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이 SK에너지에서 회사명을 변경한 지 올해로 2년째다. 2년이라는 시간은 브랜드 인지도를 쌓기에 무척이나 짧은 기간이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은 브랜드 인지도 확산을 넘어 성공한 브랜딩 전략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터브랜드가 선정한 ‘Best Korea Brand 2013’에서 25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인터브랜드는 PR위크가 선정한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높은 브랜드 컨설팅 기업’이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2010년 10월. SK에너지는 분주했다. 26일 예정된 이사회에서 물적분할 외 사명 변경을 단행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2009년 분사한 윤활유 사업(현 SK루브리컨츠)에 이어 정유 사업(현 SK에너지)과 석유화학 사업(현 SK종합화학)을 독립시켜 이들을 자회사로 편성할 계획이었기에 지주회사로서 사명 변경 필요성이 대두됐다.
회사명 작명에 있어 당시 담당자들은 두 가지를 고려했다. ‘업종을 사명 뒤에 붙이는 기존의 관례’를 탈피하는 것이 첫 번째였고, ‘회사가 지향하고 있는 기술 기반의 혁신 이미지를 회사명에 반영시키는 것’이 두 번째였다.
여러 안들이 나왔다. ‘이노베이션’ ‘엔비전’ ‘테크노브릿지’ ‘어드밴스’ ‘인사이트’ ‘테크로드’ 등이 그것이다. 이들을 놓고 사외 전문가들과 사내 임직원들의 반응 조사를 했다. 그 결과 ‘SK이노베이션’이 새로운 사명으로 선정됐다.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와 함께 ‘기술 기반의 혁신 회사’ 비전을 가장 잘 대변한다는 이유였다
당시 회사명 선정 작업에 직접 참여한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당시 작명 관례를 따를 수도 있었으나 ‘회사명을 특정 업종에 국한할 경우 미래 신기술의 범위를 스스로 제한한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라며 “‘SK이노베이션’이란 사명을 선택함으로써 독자적인 이미지 창출은 물론, 혁신의 범위를 무한대로 확장하게 됐습니다”라고 의의를 밝혔다.
2011년 1월, SK에너지는 SK이노베이션으로 회사명 등기 변경을 마쳤다. 이제 남은 과제는 내부에서 논의한 회사의 비전과 이미지를 바탕으로 SK이노베이션의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B2C 기업의 경우 넓은 고객 접점을 인지도 제고에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B2B 기업인 SK이노베이션은 활용할 수 있는 채널이 극히 제한적이어서 운신의 폭이 좁았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은 첫 광고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TV광고 및 지면광고에서 ‘에너지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진정성을 보여줌으로써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지구온난화로 고통 받고 있는 북극곰의 안타까운 사연과 함께 이를 해결하기 위해 ‘SK이노베이션이 녹색이노베이션을 준비하고 있다’는 문구의 조화가 극적인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 광고는 ‘제20회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에서 인쇄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이 광고는 SK이노베이션의 업종 정체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자기 업종을 바탕으로 ‘이 기업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를 보여줌으로써 SK이노베이션이라는 브랜드에 은연중 ‘사회적 기업’ 이미지를 추가했다. 인류와 지구의 공존을 위한 녹색 신기술로 SK이노베이션의 주력 사업인 전기차용 배터리, 친환경 플라스틱, 청정 석탄에너지 등을 제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환경문제에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에너지 업종 기업이 오히려 환경을 보호하는 기업 이미지로 전환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
두 번째 광고인 영웅 캐릭터 애니메이션은 ‘대한민국에 필요한 이노베이션’ 슬로건을 통해 SK이노베이션이 대한민국에 어떤 가치를 지닌 기업인지를 설명, 기업 브랜드에 애국심을 더했다. 대한민국의 발전에 이바지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는 기업 철학의 제시는 일견 딱딱해 보일 수 있으나, 이를 영웅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순화시켜 무겁지 않으면서도 충실히 내용을 전달했다.
이 광고는 특히 SK이노베이션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기업인지를 상세히 보여줘 기업의 정체성 확보에 기여했다. 두 편으로 나눠진 이 광고에서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대한민국에 처음 에너지 회사를 세우고, 대한민국의 에너지를 세계로 수출하는 기업’ ‘산유국에 에너지를 수출하고, 유전을 개발하며, 미래 에너지를 수출하는 기업’이라고 직접적으로 SK이노베이션을 설명한다. 광고 말미엔 ‘그 이노베이션으로 대한민국을 에너지 강국으로 만드는 기업’이라고 덧붙임으로써 에너지 기업으로서의 SK이노베이션 기업정체성을 확고히 제시했다.
세 번째 광고인 ‘물음이 있는 곳에 이노베이션이 있다’는 이전 두 광고에서 보여준 기업으로서의 SK이노베이션이 아니라 혁신의 아이콘으로서 SK이노베이션을 설명한다. ‘ASK’에 대한 가치를 제시하고, SK이노베이션이 생각하는 혁신이 어떻게 이와 맞닿아 있는지를 설명한다.
이번 광고는 총 세 편으로 구성돼 있다. ‘론칭편’에서는 SK이노베이션의 전공이 무엇일까에 대한 답으로 ‘ASK’를 제시한다. 물음이 곧 창조이고, 물음이 곧 미래라고 이야기하며 물음이 있는 곳에 이노베이션이 있다고 마무리한다. 계란이 바위를 깨뜨리는 장면은 물음이 가지고 있는 혁신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신편’에서는 ‘론칭편’에 이어 물음이 가지고 있는 혁신의 힘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혁신적인 미래는 풍족한 자원이나 뛰어난 기술이 있어야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물음을 통해 창조되는 것이라 한다. 역시나 물음이 있는 곳에는 이노베이션이 있다고 마무리하며 ASK와 SK이노베이션과의 관계를 점진적으로 형상화한다.
‘종합편’은 1, 2편의 이야기에서 드러난 물음의 힘이 SK이노베이션을 통해 어떻게 구현됐는지를 보여준다. 1, 2편을 통해 ‘ASK’의 혁신적인 힘을 제시한 후, 이를 가장 잘 활용하는 기업으로서 SK이노베이션이 ‘그동안 어떤 성과를 냈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SK이노베이션은 ‘석유 안 나면 석유 수출 못해?’라는 비상식적인 물음에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대한민국에서 지난해 53조 수출을 기록했음을 답으로 제시한다. ‘자원 없으면 자원강국 안돼?’라는 질문에는 16개국 25개 광구에서 자원을 개발하고 있음을, ‘이산화탄소가 자원이 될 수는 없어?’라는 질문엔 이산화탄소로 만든 친환경 플라스틱 그린폴을 답으로 내놓는다. 모두 SK이노베이션의 사업 내용이다.
SK이노베이션의 광고는 한 편의 잘 짜인 옴니버스와 같다. 외적으로 보이는 형식의 차이는 크나 ‘첫 번째 북극곰 광고가 발단 역할을, 두 번째 애니메이션 광고가 전개 역할을, 세 번째 ASK 광고가 절정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숙연한 감동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경쾌하고 빠른 리듬을 거쳐 종국엔 성장과 미래에 대한 거대 담론까지 이끌어낸다. 지구를 구하는 일, 대한민국을 발전시키는 일, 미래를 창조하는 일의 핵심은 ‘ASK Innovation’이고, 그것을 가장 잘할 수 있는 기업이 SK이노베이션이라는 것이다. 정유회사, 석유화학회사 등의 낡은 기업 이미지가 일순간에 그 이름만큼이나 ‘Innovation’한 변화를 거쳐 역동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변했다.
SK이노베이션의 전략적 브랜딩 활동은 CSR 캠페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SK이노베이션은 일반적인 기부 형태의 사회공헌활동에 ‘ASK’를 가져왔다. 그 기원은 SK그룹 최태원 회장으로부터다. 최 회장은 ‘SK식 사회 공헌 모델’을 제시하며 “단순 기부 등 전통적 사회공헌활동이 투입 비용 대비 3배의 경제적·사회적 가치를 창출했다면, 사회적 기업은 수십 배의 가치를 창출한다”라고 공언한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SK이노베이션의 CSR 활동은 ‘가치 창출 중심의 사회공헌 모델 확산’을 그 목표로 한다. SK이노베이션이 주목한 사회공헌 모델은 최 회장이 제시한 사회적 기업이었다. SK이노베이션은 전사적인 사회적 기업 설립 지원에 나섰다. 처음엔 정부나 NGO와의 파트너십을 기초로 했지만 2011년부터는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당해 설립한 ‘행복한 농원’은 SK이노베이션이 기획부터 설립, 운영의 모든 과정을 직접 총괄한 사업이다.
초화류·관목류 재배 및 판매와 조경관리를 주업으로 하는 행복한 농원은 일자리 창출 및 현장 체험 학습, 편의시설 제공 등 지속가능한 사업 모델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행복한 농원이 ‘SK이노베이션이 광고를 통해 제시한 ‘혁신 기업’과 ‘녹색 기업’ ‘사회적 기여를 하는 기업’ 등에 대한 브랜드 이미지를 영리 활동 외에서 실현한 사례’로 꼽히는 이유다.
SK이노베이션은 이런 CSR 활동에서의 전략적 브랜딩 활동을 세계무대로 넓힐 계획이다. 기업 활동의 무대가 세계인 만큼, 국내 성공 사례를 해외에서도 확산시켜 기업 이미지 제고에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작년 12월 페루 야차이와시 Yachaywasi 지역에 농촌진흥센터 ‘SK My Eco-Tech Farm 1호점’을 론칭한 데 이어 올해는 2호점을 추가로 오픈 할 예정이다. 2호점은 SK 이노베이션이 2009년부터 시행해온 농촌개발 프로그램을 사회적 기업 형태로 진화시킨 것이다.
탁월한 경영실적도 SK이노베이션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주효했다는 평가다. SK이노베이션은 독자경영체제 출범 첫해인 2011년, 수출 47조 원을 기록했다. 창립 50주년이었던 지난해에는 삼성전자에 이어 국내 기업 두 번째로 연간 수출 50조 원을 돌파해 최근 2년간 누적 수출액이 100조 원을 넘어섰다. 최근 7년 동안의 누적 수출액은 200조 원으로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수출 기업이다. 특히나 최근 2년간의 놀라운 성장은 독립법인으로 분사한 각 사업의 스피디한 정책 결정과 책임 경영이 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경영 구조의 혁신이 실적은 물론 기업 이미지에까지 영향을 끼친 예다.
성숙한 기업 문화도 SK이노베이션의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는데 기여했다. 구자영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는 취임 이후부터 줄곧 ‘즐겁고 신나는 일터 만들기를 통한 행복 경영’을 CEO의 최우선 사명이라 밝혀왔다. 구 대표이사는 정유사 최초로 탄력근무제를 도입했으며 결혼, 출산, 육아 지원제도 등에 세심한 배려를 해 직원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기업 문화를 이끌었다. 그 결과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주최한 ‘가족친화 우수기업 인증 수여식’에서 최고상인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결과적으로 현재 SK이노베이션의 높은 브랜드 가치는 브랜딩 전략과 캠페인, 실적, 기업 문화 등의 요소가 모두 탁월했기 때문에 이뤄진 결과물이다. SK이노베이션 홍보팀 관계자는 말한다. “2011년 초 회사명 변경 이후 단기간 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전략적 모델들을 검토하고 실행해왔습니다. 단기·중기·장기 로드맵을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요소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서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50년간 대한민국 대표 에너지 기업으로 국가경제 발전과 사회공헌에 기여해 왔듯이 미래 50년을 향한 첫걸음인 올해도 지금껏 쌓아왔던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고 더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녹색 이노베이션’광고를 통해 ‘에너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진정성을 보여줌으로써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