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 화학연료 대신 광자 레이저를 분사하는 신개념 추진장치를 통해 이를 현실화하겠다는 기업이 등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말도 안 된다고? 미 항공우주국(NASA)이 지난 7월 50만 달러의 연구비 지원을 결정했다. 이제 조금 믿을만 한가?
현재의 로켓 대부분은 화학연료를 연소시켜 분사함으로써 추력을 얻는다. 이 방식으로 보통 마하 20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다.
최첨단 초음속 전투기도 마하 5를 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 빠르다고 느낄지 몰라도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우주공간에서 마하 20은 굼벵이 걸음과 다를 바 없다. 지구의 이웃 행성인 화성에 갔다가 오는데만 적어도 500일 이상이 소요된다. 작년 8월 6일 화성에 착륙한 NASA의 화성탐사 로보 큐리오시티의 경우 8개월에 걸쳐 5억6,700만㎞를 날아갔다. 화성 유인탐사가 가능해지더라도 이 오랜 기간 동안 비좁은 우주선에서 견딜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는 지구를 모두 뒤져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기존 우주 탐사선의 속도는 절망적일 정도로 느려 터졌으며, 향후 이것이 심우주 유인 탐사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많은 과학자와 연구소, 우주항공기업들이 현 화학연료 로켓의 속도 한계를 뛰어넘을 차세대 우주탐사 엔진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터스틴 소재 Y.K.배 코퍼레이션이라는 기업이 주창한 신개념 광자 레이저 추진기술에 많은 전문가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광자 레이저의 척력
이 회사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인 또는 한국 출신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Y.K. 배라는 인물이다.
그는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스탠포드연구소(SRI)와 미 국립브룩헤이븐연구소(BNL), 미 공군 로켓추진연구소(AFRPL)를 거치면서 레이저와 입자 빔, 로켓추진 분야를 두루 섭렵했다. 헬륨(He)2-와 준(準)안정 이너셸 분자상태(MIMS)의 공동발견자이기도 하다. 지난 2007년 고에너지 광자를 이용한 심우주탐사용 엔진개발과 친환경기술 개발을 목표로 Y.K.배 코퍼레이션를 세웠다.
물론 레이저 추진기관은 이전에도 다수 제시됐지만 배 박사의 방식은 2개의 반사경 사이에 레이저를 발사해 추진력을 얻는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그는 우주 공간을 지구에서처럼 인간이 만든 로켓의 배기가스로 오염시키지 않으면서 덩치 큰 우주선을 이동시킬 방법을 찾던 중 이 방법을 구상해냈다고 한다.
여기에 사용되는 레이저 기기는 여타 레이저 추진시스템과 비교해 소형이다. 따라서 우주선의 다른 구성품을 크게 만들 수 있다. 배 박사는 기술적 타당성을 검증하면서 자신의 아이디어가 상상 외로 잠재력이 크다는 사실을 깨닫고 ‘광자 레이저 추진기(Photonic Laser Thruster, PLT)’라는 이름을 붙였다.
PLT의 기본 개념은 다음과 같다. 먼저 우주공간에 PLT 발사 플랫폼과 우주선을 올려 놓는다. 플랫폼과 우주선에는 각각 반사경이 장착돼 있는데 두 반사경 사이에 레이저를 발사한다. 그러면 레이저가 끊임없이 반사경 사이를 오가면서 밀어내는 힘, 즉 척력(斥力]이 생성된다. 바로 이 힘을 사용해 플랫폼에서 우주선을 쏘아보내는 메커니즘이다.
배 박사에 의하면 발사 후에도 플랫폼과 우주선 사이에 레이저가 오가기 때문에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우주선을 가속할 수 있다. 화학연료, 핵연료 등의 다른 연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말이다.
NASA의 신뢰와 지원
소모되는 연료가 전혀 없으니 PLT를 사용하면 우주선의 중량이 대폭 감소된다. 그만큼 우주비행사나 화물을 실을 공간을 넓힐 수 있으며, 우주비행사의 거주 편의성도 증대된다.
특히 배 박사는 이론상 PLT로 초속 100㎞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서울에서 눈 한번 깜빡하는 순간 제주도에 도착하는 무시무시한 속도다. 지구 탈출 속도인 초속 11.2㎞와 비교해도 10배에 가깝다. 실제로 구현되기만 한다면 직선거리로 약 1억㎞를 가야 하는 화성까지 1주일 이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설명이 결코 허언이 아닌 셈이다.
배 박사는 이 개념을 꽤 오랜기간 연구해왔다. 미 항공우주국(NASA)도 가능성을 인정하고 혁신진보콘셉트(NIAC) 프로그램을 통해 연구자금을 지원했다. 중간에 NIAC 프로그램이 중단되며 관련연구도 답보상태에 빠졌지만 올해 프로그램이 재개되면서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왔다. 그리고 지난 7월 Y.K.배 코퍼레이션의 PLT는 무수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NIAC 지원 대상 프로젝트로 재선정되며 향후 2년간 50만 달러의 자금 지원을 받게 됐다.
배 박사는 PLT와 관련해 4단계의 마스터플랜을 갖고 있다. 1단계는 수십년 내 PLT를 상용화시켜 근지구 우주임무와 달 탐사, 근지구 소행성 탐사에 활용하는 것이다. 2단계는 50년 이내에 PLT로 유인 화성 탐사에 도전하는 것, 3단계는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과 그 위성들을 유인 탐사하는 것으로 삼았다. 여기까지 성공한 뒤에는 인간을 태양계 밖의 항성과 행성에 보내는 4단계도 100년 안에 가능하리라는 게 배 박사의 판단이다.
PLT의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비행 중 우주선 내에 중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배 박사도 PLT가 지구와 비슷한 약 1기압(G) 수준의 가속도를 생성, 우주비행사의 발이 우주선 바닥에 들러붙을 수 있다고 설명이다. 이때는 SF 영화 속 우주비행사들처럼 지구에서와 다를 바 없이 우주선 내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으며, 이는 체력과 건강 유지에 지대한 도움이 될 것이 자명하다.
이상과 현실 사이
그러나 PLT의 미래가 배 박사의 기대대로 장밋빛 결실을 맺게 될지는 지금으로선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 상용화로 가는 길에는 무수한 장벽들이 놓여 있다.
가장 먼저 추진동력 부분이다. 레이저로 배 박사가 구상한 수준의 힘을 내려면 엄청난 전기에너지가 소모된다. 배 박사 스스로도 지구궤도나 달탐사 임무에만 대략 1기가와트(GW)의 에너지 투입이 필요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만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선 태양에너지 또는 핵에너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문제는 레이저 자체에 있다. 모든 빛이 그렇듯 플랫폼과 우주선 사이의 간격이 멀어질수록 레이저는 넓게 퍼지고, 광자의 손실량이 커진다. 그래서 추력은 약해지고, 우주선을 정확한 진로로 유도하기도 갈수록 어려워진다. 플래시라이트의 불빛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가까운 거리의 물체는 정확히 비추기가 쉽지만 물체가 멀리 있을수록 빛이 퍼져서 밝게 비추기가 힘든 것과 마찬가지다.
우주선의 추진과 유도를 위해 레이저를 정밀하게 발사해야 하는 PLT의 특성상 달이나 화성 등 근지구권 임무에는 유용할지 몰라도 태양계 밖으로 나가야 할 때는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배 박사는 두 번째 이슈에 대해서는 소형 플랫폼 여러 개를 우주공간에 배치, 이른바 ‘광자 철로’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해법을 모색 중이다. 각 플랫폼이 일정 구간만 우주선의 추력 공급을 책임지고, 거리가 멀어지면 다름 플랫폼으로 바통을 넘기는 방안이다. 덧붙여 배 박사는 회절이 잘 일어나지 않는 베셀 빔(Bessel beam)을 활용, 레이저가 먼 거리에서 약해지지 않도록 만들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이외에도 앞으로 많은 난제들과 직면하겠지만 배 박사는 PLT의 초석이 이미 세워졌다고 여기며 섣부른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반도체 업계에는 무어의 법칙이라는 게 있죠. 고출력 레이저나 고출력 광학기기 기술 역시 전자기술 만큼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므로 난제들을 해결할 실마리들이 머지 않아 나타날 것으로 믿습니다.”
Y.K.배 코퍼레이션은 수십년 내 PLT를 상용화시켜 근지구 우주임무와 달 탐사, 근지구 소행성 탐사에 활용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MIMS Metastable Innershell Molecular State의 약자.
지구 탈출 속도 (escape velocity) 초속 11.2㎞. 물체의 운동에너지가 지구의 중력 위치 에너지와 같아지는 속도다. 어떤 물체가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 우주로 나가려면 초속 11.2㎞ 이상의 속도를 내야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