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경영과 열린 소통으로 80년 맥주 역사 이어간다

포춘코리아 CEO 500 / 장인수 오비맥주 사장

장인수 오비맥주 사장을 설명할 때는 항상 ‘신화적인 인물’이라는 말이 따라 붙는다. 고졸 출신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국내 최대 맥주회사인 오비맥주의 대표이사에 올랐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장 사장의 진면목은 현장 생산직 사원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소탈함과 소매점까지 챙기는 열정에 있다. 국내 주류업계의 새로운 역사를 쓰며 오비맥주를 이끌고 있는 장 사장의 경영철학을 알아본다.
차병선 기자 acha@hk.co.kr


5월 오비맥주는 80주년을 맞는다. 10년 주기로 매듭을 짓는다고 보면 올해는 그 의미가 각별하다. 창사 이래 60년 넘게 업계 1위를 지켜오던 오비맥주는 1996년 하이트에게 정상을 내주었다. 그리고 15년간 2위에 머물러야 했다. 그 동안 회사는 주인이 두 번 바뀌었다. 1998년 두산에서 벨기에 주류회사 AF인베브로, 다시 2009년에는 미국계 사모펀드 KKR로 넘어갔다. 그동안 오비맥주 임직원들이 어떤 열패감을 느꼈을지는 맥주업계에 종사하지 않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003년 70주년 기념식에선 축배조차 씁쓸했다.

사람들은 오비맥주가 ‘맛이 갔다’고 생각했다. 2등 기업이 1등을 역전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2위로 밀려난 기업이 정상을 되찾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재역전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오비맥주가 새 역사를 창조했다. 1등을 재탈환했다. 연간 누적 실적으로 2011년 10월, 마침내 넘어섰다. 이번 80주년에 축배를 들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그 중심에는 장인수 오비맥주 사장이 있다. 장인수 사장은 주류업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사람들은 그를 고졸 신화, 영업의 달인이라고 부른다. 대경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1980년 진로소주에 입사했다.

학력이 짧았던 장 사장은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이며, 자기 단점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영업사원 시절 동료들이 5~6개 라인을 담당할 때 장 사장은 19개 라인을 맡았다. 4년 동안 매일 200㎞ 이상을 달렸다. 남들이 가기 싫어 했던 거래처도 자진해서 맡았다. 조직 폭력배가 운영하던 주류 도매상도 그중 하나다.

뛰어난 실적을 보이던 장 사장은 영업부장을 거쳐 1999년 진로 서울권역 담당이사를 맡았다. 동기 중 가장 이른 승진이었다. 이어 2007년에는 진로 서울권역 총괄 상무이사, 2008년 하이트주조 대표, 2009년 하이트주정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영업사원에서 정상까지, 실력 하나로 올라선 것이다.

2010년 1월 장 사장은 오비맥주로 전격 스카우트 됐다. 경쟁사로 넘어온 것이다. 직함은 영업총괄 부사장. 당시 오비맥주는 이호림 전임 사장의 지휘 아래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었다. 2007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 전 사장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전통의 브랜드인 오비맥주를 뒤로 하고 대신 카스를 주력 상품으로 밀었다. 카스는 1999년 진로에서 인수한 브랜드였다. 내부 반발이 컸지만 이 전 사장은 밀고 나갔다. 이 전사장에게 오비맥주는 낡은 브랜드였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술이 필요했다. 카스는 한국 최초의 비열처리 맥주로 오비맥주보다 맛이 청량했다. 이 전 사장은 전통의 맛 대신 트렌드를 선택했다. 속옷업체 쌍방울 대표이사 출신이던 이 전 사장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카스가 시장에 먹혔다. 2007년 오비맥주의 점유율이 전년 40.3%를 딛고 상향 반등했다. 오비맥주에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시장점유율은 2010년 45.4%까지 꾸준히 상승했다.

경영권은 2009년 벨기에 국적의 AB인 베브로부터 KKR에게 넘어갔다. 주류업체에서 사모펀드로 넘어간 것이다. 처음엔 시장의 우려가 컸다. 하지만 KKR은 세계적인 사모펀드답게 놀라운 용병술을 보이며 경영능력을 강화했다. 경쟁 기업 계열사의 대표이던 장 사장을 영업총괄 부사장으로 스카우트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장 사장이 부사장 취임 이래 가장 먼저한 일은 속칭 ‘밀어내기’를 없앤 일이다. 당시 영업부서는 월별 실적을 올리기 위해 매월 말이면 맥주를 도매상에 떠넘겼다. 회사 실적상 매출은 증가되지만, 사실상 재고만 쌓이게 된다. 이렇게 쌓인 맥주는 적어도 한두달이 지나서야 소비자에게 전해졌다. 묵은 맥주는 맛이 없다. 가장 맛있는 맥주는 공장에서 갓 만들어진 제품이다. 맥주 맛은 신선도가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오비맥주가 소비자의 외면을 산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장 사장은 이런 관행을 깼다. 맥주 맛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재고를 줄여나갔다. 생산된 맥주가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시간을 1~2주로 줄였다. 맥주가 맛을 되찾으면 소비자도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도박과도 같은 베팅이었다. 처음 몇 달간 재고를 줄일수록 매출과 시장점유율이 줄었다. 영업을 키우라고 데려온 영업총괄 부사장이 오히려 매출을 줄이고 있었다. 하지만 장 사장은 믿음을 가졌다. 아이러니다. 장 사장은 이전까지 소주 업계에서만 일했다. 소주처럼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은 재고나 보관기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보관기간이 길어도 맛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 그가 맥주업계에 오자마자 신선도에 주목한 것이다.

다른 관계자들은 놓쳤던 부분이다. 오래된 전문가일수록 관성에 젖어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가 그러했다. 장 사장의 선택은 결국 본질로 돌아가 기초부터 다지는 일이었다.

처음 얼마간은 실적에 먹구름이 꼈다. 몇달 만에 점유율이 5% 하락했다. 이 전 사장이 4년에 걸쳐 어렵게 올린 점유율이 수개월 만에 날아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달라진 카스 맛에 주목하기까지는 채 반년이 걸리지 않았다. 시장점유율은 하반기들어 상승세로 전환해 2011년 가파르게 상승했다. 카스에 이어 전통의 오비맥주도 점유율을 올리는 데 한몫했다. 오비맥주는 2011년 3월 오비골든라거를 출시했다. 상면발효 맥주의 전통을 재해석한 제품이었다. 음주가 들은 깨끗한 맛만 추구하던 경향에서 벗어나 다양한 맥주 맛에 눈뜨고 있었다. 묵직한 맛이 다시 소비자에게 어필하며, 오비골든라거는 출시 422일 만에 2억 병 판매를 돌파했다.

오비맥주는 카스와 오비골든라거를 양날개 삼아 높이 날아올랐다. 2011년 10월 시장점유율 1위를 재탈환했다. 점유율 50.5%로 하이트의 49.5%보다 1%포인트 앞섰다. 정상을 내준 지 15년 만이었다. 업계에선 장사장의 영업 전략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장 사장은 2012년 6월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장 사장이 가진 저력은 현장을 중시하는 경영철학과 따뜻한 친화력에 있었다. 장 사장은 직접 발로 뛰며 전방위적인 관계를 구축해나갔다. 특히 장 사장이 심혈을 기울인건 도매점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일이다. 도매점은 맥주영업의 핵심이다. 오비맥주는 맥주 제조 면허는 있지만 판매 면허는 없다. 판매는 판매 면허를 가진 도매점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오비맥주로 이적한 뒤 첫 1년 동안 장 사장은 영업점을 뛰어다니며 직접 거래처를 챙겼다. 이때 자동차로 주파한 거리가 7만㎞가 넘는다. 비행기, KTX까지 합치면 20만㎞가 넘을 정도라고 장 사장은 자주 말한다. 자랑거리다. 영업 밑바닥부터 뼈가 굵었기 때문일까? 장 사장은 현장 경영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장 사장은 또 매월 장문의 감사 문자메시지를 작성해 1,400명이 넘는 거래처 사장들에게 보냈다. 형식적인 인사에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전화번호를 공개함으로써 거래처 사장들과의 거리를 한층 줄였다. 이 번호를 통해 거래처 사장들로부터 불만사항이나 건의사항을 직접 듣는다. 장 사장 본인에겐 귀찮고, 영업직원들도 긴장되는 일일 수 있지만 영업효과는 상당하다.

불필요한 영어 사용도 줄였다. 오비맥주 직원들은 영어 사용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20년 가까이 외국인이 운영하다 보니 영어단어가 일상용어처럼 쓰였다. 일례로 유흥업소를 BNO(Big Night Out)라는 약자로, 가정 소비자를 OTM(Off Trade Market)으로, 한국 식당을 KR(Korean Restaurant)로 불렀다. 병원 의사들처럼 굳이 어려운 전문용어를 썼다. 도매상들이 반가울 리 없다.

자연히 벽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병원이나 의학계에선 이 같은 벽을 은근히 환영할지 모르지만, 맥주를 파는 데는 장애물밖에 되지 않았다. 장 사장은 이 같은 풍토를 깼다. 일선에서 영어 사용을 금했다. 회식에서 직원들이 영어를 쓰면 벌주를 한 잔씩 주기도 했다. 영업사원을 뽑을 때는 아예 영어점수를 묻지 않았다. 소비자에게 직접 다가가기 위해 소위 ‘바닥 영업’도 강화했다. 당시 오비맥주는 1차 영업대상인 도매상만 챙기고 2차 거래처인 업소나 소매점은 소홀했다. 장 사장은 이 역시 뒤집었다. 영업사원이 직접 담당 지역의 밑바닥까지 샅샅이 훑게 했다. 본인 스스로도 강남역, 홍대 등과 같은 주요 상권을 직접 챙겼다.

영업 효율을 높이기 위해 회의도 대폭 줄였다. 장 사장은 전국 영업망 회의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논의할 일이 있으면 장사장이 직접 현장으로 찾아갔다. 지점장들이 현장을 누비도록 최대한 배려한 것이다. 내부적인 커뮤니케이션도 강화해 직원들의 기(氣) 살리기에 나섰다. 영업총괄 부사장 시절부터 직원들과 팀 단위로 회식을 가지며 애로사항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청해 듣고 있다. 참석자마다 돌아가며 건배 제의를 하고 이때마다 질문이나 건의사항을 말하도록 하고 있다. 초반에 긴장했던 직원들도 술잔이 돌수록 허심탄회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뀌어 간다고 한다. 이같은 회식자리는 장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은 뒤로도 이어지고 있다. 생산직 근로자와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공장직원 750명과 20~30명 소그룹 단위로 회식을 갖고 있다. 오비맥주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까지 생산직원들과 30여 차례 회식을 가졌고, 약 440건의 건의사항이 나왔다. 이 중 400건 가까이가 반영됐다. 청원공장 맥주 주입기 교체와 같은 공장운영과 직접적인 사안부터 청원지역 초등학교에 장학금을 지원하는 CSR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수렴되고 있다. “직원이 회사에 만족하고, 주인의식이 있어야 1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평소 장 사장의 생각이다.

한편 장 사장의 친화력은 협력사에게도 미치고 있다. 장 사장은 올 초부터 돼지고기와 과일을 싸들고 중소 납품협력업체를 찾아 다니고 있다. 이른바 ‘돼지 한 마리 바비큐 파티’다. 맥주 원재료와 병, 캔, 페트병 등을 납품하는 70여 개 협력사를 방문해 함께 먹고 마시고 소통하며 상생을 실천하고 있다. 협력사 반응이 좋다. 노사분규 중이던 한 협력업체는 장 사장이 방문하던 날 노조에서 스스로 대자보와 플래카드를 내리고 ‘휴전’을 선언했을 정도다.

올해 장 사장은 1위 수성을 위해 3각 편대를 내세우고 있다. 젊음의 대표맥주 ‘카스’와 전통의 ‘오비골든라거’ 외에도 ‘산토리더 프리미엄 몰츠’와 같은 프리미엄 맥주에 힘을 싣고 있다. 프리미엄 맥주는 시장 자체는 아직 크지 않지만 성장률은 폭발적이다. 산토리 더 프리미엄 몰츠의 경우 지난해 출고량이 15만4,000 상자(1상자당 10ℓ)로, 2011년 3만7,000 상자에 비해 314%나 신장했다.

장 사장은 수출에도 관심이 크다. 오비맥주는 지난해 주류업계에서 처음으로 1억 달러 수출을 달성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오비맥주는 지난해(2011년 7월~2012년 6월) 수출액이 1억660만 달러를 기록했다. 오비맥주는 전 세계 30개국에 40여 종의 맥주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몽골에선 카스가 수입 프리미엄 맥주 부문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 맥주의 격전지인 홍콩에서도 오비맥주의 ‘블루걸(Blue Girl)’이 점유율 22.4%로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다. 블루걸은 오비맥주가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수출하는 맥주다. 호주에선 지난해부터 오비골든라거 수출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경쟁은 이제부터다. 하이트는 절치부심 시장 탈환을 노리고 있다. 제3의 경쟁자도 등장한다. 지난해 주류제조 허가를 받은 롯데그룹이 이르면 내년부터 맥주시장에 진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주류는 2007년 완공목표로 충북 충주에 맥주 공장을 짓고 있다. 맥주 전쟁은 3파전으로 확대된다. 장 사장의 경영능력이 새로운 시장에서 어떤 결과를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장인수 사장은…
장인수 사장은 1955년 전남 순천에서 출생했다. 1973년 대경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76년 삼풍제지주식회사 경리부에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80년 진로에 입사, 놀라운 영업 성과를 보인 끝에 1999년 진로 서울권역 담당이사, 2003년 진로 서울권역 상무이사, 2007년 하이트주조·주정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010년 경쟁사인 오비맥주 영업총괄 부사장으로 스카우트된 뒤 2012년 6월 오비맥주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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