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투자전문가의 인생 이야기

파생상품 시장의 승부사 성필규 PK투자자문 회장이 책을 냈다. ‘돈을 이기는 법’이라는 자극적인 제목과 달리 ‘인생을 이기는 법’에 대한 개인적인 성찰을 담고 있다. 종잣돈으로 시작해 1만 배에 이르는 수익을 거둔 성공담, 세 번의 실패. 그리고 이어지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차병선 기자 acha@hk.co.kr
사진 윤관식 기자 newface1003@naver.com


투자자라면 2008년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장이 폭락하고 시가총액이 반토막 났다. 그러나 폭풍우가 몰아치는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하늘 높이 날아 오른다. ‘알바트로스’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성필규 PK투자자문 회장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한 번 날개짓으로 수천 ㎞를 날아간다는 알바트로스처럼 성 회장은 금융위기 당시 수십 배 수익을 올리며 시장에 그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성 회장이 주식시장에 첫 발을 내디딘 건 1993년, 그의 나이 22세 때였다. 대학 시절 우연히 ‘투자론’ 강의를 듣고 투자에 뛰어들었다. 여름 내내 아르바이트로 번 돈 150만 원을 올인했다. 우량주인 삼성전자에 넣고 느긋하게 기다렸다. 1년 반이 지나자 반토막이 났다. 그래도 시장이 만만해 보였다. 보유한 기간 동안 주가곡선이 오르내리는 걸 보면서 나름 원칙을 깨달았다. 평균 주가보다 빠지면 사고, 오르면 판다는 단순한 원칙을 따르면 될 것 같았다.

다시 신문 배달과 과외 아르바이트로 300만 원을 모았다. 이번에는 제대로 투자법을 공부했다. 존 템플턴, 벤자민 그레이엄, 워런 버핏, 피터 린치, 조지 소로스, 피터 번스타인, 앙드레 코스톨라니 같은 주식 대가들이 남긴 회고록과 전기를 모조리 독파하고 기술적 분석, 기업가치 분석, 경기 흐름과 변동 등에 대한 책을 읽으며 철저하게 이론 무장을 마쳤다. 분할매수, 분할매도, 손절매 등 정석 투자를 통해 300%에 가까운 수익률을 올렸다. 그 후 신촌 증권객장에서 ‘젊은 고수’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IMF를 맞으며 된서리를 맞았다. 1억 원까지 찍었던 투자금액이 2,000만 원으로 떨어졌다. 화들짝 놀라 매도를 했다. 성 회장은 회고한다. “바닥에서 투매를 한 거였어요. 월가에는 이런 격언이 있죠. ‘황소도 돈을 벌고 곰도 돈을 벌지만 겁먹은 노루는 목숨을 잃는다.’ 제가 다름 아닌 노루였죠.”

속이 새까맣게 탔다. ‘원금만 회복하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회계사 자격증을 따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패배를 복기하고 기회를 엿봤다. ‘5일선’과 ‘손절선’을 원칙으로 험한 하락장에서도 수익을 올렸다. 그 후 불씨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1998년 5월에 시장에 돌아와 1999년 1월 9,000만 원까지 자산을 불렸다. 원금을 회복했다. 손을 털 때였다. 하지만 고민스러웠다. 가슴속 불씨는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꺼버리기엔 아쉬웠다. 이때 운명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한 투자자가 ‘젊은 고수’에게 3 억 원을 맡겨왔다. 타는 불에 휘발유를 붓는 꼴이었다. 누군들 거절할 수 있었을까.

그는 주식 강사로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따금 인터넷 주식 게시판에 올리던 투자 분석이 인기를 끌며 필명을 날렸다. 케이블TV에 초청돼 주식강좌를 열기도 했다. 월 회비 50만 원이 넘는 고가 강의도 조기 마감될 정도였다. 그가 찍어준 종목은 높은 수익률로 화답했다. 높은 투자성과와 강사라는 자신감이 ‘투자 고수’라는 타이틀로까지 이어졌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신감이 올랐다. 자신감에 허점이 드러난 걸까. 시장이 그 틈을 찌르고 들어왔다.

어느 날 ‘초고수’라는 사람을 소개 받았다. 그는 “돈을 벌어 고아원을 짓고 사회사업을 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선한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성 회장은 그가 우러러 보였다. 수익률에 빠져 있는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얼마 뒤 초고수가 특정 회사 종목을 추천해주었다. 선한 눈을 믿고 들어갔다. 그러나 작전세력이었다. 한순간에 주가가 빠지며 성 회장은 자산을 모두 날렸다. 그는 “한 방을 찾지 말라고 강의하던 제가 한 방을 노리다 쓰러졌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주식 고수, 인기 강사라는 자신감이 맥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강사비를 모아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다시 한번 난관을 만났다. 이번엔 간접적으로 작전세력에 연루됐다. 성 회장은 한 코스닥 회사 대표로부터 30억 원을 넘겨받아 회사 주가를 관리해주고 있었다. 성 회장 자신이 가진 돈도 투자했다. 하지만 사기꾼이 회사를 인수해 자금을 빼가고 보유주식을 사채업자에게 넘겼다. 사채업자가 주식을 하한가에 투매하며 결국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성 회장은 주식시장에 신물이 났다. 몇 몇 작전세력 때문에 흔들리는 시장에 회의를 갖게 됐다. 대신 파생상품으로 눈길을 돌렸다. 실력 하나로 부딪칠 수 있는 시장이라고 판단했다. 단시일에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도 끌렸다.

오랜 지인 K씨가 15억 원을 맡겼다. 그는 성 회장이 두 차례 파산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성 회장을 믿고 있었다. 성 회장은 수익률로 보답했다. 매주 1,000만~2,000만 원 수익을 냈다. 26주 연속 수익이란 기록까지 쌓았다. “거래에서 손실을 보는 분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시장이 너무 쉽게 보였거든요.” 성 회장은 이런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 자신감 때문에 엄청난 후폭풍을 맞았다.

당시 성 회장은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50주 연속 수익을 약속했다. 그만큼 자신이 넘쳤다. 그러나 불과 5일도 되지 않아 사고가 터졌다. 첫 손실은 크지 않았다. 이때 손절했다면 일상적인 규모의 손실이었다. 하지만 연속수익 기록을 깨지 않으려 손절을 미루던 중 대형사고가 터졌다. 중국에서 금리 인상을 발표하자, 손실금액이 눈 깜짝 할 사이에 수억 원대로 커졌다. 장 마감 30분 전, 넋을 잃고 손절 버튼을 눌렀다. 손실금액은 12억8,000만 원. 단 하루 동안 잃은 돈이었다. 세 번째 파산이었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야 했다. 할 수 있는 일은 투자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난 실패를 복기해보았다. 원인은 ‘감정’에 있었다. 욕심, 두려움, 긴장…. 중요한 순간에 감정이 앞섰다. 다시 비슷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감정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결론은 하나. 미리 프로그래밍 해둔 알고리즘에 따라 컴퓨터가 사고 파는 시스템 트레이딩으로 가는 것이었다. 감정이 없는 투자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2004년 성 회장은 K씨, 프로그래밍 전문가 등과 함께 세타파워를 설립했다.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을 종합해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 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벌었다 잃기를 반복하며 시스템을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2006년 가을부터 상승세가 시작돼 2007년 여름엔 부채를 모두 갚았다. 2008년 7월까지 수익률은 600%에 이르렀다. 곧 큰 승부가 시작될 것이란 직감이 들어 모든 자금을 옵션에 넣었다. 그리고 두 달 뒤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했다.

시장은 공포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투매가 투매를 불렀다. 10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다는 선물 하한가가 수차례 출몰했다. 성 회장의 시스템은 최고 수익과 최고 손실을 번갈아 가며 찍고 있었다. 성 회장은 자금을 거두지 않고 과감하게 베팅을 지속했다. 그리고 직감이 적중했다. 2008년 10월. 종합주가지수가 1,100포인트에서 920포인트 사이에서 출렁댔다. 선물지수도 고저점의 진폭이 17%에 이를 정도였다. 옵션 시장은 폭발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마치 4년 전 12억 원을 잃었을 때와 비슷했다. 하지만 이번엔 돈을 따는 쪽이었다. 수익률은 20배가 넘었다. 당시 거둔 수익이 지난 몇 달간 벌어들인 수익보다 더 컸을 정도였다. 샴페인을 터뜨리며 파티를 벌여야 할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날, 그에게 찾아온 건 외로움이었다.

지치고 피곤했다. 목표를 이루고 나니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는 세고 체중은 늘고 목과 허리에는 극심한 통증이 떠나지 않았다. 성공에 뒤따르는 그림자였다. 시장에선 성공했지만 삶에서도 성공하고 있는지 자신이 서지 않았다. 마흔 언저리의 성 회장은 삶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과연 행복할까?’ 성 회장은 답한다.

“성공도 분명 행복감을 주는 하나의 요소였어요. 거래 자체를 즐기기도 했고요. 하지만 가정과 일상에선 낙제였어요. 삶을 재조정해야 해야 했습니다. 영혼이 없는 승부사로 남고 싶지 않았죠.”

성 회장은 일상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아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운동도 시작했다. 패션에도 관심을 가졌다. 카나리아를 키우는 취미도 붙였다. 성 회장의 사무실에는 지금도 수십 마리의 카나리아가 자라고 있다. 거래는 계속했다. 일은 여전히 재미가 있었다. 단 자산은 이전보다 좀 더 보수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자산의 20%가 깨지면 미련 없이 투자를 접기로 다짐했다. 세 번 파산을 경험한 만큼 마지노선을 분명히 정했다.

2009년부터는 중국 시장에 진출하고, 국내에 투자자문사 ‘PK투자자문’을 설립했다. 음지의 승부사가 양지로 나왔다. 사회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 싶었다.

최근에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책 ‘돈을 이기는 법’을 썼다. 화끈한 제목과 달리 돈을 이기는 법에 대한 각론은 펼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인생을 이기는 법에 대한 그의 고민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서점에 깔려 있는 투자비법서보다 더 마음에 와 닿는다. 한 승부사의 이야기가 솔직하게 펼쳐져 있다. 그 안에서 답을 찾는 건 투자자와 독자의 몫이다. 피카소는 아마추어 화가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고 한다. “당신 그림에 대해 난 아무 얘기도 할 수가 없소. 당신 스스로 모든 걸 극복해나가야만 해요.” 성 회장이 말하는 투자의 비법 역시 마찬가지다.


성 회장이 밝히는 돈을 이기는 비결
① 자신만의 길을 가라
시대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다. 전설적인 투자자를 답습해선 답이 없다.
② 이겨놓고 승부하라
시장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경제적·통계적 요인 등을 분석해 미리 예측한 뒤 실전에 임하라.
③ 자금관리는 생명선이다
베팅 규모를 지키지 못하면, 언젠가는 모든 것을 잃는다.
④ 겸손한 마음으로 꾸준히 노력하라
1만 시간을 채워야 고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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