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191번지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이도’. 이도에서 만나는 그릇 작품들에는 꾸밈이 없다. 보고 있노라면 조선시대 아낙네가 떠오른다. 수수하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뻗은 선, 구불구불하면서도 날렵하게 빠진 곡선이 유려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포춘코리아가 ‘그릇 만드는 여자’, 이도의 대표이사 이윤신을 만났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사진 윤관식 기자 newface1003@naver.com
4월 15일. 이도 건물 지하 1층 이도카페에서 이윤신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요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작품활동을 하면서 1990년 처음 문을 연 이도 갤러리 운영과 지난해 1월 맡게 된 원신월드 대표이사 활동까지 떠맡고 있다. 4월 10일부터 30일까지 ‘살롱 드 이윤신(Salon de Yi Yoon Shin)’이란 전시회도 열고 있다. 올해 창립 23주년을 맞는 이도의 리뉴얼 오픈 기념 행사다. 유명 일간지에 글도 기고 중이다. 예정 중인 에세이집 발간은 너무나 바쁜 일상 때문에 잠시 출간을 미룬 상태다.
이 대표는 말한다. “솔직히 힘듭니다. 너무 바빠요. 그래도 즐겁게 일하려고 합니다. 모두 다 긍정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죠. 특히나 이도는 제 선택이었기 때문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없더라도 유지될 수 있도록 지금은 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갤러리와는 달리, 이도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지하 2층부터 지상 3층까지 전체 5개 층이다. 각각의 층은 나름의 쓰임을 가지고 있다. 고급 아카데미가 있는 지하 2층에는 직접 ‘흙’과 ‘불’을 접하며 도자예술을 경험해 볼 수 있는 물레반이 자리잡고 있다. 지하 1층에는 실생활에서 사용 가능한 그릇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중급 아카데미와 이도 카페가 있다. ‘이도 카페’는 일반 카페와는 구별되는 곳이다. 일반 카페에선 음료가 주가 되지만 이도 카페에서는 그릇이 중심이 된다. 예술가이자 경영자인 이 대표의 감각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 대표는 말한다. “카페라는 것도 결국은 커피잔이든 찻잔이든 그릇이 필요한 곳이잖아요?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이도 카페가 탄생한 계기가 됐습니다. 내용물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그릇, 그런 그릇이 있는 곳이 이도 카페입니다. 제 그릇들은 비어 있을 때보다 음식물이 담겨 있을 때가 더 아름답거든요. 직영점으로 몇 개를 더 오픈할 생각입니다.”
1층은 이윤신을 비롯한 국내 유명 도예가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도예숍이다. 다른 수공예 작가들의 공예품도 함께 판다. 도예숍이라고는 하나 갤러리에 더 가깝다. 그릇의 분위기에 따라 공간을 나누어 스토리가 있다. 전문 갤러리인 5층은 형식과 장르가 좀 더 폭넓다는 점에서 1층과 구별된다. 2층은 이도를 ‘복합문화공간’이라 명명할 수 있는 핵심 공간이다. 아카데미란 이름은 지하 1, 2층과 같지만 여기선 오감을 활용한 입체적인 수업이 이뤄진다. 문화예술분야의 전문가들이 다양한 커리큘럼을 가지고 이도 아카데미만의 독창적인 강좌를 운영한다. 음식을 직접 만들어 그릇과 조화를 꾀하기도 하고, 푸드스타일링과 테이블세팅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특정 문화사조에 대한 강의를 듣고 당대의 음악과 미술을 경험하며, 그러한 것들이 도자 예술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실물을 통해 확인하기도 한다.
이 대표는 말한다. “저는 이도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거든요. 단편적 지식 전달이나 단순 체험활동이 아닌 총체적인 경험을 제공합니다. 입체적인 공간이죠.”
최근에는 도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많이 늘었다. 여염집에도 보통 거실이나 찬장 한구석에 전시를 위한 도자 한두 점은 있다. 근사한 호리병이 아닌 오붓한 그릇을 올리는 게 요즘 트렌드다. 이런 문화에도 피상적인 ‘예술’의 의미와 일상적인 ‘도구’의 의미를 그릇이라는 조형물 안에 적절하게 조화시킨 이 대표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스스로를 그릇 예술인 1세대라 부른다. 이윤신 대표는 말한다. “고려시대 청자, 조선시대 백자 등도 당대에는 일상 용기였습니다. 청자는 매병 형태가 많은데 이는 거의가 다 술병이었죠. 크리스티나 소더비에서 수만 달러에 거래되는 달항아리도 당시엔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곡식 저장용기였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작품’이라고 하면 굉장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건 편견입니다. 일상에서의 조형미가 백 년, 이 백년, 수백 년이 흘러 예술품이 된 거죠. 그 과정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가 저나 예술인이 짊어져야 할 숙제고요.”
이 대표는 그릇의 실용성을 제일 강조한다. 그릇은 결국 어떤 음식을 담기 위한 도구일 뿐, 그것이 예술 작품으로 평가 받는 건 먼 미래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릇의 도구적 의미를 버리고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작품’만을 만드는 도예가들, 그래야만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모던한 ‘예술인’이라고 생각하는 도예가들이 상당수인 지금, 이 대표의 작품관은 너무나 소탈해 오히려 돋보일 정도다. 이 대표는 말한다. “저는 작품을 구상하기 전에 ‘무엇을 담는 그릇을 만들까’ 하는 생각부터 먼저 합니다. 작품을 볼 때도 ‘무엇을 담으면 예쁠까’를 우선 고민하죠. 그래서 제 그릇엔 넘치는 게 없습니다. 평범하죠. 그릇이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면 못쓰거든요.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음식이고, 그릇은 음식을 돋보이게만 하면 족합니다. 그래서 제 그릇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보통의 아름다움’을 목표로 합니다.”
이 대표의 그릇은 평범하지만 인기가 많다. 이도 본점 외에 신세계 백화점 네 곳에서도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젊은층에게 인기가 많아 혼수용품이나 기념일 선물로도 많이 나간다. ‘이도’ 복합문화공간은 생소할 수 있지만 ‘이윤신의 그릇’, ‘이윤신의 도자’는 브랜드 파워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 대표는 말한다. “대중에게 인기가 많다는 건 좋은 일이죠. 제가 아무리 좋은 걸 만들어도 알아주는 대중이 없다면 서운한 일이잖아요? 제 그릇을 사용하시는 분들이 ‘쓰기 편한 그릇, 오래 써도 싫증 안 나는 그릇’으로 평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대표가 작품생활을 한 지는 이미 20년이 훌쩍 넘었다. 사업가 집안에서 자라났지만 이 대표는 엉뚱하게도 도예가로 먼저 이름을 날렸다. 도예가가 된 계기를 묻는 인터뷰 초반 질문에 너무 식상한 질문이라며 대답을 회피한 이 대표가 헤어질 무렵 말했다. “어릴 때부터 그냥 미술을 좋아하고 만드는 걸 좋아했습니다. 아마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흙을 만져본 순간 ‘이거다’ 싶었죠. 작품 인생 시작부터 ‘그릇을 위해 살리라’ 하고 결심했습니다.”
이윤신 대표 약력
1958 서울 출생
1981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공예과) 졸업
1983 홍익대학교 대학원(산업디자인 전공) 졸업
1986 일본 교토 시립예술대학 대학원(도예) 졸업
1987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원
1988 중앙대학교 미술대학 강사
1994 경기대학교 미술대학 강사
1997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대학원 강사
1990 (주)이윤신의 이도 대표이사
1997 (주)원신상사 대표이사 사장 역임
2005 (주)원신월드 임원 역임
2012 1월 (주) 원신월드 W-MALL 대표이사 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