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혁명] 자율주행 자동차 ①

ROBOT DRIVER
ROBOTS CAN ALREADY OUTDRIVE HUMANS.
NOW EVERYONE NEEDS TO GET OUT OF THEIR WAY.

매일 아침 8시. 앤서니 레반도우스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 있는 집을 나와서 흰색 렉서스의 운전석에 몸을 구겨 넣고 직장으로 출발한다. 이는 전 세계의 많은 직장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지만 사실 앤서니의 출근길엔 남들과 다른 엄청난 특별함이 있다. 그에게는 운전기사가 있는데, 사람이 아닌 로봇이라는 점이다. 그는 구글 자율주행 자동차 프로젝트의 매니저다.

여느 날처럼 집 앞의 진입로를 빠져나와 도로에 들어서는 순간 그의 자동차는 기다렸
다는 듯 내장 GPS와 센서들을 활용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핸들을 잡고 차량을 제어하는 것은 앤서니였고, 운전석 앞 데시보드의 헤드업디스플레이(HUD)에는 흰 바탕에 검은색 글자로 ‘수동’이라는 단어가 표시돼 있었다.

이윽고 차량이 도시고속도로에 들어서자 HUD는 컬러로 된 그래픽 이미지로 바뀌었다. 도로를 도식화해 표현한 이 이미지에는 굵은 흰색 수직선 2개가 도로 전체의 경계를, 3개의 점선이 수직선 2개의 사이를 4등분하며 차로를 나타냈다. 그리고는 ‘자율주행 차로로 진입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송출되며, 도로의 양쪽 가장자리 차로 2개가 녹색으로 변했다. 앤서니의 차량이나 주변의 자동차들은 작은 흰색 사각형으로 표현됐다.

앤서니는 HUD의 지시대로 녹색 차로에 진입한 뒤 핸들에 있는 ‘온(On)’과 ‘오프(Off)’ 버튼으로 손을 가져가 ‘온’을 눌렀다. 즉시 ‘자율 주행’이라는 음성메시지가 들리면서 차량의 통제권이 ‘구글 쇼퍼(Google chauffeur)’라는 소프트웨어로 넘어갔다. 이제 더 이상 앤서니가 할 일은 없다. 핸들에서 손을, 페달에서 발을 떼고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1970년대부터 이런저런 형태로 존재했었다. 하지만 현대적 의미의 자율주행시스템 개발은 펜타곤 산하 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2004년과 2005년, 2007년 개최한 자율주행자동차 경진대회인 ‘그랜드 챌린지’에 의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 대회 참가팀들은 현재 세계 곳곳에 자율주행 연구소를 세우고,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여기에는 구글과 대학 연구팀 외에도 아우디, 폭스바겐, 토요타, GM, 볼보, BMW 등 다국적 완성차메이커 대다수가 포함된다.

이 같은 3번의 DARPA 경진대회가 남긴 최대 성과는 단연 3D 레이저 레이더(LiDAR)다. 구글을 위시한 모든 자율주행자동차가 기본적으로 이 장비로 주변 물체를 식별한다. 특히 올해는 자율주행 기술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질 전망이다.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도로 상의 다른 차량들에게 자신의 위치 정보를 발신하는 차량 탑재형 비컨의 표준을 발표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 것.

이 비컨의 보급이 확대되면 앞차가 급제동하거나 옆 차선에서 급하게 끼어들 때 경보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정보를 바탕으로 자율반응 프로그램의 설계가 가능하다. 캘리포니아 주 마운틴 뷰에 위치한 구글 본사까지 앤서니의 통근길은 72㎞ 정도다. 구글 쇼퍼가 완벽하다면 그는 운전석에 앉을 필요도 없다. 뒷좌석에 앉아 잠을 청해도 된다. 그러나 차량의 통제권을 넘긴 후에도 그는 운전석에 앉아 있어야 한다. 쇼퍼가 감당키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다시 핸들을 잡아야하는 탓이다. 또 구글의 정책에 따라 고속도로에서와 달리 주택가나 이면도로 등에서는 쇼퍼가 아닌 사람이 직접 운전해야 한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운전자는 많은 이익을 누릴 수 있다. 일례로 앤서니는 약 1시간의 통근길에서 처음과 마지막, 인터체인지 구간 등 14분 동안만 직접 운전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긴장을 풀고 편하게 있으면 된다.

“자율주행은 지금과는 다른 삶을 열어 줍니다. 완벽히 일할 준비가 된 상태에서 활력 넘치는 모습으로 일터에 도착하게 되죠.”

구글의 자율주행 자동차 프로젝트는 아직 소규모의 실험용 차량을 운행 중이지만 직원들의 출퇴근 임무를 문제없이 처리하고 있으며, 지금껏 80만㎞ 이상의 일반도로를 자율 주행하는 동안 충돌사고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구글이 2018년 자율주행 자동차의 상용화를 천명한 만큼 수년만 기다리면 일반인도 자율주행의 참맛을 느낄 수 있을 전망이다. 그 과정에서 구글과 쇼퍼는 호된 실험을 감내하고, 많은 기술적·사회적 난제들을 풀어내야 하겠지만 말이다.



현재 구글의 쇼퍼는 실리콘밸리에서 비공개 베타 테스트가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구글 직원들의 표현을 쓰자면 ‘개밥 먹기(dogfooding)’를 하고 있다. 앤서니처럼 매일 아침 똑같은 경로로 차량이 이동하도록 한다는 뜻이다.

구글은 앞으로 실제적인 사용자 경험(UX)의 분석을 위해 일반인 운전자의 손에 자율주행 자동차를 맡기고 싶어 한다. 또 이를 통해 자율주행 기능이 통계적·실질적으로 안전하다는 게 입증되기를 희망한다. 여기서 말하는 안전이란 완벽하다거나 사고가 원천 봉쇄된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인간이 운전하는 것 보다는 안전하다는 의미다.

현재까지 확보된 데이터에 따르면 쇼퍼의 초기버전은 평균 5만7,600㎞를 주행할 때마다 1번씩 사람의 개입이 필요한 실수를 저지른다. 다만 이 실수는 사고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며, 주차된 트럭을 건물로 인식하는 등 레이저 레이더의 탐지 내용을 잘못 해석하는 경우를 말한다. 쇼퍼는 또 초당 수백 차례 진단·점검을 수행하는데 매 480㎞마다 사소한 문제들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와 관련 자율주행 자동차 프로젝트 책임자인 크리스 엄슨 박사는 올초 미 정부관계자들 앞에서 “구글은 극도로 높은 안전기준을 설정해놓고 있다”며 “극소수를 제외한 문제들 대부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쇼퍼가 감당키 어려운 상황에서 인간 운전자에게 통제권을 넘겨줄 가장 적합한 방법은 무엇일까. 이 부분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외부상황에 집중해서 정확한 상황을 인식하려면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따라서도 다르기 때문이다. 10초가 될 수도, 20초가 될 수도 있다.

어쨌든 현재까지 쇼퍼의 주행 기록은 거의 완전무결하다. 구글의 귀책사유로 보이는 사고기록은 단 1건 뿐이다. 2년 전 본사 인근 도로에서 앞에 서 있던 토요타의 프리우스를 추돌한 것. 그나마 자율주행 모드가 아닌 수동모드에서 운전자의 실수로 일어난 사고여서 쇼퍼에게는 책임이 없다.

미국인 운전자들은 평균 80만㎞마다 1건씩 사고에 휘말린다. 부상을 당하는 사고에 연관될 확률은 208만㎞당 1건, 치명적 사고의 확률은 1억4,400만㎞당 1건이다. 즉 구글 자율주행 자동차가 80만㎞를 무사고로 주행했다는 사실은 쇼퍼가 적어도 인간 수준의 안전성은 지니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럼에도 구글은 아직 그 같은 취지의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이는 쇼퍼가 운전자들이 흔히 접하는 진짜로 혹독한 통근 환경까지는 접해보지 않았다는 앤서니의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글은 자율주행 자동차 프로젝트에 이례적일 만큼 기밀을 유지하고 있다. 2009년에 본격화됐지만 블로그를 통해 프로젝트에 대한 발표가 이뤄진 것은 1년이나 지난 뒤였다. 완성차 업계는 그리 놀라는 분위기가 아니었지만 크라이슬러가 불현듯 신형 닷지 차저의 TV 광고를 이용해 구글을 공격해왔다. 광고 속 성우의 내레이션은 이랬다.

“검색엔진 회사에서 손을 대지 않고 운전하고, 스스로 주차하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개발한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자주 보던 것이죠. 그 영화의 결말은 로봇들이 에너지를 얻고자 인간들을 구속하는 겁니다.”

구글은 자신들이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악당처럼 몰리고 있는 상황에 맞서 행동을 취해야 했다. 로비스트를 동원해 국회의원들을 만났고, 엔지니어들을 미국 전역과 해외로 보내 우호적인 여론 조성에 힘썼으며, 대형 보험사들과 접촉해 자율주행 자동차가 안전성하다는 데이터를 내밀었다.

그리고 닷지의 광고가 방송된 지 1년 후 앤서니는 미국자동차공학회(SAE)의 기조 연설자 자격으로 미국 자동차산업의 상징인 디트로이트를 찾았다. 크라이슬러를 제외한 자동차기업들을 아군으로 만들려는 구글의 정책에 맞춰 그는 연설을 풀어나갔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검색서비스 소셜네트워크, 지도, 음성인식, 그리고 이제는 쇼퍼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동차 기업들이 운영 체제 전체를 직접 만드는 대신, 자신만의 독특한 사용자 경험 창출에 더 주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당시 구글과 각각의 자동차 기업들 사이에 밀실 교섭이 있었고, 많은 자동차 기업이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에 발을 디뎠다. 구글이 소프트웨어를 공짜로 준다고 했더라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당시 거래의 실제 조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자동차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자율주행 기술 구현을 위해 최대 비용 투자는 쇼퍼가 아니라 쇼퍼의 운용에 필요한 핵심장비인 레이저 레이더였다. 기본적인 작동원리는 레이더나 소나와 유사하지만 최신 레이저 레이더가 정확성이 훨씬 뛰어나다. 1초당 최대 130만 복셀의 3D 이미지 정보를 생성할 수 있다. 이러한 복셀 100만개 정도를 하나로 모으면 ‘포인트 클라우드(point-cloud)’가 된다. 이는 1:1 스케일로 매핑된 3D 모델로서 ㎝급의 정확도를 자랑한다.

그러나 구글의 레이저 레이더 1개의 단가가 무려 7만5,000~8만5,000 달러에 달한다. 차체를 포함해 자율주행 자동차의 다른 모든 구성품을 합한 가격보다 비싸다. 이의 설계자는 미국의 레이저·음향전문기업 벨로다인의 설립자 데이비드 홀이다. 업계의 소문에 의하면 구글을 가장 진지하게 바라보는 기업은 다름 아닌 포드자동차다. 홀도 얼마 전 굴지의 완성차메이커가 자신에게 지금보다 견고하고 표준화된 차세대 레이저 레이더를 개발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고 확인해줬다. 또한 그 회사는 차내에 숨길 수 있으며, 1,000달러 이하의 가격을 원했다고 했다. 시제품이 마음에 들면, 4년 내에 1,000대를 구입하겠다는 약속도 했다고 한다. 홀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충분한 시간과 자원이 있다면 1,000달러짜리 모델 개발은 자신이 있었지만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죠. 저희 입장에서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출시되고, 레이저 레이더에 대한 주문이 본격화돼서 연구개발 투자비를 회수한 후에 차기모델을 내놓아도 늦지 않아요. 그 회사의 제안은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말도 안 되는 얘기였어요.”

이러한 경제적 손익계산과는 별도로 구글은 5년 내 자율주행 자동차를 출시하겠다는 약속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문제는 구글이 자동차 제조사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새로운 자동차를 만드는 데는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완성차 메이커들이 기존의 구성품을 이용해 설계에 들어간다고 해도 2017년까지는 자동차 매장에 등장할 가능성이 낮다.

구글은 무슨 계획을 갖고 있는 걸까. 앤서니는 SAE에서의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기술이 채용된 자동차를 만나려고 10년이나 기다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저는 애프터마켓에서 저희 기술의 씨를 뿌리고, 고객들이 채택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 시대의 시작을 새 세대의 자율주행 자동차 고객들의 손에 맡기겠다는 말이었다. 구글은 이 이상은 어떤 코멘트도 하려 하지 않고 있다.



라이더 (LiDAR) light detection and ranging의 약자.



[AUTONOMY]
자율주행 자동차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구글의 자율주행 자동차는 현존 자율주행 자동차 중 가장 첨단 기술이 접목돼 있다. 운전자가 자율주행 모드를 활성화시키면 브레이크, 액셀러레이터, 조향장치의 제어가 내장 컴퓨터로 이관된다. 이때 차량 지붕에 설치된 레이더 레이저가 360도 전방향으로 64개의 레이저빔을 발사해 초당 100만번 이상 주변을 스캔하고, 이 데이터로 주변 지형지물의 3D 지도가 매핑된다. 이를 전신주, 신호등, 건널목 등 고정 인프라들의 위치가 표시된 내비게이션의 지도 정보와 비교함으로써 소프트웨어가 한층 신속히 보행자, 자전거, 다른 자동차처럼 이동하는 물체를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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