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에 기생하는 생명체, 즉 중기생체(重寄生體, hyperparasite)는 생각보다 매우 흔하다. 게다가 이런 중기생체들조차 또 다른 기생체에 감염될 수 있다. 2차, 3차, 4차 등 중복 감염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일부기는 해도 몇몇 연구를 통해 이처럼 복잡하고, 끝없는 중복기생 관계가 밝혀져 있다. 일례로 작년 11월 네덜란드 바게니겐대학 에릭 포엘만 박사팀은 양배추 잎을 먹고 사는 배추흰나비 애벌레의 몸속에 자신의 알을 낳는 말벌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는 곧 양배추의 영양분과 에너지가 애벌레를 거쳐 말벌 유충에게 전달됨을 의미한다.
이보다 더 다층적인 중기생 관계에 대한 논문도 있다. 미국 밴더빌트대학의 미생물학자 세스 보덴스타인 박사팀이 어린 새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5중 기생 관계를 연구한 것.
먼저 금파리(blowfly) 유충이 어린 새의 몸 아래에 들러붙어 흡혈을 하며 기생한다. 이후 유충이 새로부터 떨어져 나오면 앞서 언급한 중기생 말벌의 숙주가 된다. 이렇게 금파리 애벌레의 몸속에서 태어난 말벌은 생식기관의 변형을 일으키는 ‘볼바키아(Wolbachia)’라는 기생 박테리아에 감염되는데 볼바키아는 다시 ‘박테리오파지’라는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는 구조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기생관계는 어디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학자들은 단일 기생유전자인 전이인자가 기생관계의 최밑단에 위치할 것으로 추정한다. 전이인자는 바이러스에 기생하는 중기생 바이러스에 들어있는데 중기생 바이러스는 아메바를 감염시키고, 아메바는 다시 사람을 감염시키는 구조를 갖는다. 보덴스타인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현재로선 기생관계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생명체를 찾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제야 거대 식물군 혹은 동물군 내에서 어떻게 유기체들이 얽혀있는지를 알아보기 시작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