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노버는 과연 해낼 수 있을까?

CAN LENOVO DO IT?

레노버는 세계 제1의 PC 제조업체로 부상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CEO 위안칭 양 Yuangqing Yang은 글로벌 브랜드 구축을 통해 애플과 삼성을 앞지를 야심을 갖고 있다.
by Miguel Helft


중국의 거대 컴퓨터 제조업체 레노버의 CEO 위안칭 양은 베이징 최북쪽에 위치한 외부인 출입금지 주택지역에 산다. 맥맨션(McMansions) *역주: 작은 부지에 어울리지 않게 크고 화려하게 지은 주택. 맥도널드 체인처럼 도처에 편재한다고 해서 맥맨션이라 불린다들이 가득하고 고급 잔디가 깔린 이곳은 정신 없이 혼잡한 베이징과는 완전히 딴 세상이다. 호숫가에 위치한 양의 집은 단순한 교외의 주택이라기보다는 프랑스식 대저택 같은 느낌을 준다. 주위의 다른 집들이 초라해 보일 정도다. 그의 대리인 중 한 명은 그의 저택을 ‘미니 베르사유 Versailles 궁전’이라고 불렀다.

YY로 알려진 양(48)은 일년에 한 번 ‘아주 독특한 회사 모임(최고 경영진을 위한 화려한 만찬)’을 위해 집을 개방한다. 올 봄에 열린 모임에서는 중식 및 서양식으로 구성된 7가지 코스요리와 이에 어울리는 다양한 최고급 와인이 제공되었다. 거기에는 대부분의 참석 간부들 나이보다 오래 숙성된 페트뤼스 Petrus 라는 와인도 포함돼 있었다. 다운튼 애비 Downton Abbey *역주: 20세기 초 영국의 한 귀족 가문을 소재로 한 시대극의 연회에나 등장할법한 스태프들이 요리를 서빙하고 잔을 채울 때, 18명의 손님들은 레노버의 전통 행사를 거행했다. 한 명씩 와인 잔을 들고 일어나 팀의 목표를 외치고 건배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 스마트폰 업계의 최고가 되겠다. 원샷! 우리는 HP, 블랙베리, 애플-당신이 생각하는 그 애플이 맞다-을 이기겠다. 원샷! 이윤을 극대화하고, 생산을 늘리겠다. 유통망을 확대하겠다. 원샷!

이런 전통은 몇 년 전 가볍게 즐겼던 술자리 게임에서 발전한 것이다. 회식 다음 날 2명밖에 없는 고위급 간부 여성 중 1명인 인사책임자 지나 치아오 Gina Qiao가 경영진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술자리에서 양이 했던 약속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후 이 게임은 더욱 진지하게 발전했다. 이 게임을 몇 번 해본 이들은 먼저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건배 횟수가 늘어날수록 더욱 공격적인 목표를 설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목표가 충분치 않으면, 야유의 함성이 터져 나온다. 중국인과 서양인 간부들이 함께 즐기는 이 건전한 놀이를 보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서로 테크업계 정복을 부추길 정도로 초경쟁적인 팀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동료들보다 키가 큰 양은 왕처럼 침착하게 이 축제를 관장한다. 작년에 약속했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이들에 대해서는 야유를 유도하기도 한다. 그는 레노버에서 승진을 거듭하며 미래를 내다보는 글로벌 리더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사회가 레노버, 나아가 업계 자체를 완전히 변화시킨 대담한 모험을 하도록 끊임없이 밀어붙였다. 바로 2005년 적자를 기록하던 IBM의 PC사업을 인수한 것이다. 그 결과 레노버는 중국, 아니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기업이 되었다. 레노버는 베이징과 (IBM PC사업 본사였던) 노스 캐롤라이나 두 곳에서 본사를 운영하고 있다. 레노버는 보통 서양 다국적 기업보다 훨씬 더 글로벌하다. 14명의 고위 간부들은 7개국 출신이다. 독일, 브라질, 일본에서 이뤄진 인수합병 이후에는 전 세계에서 연구개발 및 생산작업을 펼치고 있다. 양이 자신의 목표를 말하기 위해 일어섰을 때, 예상대로 모두가 조용히 그에게 주목했다. 그는 와인 잔을 손에 쥐고 모든 직원들의 목표달성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원샷!

요즘 레노버의 경영진은 이런 술자리가 아니더라도 자신감이 넘친다. PC사업 투자를 두 배로 늘린다는 역발상이 큰 성과를 올렸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레노버는 연구개발과 인수합병에 아낌없는 투자를 해왔다. 덕분에 공장 네트워크가 더욱 견고해졌고, 생산을 대부분 아웃소싱에 의존하는 경쟁업체들보다 빠르게 혁신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지난 4년간 레노버의 성장률은 업계 평균을 상회했다. 기업 규모도 IBM 인수 이후 3배 이상 증가해 연 매출 330억 달러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는 HP를 제치고 세계 제1의 PC제조업체가 될 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PC부문은 레노버의 주력사업이 아니었다. 사실, 올 1분기 PC업계의 매출은 14%나 감소해 사상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IT전문 리서치 회사 IDC에 따르면, 레노버의 입지는 흔들림이 없다. 레노버는 세계 최대 PC시장인 미국에서 지난 분기 13% 성장했다. 세련된 울트라북 *역주: 태블릿PC와 노트북의 장점을 결합시킨 신개념 노트북 요가 Yoga같은 제품의 인기에 힘입은 결과다. 양은 앞으로 더욱 축소될 것이라고 전망되는 PC시장에서 85%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현재 레노버의 세계 PC시장 점유율은 15%다). 그는 베이징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PC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HP와 델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 그는 사라지는 것은 PC가 아니라 경쟁업체들이라고 말했다. “오직 소수의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양과 그의 팀은 이제 막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그들은 우선 PC시장 점령이라는 목표를 거의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대신 지금 레노버는 더욱 대담하고 어려운 목표에 집중하고 있다. 바로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장에서 애플과 삼성에게 도전하는 것이다. 양은 일반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우리는 모든 면에서 공격적, 효과적, 효율적으로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발은 좋다. 레노버의 휴대폰 사업은 2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세계에서 가장 경쟁적이고, 가장 큰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에서 2위 기업이 되었다. 현재 휴대폰 사업은 레노버 매출의 11%를 차지하고 있다. 레노버는 내수 시장에서 거둔 성공을 인도, 인도네시아 같이 빠르게 성장하는 다른 시장에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미국에서도) 그대로 재현하려 한다. IDC에 따르면, 휴대폰 사업의 빠른 성공에 힘입어 레노버는 삼성과 애플에 이어 세계 3위의 ‘스마트 커넥티드 디바이스(smart connected device)’ 기업으로 도약했다(스마트 커넥티드 디바이스에는 PC, 스마트폰, 태블릿 등이 포함된다).

레노버는 자사뿐만 아니라 중국에게 대단히 중대한 시기에 이런 야심 찬 계획을 펼치고 있다. 레노버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있는 것처럼, 중국도 더 이상 세계의 생산공장으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일본 및 한국 기업들이 그래온 것처럼, 중국도 자국 대기업들이 레노버처럼 세계적인 혁신기업이 되어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길 기대하고 있다. 규모, 투자, 초경쟁적인 다국적 경영팀을 바탕으로 레노버는 중국 최초의 글로벌 소비자 브랜드가 되어가고 있다. 양은 이를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자신의 메모에서 양은 레노버를 세계적 모바일 컴퓨팅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탈바꿈 시키는 것이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만약 성공한다면, 우리가 이룬 최고의 업적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관춘 Zhongguancun *역주: 한국의 용산처럼 베이징 최대의 전자상가 밀집 지역의 분주한 전자 상가와 베이징 북부 주거지역 왕징 Wangzing의 대형 쇼핑몰 인디고 몰 Indiigo Mall은 10마일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하지만 두 곳은 전혀 다른 쇼핑 경험을 제공한다. 마치 레노버의 현재 위치와 미래 지향점을 반영하고 있는 듯 하다. PC몰로 알려진 중관춘의 한 쇼핑몰은 조잡한 간판들이 얽혀 복잡한 미로 같다. 상인들은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호객행위를 한다. 이 쇼핑몰의 1, 2, 3층에만 15개의 레노버 매장이 입점해 있다.

이와 대비되는 인디고 몰은 화려한 현대식 건물로 곡선의 유리 소재가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부유한 중국 고객들은 아디다스, H&M, 세포라 같은 매장을 꼼꼼히 둘러 본다. 입지가 가장 좋은 3층에 위치한 레노버 매장은 베스트 바이 Best Buy *역주: 전자제품 및 컴퓨터 관련 제품을 종합적으로 판매하는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와 애플 스토어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을 풍긴다. 상단이 황금빛 나무소재로 된 긴 흰색 테이블에는 레노버의 인기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초슬림 노트북, 다양한 디자인과 크기의 스마트폰, 태블릿 그리고 몇 종류의 인터넷 TV 등이다. 고객들은 제품을 시연해 보라고 권유를 받는다. 계산대의 직원들은 고객들의 불만사항을 꼼꼼히 처리해 준다. 애플의 유명 서비스 지니어스 바 Genius Bar *역주: 애플 스토어 내에 위치한 지니어스 바에선 제품을 직접 진단하고 수리해 준다와 유사하다. 뿐만 아니라 낮은 테이블, 의자, 게임이 잔뜩 설치된 태블릿과 PC로 구성된 3종 세트도 설치되어 있다. 아이들이 이곳에서 노는 동안 부모들은 쇼핑을 즐길 수 있다.

그렇다고 레노버가 중관춘 같은 곳에서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저가 PC의 판매를 포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몇 년간 레노버는 일명 ‘보호와 공격’ 전략을 추구해 왔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PC 사업은 레노버가 보호하기로 한 영역이다. 중국 대부분 지역 50km마다 매장을 운영한다는 전략은 레노버의 지속적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3만 개에 달하는 레노버 매장은 중국 전역의 도시, 군·구, 마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2010년만 해도 매장 수는 6,000개에 불과했다(반면 중국 내 애플 스토어는 8개밖에 안된다). 레노버는 이런 소매전략을 성장 가능성이 높은 개도국 시장에 적용하고 있다(개도국 시장의 PC보급률은 대개 20%에도 못 미친다).

레노버의 공격 표적은 인디고 몰이다. 올여름 천안문 광장 근처에 더 큰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 예정인 레노버의 글로벌 야심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생산라인과 이미지 제고에 여념이 없다. 포틀랜드부터 파리까지 브랜드에 민감한 고객들을 포함해 중국과 인도의 상류층 고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애플이나 삼성과 같이 폭넓게 인정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 레노버의 최고 마케팅 경영자 데이비드 로만 David Roman은 “레노버는 시장에서 분명한 색깔을 갖지 못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그렇다고 로만이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니다. IBM의 ‘검은 상자’ 모양 디자인으로 유명한 레노버의 싱크패드 제품라인은 20년 넘게 혁신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게다가 선진국 기업 고객들에게는 프리미엄을 얹어 판매해 왔다. 실제로 많은 곳에서 레노버라는 기업보다 싱크패드라는 브랜드가 더 유명하다. 로만의 역할은 레노버의 다른 제품들을 싱크패드의 브랜드 가치와 결합시키는 것이다. 2년 전 ‘행동하는 이들을 위해(For Those Who do)’라는 문구를 바탕으로 로만의 이미지 제고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애플이 이 슬로건에 대해 부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아마도 실제로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참고로 로만은 HP와 애플에서 일했었다). 2011년 레노버의 TV광고는 ‘생각하는’, ‘건설하는’, ‘창조하는’ 이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밥 딜런 같은 인물을 등장시키고 ‘광적인 사람’, ‘부적응자’, ‘문제아’를 찬미했던 애플광고를 연상시킨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감독이 제작한 액션이 가득한 TV광고, 전미 미식축구 연맹(National Football League)과의 파트너십 같은 다른 시도들은 레노버가 도시적이고 세련되었다는 이미지를 얻게 해주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레노버의 브랜드 인지도는 2년 만에 10위에서 4위로 뛰어올랐다.

로만이 어려움을 겪는 부분 중 하나는 레노버의 GTM(go-to market) 전략 *역주: 기업이 총체적인 마케팅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자원, 조직, 프로세스 등을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시장에 침투하는 것이 브랜드의 지향점과 다소 상충된다는 것이다. 애플이 몇 안되는 제품라인으로 성공했던 것처럼 상징적인 브랜드는 단순함을 활용한다. 반면에 레노버는 거의 모든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며 성공을 거뒀다. 경영진은 그런 방식을 바꿀 생각이 없다. IBM에서 오래 근무했고, 현재 기업고객을 대상으로 PC 및 서버를 제공하는 싱크 비즈니스 그룹 Think Business Group의 책임자 피터 호텐시어스 Peter Hortensius는 “애플의 아류가 되고 싶진 않다. 내 관심사는 레노버만의 색깔을 추구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효과를 봤던 방식으로 일관되게 비즈니스를 운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레노버가 진출하지 않은 주요 영역은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스마트폰 시장이다. 이 전략은 레노버를 영원한 낙오자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많다. 하지만 레노버의 경영진은 우선 중국과 시장상황이 유사한 개도국에 집중하는 게 옳다고 주장한다. 중국 스마트폰 사업에서 손익 분기점을 돌파한 이후-중국에서는 24가지 모델을 출시했는데, 유사한 삼성 휴대폰보다 훨씬 더 싼 가격에 판매된다-지난해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러시아 등에서 휴대폰 제품을 출시했다. 올해 말까지 16개국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다.

로만은 미국에서 레노버의 브랜드 인지도를 더 높인 후에 제품을 출시하고 싶다고 말한다. (실적이 일관되지 못한) HTC를 비롯한 다른 휴대폰 기업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레노버의 제품들은 미국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적어도 더 큰 스크린을 찾는 고객들에게는 그럴 듯하다. 최근 출시된 K900은 5.5인치 스크린을 탑재했다. 휴대폰 스크린 치고는 초대형급이다. 그럼에도 가볍고, 밝고, 빠르기 때문에 최근 개최된 컨슈머 일렉트로닉스 쇼 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열광적인 호평을 받았다. 내년쯤이면 미국에서 레노버 휴대폰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델의 경영진 출신이자 레노버의 아메리카 지역 사업을 이끌고 있는 게리 스미스 Gerry Smith는 “하루빨리 그곳(미국)에 진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HP가 팔로알토 Palo Alto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한 지 45년 후, 레노버도 그만큼 소박한 장소에서 자신의 역사를 시작한다. 바로 베이징에 위치한 중국과학원(Chinese Academy of Sciences)의 위병소였다. 레노버의 베이징 본사 건물에는 콘크리트 블록으로 만들어진 위병소 모형이 후세를 위해 보전되어 있다. 모형 위병소의 나무 창가 주위의 붉은색 페인트가 벗겨져 있다. 대조적으로 레노버 본사는 콘크리트와 유리로 지어진 현대식 건물들이 즐비한 캠퍼스로, 물길이 중앙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다. 1984년 리우 추안지 Liu Chuanzhi는 9명의 동료들과 함께 위병소 건물에서 레노버의 전신 벤처 기업을 창립했다. 중국과학원은 이들에게 위병소 건물을 사용하게 허가했을 뿐만 아니라 창업 자금으로 2만5,000 달러를 대출해 주었다.

초기에 레전드 Legend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이 회사는 최초로 컴퓨터에 중국어를 입력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후 해외에서 제작된 PC들에 중국어 지원 기능을 담아 되팔았다.

1990년에는 자체 제품 개발을 시작했다. 이듬해 (여전히 레노버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대기업 레전드 홀딩스 Legend Holdings의 회장) 리우는 당시 29세였던 양을 PC부문 책임자로 임명했다. 가난한 허페이 Hefei지역 출신의 양은 자신의 팀이 경쟁자들보다 빠르게 혁신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몰아붙였다. 그의 주도하에 레전드는 중국에 펜티엄 Pentium 컴퓨터를 최초로 도입했고, 그 결과 매출은 극적으로 상승했다. 1997년 레전드는 중국 시장 1위 기업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리우는 항상 중국 국경을 뛰어넘기를 꿈꿔왔다. 기업명을 레노버-레전드의 흔적 ‘Le’와 라틴어로 새롭다는 의미의 ‘novo’를 더한 것이다-라고 바꾼 직후, 그가 지목한 후계자 양은 대담한, 그래서 그만큼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밀어붙였다. 당시 레노버의 PC사업보다 3배나 규모가 컸던 IBM의 글로벌 PC사업을 인수하자는 것이었다. 이 제안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레노버와 IBM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루머가 나왔을 때, 뉴욕 타임스는 “누구?”라고 운을 떼는 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거래 당사자들은 인수의 타당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다. 당시 IBM에 있었던 호텐시어스는 “누가 봐도 당시 IBM은 PC사업에 투자하지 않고 있었고, 그 결과도 자명해 보였다. PC 사업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줄 누군가가 왔을 때, 당연히 그의 말에 주목하게 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인수초기 금융위기와 문화차이로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17억5,000만 달러짜리 이 인수 계약은 엄청난 성공으로 이어졌다. 양의 과감한 결단이 가장 큰 성공 요인이었다. 회장 직을 맡았음에도 초기에는 미국 경영진들에게 회사 운영을 맡기고 한발짝 물러서 있었다. 양은 노스캐롤라이나로 사무실을 옮겼다. 몇 년간 스스로 레노버의 공식 언어로 지정한 영어를 배우고, 미국식 경영 스타일에 몰입하기 위해서였다.

레노버는 장기적 목표에 집중하는 특유의 중국 문화 덕을 보기도 했다. 레노버는 모든 새로운 시장을 공략할 때 비슷한 전략으로 접근한다. 이익을 희생하면서도 공격적으로 저가 제품을 제공한다. 경영진은 시장 점유율이 두 자리 수를 기록한 이후에야 수익 창출을 기대한다. 그런 위험한 접근법은 전반적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시장 조사업체 샌퍼드 번스타인의 알버토 모엘 Alberto Moel은 “레노버는 계속해서 나를 놀라게 하고 있다. PC업계의 부진 속에서도 계속 성장을 하는 건 실로 엄청난 성과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엘은 델과 HP PC사업의 절반 수준인 2.5%로 이익률을 증가시키는 것은 경영진의 생각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 경고한다. 이런 우려가 주가에 반영되어, 레노버의 주가는 작년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레노버의 미국 주식예탁증서(American Depositary Receipts·ADR) *역주: 한 나라의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외국의 투자가에게 발행·매매하는 국제적 유통증권 가격은 기존의 23달러에서 하락해 주당 18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 4분기 동안 순이익 5억7,500만 달러를 기록한 레노버의 시가총액은 현재 약 90억 달러다.

전 세계에 2만7,000명의 직원들을 거느리고 있는 레노버는 서양의 개방성(openness)과 투명성(transparency) 기준에 맞춰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애널리스트들의 중론이다. 미국에서 사업을 확대하거나 인수하는 것을 금지 당해 온 다른 중국 테크기업들과는 달리, 미 규제 당국은 세 번이나 레노버의 미국 기업 인수를 허가했다. 레노버는 연방 기관에 수만 대의 PC를 판매했다. 중국 테크업계 전문가 데니스 시몬 Denis Simon은 “레노버를 다른 중국 기업들과 함께 엮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양은 자신 앞에 5개의 레노버 제품을 두 그룹으로 나눠 쌓아 놓았다. 첫 번째 그룹은 스마트폰, 10인치 태블릿, 노트북이고, 두 번째 그룹은 대형 스크린이 탑재된 스마트폰과 (스크린의 탈 부착이 가능한) 컨버터블 노트북이다. 양은 각 그룹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식 노동자 및 고객의 요구를 대부분 충족시킨다고 말했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휴대성’, ‘편리한 이리딩(e-reading) 및 미디어 이용’, ‘완전한 PC기능’. 두 번째 그룹의 두 기기를 선호하는 양은 “양쪽 모두 이런 기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의 작은 행동은 레노버의 미래에 대한 역설적 시각을 보여준다. 양은 태블릿이 PC시장을 잠식할 수밖에 없다는 통념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물론 태블릿은 중요하고, 레노버는 태블릿 시장에 공격적으로 뛰어들 것이다). 태블릿 구입이 늘어나면 낡은 PC 교체를 미루게 되고, 이는 곧 PC판매 감소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태블릿은 대형 스크린을 탑재한 휴대폰과 컨버터블 노트북 사이에 끼여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 호텐시어스는 “경계가 모호하다. 10인치 태블릿은 점점 더 노트북같이 변하고 있고, 노트북도 점점 더 태블릿 같이 진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레노버는 그런 경계를 흐리는 데 누구보다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라이벌 기업들은 한 가지 모델의 (태블릿으로 전환 가능한) 컨버터블 노트북을 판매하지만, 레노버는 4가지 모델을 판매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 많은 모델을 출시할 것이다.

이런 투자는 레노버에게 엄청난 성과를 가져왔다. 인텔의 마케팅 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톰 킬로리 Tom Kilrory 부사장은 레노버의 대표 컨버터블 모델 요가가 연휴시즌에 맞춰 출시되었고, 단시간 내에 업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울트라북으로 자리매김 했다고 말한다.

킬로리는 “요가는 디자인과 혁신 측면에서 놀랄만한 성공작”이라고 덧붙였다. 레노버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요가는 윈도 8 기반 컨버터블 노트북 시장의 거의 절반을 석권했다. 최근까지 레노버의 공급망을 관리해 온 아메리카 지역 책임자 스미스는 “우리가 만든 기기는 모두 팔았는데 훨씬 더 많이 판매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소비자에게 고급 노트북을 팔아 본 적이 없는 기업에게 요가는 엄청난 돌파구를 제시했다. 현재 레노버는 호리즌 Horizon이라는 컴퓨터로 상류층 고객들을 감동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세련된 27인치 일체형 노트북은 납작하게 접으면 쉽게 ‘태블릿’으로 변신한다. 10개의 손가락을 감지할 수 있는 멀티터치 소프트웨어 설계 덕분에 여러 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도 있다. 양은 이를 “상호(interpersonal) PC”라고 지칭한다.

양은 레노버에 대한 원대한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중국이 레노버에 걸고 있는 기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레노버가 IBM의 PC사업을 인수한 직후, 당시 중국 총리 원자바오 Wen jiabao는 레노버의 베이징 본사을 방문해 양에게 “당신은 중국의 희망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원자바오가 말한 책임감의 무게는 여전히 육중하다. 정부는 레노버가 중국 기업도 일류 혁신 기업이 되고, 세계적인 소비자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길 바라고 있다.

마케팅 책임자 로만을 괴롭히던 ‘브랜드 색깔의 부재’는 전 세계에 레노버 제품을 판매할 때 오히려 긍정적인 자산이 될 수도 있다. 브라질에서는 4만3,000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사이버상에서 요가를 ‘훔치기’ 위해 레노버의 페이스북 게임에 접속했다. 일본에서는 최고의 축구스타 히데토시 나카타가 수백만 일본인들에게 레노버 PC를 홍보하고 있다. 인도에서 레노버는 PC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택 반열에 올라 있다. 그들이 레노버가 중국 기업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혹은 신경 쓰는지)는 분명치 않다. 레노버의 활동범위와 다국적 경영 팀을 보면서 느낄 수 있는 사실은, 세계적 브랜드가 되길 꿈꾸는 중국 기업들이 더 글로벌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레노버의 경영진은 술자리가 아니더라도 자신감이 넘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양 CEO는 휴대폰 사업의 성공이 “우리가 이룬 최고의 업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승자: 레노버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빠르게 증가해 왔다. 머지않아 세계 제1의 PC 판매업체가 될 것이다.
왕징 인디고 몰(베이징 최북쪽 주거 지역에 위치)에 있는 레노버 매장은 베스트 바이와 애플 스토어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경쟁업체들이 PC시대의 종말에 초조해할 때, 레노버는 PC시대를 다시 정의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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