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스토어는 허공에 뜬 상점일까

유통의 세계

2년 전 처음 등장한 홈플러스의 가상스토어는 론칭과 동시에 큰 주목을 받았다. 국내 소비자들의 폭발적 관심과 함께 세계 유력 광고제에서 잇따라 수상하는 등 유통업계의 새로운 혁신 아이콘으로 떠 올랐다. 하지만 가상스토어는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당초 업계의 기대와 달리 매출이나 광고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는 혁신 아이콘으로 각인된 가상스토어를 살릴 수 있는 방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홈플러스 가상스토어는 현실 세계에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인가?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2011년 8월 25일. 홈플러스는 서울지하철 2호선 선릉역에 가상스토어 1호점을 오픈했다. 가상스토어는 일상적인 공간에 상품 이미지와 QR코드를 함께 노출시켜 매장 밖에서도 홈플러스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개념의 유통점포여서 소비자들의 관심이 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은 “홈플러스를 여러분의 집 안에 들여놓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가상스토어가 만들어진 배경은 2008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홈플러스는 2008년 잠실점에 대대적인 래핑 작업을 벌였다. 잠실은 롯데월드, 롯데마트, 롯데백화점이 집약된 롯데의 핵심 상권이다. 이곳에서 롯데의 브랜드에 밀리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선 일종의 퍼포먼스가 필요했다. 홈플러스는 잠실역을 아예 홈플러스 잠실 스토어처럼 보이게 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기둥, 계단 등에 홈플러스 상품 배열 이미지를 래핑해 분위기를 냈다. 당시는 QR코드나 바코드가 들어가지 않았지만 현재의 가상스토어와 상당히 흡사한 모습이었다.

이승한 회장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2011년 4월, 홈플러스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론칭을 계기로 상품진열 이미지 밑에 QR코드와 바코드 등을 첨부해 실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 회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가상스토어 프로젝트는 빠른 속도로 진행돼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출시 4개월 만에 가상스토어를 론칭 할 수 있었다. 특허출원인은 물론 이 회장이다.

론칭 후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케팅에서의 QR코드 활용은 제품 광고 동영상으로 이동한다든가, 특정 이벤트를 홍보한다든가 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일상 공간에서 QR코드를 이용해 상품 구매까지 할 수 있는 가상스토어 개념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다. 이 회장의 별명이 ‘유통계의 스티브 잡스’로 널리 불리게 된 것도 이때부터이다.

론칭 당시 이 회장은 “고객이 매장을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고객을 찾아가야 한다는 ‘고객 중심’ 사고에서 가상스토어가 탄생하게 됐습니다”라며 “앞으로도 업태, 시간, 장소를 불문한 창조적 파괴를 통해 기존엔 존재하지 않던 차별화된 서비스와 상품, 가치들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해외에서도 가상스토어에 주목했다.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 Cannes Lions Festival of Creativity에서 한국 기업 최초로 그랑프리를 수상했으며, 월드 리테일 어워즈 The World Retail Awards에서는 ‘비즈니스 혁신’ 부문 상을 받았다.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은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이며, 월드 리테일 어워즈는 전 세계 50여 개국의 유통기업들이 참가하는 행사이다. 2012년 영국 런던올림픽 기간에는 개트윅공항 Gatwick Airport에서 시범운영되기도 했다. 가상스토어가 홈플러스 투자회사이자 세계 3대 유통업체인 영국 테스코로 역수출된 결과였다.

론칭 2년째인 2013년 현재 가상스토어는 지하철역(선릉역) 1개와 버스정류장 5개 등 총 6개가 운영되고 있다. 한때 26개까지 운영됐으나 예상보다 매출이 크지 않자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홈플러스에서는 가상스토어 매출에 대해 별도 집계를 하진 않는다. 하지만 매출규모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참신한 아이디어에 비해 소비자 활용도가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홈플러스 측은 여전히 가상스토어는 성공적인 작품이라고 판단하고 있다.홈플러스 e-고객관리팀 조현재 팀장은 말한다. “영업의 수단으로만 보자면 가상스토어가 매출 증대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렇다고 실망스럽지는 않습니다. 가상스토어는 그 탄생 배경과 같이 홍보용 목적이 더 강했습니다. 광고로 시작한 것이죠. 기업들이 브랜드를 알리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효과적인 방법으로 이슈화 전략이 있는데, 가상스토어는 충분히 이슈화됐다고 생각합니다.” 조 팀장은 가상스토어 론칭 때부터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았고, 현재도 운영을 맡고 있다.

특히 가상스토어는 고객들에게 ‘홈플러스가 선도적으로 유통업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당시 한창 유행이었던 ‘혁신’이란 단어를 홈플러스의 수식어로 만든 킬러 콘텐츠이기도 했다. QR코드만 보이면 스마트폰으로 확인해 보는 것이 당시 유행이었다. 홈플러스에서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홍보하는 데 가상스토어가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가상스토어 론칭 후 어플리케이션 다운로드 수가 180만을 넘었다. 지금도 하루 6만5,000명이 홈플러스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고 있다. 가상스토어가 한창 이슈가 됐을 때 홈플러스의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해봤던 소비자들이 이후에도 계속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가상스토어 자체가 매출을 극적으로 올려주진 않지만 온라인이나 모바일 고객들을 유인하는 역할은 충분히 했다는 평가다.

가상스토어에 대한 관심은 출범 당시와는 많이 다르다. 전자상거래시장의 경쟁은 치열해졌으나 홈플러스식 가상스토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곳은 없다. 홈플러스도 신성장동력으로 ‘온라인쇼핑몰’을 성장시키겠다고 선언했지만, 가상스토어는 그중 한 방안이지 핵심은 아니다.

홈플러스는 ‘홈플러스의 혁신’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가상스토어를 이용해 소비자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논의를 진행 중이다. 조 팀장은 말한다. “가상스토어의 역할은 단순히 판매나 광고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가상스토어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혁신이죠. 지금도 그 자체를 계속 혁신하기 위해 추가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있습니다. 화면이 돌아가는 식으로 설치한다든가, 매일 변동되는 가격이지만 어떤 방법을 강구해 가격을 표시한다든가 등이죠. 가상스토어는 좀 더 스토어다운 이미지로 변할지도 모릅니다. 어떤 식으로든 가상스토어는 계속 발전해 나갈 겁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