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tanley Bing(포춘 칼럼니스트)
회의실에 앉아 있는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이 피곤한 건지, 바보 같은 건지, 아니면 전날 밤 비타민 V를 과다 섭취한 탓에 머리가 아픈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알다시피, 비타민 V는 스톨리치나야(Stoli) 같은 시원한 보드카 한 잔을 통해 섭취할 수 있는 필수 영양소입니다.
이번 회의 주제는 향후 통신 사업을 재편할 기술과 그 투자 방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이해를 하거나, 아니면 그런 척이라도 해야 하는 중요한 안건이었습니다.
“월정액 주문형 비디오(SVOD·Subscription Video On Demand)가 개인 주문형 오디오 비디오(AVOD·Audio Video On Demand)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만약 NVPD가 출시하는 제품군에 전기저장튜브(EST)가 포함된다면 말입니다. 또 일부 소비자를 위한 이벤트가 OTT *역주: Over The Top의 약자로 기간망 사업자의 네트워크 상에서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는 미디어나 콘텐츠 서비스를 총칭한다. 시스템이나 개선된 OTT 환경에서 어떤 효과를 거둘지도 관심사입니다. 이들 소비자는 C3나 C7 *역주: 라이브+3일 이내 DVR로 시청한 광고 시청률과 7일 이내 DVR로 본 광고 시청률을 각각 C3, C7이라고 한다로 광고 시청률을 평가하는 시대에 케이블을 해지(cord cutter)하고, 케이블을 줄이거나(cord shaver), 소위 케이블을 전혀 안 보는(Never) 사람들입니다.” 프레젠테이션을 맡은 친구가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더군요. 회의 참석자 어느 누구도 말 한마디 못했습니다. 일부는 수긍한다는 듯이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은 계속 진행됐습니다.
뭔가 끼어들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밥, 미안하지만 도대체 무슨 헛소리(WTF) *역주: What The Fxxx의 줄임말를 지껄이는 거야?”라고 일어서서 말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잠자코 있었지요. 첫째, 우리 모두는 가끔 멍청해 보여도 괜찮습니다. 멍청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이거든요. 둘째, 아마추어처럼 보이는 것이 싫었습니다. 지금쯤이면 이미 몇몇 NVPD 직원들과 식사를 하고 있을 공산이 컸기 때문입니다. 셋째, 화장실이 너무 급해 프레젠테이션이 원래 시간보다 1초라도 길어지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밥은 프레젠테이션 내용을 알아듣기 쉬운 영어로 번역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어차피 이해하려고 모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멍청한 우리를 대신해 밥이 이 문제를 잘 처리할 수 있다는 확신만 들면 되는 자리였습니다. 물론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구요.
이해할 수 없는 헛소리를 한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전략일 수 있습니다. 보험사 직원들이 대표적입니다. 무거운 쇳덩이가 머리 위로 떨어지면 왜 보험 처리가 안 되는지 이해 불가능한 전문 용어로 설명을 늘어놓습니다. 자동차 수리공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트랜스 콘덴서에 ULG가 발생했습니다”라고 말하면, 당신은 바로 수긍하고 1,800달러나 지불해야 하는 수리를 승인합니다. 그러나 수익을 좇아 ‘황소 고기 패티(Bull Patties)’를 능수능란하게 주무르는 전문가 *역주: 주식시장이 강세장(bull market)일 때 이익을 챙기려고 달려드는 금융권 종사자들에 비하면 이들은 ‘좀도둑(pikers)’에 불과합니다. 물론 은행가들 얘기입니다.
새삼 이런 사실을 느끼게 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지난 3월 미국 상원 상설 조사소위원회가 ‘제이피모건 체이스 고래거래: 파생상품의 위험성과 남용 사례 연구(JPMorgan Chase Whale Trades: A Case History of Derivatives Risks and Abuses)’라는 제목으로 발간한 흥미로운 보고서가 바로 그것입니다. 뉴욕 타임스의 플로이드 노리스 덕분에 이 자료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그에게 빚을 진 셈입니다. 한 가지 중요한 구절은 ‘고래’ 브루노 익실 Bruno Iksil *역주: 20억 달러의 손실을 안긴 JP모건 CIO 소속 트레이더로서 거래규모가 커서 붙은 별명이 런던 고래다이 진행한 프레젠테이션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제이피모건 체이스의 고위 임원들 앞에서 금융 거래기준에 대해 PT를 벌인 익실은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며 다음과 같은 거래를 제안했습니다.
▶ 선물 스프레드를 매도하고 빠르게 CDS 보장을 매수하라.
▶ 인덱스 거래를 활용해 기존 포지션을 강화하라.
▶특히 디폴트가 발생할 기업이 나타나면, 신용 위험도가 높은 트랑쉐(파생상품)에 과감히 투자하라
▶ 주가 상승 시 HY와 Xover에 대한 CDS 보장을 매수하고, 시장변동성을 활용해 바로 현금화하라.
그 보고서에 따르면, 인터뷰한 사람들 중에서 그 녀석이 말한 내용을 이해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익실의 계획을 승인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니까 실질적인 금융 개혁이 이뤄지지 못하는 겁니다. 첫째, 이 인간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주식 상승장을 잘 활용할 줄 압니다. 둘째, C학점을 받았던 학생들이 어떤 직업보다도 많이 종사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은행업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멍청해 보이면 안 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큰 편입니다. 셋째, 탐욕이 난무합니다. 만약 길거리에서 100달러짜리 지폐를 발견하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어할까요? 아니죠! 단지 ‘시장 변동성’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할 겁니다. 부자가 되고 싶을까요? 아니면 똑똑하게 굴려고 할까요?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겁니다. 이제 모두 나가서 소고기나 좀 사 먹을까요. 맛이 좋을 겁니다.
※ 포춘 미국판의 유명 칼럼을 한글과 영어로 동시 게재합니다. 유려한 비즈니스 영어 문장 속에서 알찬 경제 정보를 찾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