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 대한 워런 버핏의 낙관적 전망

Warren Buffett Is Bullish...on Women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겸 CEO가 독점 에세이를 통해 왜 여성이 미국 번영의 열쇠인지를 설명한다.

최근 여성과 일에 대한 글의 홍수 속에서 매우 중요하고도 긴밀한 한 가지 측면이 간과된 것 같다. 그것은 미국의 미래와 관련된 것이고, 늘 그랬듯이 나는 이 부분에서도 상당히 낙관적이다.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성들이 미국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점이다.

1776년 이후 미국은 전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성장을 해왔다. 성공의 비결은 인간의 잠재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게 해준 정치·경제 시스템이었다. 그 결과 미국은 상품과 서비스의 풍요 속에 살게 됐다.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반도 성취하지 못했다. 아니, 딱 반 정도 성취했다. 미국은 인적자원의 반을 활용하면서 성공을 이끌었다. 미국 역사상 여성들은 능력에 관계없이 항상 옆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최근에야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독립선언서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감동적인 문구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헌법에는 남성우월주의가 재빨리 자리했다. 헌법 제2조 대통령 관련 조항을 보면 이 문서에 서명한 39명의 대표단-물론 모두 남자다-이 반복적으로 남성 대명사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포커에서는 이를 텔 Tell *역주: 자신이 쥐고 있는 패나 전략을 숨기려 하면서도 그것을 무심코 드러내는 비언어적 신호이라 부른다.

그 후 133년이 지난 1920년, 미국은 수정헌법 19조를 통해 여성에 대한 차별을 완화했다. 바로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 이후 선출된 대법관 33명이 모두 남자였다. 그리고 마침내 샌드라 데이 오코너 Sandra Day O'Connor가 미국 여성 최초의 대법관이 됐다. 수정헌법 19조가 비준된 지 61년 만의 일이다. 수치를 통해 이해를 돕자면, 우연히 남성들만 줄줄이 이 자리를 꿰찰 가능성은 80억 분의 1에 불과하다.

왜 여성 지명자는 없느냐는 질문에, 61년간 늘 돌아오는 대답은 '적당한 후보가 없어서'였다. 유권자들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아버지가 1942년 의원에 선출되셨을 때, 아버지의 동료 의원 434명 중 여성은 단 8명뿐이었다. 메인 주의 마거릿 체이스 스미스 Margaret Chase Smith가 당시 유일한 여성 상원의원이었다.

권력자들은 변화가 자신들의 이익과 상충하면 바로 저항한다. 재계와 정치계, 그리고 물론 종교계까지 방어적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데 경쟁자가 두 배로 많아진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변화의 더 큰 적은 지금과 다른 세상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 고착된 사고방식일 것이다. 우리 가족이 좋은 예다. 나는 누이가 둘이다.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은 우리 셋의 지적 수준을 거의 비슷하게 봤다. 그리고 IQ 테스트가 이를 실제로 증명했다. 하지만 우리 누이들의 '사회적' IQ는 오랫동안 나보다 훨씬 높았다(테스트를 해보진 않았지만, 증거는 충분하다).

하지만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 내 가능성이 누이들의 가능성을 뛰어넘었다. 나는 남자였고, 똑똑하고 성격 좋고 얼굴도 예쁜 누이들은 남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우리를 똑같이 사랑했고, 선생님들도 성적을 비슷하게 매겼다. 하지만 매 순간 누이들은 시집 잘 가는 것이 곧 성공이라는 압박-말보다 신호를 통해 전달됐다-을 받았다. 반면 나는 세상의 모든 가능성이 나를 위해 열려있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래서 나의 하한선(floor)이 누이들에게는 상한선(ceiling)이 되었다. 그리고 몇 십 년 전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이 장벽을 깨뜨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여성들에 대한 구조적 장벽이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방해물이 남아 있다.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스스로에게 제약을 가하는 여성들이 너무 많다. 내가 직접 경험한 사례가 있다.

내가 아는 능력 있고 매력적인 여러 여성 중 지금은 작고한 캐서린 그레이엄 Katharine Graham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녀는 오랜 시간 워싱턴 포스트 Washington Post의 지배주주이자 CEO였다. 캐서린은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어머니와 남편 등 여러 사람에게 오랫동안 세뇌-좋아하진 않지만 적절한 단어다-되어 왔다. 그래서 남성 우월주의를 믿었고, 특히 비즈니스계는 더 그렇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이 사망했을 때 주변 남성들은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그녀가 느끼는 무능함은 정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를 짓누르는 압박은 고문과 같았다. 캐서린은 현명한데다 다행히 내면의 강인함도 갖춘 사람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남편의 유산을 자신에게 맡기라는 주변 남성들의 말을 무시할 수 있었다.

나는 1973년 캐서린을 처음 만났다. 한눈에 그녀가 비범한 재능과 성격을 지닌 인재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여성이라는 데서 오는 압박감 탓에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 이성적으로는 아니라는 점을 알알지만, '기업 운영은 남성들이 훨씬 뛰어나다'는 내면의 소리를 잠재울 수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른 사람들이 만든 왜곡된 거울을 버리고, 현실을 반영한 진짜 거울에 자신을 비추라고 말했다. "그러면,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누구와도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나의 노력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결과적으론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워싱턴 포스트 주가는 캐서린이 CEO를 역임한 18년 동안 4,000% 이상 치솟았다. 주당 1달러에서 400달러로 폭등한 것이다. 은퇴 후 그녀는 훌륭한 자서전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여전히 자신감이 없었다. 이는 무가치하다는 메시지가 대단히 뛰어난 사람에게도 매우 깊게 자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다.

요즘 여성들 사이에서 왜곡된 거울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아 기쁘다. 내 딸에게 이런 거울을 놓아주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무시해버릴 것이다. 여성들은 권력 있고 자신감 넘쳐 보이는 남성들 중에 환상에 젖어 사는 (have more than a bit of the Wizard of Oz in them)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그 커튼을 젖히면 그들이 결코 슈퍼맨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그들의 아내에게 물어봐라).

자, 그러면 남성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 남성들은 어떤 혜택을 얻을 수 있을까? 왜 남성들이 여성들을 향한 마지막 장벽과 왜곡된 거울을 치우는 데 관심을 둬야 할까? 도덕적인 이유도 크다. 하지만 그건 제쳐 놓고, 남성들에게 돌아오는 이익을 따져보자.

생산량을 더 늘릴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80%의 생산 효율에 만족하는 공장장은 없다. 직원 교육이나 근무환경 개선으로 생산성을 더 늘릴 수 있음에도, 남성 직원의 능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는 CEO는 없다. 그러면 한 단계 더 나아가보자. 남성 직원들이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돕는다면 분명히 이익이 돌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여성들에겐 같은 노력을 하지 않는가?

이제 남성들이 행동에 나설 때다. 미국이 완전 고용에 가까워질수록 상품과 서비스 생산성은 늘어날 것이다. 인적자원의 50%를 활용했을 때 무엇을 달성할 수 있는지 우리는 직접 경험해봤다. 이제 100%를 활용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상상해본다면, 여러분은 미국의 미래에 대한 무한 낙관주의와 함께 우리의 노력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방해물이 남아 있다.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스스로 제약을 가하는 여성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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