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25세의 전기공학자 롭 라인하트는 올해 1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일반적인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 식사라고 할 만한 것은 한 달에 한 번이 전부였다. 물론 그가 금식이나 다이어트를 한 것은 아니다. 평범한 음식이 아닌 ‘소일런트(Soylent)’를 먹었을 뿐이다.
소일런트는 라인하트가 자신의 집 주방에서 직접 만든 식사 대용 영양소 음료다. 그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이 백색 음료는 인간의 식생활에 변혁을 일으킬 음식물 대체재다.
인간은 생리학적으로 종교적 신앙에 가까울 정도로 음식에 집착한다. 이런 집착은 무수한 문화적, 상업적, 미학적, 역사적 요인들이 얽혀진 결과물이다. 그러나 라인하트에게 음식은 인체라는 기계를 움직이기 위한 연료에 불과하다. 그것도 돈과 (요리)시간이 있어야만 넣을 수 있는 연료다.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출신의 라인하트는 졸업 후 무선통신 기업을 창업했다. 하지만 작년 여름 파산한 뒤 돈을 아끼기 위해 값싼 라면과 핫도그로 연명해야 했다.
점차 그의 건강은 나빠졌고, 모든 게 귀찮아졌다. 장보기도, 요리도, 설거지도. 그래서 매일 세 번이나 요리하고, 먹고, 치워야하는 고생 없이 식생활을 영위할 방법을 찾기로 결심했다.
“3개월간 생화학 및 영양학 교과서들을 탐독하면서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영양분의 목록을 작성했습니다. 각 영양분을 얻을 방법도 찾아냈어요. 대부분이 화학물질인데 단백질은 탈지유에서 추출한 분리유청단백질(WPI), 탄수화물은 식이섬유의 원료인 말토덱스트린(maltodextrin)에서 얻는 식이었죠. 아연(Zn), 크롬(Cr) 같은 미량영양소도 꼼꼼히 체크했습니다.”
이후 라인하트는 이베이, 아마존 등의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목록에 있는 식품첨가물과 화학약품 분말들을 주문했다.
기존에도 그처럼 식사 대용 목적의 음료를 개발하려 했던 사람들은 다수 존재했다. 하지만 완벽한 대체재는 나오지 않았다. 하나 같이 장기간 섭취하면 건강에 해로웠고, 가격적인 부담도 컸다. 과연 모든 영양분을 함유한 유동식(流動食)으로는 음식을 대체할 수 없는 걸까. 전문가들은 영양학적으로 충분히 타당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1965년 미 국립보건원(NIH)은 우주비행사가 유동식만으로 생존이 가능한지 파악하기 위해 교도소 재소자 중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19주일간 실험을 실시했었다. 실험결과 피실험자들은 더 건강해졌고, 행복감도 커졌다. 다만 맛이 너무 없다는 이유로 우주비행사들이 도입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윽고 1월 12일, 라인하트는 각 분말들을 필요량만큼 계량해서 물을 부어 혼합했다. 감동에 젖어 첫 작품을 마시던 중 그는 한 가지 실수가 떠올랐다. 소화흡수를 조절해주는 섬유질을 빠뜨렸다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800칼로리 전부가 흡수되면서 기분이 좋아졌지만 그만큼 빠르게 힘이 빠지며 탈진해버렸죠.”
실수를 교훈 삼아 수차례의 성분 조절을 거친 끝에 그는 제대로 된 유동식, 즉 소일런트의 제조에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칼륨(K) 중독으로 심계항진까지 얻었지만 말이다.
현재 그는 다른 음식을 거의 먹지 않고 소일런트만 하루 3~4회 마시며 살아가고 있다. 제조해서 마시고 치우기까지 1분이면 족하다. 특히 소일런트만으로도 충분히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음을 알리고자 수시로 혈액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웹사이트(robrhinehart.com)에 공개하고 있다.
웹사이트에는 그의 생활상 변화도 기록돼 있는데 식품 구입 및 요리 과정이 필요 없어 큰돈을 절약했다. 하루 2,692칼로리의 소일런트 섭취를 위해 쓰는 돈은 월 154달러 82센트. 예전에는 매달 500달러 이상이 지출됐었다. 게다가 그는 정력 증진과 피부 개선이 나타났고, 비듬도 줄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다. 많은 추종자들이 생겼지만 즐겁게 마시고 암이나 걸리라는 악담을 이메일로 보낸 사람도 있다. 영양학자들은 어떨까. 미국 영양·식이요법학회의 대변인인 조이 두보스트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회의적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은 결국 모두 화학물질입니다. 그런 점에서 소일런트의 개념에는 문제가 없어요. 하지만 자신의 조제법이 모든 사람에게 통한다는 라인하트의 주장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렇다는 과학적 증거도 없어요. 심지어 맛까지 정말 형편없더군요.”
그럼에도 소일런트의 옹호자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일례로 미국 인디애나주의 화학교사인 다니엘 도우는 지난 수개월간 웹사이트에 공개된 제조법을 참고해 만든 소일런트 말고는 어떤 음식도 먹지 않았다.
이에 힘을 얻어 지난 5월 라인하트는 소일런트의 대량생산을 위해 10만 달러를 목표로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했다. 한 달은 걸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단 2시간 만에 목표액이 달성됐고, 7월 20일 현재 모금액이 80만 달러를 넘어섰다.
그는 기아와 빈곤에 시달리는 제3세계 국가에 소일런트를 원조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돈을 내고 구입하는 고객도 필요하다. 그에 따르면 미군이 상당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고 한다.
소일런트 제조법
+ 말토덱스트린(maltodextrin) 250g : 탄수화물
+ 귀리(oat) 분말 125g : 탄수화물, 섬유질
+ 분리유청단백질(WPI) 60g : 단백질
+ 중쇄중성지방(MCT) 65g : 지방
+ 글루콘산 칼륨 27g : 전해질
+ 탄산칼슘 2.5g : 골밀도 유지
+ 리코펜(C40H56) 500mcg : 항산화제
+ 염화나트륨 5.8g : 전해질
+ 구리(Cu) 2㎎ : 콜라겐 형성
+ 바나듐(V) 100mcg : 포도당 제어
*라인하트는 전체 성분을 공개하지 않았으며, 공개된 성분도 자주 업데이트되고 있다.
소일런트 이 이름은 라인하트가 좋아하는 1973년작 공상과학영화 ‘소일런트 그린(Soylent Green)’에서 따왔다.
심계항진 (palpitation) 자신의 심장 박동을 느끼는 증상. 심장의 두근거림이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되면 심계항진을 의심해봐야 한다.
크라우드펀딩 (crowd funding) 소셜미디어, 인터넷 등의 매체를 활용해 다수 대중들로부터 십시일반으로 투자금을 모으는 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