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용: 비공개
퇴직교사인 톰 웨스트는 망원경, 제재소 등 오랫동안 자신이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왔다. 미국 인디애나주에 있는 자신의 집도 직접 지었다. 이런 그가 얼마 전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를 역작을 내놓았다. 중량 30톤, 전장 17m의 외돛 요트 ‘신뢰(Faith)’호가 그것이다.
대부분의 여가용 요트는 유리섬유로 제작되며 전장은 8~12m 정도다. 2층 버스보다도 긴 신뢰호가 중형차라면 일반 요트는 경차에 불과한 셈이다. 특히 이 요트에는 풍력발전기가 장착돼 있으며, 선실의 문과 선체를 강철로 제작해 항해 중 해적의 공격을 받아도 끄떡없다.
“선실 출입문에 6.3㎜ 두께의 철판을 넣었어요. 이 문을 지나지 않고는 조타실로 들어갈 방법이 없죠. 해적들이 요트에 올라타더라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겁니다. 선실 안에는 두 개의 욕실과 12인용 침실, 휴게실, 그리고 가정집도 부럽지 않은 주방이 있습니다.”
웨스트는 항해 경험이 거의 없다. 선박 제작 경험이 전무한 것이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 그가 이토록 큰 요트를, 그것도 인근에 바다라고는 전혀 없는 농촌마을에서 DIY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언젠가 하와이로 휴가를 갔을 때 본 아름다운 요트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당시 웨스트는 주거용으로 사용해도 될 만큼 큰 요트를 제작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결국 ‘브루스 로버트 532’ 요트의 설계도를 구해 자신의 취향에 맞춰 고쳤다.
워낙 대대적 프로젝트였던 탓에 웨스트는 신뢰호의 제작에 아내와 동생, 처남을 끌어들였다. 2년이면 충분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건조에는 무려 5년이 걸렸다.
건조 작업은 그의 작품 중 하나인 집 앞마당의 테니스코트에서 이뤄졌는데 가장 먼저 플라즈마 토치를 사용해 철제 빔을 용접, 뒤집어진 형태로 선체 골조를 제작했다. 이후 두 대의 기중기로 선체를 똑바로 세우고, 외관과 내부를 하나씩 만들어갔다.
“가능한 모든 걸 직접 만들었습니다. 스테인리스강 난간, 밧줄걸이(cleat), 심지어 20m 높이의 돛대도 저희 땀의 결실이에요.”
온갖 고난을 넘어 올해 초 건조를 마쳤지만 또 하나의 장벽이 있었다. 바로 신뢰호를 물에 띄우는 일이었다. 멕시코만과 연결된 물길 중 웨스트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오하이오강이 무려 240㎞ 밖에 있었던 것이다.
“꼬박 하루 동안 신뢰호를 견인한 채 고속도로를 주행한 뒤 일반도로를 따라 오하이오강에 접한 신시내티 항구까지 가야했어요. 이 일을 해주겠다는 견인회사를 찾는 데만 한 달이 걸렸죠.”
웨스트가 이 요트를 ‘믿음’이라고 명명한 까닭은 반드시 완성할 수 있다는 믿음, 절대로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의 순간은 올 4월말 찾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호를 밀어서 오하이오강에 띄웠고, 그는 시동을 걸었다.
“그 순간 헤드 개스킷(head gasket)이 날아가 버리더군요. 파이프 누설까지 일어나 처녀항해는 오점으로 남았어요.”
그러나 웨스트는 모든 문제를 해결했고, 강을 따라 바다로 나아갔다.
“현재 저희 부부의 꿈은 믿음호를 타고 여러 대륙을 여행하는 거예요. 정확한 항로는 그때그때의 호기심과 바람이 정해주겠죠. 이 녀석 때문에 생명이 몇 년은 더 연장된 것처럼 활력이 넘친 답니다.”
[HOW IT WORKS]
길이가 17m나 되는 요트의 부품을 DIY하는 것은 장난이 아니었다. 만든 부품을 조립·설치하고 유지·보수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또한 큰일이었다. 웨스트가 5년을 투자해 개발한 신뢰호의 무수한 시스템 중 극히 일부를 소개한다.
동력장치 1,890ℓ의 연료통과 100마력급 디젤 모터를 채용, 페이스는 바람의 도움 없이도 1,600㎞를 항해할 수 있다.
항법 시스템 [A] 컴퓨터로 제어되는 자동조종장치, 레이더시스템, 소나 스캐너, GPS, 자이로스코프 나침반 등에 힘입어 신뢰호는 선장 없이도 목적지까지 찾아갈 수 있다.
해적 방어 신뢰호의 선실 출입문에는 두터운 강철판이 삽입돼 있으며, 강철 잠금장치도 부착돼 있다. 조타실로 가려면 반드시 이 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해적의 공격을 받을 경우 선실로 들어가 문을 잠근 채 구조요청을 하면서 안전한 해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
전력 공급 [B] 요트 후방에 부착된 2기의 소형 풍력발전기가 조명장치와 전자기기 등에 필요한 전력을 생산·공급한다. 물론 1만㎾급 디젤발전기가 있기 때문에 풍력발전의 도움 없이도 전력사용량 100%를 감당할 수 있다.
인테리어 [C] 웨스트는 자신이 소유한 20만㎡ 면적의 숲에서 호두나무를 벌목해 자신이 만든 제재소에서 가공했다. 이렇게 선실의 캐비닛, 조타실 제어판의 패널, 테이블 등 원목 내장재 및 가구들이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급수 활성탄 여과필터와 자외선 살균기로 이뤄진 살균정수시스템이 시간당 26~34ℓ의 바닷물을 음용수로 바꿔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