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술 ‘두꺼비 소주’의 신화에 빛나는 진로는 부도 난 이듬해인 1998년 10월 ‘참眞이슬露’를 새로 출시했다.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내놓은 신제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판매에 힘입어 진로의 소주 시장점유율은 부도 이전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이 제품은 출시 6개월 만에 1억 병 판매를 돌파한 것을 시작으로 11개월 만에 3억 병, 3년 11개월 만에 40억 병 판매를 돌파하는 등 국내 소주제품 사상 최단 기간 최다 판매 기록을 갈아치웠다.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며 오랜 세월 함께 해온 진로 소주에 대한 온 국민의 사랑이 부도도, 법정관리도 말릴 수 없을 만큼 깊었다고나 할까.
지난 1997년 부도, 2003년 법정관리 후 해체된 진로그룹이 10년 만에 갑작스레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장진호(61) 전 진로그룹 회장이 잇단 노출 행보를 보이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장 전 회장은 최근 진로그룹 전 재무 담당 임원이 자신의 4,000억 원대 은닉재산을 횡령했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는 김대중 정권에 600억 원을 뜯겼다고 토로했다. 장 전 회장은 왜 이 시점에 망한 진로를 다시 회자시키고 있는 걸까. 그 이유를 알려면 복잡다단한 진로의 흥망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효영 서울경제 생활산업부장 hylee@sed.co.kr
장전 회장의 잇단 노출 행보
장 전 회장은 진로의 화의(현 워크아웃)·법정관리 과정이 진행되던 2000년대 초 회사 정상화를 위해 전 진로그룹 재무담당 이사인 오 모 씨를 통해 차명으로 진로의 부실채권 4,000여 억 원어치를 몰래 매집했으나 오 씨가 이를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사기)가 있다며 최근 오 씨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장 전 회장은 고소장에서 “고려양주 주식을 담보로 조달한 자금 150억 원 등 총 897억 원을 동원해 진로 부실채권을 매집했다”며 “진로의 부실채권 5,800억 원어치를 액면가의 10~20%대 가격에 사들여 오 씨에게 맡겼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003년 장 전 회장이 검찰 수사로 구속되자 오 씨가 사들인 채권 5,800억 원어치 가운데 4,000억 원 가까운 채권을 빼돌렸다는 게 고소 취지다.
당시 자사 채권을 사들이면 안 된다는 것도 몰랐다는 장 전 회장은 진로 채권이 값싸게 돌아다니고 있어 이를 되사 들여 만든 자금으로 빚을 갚고 진로의 기업회생에 사용하려 했다는 주장이다. 화의 중이던 진로 부실채권을 사 모아 최대 채권자가 되고 법정 관리 후 이를 출자전환 형식으로 주식으로 바꿔 경영권을 ‘재탈환’하려는 시나리오였던 것. 그는 “채권 매입 가격의 보안 유지 문제 등으로 당시 그룹 재무담당 임원 오 씨가 채권 매입 실무를 전담했는데 부실 채권을 사들인 목적과 달리 회사의 구조조정에 쓰지 않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부실채권 매입을 담당한 구조조정전문회사도 오 씨가 추천했으며 채권 매집 과정에서 이들과 접촉한 것도 오 씨인 만큼 그를 고소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중국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장 전 회장은 이번 수사를 위해 조만간 귀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는 “검찰에서 직접 진술이 필요하다면 한국에 갈 수도 있다”며 “한국에서 활동할 여건이 만들어지면 귀국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 하면 장 전 회장은 최근 한 시사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기 전인 80년대부터 10여 년간 정치자금을 대 왔으나 결국 김대중 정권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됐다”는 내용을 폭로했다. 장 전 회장은 “나는 DJ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가장 큰 정치 보복을 당한 피해자다. 그 연장선상에서 노무현 정권은 2003년 기업정상화를 목전에 둔 진로를 강제로 법정관리시켰고 이중 삼중으로 세금을 물리는 등 내가 사회생활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고 임춘원 의원을 통해 1982년부터 1992년까지 10여 년간 주식과 정치자금 500억~600억 원을 DJ에게 줬다”는 것.
장 전 회장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법정에서 밝혀질 것이고, 역사가 판단해줄 것이지만 그가 20~30년 전 일까지 끌어내며 언론에 자꾸 노출되는 데에는 숨겨진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캄보디아에서 추방당하고 중국에서 지내고 있는 장 전 회장이 중국 비자 만료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아 벼랑 끝에 몰리게 되자 최후의 승부수를 띄웠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난 10여 년간 수차례 특별사면 대상에 오르내렸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장 전 회장이 정권이 바뀐 틈을 타 믿던 부하에게 배신당하고 전 정권에게도 ‘팽’ 당한 희생양 이미지를 만들어 국내에 들어올 구실을 만드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피고소인 오 모 씨 “어이 없다”
장 전 회장에 고소당한 전 임원 오 모 씨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오 씨는 “2003년 7월 해고당한 내가 횡령을 했다는 게 도대체 말이 안된다”며 “장 전회장이 구속된 2003년 9월 이후 부실채권을 임의 처분했다는 장 전 회장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오씨는 “진로가 사들인 부실채권을 임의처분했다는 장 전 회장의 주장은 허위”라며 “객관적 근거가 없음에도 고소를 한 것은 무고죄에 해당하므로 지난 4월 10일 장 전 회장을 고소했다”고 말해 옛 사주와 전 임원이 맞고소전에 돌입했다.
오 씨는 “당시 진로 부실채권 매입에 관여했지만 모두 그룹차원에서 정당한 결재를 받고 이뤄진 일”이라며 “나는 담당 임원으로 결재했을 뿐이고 부사장, 사장 등 층층시하 임원이 얼마나 많았는데 실무자인 나를 고소한 건 한마디로 어이 없다”고 강조했다.
오씨는 “부실채권 매입 업무는 회사 차원에서 결재를 받아 진행한 것이고 진로의 채권 처분은 법정관리 상태에서 법원의 허가 아래 진행된 것”이라며 “부도 날 당시 진로의 총 자산이 2조 원 남짓인데 4,000억 원을 빼돌렸다면 법원이 가만 있었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돈을 빼돌렸는지는 내 계좌만 추적해 보면 금방 밝혀질 사실인데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내가 그 돈 빼돌렸으면 지금 해외 가서 편안하게 살지 왜 여기 있겠냐”고도 했다. 그는 진로 부도와 관련된 많은 증빙 자료를 갖고 있다며 법정에서 다 밝히겠다고 말했다.
진로 부도의 근본 원인은 장 전 회장의 무능 경영
‘두꺼비 소주’의 신화를 쓴 진로는 80년 역사의 전통 민족 기업이다. 창업주 장학엽 씨가 1924년 평안도 용강군에서 설립한 진로의 전신 진천양조상회는 평안도 지방에서 복을 상징하는 영특한 동물로 여기는 원숭이를 심벌로 삼았다. 창업주는 1950년 한국전쟁이 나자 월남해 1954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서광주조를 차렸다. 이때 심벌이 원숭이에서 두꺼비로 바뀌었다. 진로라는 상호는 1975년 탄생했다.
50년대까지만 해도 소주 업계는 전남 목포에 기반을 둔 삼학소주가 65%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다 1965년 진로가 생산 방식을 증류식에서 희석식으로 전환하면서부터 전세가 뒤집히기 시작해 70년 12월 진로는 소주 시장 1위에 등극했다.
진로는 창업주가 사망하기 전인 1984년 경영권 분쟁이 불거지면서 잠시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1982년 진로에 입사해 있던 창업주의 차남 장진호 전 회장이 사촌형, 이복형과 분쟁 끝에 진로그룹 경영권을 확보하고 1988년 진로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소주 한우물만 파던 진로그룹은 장 전 회장 취임 후 ‘기업은 성장과 발전을 하지 않으면 소멸될 뿐’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탈주류’를 선언하고 여러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M&A와 사업 다각화를 통해 진로종합식품, 진로쿠어스맥주, 고려양주, 진로지리산샘물 등 식음료·주류는 물론 도소매 유통업인 진로종합유통, 청주진로백화점, 진로건설, 우신공영, 운송업인 남부터미널, 남부화물터미널, 금융업인 우신상호신용금고, 우신투자자문 등 계열사를 늘려나갔다. 장 전 회장 취임 당시 9개였던 계열사는 1997년 24개로 늘어나면서 1990년대 진로그룹은 한때 연 매출 1조6,000억 원 규모로 재계 순위 30위권에 진입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무리한 사세 확장에 따른 유동성 위기를 비켜가지 못했다. 사업다각화 과정에서 진로가 계열사들에게 출자금, 대여금 등으로 엄청난 자금을 지원하다 보니 자금 사정이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1997년 4월 조흥은행 서초동지점에 돌아온 어음 213억 원과 상업은행 서초동지점에 지급 제시된 당좌수표 83억원을 결제하지 못해 진로는 창업 73년 만에 최종 부도처리됐다. 70년 전통의 기업이 부도가 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장 전 회장의 경영 능력 부재가 꼽힌다. IMF 외환위기 이전 대부분의 기업들이 마찬가지지만 재무구조가 투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과도한 차입으로 방만하게 사업볼륨만 키우던 와중에 외환위기가 찾아왔으니 경영상 심각한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전 진로그룹의 한 임원은 “대부분의 의사결정이 회장 독단으로 이뤄졌으며 대부분의 임원이나 참모진들은 전혀 견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회고한다.
그렇게 1997년 진로는 부도가 났지만 장 전 회장은 그해 9월 자산 매각, 부실 계열사 정리 등의 구조조정 계획안과 함께 법원에 화의를 신청하면서 경영 정상화에 박차를 가했다. 화의를 승인 받은 98년 10월 내놓은 ‘참眞이슬露’의 폭발적인 판매 덕분에 진로는 화의 인가 당시 추정한 영업이익을 초과 달성할 정도로 경영실적이 개선됐다.
그러나 회생의 길에 접어드는가 싶던 진로가 다시 자금 위기에 봉착한 것은 2003년. 화의 개시 후 5년 이후부터 이자와 원금을 동시 상환해야 하는 화의 조건이 적용되자 곧바로 자금능력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장 전 회장은 외자 유치를 하겠다며 채권단에 원금 상환을 6개월 연장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결국 2003년 3월 진로가 원금을 갚을 수 없다며 채무불이행을 선언하자 채권단을 이끌던 골드만삭스는 불과 나흘 만에 법원에 법정관리 개시 신청을 내는 속전속결에 나서 진로는 2003년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 와중에 장 전 회장은 사기, 횡령 등의 혐의로 그해 9월 구속 기소됐다. 1994~1997년 자본이 완전 잠식된 진로건설 등 4개 계열사에 이사회 승인 없이 6,300억 원을 부당 지원하고 분식회계를 통해 금융기관에서 5,500억 원을 사기대출 받았으며 진로 회삿돈 60억 원을 경영권 분쟁해결을 위한 합의금 등으로 횡령한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한 기업 M&A 전문가는 “진로그룹은 계열사 임원 상당수가 친구나 지인들로 채워져 위기 대처 능력이 없었던 데다 경영은 로비에 거의 의존했으니 IMF외환위기라는 외부 위기에 못견디고 한방에 날아간 것”이라며 “진로는 아무리 잘나가는 기업도 그런 식으로 경영하면 망한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지적한다.
진로가 골드만삭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진로그룹 완전해체의 근본적인 원인은 오너의 경영능력 부재이지만 진로 해체의 발단이자 결정적인 방아쇠가 된 건 이론의 여지 없이 골드만삭스였다. 2001~2003년 진로의 국제변호사로 활동한 피터 고(고형식) 변호사도 당시 진로가 골드만삭스를 너무 믿은 것이 화근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진로의 운명을 뒤바꾼 ‘잘못 끼워진 첫 단추’가 된 골드만삭스와 진로의 ‘악연’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을까.
시간은 진로가 부도 난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 전 회장은 진로 회생을 위한 외자 유치 자문 및 구조조정 컨설팅을 구하기 위해 골드만삭스를 찾게 됐다. 일설에는 골드만삭스 측이 먼저 자문을 해주겠다며 접근했다는 얘기도 있다. 아무튼 벼랑 끝 위기에 몰린 진로로서는 해외 유수의 투자회사인 골드만삭스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영업 재무상황 등 핵심기밀 정보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그 해 11월 구조조정 컨설팅 계약을 맺었다. 대신 “어떤 목적으로건 진로의 동의 없이 비밀 정보를 다른 목적에 공개하지도 이용하지도 않는다”는 비밀유지 조항도 계약에 넣었다.
진로의 자산, 재정상태, 현금 흐름 등 내부 미공개 정보를 접한 골드만삭스는 딴 마음을 품게 된다. 국내 소주 시장에서 진로가 갖고 있는 브랜드 가치, 소비자들의 절대적인 충성도, 그에 따른 안정적인 현금 흐름 등을 통해 진로가 채무 변제 능력이 충분한 우량 회사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진로의 화의가 승인된 1998년 3월, 그러니까 진로와 컨설팅 자문계약을 맺은 지 3개월 만에 골드만삭스는 자산관리공사(당시 성업공사)와 국내 금융기관 채권자들로부터 진로 채권을 매집하기 시작했다. 진로 채권은 ‘부실’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던 탓에 주로 액면가의 10~20% 수준에서 매입이 가능했다. 2000년까지 골드만삭스가 매집한 것으로 추산되는 진로 채권은 3,500억?4,000억 원(실제로는 1조5000억여 원어치)으로 추산된다.
진로 채권을 충분히 매집한 골드만삭스는 진로 자산매각을 막아 자산을 묶어두는가 하면 진로재팬 상표권도 압류하는 등 진로 측의 경영정상화 시도를 사사건건 방해하기 시작했다. 채권과 자산확보가 끝나자 골드만삭스는 2003년 4월 진로에 대한 법정관리를 전격 신청했다. 구조조정을 돕기로 했던 기업 컨설팅 조력자가 한순간에 기업 사냥꾼으로 안면을 바꾼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진로 임직원들은 2003년 6월 “골드만삭스가 내부정보를 이용해 진로의 국내외 채권을 헐값에 사들였으며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며 “이는 명백한 비밀유지협약 위반”이라고 판단하고 골드만삭스를 업무상 배임과 사기 혐의로 고발했다.
이에 대해 골드만삭스 측은 “컨설팅 부서와 채권투자 부서가 분리돼 있고 서로 정보 교환도 차단돼 있기 때문에 자문업무를 통해 취득한 정보를 채권인수 부서에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한 시스템”이라며 “비밀정보를 이용해 투자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법원은 골드만삭스의 손을 들어줬다. 골드만삭스가 실제로 진로에 경영자문을 해주거나 그 대가로 진로가 자문료를 지급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 기각 사유였다. 진로는 또 골드만삭스가 진로의 외자 유치를 방해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이 건 역시 골드만삭스가 승소했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진로는 2001년부터 일본 소주사업 및 생수사업을 매각하기 위해 일부 투자자들과 협상을 해왔으며 2003년 5월 파산신고 직전 협상이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고 한다. 골드만삭스가 채무불이행 선언 나흘 만에 그렇게 빨리 법정관리 신청을 하지 않았다면 계열사 매각 대금과 ‘참眞이슬露’ 판매호조에 따른 유동성 확보로 화의 조건을 이행하고 경영권을 되찾아 올 가능성도 없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진로가 골드만삭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완전해체까지 가진 않았을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치면 장 전 회장은 지금도 억울해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노릇이다.
더욱이 골드만삭스를 필두로 한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진로의 매각 과정에서도 가격을 부풀린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진로 매각 주간사는 메릴린치가 선정됐고 진로의 정리 채권 1조8,986억 원 가운데 70% 이상을 도이치방크, JP모건 등 외국계 금융기관이 차지하다 보니 진로 매각을 앞두고 영국의 유력 금융 전문지까지 나서 기업 가치를 50% 이상 높게 평가하는 등 ‘그들만의 잔치’에 혈안이 돼 있었던 것. 이 과정에서 당초 1조8,000억 원대(삼정회계법인)로 평가 받았던 진로의 가치는 3조 원까지 치솟았다. 진로 인수전에는 40여 개 국내외 금융자본과 기업들이 달려들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으며 결국 하이트맥주가 예상가보다 1조 원이나 높은 3조4,288억 원을 써내면서 진로를 품에 안았다.
진로의 주채권자인 골드만삭스는 회사를 정상화하기보다 매각을 통한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진로를 법정관리로 몰아갔다는 안팎의 비난에 시달렸지만 결국 진로 매각으로 대박을 터뜨렸음은 물론이다. 진로 채권 투자 원금의 5배가량, 약 1조 원대가 넘는 막대한 수익을 거뒀을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한국 소주의 자존심인 진로는 때마침 IMF외환위기 이후 한국 시장을 마음껏 주무르던 외국투자회사들의 배만 불렸다는 비난과 함께 국부유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금융에 이어 산업까지 넘보는 외국계 포식자들에게 한국 서민들의 위안거리인 소주마저 넘길 경우 산업 주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정서적 애국심까지 발동시켰기 때문이다.
진로 사태는 80년 장수 기업이 경영자의 잘못된 경영 판단으로 인해 한순간에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지, 또 국부가 얼마나 손쉽게 유출될 수 있는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한국 경제계는 비싼 수업료를 내고 선진 투기자본의 ‘활약’을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언제, 어느 업종이건 외국자본에 당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은 셈이다.
장 전 회장 부도 후 어디서 뭐했나
진로의 법정관리 직후 장 전 회장은 사기,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5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2004년 10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아 1년여의 수감생활에서 풀려났다.
그로부터 4개월 뒤인 2005년 2월 장 전 회장은 가족들과 함께 한국을 떠나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장 전 회장은 이미 2002년 ‘찬삼락(Chan Samrach)’이라는 캄보디아 현지 이름을 취득한 것으로 언론 보도에 나와 있다. 진로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캄보디아행을 계획했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장 전 회장이 캄보디아행을 결정한 것은 훈센 총리의 장녀 훈마나와의 관계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훈마나는 캄보디아에서 정치권, 언론까지 장악하고 있어 장 전 회장이 훈마나와 모종의 거래관계를 맺은 것으로 추정됐다.
훈마나의 비호 아래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에서 자신의 이중국적명인 찬삼락 소유로 돼 있는 ‘ABA은행’을 운영했다. 현지에서 이 은행은 1996년 진로그룹에 의해 설립된 ‘진로은행’으로 통했지만 진로가 법정관리에 들어갈 때 채권단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장 전 회장이 캄보디아에서 운영한 사업은 은행 뿐만이 아니다. 부동산개발, 스몰카지노, 유흥주점까지 다양한 사업을 실제로 운영했거나 사업 구상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도 떠날 수밖에 없었다. 2008년 ABA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제3국 매각을 추진해 탈세 등으로 캄보디아 관리들에게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 베이징에 체류하고 있는 장 전 회장은 이곳에서도 게임 업체 등 다양한 사업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한국에서도 측근들을 통해 법인을 운영하면서 차명 재산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져 무능한 경영으로 진로그룹을 공중분해시킨 장본인이 해외에서 도피생활을 하면서도 호의호식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한국을 떠난 이후 10여 년 동안 ‘화려한 도망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곱지 않은 시선을 받던 장 전 회장은 이번 소송을 계기로 한국에 돌아올 수 있을까. 장 회장이 고소한 오 모 씨는 “진로는 공적자금 한 푼 안 들어가고 회생할 수 있을 만큼 탄탄한 기업이었다. 그 좋은 회사를 한방에 말아먹고 무슨 할 말이 있는지…”라며 장 전 회장을 비난했다. 이들의 법정 공방을 통해 장 전 회장의 비자금이 드러날지, 석연찮은 진로의 부도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지, 새롭게 밝혀질 내용에 따라 또 한번 장 전 회장의 드라마틱한 인생행로가 바뀔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