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마음 건강 살리기 프로젝트 정혜신 대표의 ‘내마음보고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직장인 마음 건강 되살리기’에 나섰다. 직장인 500명을 선정해 마인드프리즘이 만든 심리치유 프로그램 ‘내마음보고서’를 무료로 체험하게 하고 심리 상담을 통한 치유 기회를 주는 캠페인이다.

하제헌 기자 azzuru@hk.co.kr
사진 윤관식 기자 newface1003@naver.com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죠.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를 다시 느끼게 합니다. ‘내마음보고서’는 사격으로 치면 영점 조준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게 ‘내마음보고서’의 역할입니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심리치유 전문 기업인 마인드프리즘을 운영하고 있는 정혜신 대표는 ‘내마음보고서’에 대해 이렇게 요약해 설명했다.

‘내마음보고서’는 2004년 문을 연 마인드프리즘이 그 동안 축적한 심리분석 노하우와 과학적인 분석 시스템을 바탕으로 지난해 개발한 개인 심리치유 프로그램이다. 마인드프리즘 홈페이지에 ‘내마음보고서’를 신청하면 우편으로 검사지가 날라온다. 검사지를 받아 펼쳐 보면 귀찮다는 생각이 떠오를 수 있다. 우선 공백이 있는 여러 문장을 보여 주면서 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적으라고 하고, 살아오면서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5가지 일들을 묻는다. 특정한 그림을 그려보라며 한 페이지는 통으로 비워놨다. 이걸 끝내면 600여 개에 달하는 검사지 문항이 기다리고 있다.

꼬치꼬치 내밀한 질문을 한다. 검사지를 완성하고 마인드프리즘으로 돌려보내면 100페이지 정도 분량의 책을 한 권 받는다. 바로 내 마음 상태를 알려주는 나만의 ‘내마음보고서’다. 하얀색으로 된 작은 시집처럼 생긴 책 ‘내마음보고서’ 첫 장에는 검사를 받은 ‘내 이름’이 쓰여 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이야기로 가득 찬 책이기 때문이다. ‘내마음보고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성찰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힐링 도구’다.

‘직장인 마음 건강 캠페인’ 시작

비용은 8만 원이다. 8만 원을 쓰는 게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이 정도 심리 검사에 드는 비용은 보통 수백만 원이 든다. 비용이 8만 원으로 대폭 내려간 데엔 김범수 카카오 의장의 역할이 컸다. 현재 마인드 프리즘 1대 주주인 김 의장의 투자로 검사 비용을 대폭 낮출 수 있었다. 내처 두 사람은 더 의미 있는 일을 벌였다. 다양한 직업군에서 500여 명을 선정해 ‘내마음보고서’를 무료로 체험하게 하는 ‘직장인 마음 건강 캠페인’을 올해 7월부터 시작했다.

마인드프리즘은 ‘직장인 마음 건강 캠페인’을 위해 ‘내마음보고서’를 무료로 체험할 검사자를 매달 50명씩 인터넷으로 선발한다. 정 대표가 설명한다. “7월, 8월 모두 판매원·상담원 등 감정노동자를 대상으로 선발했어요. 신청서를 검토한 뒤 특별히 더 치유가 필요한 분들을 뽑았습니다. 이 분들은 ‘내마음보고서’를 체험한 뒤 ‘정혜신의 공개상담실’에서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집니다.” ‘정혜신의 공개상담실’은 사이코드라마와 심리상담의 중간 형태로 진행되는 치유 프로그램이다.

마인드프리즘에서는 이미 2008년부터 감정노동자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치유프로그램을 수행해 왔다. “서비스업에 근무하는 분들이 대부분 여성이에요. 저는 그들이 힘들어 한다는 것을 현장에서 봐 왔습니다. 그들은 보수를 받는 대가로 ‘나’의 핵심인 감정을 없애고, 억누르고, 차단하는 분들이죠. 우리사회에서 하위 계층을 두텁게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이 분들이 병들어서는 우리 사회가 건강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캠페인도 감정노동자를 대상으로 먼저 시작했습니다.”

캠페인은 감정노동자를 시작으로 방송인 및 연예인 등 엔터테인먼트 종사자와 성직자, 법조인, 사회복지공무원과 교사 등으로 대상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진행할 예정이다.

직장인들의 마음이 건강해야 대한민국의 마음이 건강해진다는 믿음이 정혜신 박사와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캠페인을 시작한 동기이다. 출근만 하면 무기력해지는 직장인 우울증, 실적이나 승진에 대한 부담, 미래에 대한 불안,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대부분 직장인들이 하나 이상 겪고 있을 증상이다.

정혜신 대표가 말한다. “현대 직장인들은 어느 때보다 스트레스 환경에 많이 노출돼 있어요. 기업의 구성원에게 적절한 진단과 치유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조직을 활성화하는 심리적 자원 보호가 어느 때보다 시급합니다.”

현재 약 1,7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직장인은 우리경제·사회의 허리를 이루고 있다. 가장 일을 많이 하고 열심히 하는 허리는 가장 먼저 이상이 생기는 부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경제적 사회적 압박 속에서 지쳐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6월 펴낸 ‘대한민국 직장인의 행복을 말한다’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OECD 36개국 중 27위로 최하위권에 속한다. 정신질환으로 진료를 받는 환자 수는 2010년 기준 약 231만 명으로 2004년 대비 1.5배 증가했다. 이 중 직장생활을 막 시작한 20대 직장인 가운데 스트레스로 인한 감정 변화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조울증 환자가 5년 새 46.4%나 증가했다.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자료를 보면 2011년 기준 우리나라 50대 남성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61.5명으로 여성 10만 명당 자살자 수 20.7명에 비해 3배나 높다. 한국 직장인의 정신건강 악화 정도가 우려의 선을 넘었다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마음에 대한 건강 검진 필요해

캠페인과는 별도로, 개인적으로 8만 원을 내고 ‘내마음보고서’를 경험한 사람들이 현재까지 1만 명을 넘었다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정 대표가 말한다. “내 마음에 대한 건강 검진은 대부분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습니다. 육체를 위해서는 건강 검진을 주기적으로 하죠. 몸이 불편하면 바로 느껴지니까요.

마음은 불투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을 아는걸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내마음보고서’가 마음을 진단하고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내마음보고서’는 남들과 다른 나만의 심리적 특성 5가지를 알려준다.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내면의 심리를 접하고 나면 스스로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심리적 단서를 찾아서 자기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내마음보고서’ 분석에 쓰이는 심리검사엔진은 특허를 받았다. 마인드프리즘만의 노하우를 살려 심리검사 지표들을 통합적으로 분석하는 시스템이다. 프로그램 기획과 개발 등에는 전 사원이 함께하지만 ‘내마음보고서’ 심리분석과 작성은 전담 직원 10명이 맡고 있다. ‘내마음보고서’는 인문학적 처방을 강조한다. 검사자의 마음건강을 체크해 주된 심리적 특징을 알려주고, 책 후반에는 시 한 편을 싣는다. 마음을 다독이고 마음 상태를 알려주는 일종의 처방으로 검사자의 심리 상태에 맞는 시다. 정 대표는 인문학적이고 예술적인 접근이 ‘내마음보고서’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 인문학적 기초가 없으면 그건 심지어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병원에서 심리분석을 하면 ‘이 사람 우울증이 있다, 숨겨진 공격성이 있다’는 등 기능적인 표현으로 가득 찬 결과지가 나와요. 심리학적 규정들이 많죠. 그게 폭력적일 수 있어요. 제가 예전에 병원에 있을 때 그런 경험을 많이 했는데, 그런 검사를 받고 충격을 받거나 상처를 입고 주저앉는 분들을 많이 봤어요. 이게 뭐냔 말이죠. 심리검사는 자기를 잘 들여다 보게 하고 문제를 잘 극복하게 해주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런데 그게 더 상처가 되는 경험을 저는 병원에서 너무 많이 경험했죠. 그건 치유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내 마음 보고서’에는 인문학적이고 예술적인 장치가 담겨 있다. 정 대표는 미학적 아름다움이 높은 것일수록 치유의 힘이 있다고 말한다. 유명한 작가의 이름난 작품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우연히 시골에서 마주친 일상의 풍경도 아름다움이라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사람 마음에 원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느끼게 하고, 다시 생각하게 만들죠.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열고 마음 깊이 있는 것들을 자극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건 시가 될 수도 있고 음악이 될 수도 있고 미술, 영화, 책 어떤 것도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내마음보고서’는 언어로 전달하는 툴이라서 시를 선택한 거죠.”

정 대표는 이어서 설명한다. “강압이라든지, 설득이나, 논리나, 당위나 이런 것으로는 사람 마음이 1밀리미터도 열리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 프로그램 안에는 예술적인 도구들, 그리고 사람 마음에 깊이 눈을 맞대고 있는 인문학적 기초, 이런 것들이 아주 많이 녹아 있어요.”

김범수 의장과 의기투합하다

김범수 의장과의 인연이 궁금했다. 정 대표는 기억을 되돌렸다. 정 대표는 2004년께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 개인의 정신건강을 검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1대1로 개인 심층심리분석을 하는 프로그램인 ‘SE (Self-Encounter)’다. 비용이 500만 원 가량하는 데다 상담에만 며칠씩 걸리는 프로그램이다. 정 대표는 SE프로그램을 통해 LG그룹, NHN, 두산, 풀무원 등 다양한 기업을 대상으로 심리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CEO와 임원, 정치인 등 1,000여 명에게 개인맞춤형으로 제공하던 고가의 SE 프로그램은 평가가 좋았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의 인연도 바로 SE프로그램을 통해서 맺어졌다.

김 의장은 2005년 무렵 정혜신 박사에게 상담을 받았다. 김 의장은 SE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을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김 의장은 지난 6월 ‘직장인 마음 건강 캠페인’ 기자간담회에 직접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네이버에서 일할 때는 살아남기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던 중, 어느 순간 스스로 이상을 느꼈어요. 정 대표에게 상담을 받으면서 ‘저는 평생 남하고 싸워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더니 대뜸 저한테 ‘아 그건 감정마비의 초기단계입니다’라고 하더군요. 당시 저는 크게 웃지도 않고, 크게 슬프지도 않은 상태로 지내왔어요. 제 마음이 평온한 상태인 줄 알고 있었던 거죠. 상담을 통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기 전 단계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김 의장은 SE프로그램을 마친 뒤 가족과 친구들을 비롯해 카카오톡 직원들에게도 SE프로그램을 권했다. 김 의장은 카카오톡을 만들면서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들고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구들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 심리검사와 치유프로그램을 체험해 보고 나서 ‘온 국민이 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결국 그는 지난해 마인드프리즘에 투자해 1대 주주가 됐다.

정 대표가 말한다. “저도 사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의기투합한 거죠. 검사 비용을 500만 원에서 8만 원으로 내린 걸 봐도 돈을 벌기 위해 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사람들 사이 관계에 대한 것, 마음을 다루는 것에 대한 경험을 하고 그것에 대한 힘을 스스로 많이 실감한 거죠. 많은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보자는 뜻이었어요. 이런 고민 끝에 고가의 SE 프로그램 노하우를 바탕으로 일반인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내마음보고서’예요.”

‘내마음보고서’는 SE프로그램을 진행한 7~8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다듬은 노하우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가격이 싸다고 해서 질이 떨어진 게 아니라고 정 대표는 덧붙였다. 정 대표는 앞으로 ‘직장인 마음 건강 캠페인’의 기간과 폭을 넓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캠페인을 시작하고 보니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더 많이 보이더라구요. 더 절실한 마음들도 만날 수 있었고요. 원래 계획은 10개월 동안 500명을 대상으로 무료 체험을 제공할 계획이었는데 지금 벌써 엄마, 아빠, 팀장들을 대상으로 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요. 엄마, 아빠만큼 무거운 짐을 가진 사람들이 어디 있겠어요. 또 모든 직장인들 중에서 가면을 써야 할 수밖에 없는 시작점이 팀장 자리잖아요. 사회의 요구가 많다는 걸 다시 확인한 셈이죠.”

정 대표는 우리 사회를 ‘감정 억제가 만연돼 있고, 역할에 대한 몰입이 지나친 곳’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것은 힐링이 필요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나를 위해서 잠시 주춤하고, 멈칫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정 대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마음 건강 상태 검진 항목

□ 한번쯤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싶다
□ 사소한 일도 자꾸 돌아보게 되고 후회하게 된다
□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반복적으로 갈등이 생긴다
□ 나는 상처를 쉽게 받는 편이다
□ 주위 사람들이 나를 껄끄러워하는 것 같다
□ 나만큼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 무기력하고 에너지가 소진되는 느낌이 든다
*3개 이상 관련되면 심리치료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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