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 빌딩의 미래

The Rise OF THE Supertalls

건축공학 기술의 발달로 높이 1㎞의 고지 점령이 눈앞에 와 있다.
STORY BY CLAY RISEN


2001년 9월 11일 아침. 세계적인 고층빌딩 설계기업 스키드모어 오윙스 앤드 메릴(SOM)의 건축엔지니어 빌 베이커는 시카고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있었다. 그는 지난 30년간 건설된 세계 최고층 빌딩 15개 중 6개의 건설에 참여한 자타가 공인하는 이 업계의 '킹 오브 더 킹'이다.

그러나 이날은 왕좌에 편안히 앉아있기에는 좋은 날이 아니었다.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된 것도 모자라 테러리스트에게 탈취 당한 또 다른 항공기가 시카고의 시어스 타워를 향하고 있다는 루머까지 돌았던 것. 베이커와 그의 동료들은 이날 자신들의 피땀이 녹아든 건축업계의 상징물이 테러의 표적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하릴 없이 지켜봐야 했다.

며칠 후 그는 동료들과 함께 뉴욕으로 달려갔다. 세계무역센터의 잔해물 처리 업체들이 엔지니어들에게 자원봉사를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붕괴 현장을 4개 구역으로 나눠서 각각 4개의 건축엔지니어 팀이 배치됐죠. 저희는 시카고 팀으로 불렸어요."

당시 그는 잔해더미를 헤집고 다니며 고층빌딩의 미래에 심각한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앞으로 건축가들이 테러의 위협을 무릅쓰고 한 국가, 혹은 한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고층빌딩을 다시 건설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9.11 테러가 일어난 지 약 18개월 뒤 베이커는 뉴욕을 다시 찾았다. 세계 최고층 빌딩, 즉 부르즈 할리파의 설계에 대한 프레젠테이션 때문이었다. 결국 그가 속한 SOM이 계약을 수주했고, 6년이 지난 2010년 두바이에 828m의 마천루가 완공됐다.

그의 우려와는 달리 9.11 이후 고층 빌딩 건설은 예전보다 더 활발해졌다. 9.11 이전 70년간 빌딩의 최고 높이 기록 상승은 70m에 불과했지만 9.11 이후 10년 동안에는 무려 376m나 높아졌다.

오늘날의 고층 빌딩들은 과거와 비교해 모든 면에서 새롭다. 구조와 설계는 물론 테스트까지도 새로운 기법이 사용된다. 그저 더 높은 건물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범주의 건물인 셈이다. 이를 가리켜 건축업계에서는 '초고층 빌딩(supertall skyscraper)'이라 부른다.

베이커는 건축가와 엔지니어들이 초고층건물을 별도의 범주로 보고, 다른 건물과는 장점과 문제점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은 불과 15년 전부터라고 설명한다.

"세계무역센터 크기의 건물을 지으려면 건물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CTBUH)에서는 기술적 관점에서 초고층 빌딩을 높이 300m 이상의 건물로 정의한다. 초고층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시기에 건설된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381m)이나 9.11 테러의 타깃이 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417m, 415m)도 이 기준에서 보면 초고층 빌딩에 포함되는 것이다.




초고층빌딩은 구조, 설계 등 모든 면에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건물이다.



작년 10월 필자는 뉴욕의 30 록펠러 프라자에 있는 커피숍에서 베이커를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1933년 준공된 259m 높이의 이 빌딩은 너나할 것 없이 고층빌딩을 짓고자 노력했던 시대를 마감하는 상징물과 같다. 이후 30년간 건축가들은 록펠러 플라자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같은 철골 구조 건물보다 더 높은 건물은 세우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SOM의 엔지니어이자 베이커의 선배인 파즐라 칸이 '튜브(tube)'라는 신개념 건축시스템을 창안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 시스템은 건물내부에 철골을 설치했던 기존의 구조 대신 건물 외부에 기둥을 설치하는 구조였다. 각 기둥들은 서로 연결돼 있는 것은 물론 엘리베이터, 계단 등 핵심 구조물과도 연결돼 있다.

"건물에서 가장 강한 부분이 외부에 노출돼 있는 만큼 강한 바람을 버텨내는 능력도 커집니다. 40층 이상의 건물에서는 중력보다 바람에 더 신경을 써야하거든요."

칸의 튜브 공법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지어진 고층건물에 많이 적용됐다. 존 핸콕 센터, 시어스 타워, 세계무역센터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튜브공법이 만능은 아니었다. 베이커가 1980년대초 SOM에 입사했을 때 건축가와 엔지니어들은 그 한계에 직면해 있었다. 튜브 공법을 통해 건물 높이를 얼마든 높일 수는 있지만 높이에 비례해 건물의 기초도 넓어져야 했던 것.

"100층 건물은 50층보다 밑면적이 두 배가 돼야 했어요. 땅속으로 박아야하는 기초의 깊이도 두 배는 깊어야 했고요. 이렇게 하면 건물의 전체 부피는 8배로 늘어납니다."

상황이 이런지라 초고층빌딩에는 튜브 공법의 적용이 사실상 힘들다. 예를 들어 150층 빌딩이라면 낮은 층의 넓이가 수십만㎡에 달해서 대다수 입주자들은 빛 한줌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생활해야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감옥 같은 답답함에 지쳐 어떻게든 밖으로 나갈 궁리만 하게 될 거예요."

그러던 1990년대 중반 고층건물의 용도 변화에 인해 하부층의 넓이 문제를 해결할 단초가 마련됐다. 과거에는 고층빌딩의 거의 전층이 사무실 용도였지만 1990년대 이후의 고층빌딩은 아파트, 호텔, 콘도, 쇼핑센터 등을 포괄하는 형태로 진화한 것. 이른바 주상복합빌딩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설은 사무 전용 빌딩에 비해 건평이 작아도 세울 수 있다. 덕분에 부지 확보도 한층 용이하다.

이는 튜브 공법의 폐기로 이어졌다. 미국 시카고의 '세븐 사우스 디어본(7 South Dearborn)' 빌딩이 그 효시다. 1998년 SOM의 베이커와 에이드리언 스미스가 설계안을 발표했는데 108층 중 상층부 60층이 비(非) 사무용 공간으로 구성된 이 빌딩은 높이가 610m나 됐지만 면적은 4분의 1 블록 정도에 불과했다. 튜브공법이 적용된 건물과 비교하면 슈퍼모델처럼 날씬했다. 이는 빌딩의 중심 코어 주변을 8개의 대형 기둥으로 감싸는 '스테이드 마스트(stayed mast)'라는 신 공법을 적용한 결과였다.

2000년대 들어 IT업계의 거품이 꺼지면서 세븐 사우스 디어본의 건설은 백지화됐지만 스테이드 마스트라는 혁신 공법을 접한 건축가와 엔지니어들은 튜브 공법을 대체할 고층빌딩용 설계기법을 수십 가지나 새로 창안했다.

부르즈 할리파 프로젝트에서 다시 만난 베이커와 스미스 역시 '버트레스드 코어(Buttressed Core)'라는 차세대 건축기법을 내놓았다. 빌딩의 정중앙에 육각형의 콘크리트 코어(기둥)을 배치하고, 이 코어의 세 면에 T자형 부벽을 붙여 Y자 모양으로 건물을 올리는 방식이다.

물론 이 같은 신공법만으로 고층건물의 설계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건축가나 엔지니어들은 거주자들을 건물 내부에서 원활하게 이동시킬 방법도 찾아내야 한다. 스카이 로비, 더블 데크 엘리베이터 등이 이 과정에서 개발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개선의 여지는 존재한다. 일례로 현존 최고의 지능형 고속 엘리베이터도 상승속도는 1분당 1㎞가 최고다. 하강속도는 그보다 3분의 2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이보다 더 빨리 이동하면 승객들이 귀가 기압 차이를 견딜 수 없다. 때문에 세계무역센터 건설 당시 수석 구조공학 엔지니어였던 레슬리 로버트슨은 초고층 빌딩의 경우 엘리베이터에 대한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진정한 초고층 빌딩이라면 엘리베이터의 케이블을 없애야 할 겁니다. 기존의 케이블 방식 엘리베이터는 460m 정도의 높이까지만 실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높은 건물이라면 전자기 엘리베이터처럼 좀더 현대적이고 세련된 기술의 적용이 필요해요."

이와 관련 지난해 미국 마그네모션이라는 회사가 선형 동기 모터로 구동되는 케이블 없는 엘리베이터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 엘리베이터는 미 해군 군함의 탄약 이송용으로 개발됐지만 승객수송용으로 손쉽게 개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암벽 빌딩
쿠웨이트 시티의 알 함라 타워는 한쪽 면 전체가 돌이다. 높이가 412m로 이런 류의 건물 중 가장 높다.



오늘날의 초고층빌딩은 설계와 재료 모두에서 과거와 다르다. 한때 철골은 고층건물 건설에 필수적 자재였지만 이제는 철골 대신 고강도 콘크리트를 쓴다. 구조설계 전문기업 손튼 토마세티의 구조엔지니어 레너드 조셉에 따르면 이 콘크리트는 과거처럼 시멘트와 자갈, 물을 섞은 게 아니다. 화학물질과 초미세 합성섬유 같은 첨단 소재를 혼합해 철골보다 강도가 뛰어나다.

일례로 1950년대의 구조용 강재는 압축강도가 150㎫ 정도였다. 반면 당시 가장 강한 콘크리트의 압축강도는 21㎫에 불과했다. 이러한 이유로 콘크리트로만 건물을 지을 경우 20층이 한계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130㎫의 초고강도 콘크리트가 개발돼 있다. 여기에 초미세 합성섬유를 혼합하면 압축강도를 두 배로 높일 수 있다. 철골을 대체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특히 콘크리트는 철골보다 질량이 크기 때문에 철골을 사용한 것에 비해 바람에 대한 저항력을 동일하게 유지하면서도 한층 날씬한 건물 건설이 가능하다. 또한 콘크리트는 철과 달리 별도의 방염(防炎) 처리도 필요 없다.

이렇게 많은 구조엔지니어들이 철골에서 콘크리트로 진화하는 동안 일부 엔지니어들은 벌써 콘크리트 이후의 차세대 소재로 탄소섬유 복합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경주용 자전거나 제트기의 소재로 쓰이고 있는 바로 그 고강도 경량 소재다.

다만 이를 건물에 적용하려면 고가의 가격 이외에도 과학계가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다. 탄소섬유의 강점으로 꼽히는 경량성이 건축물에서는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부분이다. 콘크리트 구조의 단단한 건물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탄소섬유 복합재 건물을 걸을 때 마치 텅 빈 드럼통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 더욱이 그것이 높이 수백m의 고층건물에서라면 매우 당혹스러울 것이 자명하다.



건축학계에서는 부르즈 할리파나 상하이 타워 같은 초고층빌딩을 ‘수직 도시’라고도 부른다



빌딩은 높이가 높아질수록 다양한 외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단적인 예로 지면에서 실바람이 불 때도 100층 높이에는 초속 18m의 태풍급 바람이 몰아친다. 구조엔지니어들이 초고층빌딩의 와류진동을 상쇄시킬 방도를 찾기 위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강한 바람이 건물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스쳐 지날 때는 회오리가 발생, 건물을 잡아당기는데 각이 진 건물들은 동시에 많은 회오리가 생성돼 건물이 흔들리는 와류진동이 일어난다.

그나마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3D프린팅 기술이 발달하며 과거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설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은 엔지니어들에게 매우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1970년대만 해도 건물이 완공되기 전에는 와류진동을 측정할 방법이 없었기에 필요 이상으로 강도 높게 건물을 설계했지만 지금은 다양한 설계를 컴퓨터와 풍동실험실을 통해 즉각 테스트할 수 있다. 3D 프린터로 인쇄한 축소모델 빌딩의 표면에 수백 개의 센서를 부착하면 풍동실험에서 각 지점에 가해지는 압력이 측정되며, 이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하면 취약지점이 드러난다. 베이커는 이렇게 설명했다.

"하루에 18가지의 빌딩 설계를 실험할 수도 있어요. 힘겨운 하루가 되겠지만 말이죠."

특히 이 같은 기본 설계가 완료되면 구조엔지니어들은 빌딩 주변의 다른 건물이나 산, 심지어 보행자까지 세워놓고 풍동실험을 재차 수행한다. 주변 환경에 의해 빌딩에 가해지는 바람의 양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와류진동을 막을 해결책이 찾아집니다. 모서리를 둥글게 하거나 진동흡수장치(damper)를 추가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이런 사전조치가 없다면 초고층빌딩은 바람에 의해 거칠게 흔들리게 되죠. 아무리 최첨단 시설을 갖췄더라도 멀미가 날만큼 휘청거리는 빌딩에서 근무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부벽 (Buttress, 扶壁) 건축물을 지탱해주는 버팀벽. 건물의 코어 자체를 두껍게 건설하는 것보다 외력(外力)에 버텨내는 힘을 키울 수 있다.
더블 데크 엘리베이터 (double deck elevator) 두 대의 엘리베이터를 수직 연결하여 한 대처럼 동시에 운용하는 엘리베이터. 아래쪽 엘리베이터는 홀수층, 위쪽 엘리베이터는 짝수층에만 정차한다.
메가파스칼 () 압력을 나타내는 단위. 콘크리트의 강도를 말할 때 1㎫는 1㎠당 10㎏의 하중을 견디는 강도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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