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첨단과학기술 연구거점 정읍을 가다

[FIELD WORK] NEW KOREA R&D HUB

국내 과학기술의 메카인 대덕연구단지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을 이동해 도착한 전라북도 정읍. 이곳에는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안전성평가연구소 등 유수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의 분원이 터를 잡고 있다. 첨단방사선 이용기술과 바이오 기술 개발에 한창인 정읍 연구현장을 들여다봤다.


정읍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지난 2006년 설립된 한국 원자력연구원 산하 첨단방사선 연구소(ARTI)였다. 방사선을 이용한 산업·의료·환경 및 기초과학분야 연구와 산업화를 추진하고 있는 국내 방사선 이용기술 연구개발의 전진기지가 바로 이곳이다.

방사선 영상기기 국산화의 선봉

ARTI에서는 국내 수요의 9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양전자 단층촬영(PET), 단일광자 단층촬영(SPECT) 등 의료용 방사선 영상기기의 국산화에 연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의료용 방사선 영상기기는 대당 가격이 20~50억원이나 되는 고가의 장비로 GE, 지멘스, 필립스 등 외국 글로벌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실정이다.

방사선기기연구부 하장호 박사팀은 이 같은 국산화의 선봉에 서 있는 연구팀이다. 오는 2015년까지 암 진단용 핵의학 영상장치의 국산화에 도전장을 던졌다.

“이 목표의 달성을 위해 우선적으로 방사선 센서의 소재 발굴 및 센서 개발을 올해 안에 완료할 계획입니다.”

하 박사에 따르면 방사선의 투과력을 이용해 사람의 몸이나 화물 내부를 볼 수 있는 방사선 영상기기의 핵심기술은 방사선에 반응하는 반도체 소재와 이를 활용한 반도체 영상 센서 제작 기술, 고속 전자신호 처리 및 영상화 기술, 시스템화 기술 등이다. 이중 방사선 센서는 국산화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확보해야할 원천기술에 해당한다. 영상화 및 시스템화 분야는 우리나라도 관련기술을 갖고 있지만 소재와 센서 분야의 기술이 없어 국산화를 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사선이 특정 물질을 통과하면 물질의 원자에 에너지를 전달, 전자의 전리(이온화)나 들뜸 현상을 일으킵니다. 이런 전자와 이온을 외부로 인출해서 방사선을 측정하는 것이 방사선 센서가 하는 일이에요. 국산화에 성공한다면 수입제품 대비 절반가격으로 제품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연간 1조원 대의 수입대체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센서의 소재로는 기체, 섬광체, 반도체 등이 쓰이며 CdZnTe 반도체를 활용할 경우 방사선의 효율과 영상품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게 하 박사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지난 2007년 방사선 센서 원천기술 연구개발에 착수, 2009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CdZnTe을 지름 2인치(5㎝)의 대구경 단결정으로 성장시키는데 성공했다. 올 하반기 중 수율(收率)을 한 단계 끌어올려 경제성을 향상시킨 지름 3인치(7.6㎝) 이상의 CdTe 및 CdZnTe 반도체 단결정을 개발하고, 이를 이용해 방사선 센서를 제조하여 국내외 수요자들을 통해 성능평가를 받을 예정이다.

“소재부터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수입의존도가 워낙 높아 국산화에 성공하더라도 실제 공급이 이뤄지기까지는 글로벌 기업들의 직·간접적 방해를 이겨내야 할 겁니다. 쉽지 않은 싸움이겠지만 반드시 해내야하는 일이에요.”

차세대 방사선 영상기기 시장 선점

이와 함께 하 박사팀은 차세대 방사선 영상기기 시장에 글로벌 기업보다 빠르게, 혹은 적어도 동시점에 진입할 수 있도록 차세대 방사선센서용 소재의 후보 물질인 요오드화 제2수은(HgI2), 브롬화티탄(TIBr)을 이용한 연구도 2017년 완료를 목표로 병행하고 있다. 기존 방사선 영상기기에서 범했던 우를 차세대 방사선 영상기기에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 이는 막대한 신규 시장을 선점, 국가 신성장동력 창출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일례로 방사선 3차 원 광자 추적형 PET(Compton-PET)는 기존 방사선 영상장치보다 이론상 180% 정도 감도의 증가가 가능합니다. 단일 광자의 위치를 실시간 추적함으로써 지금과 같은 2D 이미지가 아닌 3D 동영상으로의 변환이 가능하죠. 이 영상을 보면서 진단과 동시에 치료를 할 수 있어요. 개발에 성공한다면 PET와 CT(단층촬영) 분야 다국적 기업들과 경쟁할 기술기반이 마련되는 것은 물론 방사선 기반 헬스케어 기술을 선도하며 막대한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방사선기기연구부는 국산화 과정에서 확보한 기술을 바탕으로 공항이나 항만에서 화물 검색에 활용되는 보안검색용 방사성 영상기기 개발 계획도 갖고 있다.

“방사선 보안검색 스캐너는 각종 수출입 컨테이너들을 직접 열어보지 않고 빠른 시간 내에 내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일종의 컨테이너 X-레이인 셈이죠. 저희는 여기에 더해 컨테이너 속 물체가 무엇인지까지 알려줄 수 있는 스캐너 개발을 목표로 그 핵심부품인 고주파 가속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방사선 센서 소재의 경우 천체가 발산하는 방사선을 이용해 우주를 관측하는 우주망원경이나 햇빛의 파장에 최적화돼 효율을 극대화한 차세대 태양전지의 소재로도 활용가치가 뛰어나다.

“인구 고령화와 무혈 및 무통 진단·치료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면서 전 세계 방사선 영상기기 시장규모가 70조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시장성장률이 연 17%가 넘을 만큼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어요. 우리나라가 방사선 영상기기 강국으로 부상하는 그날까지 원천기술 개발에 전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방사선 육종 신산업 창출

방사선 영상기기를 제외하면 방사선육종 기술 개발이 ARTI의 주요 미션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방사선육종연구팀에 의해 벼, 콩 등의 식량작물과 기능성 작물, 화훼류의 신품종 종자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강시용 팀장에 따르면 그 과정은 이렇다. 먼저 종자나 묘목에 방사선을 조사(照射)해 유전자 및 염색체 변이를 유발한다. 이후 병충해에 강한 품종, 생육이 빠른 품종, 영양분 함량이 많은 품종 등 우수 형질을 가진 돌연변이체를 선별하여 형질 고정화 과정을 거치면 신품종이 탄생하게 된다.

“방사선육종은 인위적으로 외래 유전자를 이식하는 유전자변형작물(GMO) 기술과 달리 안전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육종법입니다. 때문에 식용작물, 화훼류, 과수류의 개량과 신품종 개발에 활발히 이용되고 있습니다.”

실례로 ARTI의 경우 2000년대 쌀 소비량 감소로 자급률이 100%를 웃돌면서 벼에 대한 방사선 돌연변이 육종법 접목을 본격화됐다. 육종의 초점은 과거와 같은 다수확 품종이 아닌 고품질, 고기능성 품종의 개발이었다. 그 결과 지금껏 ‘원평벼’, ‘원광벼’, ‘원미벼’, 그리고 ‘흑선찰벼’ 등을 개발해 품종보호권을 획득했다.

이들 4개 품종은 화성벼, 섬진벼, 추청벼 등 기존 품종의 종자에 200~300Gy(그레이)의 방사선(감마선)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개발됐는데, ARTI는 작년 3월 이들을 포함해 방사선 육종기술로 탄생시킨 벼 10종과 콩 1종을 전국 농가에 무상 분양하기도 했다.

또한 방사선 육종기술로 재배된 분재용 무궁화 ‘꼬마’의 실시권을 기업에 이전해 상용화가 이뤄지고 있고, 친환경 산업소재이자 사료작물로 각광 받고 있는 케나프와 관련해서도 국내에서 채종이 가능한 신품종 ‘장대’의 개발을 완료하고 품종보호권 획득을 위한 품종심사가 진행 중이다.

“내년 완공 예정인 방사선육종연구센터의 설립에 맞춰 우수 신품종 종자의 농가 보급 확대에 주력하고자 합니다. 덧붙여 중장기적으로 유용한 유전자원을 개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함으로써 이를 필요로 하는 생명과학자와 육종가들에게 보급하는 유전자은행으로서의 역할도 강화해 나갈 계획입니다.”





생명硏 전북분원, BT 연구거점 부상

ARTI와 5분 거리에 위치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전북분원. 4만3,155㎡의 부지, 건물연면적 1만5,681㎡의 공간에 조성되고 있는 미래 우리나라 BT 연구의 거점기지가 바로 이곳이다.

전북분원에는 응용미생물연구센터, 감염제어소재연구센터, 생물산업공정연구센터 등 세 개 연구센터가 들어서게 되는데 생명연은 전북이 국내 발효산업의 최대 집적지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에서 총 2단계로 전북분원 조성사업의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1단계는 생물대사물질산업과 연계한 바이오소재 기반구축 및 연구역량 강화, 2단계는 R&D 산업화 기반 구축이 키워드다.

이중 1단계는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친환경 바이오소재 R&D허브센터 구축 사업을 끝으로 완료될 예정이다. 이 센터는 바이러스성질병의 예방·치료를 위한 바이오소재 기술 개발을 맡게 되는데 무균사육시설, 원격감시제어시스템, 감염확산방지설비, 특수저장고 등 첨단설비들이 설치된다. 이를 위해 2010년부터 올해까지 총 188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특히 생명연 전북본원은 1단계 조성사업이 이뤄지고 있는 중에도 논문 176건, 특허출원 215건, 기술이전 13건 등 우수 연구성과를 다수 도출해내며 전북을 BT 연구의 거점기지로 급부상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가장 대표적 성과는 바이러스 감염 및 염증 제어용 생물소재 개발과 미생물 균주를 활용한 생균제 생산기술이다.

바이러스 감염 및 염증제어용 생물소재를 개발한 노문철 박사팀은 2010년 정액기술료 100억원에 관련기술을 이전했고, 김철호 박사팀의 생균제 생산 기술도 지난해 기술이전이 이뤄져 군산 일대에 생균제 생산 인프라 구축이 진행되고 있다. 김 박사팀은 올 하반기 본격적인 생균제 생산을 기대하고 있다.

김승호 생명연 전북분원 소장은 “2단계 조성사업까지 완료되면 전북분원은 미생물 기반 분자생물공정분야에 특화된 세계적 수준의 우수연구기관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세대 방사선 영상기기 개발에 성공한다면 다국적 기업들과 경쟁할 기술기반이 마련되는 것은 물론 방사선 기반 헬스케어 기술을 선도하며 막대한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traction of Jellyfish Collagen

첨단방사선연구소 임윤묵 박사팀은 최근 방사선 조사 기술을 이용, 해파리에서 콜라겐을 대량 추출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바다의 골칫덩이인 해파리를 의약품이나 화장품 등의 원료 소재로 활용할 길이 열린 것.

임 박사팀은 노무라입깃해파리, 보름달물해파리 등 국내 연안에서 수거한 해파리를 분쇄하여 산(acid) 처리한 상태에서 25kGy(킬로그레이)의 감마선을 2시간가량 조사했다. 그러자 방사선이 해파리 몸체의 지질과 콜라겐의 사슬을 끊어 기존 방법에 비해 콜라겐 추출 효율이 4배 이상 높아졌다.

해파리의 콜라겐은 돼지 껍데기, 닭, 쥐 등 육지동물에서 추출한 콜라겐과 달리 세포 독성이나 면역 거부반응의 위험이 없지만 추출이 어려워 그동안 대량상품화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연구팀은 향후 하이드로겔 제조 기술 등을 접목, 해파리에서 추출한 콜라겐을 활용해 조직 재생 소재 등의 의료용 소재와 고부가가치 바이오 소재 개발을 위한 추가 연구를 수행할 계획이다.

한편 해파리 콜라겐은 원천 소재와 생체재료 제조기술에 활용 가능성이 높은 고부가가치 자원으로 이와 관련한 해양바이오물질 세계시장 규모가 2015년 4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CdZnTe 반도체 카드뮴(Cd), 아연(Zn), 텔레늄(Te) 등 세 가지 원소를 합성한 화합물 반도체.
품종보호권 (品種保護權) 신품종 개발자 및 육종자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지적소유권. 품종 분야의 특허권이라 할 수 있다.
실시권 품종보호권자가 육성한 품종을 생산·판매할 수 있는 권리.
케나프 (kenaf) 아프리카와 인도가 원산지인 아욱과의 한해살이풀. 양마(洋麻)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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