로 인한 손해를 정부나 소비자가 일정부분 부담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런 부분을 조절하는 것이 aT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
농수산물 수출증대 방안으로 K-POP 등 한류를 이용하겠다고 했다. 실제 한류가 수출에 영향을 미치는가.
한류는 실제로 국산 농수산물 판매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를 해외에서 진행하는 우리농산물 전시회에서 알 수 있었다. 관람객들에게서 한국 농산물을 먹으면 K-POP 스타처럼 예뻐질 수 있을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K-POP 때문에 한식당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한류가 우리농산물 수출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증거다. 한국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식품 소비 증대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본격적으로 수출마케팅을 실시할 계획이다. 한류 스타를 명예 홍보대사로 기용하고, 한식 전문가들을 현지에 파견해 우리 음식을 알릴 것이다. 현지 방송광고와 전광판을 동원한 홍보도 계획 중이다.
FTA가 체결된 이후 수출입 상황은 어떤가.
FTA 효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단기적 평가를 내리기엔 무리가 있다. 수입 농수산물 역시 낮아진 관세만큼 가격이 떨어져야 하지만 아직 실제로 체감되는 혜택은 적은 듯하다. 관세는 떨어졌지만 독점적 유통업자들 때문에 소비자 혜택이 적은 것으로 추측한다. 하지만 투명한 중간 과정, 독과점 제재 등으로 인해 앞으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FTA 효과는 분명히 있다. 장류나 면류 등 관세가 떨어져 특히 미국 수출이 늘고 있다.
우리 농산물에서 가장 큰 문제는 스타 상품이 없다는 것이다. 홍삼이나 수삼 등도 수출이 오히려 줄고 있는 상태다. 수삼은 지난해 7,700만 달러, 전체 인삼 제품은 1억 5,000만 달러를 수출했다. 재작년 1억 9,000만 달러보다 줄어든 것이다. 인삼 종주국이라면서 수출이 2억 달러도 안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제 우리는 기술농업시대로 가야 하고, 기술혁신을 통한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가공식품도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고급화 해야 한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농림부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왔다. 우리나라 농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1970년대 중반까지는 단순 생산농업이었다. 당시만 해도 생산량 증대가 우선 과제였다. 통일벼 생산 이후 생산량이 크게 늘어난 것은 괄목할 만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이 44.5% 정도로 낮은 게 문제다. OECD국가 중 꼴찌 수준이다. 중요한 문제임에도 우리가 소홀히 다뤄왔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쌀 생산에만 너무 치우친 결과라고 생각한다. 사실 농민들이 과도하게 정부에 의지하는 경향도 컸다.
농업도 산업으로 변하고 있다는 인식 변화를 꾀하지 못한 점도 문제였다. 단순 1차 생산업에서 벗어나 기능성 식품, 의약품, 신소재 등 고부가가치 상품 개발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특히 식품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5,000조 원 시장이다. 거대 시장을 공략하지 못했다.
대처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쌀 생산 기반이 있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외환위기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쌀이 부족하지 않아서였다. 위기가 닥쳤어도 쌀 사재기는 하지 않았다. 식료품값 안정에 크게 도움을 준 것이다. 이것은 농업정책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웬만한 위기나 자연재해가 와도 연간 400만 톤 이상 쌀을 생산하는 데 문제없다. 우리 국민의 쌀 소비량은 연간 360만 톤이다. 사람들이 농업정책이 실패했다고 말하는데 많은 분야에선 성공했다. 특히 생산증대기술은 세계 톱 수준이다. 농업기술 수준이 100점 만점에 미국이 96점이면, 우리가 69점이다. 이는 캐나다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제 우리는 기술농업시대로 가야 하고, 기술혁신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가공식품도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고급화 해야 한다. 정부와 생산자가 머리를 맞대 농수산물 생산 이후의 과정과 역할에 대한 조직과 인력, 재원에 대한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