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육류 연구소

THE ARTIFICIAL MEAT LAB
인공적으로 만든 쇠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가 끝없이 육류를 갈구하는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이거 보세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미국 미주리주 컬럼비아의 어느 봄날 아침, 비욘드 미트라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인 에단 브라운은 주방에서 파히타 요리에 넣을 닭고기를 손으로 찢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주변에 서있던 건장한 체격의 식품공장 직원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브라운이 찢어서 기름에 볶고 있는 이 닭고기는 모든 면에서 일반 닭고기와 차이가 없다. 치킨 샐러드에 넣어도 손색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것은 닭고기와는 거리가 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닭고기가 아니다. 설립 4년을 맞은 비욘드 미트의 정체는 인공 닭고기생산기업이다. 이 회사가 출시한 치킨 스트립은 대두콩과 완두콩 단백질, 아마란스(amaranth)라는 식물이 주원료다. 닭고기를 포함한 육류는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물론 인공 육류는 과거에도 있었다. 콩으로 만든 일명 ‘콩고기’를 비롯해 밀이나 두부로 고기맛을 내기도 한다. 이들을 패티로 사용한 웰빙 햄버거도 흔하다. 그러나 비욘드 미트의 제품은 차원이 다르다. 진짜 닭고기와 놀랄 만큼 흡사하다. 맛과 색깔은 당연하고 찢었을 때 특유의 섬유질 육질까지 재현했으며, 영양성분마저 거의 똑같다. 닭고기에 함유된 콜레스테롤, 포화지방, 트랜스지방 같은 나쁜 성분이 없는 것이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특히 브라운은 자사의 방식이 농장에서 닭을 키우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라고 강조한다. 익힌 뼈 없는 닭고기 450g의 생산을 위해선 3.4㎏의 사료와 30ℓ의 물이 필요하지만 인공 닭고기는 500g의 재료와 물 2ℓ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장점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농장에서 길러지는 닭들은 동물 취급을 받지 못해요. 동물이라기보다는 식물을 먹고 닭가슴살을 생산하는 기계에 가깝죠.”

전문가들은 육류나 인공 육류를 효율적으로 생산해내는 능력이 앞으로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현 상황이 지속되면 인류의 동물성 단백질 소비량이 공급량을 넘어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유엔도 전 세계 인구가 현재 72억명에서 2050년 96억명으로 늘어날 것이며, 중국과 인도 같은 신흥국의 경제수준 상승이 더해져 육류 소비량이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세계 1인당 육류 소비량은 1961년부터 2007년까지 2배로 증가했는데 2050년에 다시 2007년의 2배가 된다는 예측이다.

단적으로 말해 현재의 육류 생산방식을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인류는 육류 부족에 처할 수 있다. 브라운은 완벽한 수준의 인공 육류를 통해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런 혁명적 세상을 꿈꾸는 사람은 그만이 아니다.

예컨대 미국의 모던 메도우는 첨단 조직공학 기술을 3D 프린터와 접목, 육류를 인쇄하는 바이오 3D 프린터를 개발 중이다. 이 회사 실험실의 냉장고에는 이미 이렇게 제조한 쇠고기와 돼지고기가 한가득 들어있으며, 공동설립자인 가버 포르가츠는 2011년 TED 강연에서 인공돼지고기를 튀겨서 직접 먹기도 했다.

필자가 비욘드 미트를 방문해 브라운 CEO를 만났을 때 그는 손수 생산설비를 안내해줬다. 당시 필자는 예상과 달리 그곳이 다른 식품회사 공장과 별반 차이가 없음을 보고 꽤 놀랐다. 기계의 모습은 평범했고, 재료들은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담겨 있었다.

두건과 흰색 가운을 입은 채 작은 컨베이어 벨트로 다가가자 기계에서 나온 치킨 스트립들이 조리되어 지나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 숙성이 완료되지 않았지만 먹어도 되는 상태라고 브라운은 설명했다.

필자에게 눈앞에 있는 닭고기는 전혀 미래의 육류처럼 보이지 않았다. 들판이나 양계장에서 기른 닭으로 만든 것과 차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필자의 느낌과는 상관없이 인공 육류라는 미래는 컨베이어 벨트 위의 치킨 스트립처럼 우리 곁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미국인 1인당 육류 소비량은 현재 연간 90㎏이 넘는다. 미주리주 중부의 컬럼비아에서 I-70번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이 같은 미국인들의 육류 사랑을 여실히 보게 된다. 그곳에는 무려 2시간을 달려야만 끝나는 엄청난 넓이의 농지에 콩과 밀, 옥수수 등 여러 곡물이 자라고 있다. 또한 지평선에는 대형트럭 정류장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으며, 1.5㎞ 길이의 화물열차가 멀게는 멕시코주와 캘리포니아주까지 곡물을 운송한다.

지난 150여년간 전 세계에 식량을 공급해온 미국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컬럼비아 인근에서 생산된 대부분의 곡물들은 가정의 식탁에 오르지 않는다. 대신 거대한 가축사육장으로 간다. 이는 결코 미국만의 이례적 현상이 아니다. 현재 전 세계 경작지의 약 80%가 축산물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들 농지에서 생산된 곡물의 상당량이 가축 사료로 쓰인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현실은 자원의 효율적 활용에 배치된다. 1파운드(450g)의 쇠고기를 생산하려고 27.7㎡의 농지와 12.2㎏의 사료, 800ℓ의 물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에너지 자원 소비가 상당하다. 쇠고기 1파운드가 가정의 식탁에 오를 때까지 4,000BTU 이상의 화석연료가 소모된다. 트랙터, 배송트럭, 도축장 등의 운용에 투입되는 에너지다. 여기에다 소가 평생 배출하는 메탄가스를 더하면 지구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약 51%가 축산물 생산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토록 육류에 의존하게 된 걸까. 이를 이해하려면 태곳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수백만전의 인류는 지금의 우리보다 창자는 크고, 뇌는 작았다. 그러던 중 200만년 전부터 창자가 작아지고 뇌가 커졌다. 1995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진화인류학자 레슬리 에일로 박사는 이 변화가 인류의 육식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육류는 적은 양으로도 높은 열량을 제공하는 만큼 더 이상 덩치 크고,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소화기관이 필요 없어졌다는 것. 또한 육류 섭취 후 여분의 에너지가 생기면서 이를 뇌에 투자할 수 있었고, 그 결과로 고도의 지능을 갖추면서 세상을 지배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육류는 또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수렵활동을 하면서 협동심이 키워졌고, 사냥한 동물을 함께 요리해 나눠먹으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통된 관습을 갖게 됐다.

반면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의대의 닐 버나드 박사는 적어도 오늘날에는 육류 선호현상이 생리학적으로 이롭지 않다고 지적한다. 육식보다는 채식 중심의 식습관을 가진 사람이 더 날씬하고, 건강하며, 장수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는 것이다.

“영양학적으로 육류가 단백질, 철분, 비타민 B12의 훌륭한 공급원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영양소들은 포화지방이 많지 않은 다른 식품을 통해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어요. 육식을 하지 않고 어떻게 단백질을 섭취하느냐고요? 소를 생각해보세요. 사람도 다르지 않아요.”

따라서 버나드 박사는 모든 사람들이 채식을 하면 미래의 육류 부족문제가 간단히 해결된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농경지의 효과적 이용이라는 측면에선 그의 생각이 옳다. 문제는 대다수 사람들이 육류를 영양학적이 아닌 맛 때문에 먹는다는 점이다. 육류를 먹을 때 뇌의 쾌락중추가 초콜릿을 먹을 때만큼 활성화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실제 육류와 동일한 만족감을 주는 인공 육류를 만드는 것이 극도로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980년대 중반 식품공학자 시에 푸-헝 박사가 미주리대학 생물공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유명 식품기업 퀘이커 오츠에서 가공식품 관련 업무를 수행했던 그는 식품공학프로젝트를 위해 대학 당국을 설득, 기업들이 사용하는 수준의 압출성형기를 손에 넣었다. 당시의 학계 분위기에서는 이례적인 투자였다.

“압출성형기는 가공식품 업계의 만능 플레이어에요. 이 녀석이 있기에 치토스, 썬칩, 감자칩 등을 만들 수 있죠.”

압출성형기의 V자형 투입구에 원료를 넣으면 스크류바 아이스크림처럼 생긴 이송장치가 회전하며 원료를 기계에 밀어 넣는다. 기계 속에서 원료는 다양한 수준의 열과 압력에 노출되며, 형틀로 보내져 성형되면서 사전에 지정해놓은 모양과 질감을 갖게 된다. 이것이 압출성형기 밖으로 가래떡처럼 밀려나오는데, 원하는 크기로 잘라서 포장만 하면 제품이 되는 것이다.

시에 박사팀의 일원인 헤럴드 후프는 기술적으로 간단한 기계처럼 보이지만 원하는 결과물을 얻으려면 지독하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압출성형기 운용을 예술과 비견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죠.”

1989년경 시에 박사와 후프는 이러한 압출성형기로 실감나는 인공 육류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맛을 비롯해 다른 요소들은 아무 것도 관심 없었어요. 다만 한 가지, 찢을 때 닭고기 특유의 질감을 구현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처음 보여줄 때 그것만큼 강력한 첫인상을 남길만한 게 없으니까요.”

두 사람은 현존하는 물리학적, 화학적 지식으로는 해답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방법은 오직 실험뿐이었다.

“적절한 재료와 최적의 온도, 적합한 장비를 가져야 했어요.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를 실험과 관찰, 수정작업이 이어졌죠.”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가더니 급기야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2009년 에단 브라운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브라운은 엄격한 채식주의자이자 환경운동가다. 과거 연료전지 회사에서 근무할 당시 육류가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너무 무심한 직장 동료들을 보고 절망감을 느꼈다.

“학회에 가면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놓고 모든 연료전지 관계자들이 열변을 토합니다. 그런데 학회를 마치고 저녁식사 자리에서 다들 스테이크를 주문해요.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 그는 학회지에 실린 논문들을 뒤지며 인공 육류에 대해 공부했다. 지인들은 그런 브라운을 비웃었고, 시골에서 두부공장이나 차릴 모양이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시에 박사의 연구소식을 접하면서 연락을 취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브라운은 시에 박사팀으로부터 식물성 닭고기의 라이선스를 확보한 뒤 연구팀과 함께 대량생산을 위한 기술 개선에 돌입했다.

“콩을 너무 많이 넣으면 딱딱해지고, 함량을 줄이면 두부처럼 너무 부드러워졌습니다. 적당한 비율을 알아내는 데 2년이 걸렸어요. 하지만 아직도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브라운과 시에 박사가 제품을 다듬고 있을 때쯤 그들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본인이 해결하고픈 핵심 이슈 중 하나로 육류 생산 문제를 꼽았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두 사람에 대한 내용을 ‘게이츠 노트’라는 자신의 블로그에 업로드 한 것. 이 글에서 빌 게이츠는 비욘드 미트가 매우 중요한 기술혁신을 이뤄냈다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저는 비욘드 미트의 제품과 진짜 닭고기를 구별해낼 수 없습니다.”

2012년에는 뉴욕 타임즈의 식품전문기자이자 베스트셀러 요리책 작가이기도 한 마크 비트먼이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기도 했다. 브라운의 요청으로 이뤄진 이 실험에서 비트먼 기자는 비욘드 미트의 치킨 스트립을 넣은 브리또와 일반 치킨 브리또를 먹어보고는 고개를 내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완전히 바보가 된 기분이에요.”

이후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 KPCB가 비욘드 미트의 주식을 사들였다. 작년에는 트위터의 공동창립자 비즈 스톤도 투자 대열에 참여했다.

“KPCB의 파트너 중 한 명이 브라운을 만나보고 제 생각을 말해달라고 하더군요. 제가 엄격한 채식주의자인 걸 알고 있었거든요. 저는 기꺼이 승락했죠. 물론 처음에는 이 사업이 부유한 채식주의자가 돈과 시간이 남아돌아서 벌인 일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하지만 브라운을 만나보고 거대한 스케일의 과학적 접근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육류 사업 얘기를 하더군요. ‘저희는 육류를 만들 겁니다. 동물 대신 식물을 사용한 육류를 말이에요. 인류의 건강, 자원 부족, 인구 증가 등 그 필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친구들은 저와는 차원이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필자가 처음 컬럼비아의 비욘드 미트 공장을 방문한 날, 모든 직원들은 평상시보다 훨씬 분주했다. 미국의 대형 유기농 식품 체인점인 홀푸드에 납품할 첫 제품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홀푸드는 캘리포니아주의 몇몇 점포에서 진행한 시험 판매가 성공을 거두자 비욘드 미트의 치킨 스트립 판매를 미 전역으로 확대하는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압출성형기는 끊임없이 치킨 스트립을 뽑아냈고, 직원들은 이를 다시 양념과 조리, 급속냉동 공정으로 가져갔다. 압출성형기의 디지털 디스플레이에는 각 형틀의 배열이 나와 있었지만 브라운을 손을 뻗어 필자가 그 내용을 보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것은 수년에 걸친 연구개발의 산물이자 인공 닭고기가 실제 닭고기와 동일한 질감을 가지게 한 비책이었으며, 이 공장에서 유일한 기업 비밀이었다.

필자는 이날 시식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3가지 맛의 치킨 스트립이 접시에 놓여 있었고, 미국 남서부 지방에서 선호하는 양념이 발라진 것부터 입에 넣어봤다. 맛은 좋았다. 다만 닭고기 모양의 콩을 먹는 듯한 기분이 살짝 들었다. 씹을 때의 식감 역시 닭고기와 매우 유사했지만 뭔가 2% 부족했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인지 시식 후 다소 실망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분명 채소보다는 고기에 가깝다는 점은 절대 부인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앞서의 비트먼 기자와 달리 필자는 치킨 스트립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선입견이 작용했을 개연성을 배재할 수 없다.

이후 1개월간 필자는 뼈 없는 닭 가슴살 대신 비욘드 미트의 치킨 스트립을 오믈렛, 볶음밥, 파지타 등 여러 요리에 넣어 먹었다. 물론 단 한 번도 진짜 닭고기로 착각한 적은 없었다. 필자에게 닭고기는 바삭한 껍질과 육즙, 그리고 두터운 로스팅 팬(roasting pan) 등이 어우러진 시각·청각·미각적 자극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경험은 살을 빼고 싶을 때 다른 음식을 통해 단백질만 맛있게 섭취할 수 있다면 그것이 육식이든, 채식이든 개의치 않을 수 있음을 확실히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그런데 만일 동물도, 식물도 아닌 제3의 방법으로 만든 단백질이라도 이와 똑같은 느낌이 들까.



비욘드 미트가 위치한 컬럼비아에는 미주리대학 캠퍼스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선 생명공학분야 신생기업인 모던 메도우의 연구자들이 항온 인큐베이터를 이용해 미래의 육류 부족에 대처할 또 다른 방안을 모색 중이다.

필자가 연구실을 찾았을 때 데스크톱 PC 크기의 3D 프린터가 실험용 접시 위에 머리카락 굵기로 노란 점액질을 분사하고 있었다. 점액질이 몇 ㎝ 높이로 쌓이자 프린터는 방향을 바꿔서 지금과 직각방향으로 다시 점액질을 분사했다.

시끄러운 소음도, 특별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윙윙거리는 전자제품 소리가 전부였다. 이 노란 점액질이 소시지가 될 육류라는 것을 알아챌 사람은 없어 보였다. 이윽고 프린터가 작동을 멈췄고, 커다란 일회용 반창고 모양을 한 뭔가가 만들어졌다.

이 단계까지 오려면 가장 먼저 생육 배지에 7억개에 달하는 쇠고기 세포를 올려놓고 옷장 크기의 인큐베이터 속에서 2주일간 배양해야 한다. 배양된 세포를 원심분리기에 넣어 돌리면 3D 프린터에 투입할 점액질이 분리된다.

3D 프린터로 인쇄가 완료된 세포들은 재차 인큐베이터에서 며칠간 배양된다. 이렇게 해야 세포외 기질(extracellular matrix), 즉 콜라겐을 포함해 세포를 지지해줄 단백질들이 자연적으로 형성되면서 세포들이 실제 소의 근육조직으로 바뀐다.

이 기술은 모던 메도우의 설립자인 가버 포르가츠의 작품이다. 헝가리에서 이론물리학을 공부하다가 중간에 발생생물학으로 전공을 바꾼 그는 2005년 팀원들과 함께 개별 세포가 아닌 다세포 집합체(multicellular aggregate)를 3D 프린터로 출력하는 공정 개발에 성공했다. 그의 3D 프린터는 생리학적으로 살아있는 세포들로 튜브를 인쇄할 수 있는데, 다수의 튜브를 붙여서 크고 복잡한 구조물을 형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결국 2007년 가버와 그의 아들 안드라스는 이 기술로 의약품 실험 등 의료용으로 쓰일 인공 인체조직을 생산할 오가노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궁극적 목표는 이식용 인공장기의 개발이었다. 안드라스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창업 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물었죠. ‘이봐! 육류도 만들 수 있나?’ 하지만 그때는 그냥 무시해버렸어요. 오가노보의 목적과 너무나 동떨어진 아이디어였으니까요.”

그러던 2011년 오가노보는 새로운 경영진을 대거 영입, 좀 더 대중화된 사업 아이템을 개발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에 들어갔다. 가버가 가장 가까운 과학자이자 동료인 프랑수아즈 마르가, 카롤리 야컵 등과 함께 고민을 거듭하는 동안 안드라스는 중국 상하이의 벤처캐피탈에서 일했다.

“중국에 있는 동안 중국인들의 식생활 변화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중남미나 호주처럼 지리적으로 먼 국가에서 상당량의 육류를 수입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

이 모든 요소들을 종합한 결과, 가버는 생물학적 방식으로 만든 인공 육류의 가능성을 예감했다. 인공장기보다는 육류 개발이 더 쉬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희는 살아있는 조직을 만들 수 있어요. 이는 식품으로 먹을 수 있는 조직도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식품은 인공장기와 달리 진짜와 완벽히 똑같아야할 필요도 없어요. 면역체계와의 거부반응 위험 같은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깁니다.”

2011년말 안드라스가 미국에 돌아왔고, 연구팀은 미국 농무부로부터 기술혁신 연구 보조금을 받아냈다. 온라인 결제서비스업체 페이팔의 공동설립자인 피터 씨엘이 세운 재단에서도 투자금 지원을 약속했다.

이에 힘입어 안드라스는 미 항공우주국(NASA) 실리콘밸리 연구단지 내의 특이성대학에 사무실을 마련했고, 가버는 컬럼비아에 연구를 담당할 연구본부를 세웠다. 드디어 모던 메도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실험실에서 육류를 배양한다는 게 엽기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사실 이 발상은 의외로 역사가 길다. 공상과학 작품에나 등장한 상상의 산물도 아니다. 1931년 윈스턴 처칠은 이런 글을 쓰기도 했다.

‘50년 후에는 가슴살이나 날개를 먹으려고 닭 한 마리를 키우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대신 원하는 부위만 골라서 키워낼 것이다.’

결과적으로 처칠이 예상한 시기는 틀렸다. 그러나 그의 비전은 오늘날의 인공 육류 연구자들의 비전과 완벽히 일치한다. 또한 현 축산물 생산시스템 하에서 가축들이 어떤 처우를 받고 있고, 얼마나 많은 자원이 낭비되고 있는지 알게 되면 세포 배양 육류가 엽기적이기는커녕 훨씬 인도적·합리적 방안임을 자각할 것이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의 의뢰로 실시된 한 연구에 의하면 실험실에서 배양된 고기가 대량 생산될 경우 현재의 공장식 축산업과 비교해 토지와 물을 각각 99.7%, 94% 적게 사용하고도 동일한 양의 육류 확보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덕분에 온실가스 배출량도 기존 대비 98.8%나 경감할 수 있다.

이를 직시한 몇몇 과학자들이 지난 수십 년간 실험실 배양 육류 개발에 매달렸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학 물리학과의 마크 포스트 박사가 가장 대표적 인물. 그는 다양한 조직공학 기법을 활용해 원통형 담체에서 줄기세포를 성장시키는 방식으로 인공 쇠고기의 개발에 성공했다. 지난 8월에는 한 영국방송에 출연해 이 쇠고기로 만든 햄버거를 2명의 지원자에게 요리해주기도 했다.

대체 육류를 연구하는 비영리기구(NGO) 뉴 하비스트의 이샤 다타르 대표는 포스트 박사의 기법이 모던 메도우의 3D 프린팅 기법보다 대량생산에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현실성과 상용성은 모던 메도우가 크게 앞서 있다고 평가했다.

“모던 메도우는 실제 사업을 시작했지만 그 외의 연구팀들의 위치는 학술적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실험실 밖의 세상으로 나올 잠재력이 있는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어요.”

지난 8월 모던 메도우는 기존보다 더 크고, 빠르게 세포들을 인쇄할 수 있는 생체조합기술을 시험하고 있었다. 그 즈음 포스트 박사는 구글의 공동창립자 세르게이 브린이 자신의 뒤를 봐주고 있음을 공개하며 최초 상용화에 대한 열의를 불태웠다.

하지만 누가 먼저 제품을 출시하든 맛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포스트 박사의 햄버거를 먹어본 두 사람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게다가 모던 메도우의 제품은 아직까지 육류라고 봐주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색깔과 맛, 육즙, 질감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인 지방과 혈액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모던 메도우의 카롤리 야컵은 냉장고에 보관 중이던 표본 여러 개를 꺼내 필자에게 보여줬다. 옅은 베이지색을 띠는 어린이 손가락 크기의 소시지 모양이었다. 3D 프린터가 인쇄한 반창고 모양의 세포를 동그랗게 말면 이렇게 된다고 했다.

이 육류의 가치를 높이고자 모던 메도우는 시카고의 유명 요리사인 호마로 칸투를 영입하기도 했다. 그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모토’는 분자요리의 아이콘이다. 모던 메도우는 그의 조언을 바탕으로 질감, 식감, 맛, 모양 등 최종 마무리 단계의 문제들을 해결하려 한다. 안드라스는 그렇게 향후 수년 내에 상용생산에 앞서 소수의 초청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시식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무수한 기술적 장벽을 넘어 이날이 현실화되더라도 대중들의 식탁에 올리기 위해 마지막 남은 장벽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식품 유통은 법적인 전례가 전혀 없는 탓이다. 미국의 경우 육류는 농무부 관할이지만 세포 배양 육류는 미 식품의약국(FDA)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공식 판매 승인을 받기까지 최소 10년은 걸릴 수 있다.

이 기간을 버텨내려면 모던 메도우는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3D 프린터로 가죽을 인쇄하는 기술에도 많은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죽은 육류보다 제작이 쉬운데다 법적인 규제도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점을 공략한 것이다.

가버는 필자에게 페퍼로니 소시지 크기의 짙은 갈색 가죽을 보여줬다. 신발이나 가방에 쓰이는 가죽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였으며, 심지어 가죽 특유의 냄새도 났다. 현재 모던 메도우는 이 가죽을 이용한 제품생산을 위해 다수의 패션업체 및 자동차기업과 심도 깊은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태다.




생산공장을 방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컬럼비아 중심가의 한 유기농 주스 전문점에서 에단 브라운을 다시 만났다. 간단한 수인사를 나눈 뒤 브라운은 자신이 생각하는 비욘드 미트의 단기 목표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 회사의 제품을 식품점의 육류 매장에서 판매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육류 매장과 동떨어진 코너에서 팔리고 있어요. 이건 인공 육류에 대한 분명한 차별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두유가 인기를 끌면서 유제품 코너 입성에 성공했고, 이것이 발판이 되어 1997년 대비 500%나 판매량이 늘었음을 지적했다. 두유를 인공 육류 판매전략의 롤 모델로 삼고 있다는 얘기였다.

“저희 제품의 초기 구매자들은 두부, 콩, 선식(禪食)을 선호하는 채식주의자들이에요. 하지만 저희가 잡고 싶은 고객은 건강을 위해 육류 섭취량을 줄이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앞으로도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사먹겠지만 너무 많이 먹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 말이에요.”

모던 메도우의 안드라스는 이 같은 판매전략에 있어 한 가지 위험부담이 있다고 밝혔다.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라는 인간의 심리현상이 그것이다.

이는 쉽게 말해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애니매이션 캐릭터의 얼굴이 사람과 닮아갈수록 호감도가 낮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인간은 어떤 사물이 자신과 비슷해질수록 호감을 갖게 되지만 그 정도가 일정수준을 넘어서면 사소한 차이가 크게 부각되면서 오히려 혐오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인공 식품의 세계에도 언캐니 밸리가 있습니다. 실제 식품과 가까워질수록 미세한 차이에 큰 거부감을 갖게 되죠.”

필자는 이를 눈앞에서 경험했다. 아내에게 비욘드 미트의 치킨 스트립을 요리해줬을 때였다. 그녀는 핫도그처럼 원재료인 동물들이 연상되지 않는 식품, 두부 불고기처럼 아예 육류와 생김새가 다른 대체 육류는 잘 먹지만 비욘드 미트의 치킨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아내는 그것을 매우 정교하게 만든 가짜로 인식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가버는 언캐니 밸리를 정면 돌파하기 보다는 우회하는 전략을 펼칠 예정이다.

“오가노보에서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진짜 심장과 똑같은 심장은 절대 만들 수 없겠지만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요. 환자의 세포로, 환자의 몸 안에서, 원래의 심장보다 더 훌륭히 임무를 수행할 인공 생체 심장을 만들면 그뿐인 거죠. 육류도 이와 다를 바 없다고 봐요. 저희가 생산할 쇠고기는 소에서 비롯되지 않았지만 맛과 영양 등은 어엿한 쇠고기입니다. 사람들은 기존 쇠고기와 다른 육류로 인식하게 될 거예요.”

인공 육류가 진짜 육류를 완벽히 모사할 필요가 없다는 가버의 말을 달리 해석하면 진짜보다 더 우수한 인공 육류를 만들어도 무방하다는 의미가 된다. 이에 비욘드 미트와 모던 메도우의 연구팀 모두 오메가3 지방산, 비타민 등의 영양소를 강화시킨 슈퍼 인공 육류를 구상 중이다. 브라운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비욘드 미트의 스테이크를 드시면 콜레스테롤 수치는 낮아지고 정력은 증진될 겁니다.”

설령 그렇더라도, 아니 인공 육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자신들의 제품이 진짜 육류를 완전히 대체하리라고 보는 기업은 비욘드 미트와 모던 메도우를 포함해 아무도 없다. 이와 관련 뉴 하비스트의 다타르 대표는 우리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의 육류 부족 사태를 막는 데는 인공 육류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에요. 지속가능한 친환경 농법을 확대하고, 육류 의존도가 낮은 식생활을 확산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2012년 영국 엑세터대학 연구팀은 다가올 2050년에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리고, 파국적인 기후변화도 피하려면 우리가 식생활을 얼마나 바꿔야하는 지를 계산한 바 있다. 그리고 반드시 육류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현재 1인당 하루 열량섭취량 중 육류로부터 얻는 비중이 평균 16,6%인데 이를 최소한 15%로 낮춰야 한다는 것.

1.6%가 우습게 보이나? 서구인들의 경우 육류 섭취량을 지금의 절반으로 줄여야 도달 가능한 수치다. 고품질의 인공육류는 이 난관을 견뎌낼 힘이 될 수 있다.

단 인공 육류와 관련된 모든 비전에는 한 가지 공통적 전제가 따른다. 소비자들의 우려감을 해소하고, 생산자들의 혹시 모를 불법행위를 막기 위해 교육을 받은 똑똑한 소비자들에게 전 생산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브라운은 소비자의 신뢰를 얻고자 생산공장 내부를 CCTV로 촬영한 뒤 온라인에 실시간 스트리밍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내부 사정을 철저히 감추는 일반 도축장과는 확연히 다른 접근법이라 할 수 있다.

안드라스의 경우 브라운보다 더 획기적인 계획을 갖고 있다. 모던 메도우의 생산공장을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일종의 체험형 과학관처럼 꾸밀 생각이다.

“저희는 원재료, 즉 배양할 세포를 정기적으로 얻기 위해 몇 마리의 소와 돼지를 직접 키워야 해요. 이 녀석들은 모던 메도우의 마스코트가 될 겁니다. 매달 혹은 매주 주사를 맞는 대신 완벽한 보호 속에서 편안한 삶을 보낼 수 있죠. 향후 방문객들은 먹이를 먹는 가축들을 구경한 후 거대한 3D 프린터가 세포를 인쇄해 스테이크와 돼지갈비로 만드는 공장시설로 안내받게 됩니다.”

물론 이 같은 세상은 아직 꿈의 영역에 있다. 그러나 그렇게 허황된 꿈은 아니라고 안드라스는 확신한다.

“세포를 배양해 인체 조직이나 장기를 만드는 생체배양 기술은 이미 존재합니다. 향후 수십 년 내에 의료 이외의 다른 분야, 예컨대 식품 등의 소비재 산업에 이 기술이 활용되는 것은 필연적 귀결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때까지 세상이 그런 변화를 맞을 준비를 갖춰놓는 것뿐이에요.”



파히타 (fajita) 구운 쇠고기나 닭고기를 야채와 함께 토르티야에 싸서 먹는 멕시코 요리.
조직공학 (tissue engineering) 생체조직의 기능을 회복, 유지, 증진시키기 위해 인공장기 등 생체조직의 대체품을 개발·이식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문.
3D 프린터 얇은 막을 층층이 쌓아올려 입체적 형상의 물건을 제작하는 기계. 주로 플라스틱 소재를 원료로 사용하는데 잉크젯 프린터와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원료를 분사해 이런 명칭이 붙었다.
BTU (British Thermal Unit) 영국식 열량 단위. 1BTU는 1파운드(450g)의 순수한 물 온도를 1℉ 높이는데 필요한 열량으로 1.055kJ 또는 0.252㎉와 같다.


배고픈 지구인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육류의 약 40%가 선진국에서 소비된다. 유엔에 따르면 이 비중은 2050년 30%로 낮아질 전망이다. 육류 소비량은 현재의 2억8,000만톤에서 2050년 5억톤으로 늘겠지만 개발도상국들의 인구 증가와 식생활 변화로 인해 개도국에서의 육류소비가 급속 확대된다는 것. 이는 영양실조 환자의 감소를 불러오겠지만 농경지의 생산성을 더 높여야한다는 과제도 던져주고 있다. 즉 농업생태학자들은 육류의 공급을 최적화하기 위해 언제, 누가, 어디에서 더 많은 육류를 소비할지 알아내야 한다.

성장세
2050년 육류 소비량은 현재의 약 2배가 된다. 그러나 전 세계 모든 곳에서 골고루 2배로 늘지는 않는다. 일러스트의 육각형 1개는 약 400만명의 인구를 의미하며, 크기가 클수록 1인당 육류 소비량이 많은 것이다. 안쪽의 육각형은 현재 인구, 바깥쪽 육각형은 2050년까지 늘어날 인구를 뜻한다.

ILLUSTRATION BY JAN WILLEM TULP
출처: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토지사용 데이터: 미국 미네소타대학 환경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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