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평화상에 빛나는 화학무기금지기구의 그림자

지난 10월 11일 올해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영예의 주인공은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OPCW는 화학무기 개발이 의심되는 국가들을 사찰하고, 화학무기의 전파를 막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노벨 평화상까지 받게 된 OPCW가 그 동안 보여준 행보들에는 다소 이상한 부분이 적지 않다.




독가스라는 이름으로 더욱 친숙한(?) 화학무기는 사실상 가난한 자의 핵무기와 같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제조법이 확립되어 있었던 탓에 세부 제조기술은 알려질 대로 알려져 있고, 제조비용은 재래식 무기 대비 저렴하지만 일단 사용하면 적에게 핵무기에 버금가는 심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학무기에 대한 완벽한 방호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군필자라면 다 알겠지만 방독면을 쓰고, 보호의를 입어도 기껏해야 안전지대로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할 뿐 그 이상의 방호는 어렵다.

이런 이유로 화학무기의 폐기와 확산 방지를 위해 국제적으로 다각적인 노력이 실시됐는데 올해 노벨 평화상의 주인공인 화학무기금지기구(OPCW)도 그중 하나다. 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국제기구로 꼽히는 OPCW의 사찰관들은 얼마 전 국제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과 관련해 현재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를 해체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기도 하다.

그런데 OPCW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놓고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이 나고 있다. 이토록 좋은 일을 하는 기구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OPCW는 생각만큼 모든 면에서 깨끗한 곳이 아니다.

게다가 효율적이지도 않다. 화학무기 금지조약을 가장 지독하게 위반한 국가들에게 면죄부를 주기도 했다. 심지어 전 세계 화학공장들을 당당하게 염탐하기 위한 각국 스파이들의 온상이라는 의혹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실효성 적은 허울 뿐인 사찰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부를 두고 있는 OPCW는 화학무기 금지조약(CWC)의 일환으로 지난 1997년 창설됐다. 모든 CWC 비준국은 반드시 모든 화학무기를 폐기해야 한다. 시리아의 경우 올해 9월 190번째 비준국가가 됐다. 물론 이는 아사드 정권이 자국 내 반체제 운동가들에게 화학무기 공격을 가해 1,500명 이상의 인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직후의 일이다.

아무튼 OPCW는 기본적으로 CWC 비준국의 조약 성실 이행 여부를 사찰하는 기구다. 그러나 사찰은 비준국의 허가를 얻어야 가능하며, 설령 조약을 어긴 비준국이라도 OPCW는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결과적으로 사찰관들은 사전에 허락된, 다른 말로 사찰 준비를 모두 마친 비준국의 화학무기 관련 시설을 사찰하는 셈이다.

다만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되면 비준국의 허가 없이도 강제 사찰이 가능하다. CWC 비준국이 미신고된 시설에서 화학무기를 생산·저장하고 있다는 다른 비준국의 고발이 접수됐을 경우에 한해서다. 이때는 OPCW가 전문가 팀을 해당 국가에 파견, 강제 사찰을 진행한다.

하지만 이는 규정이 그렇다는 것일뿐 지금껏 강제 사찰이 실시된 적은 전무하다. 그리고 앞선 조건이 충족되도 OPCW 이사회 이사국 중 3분의 2 이상이 반대하면 강제 사찰은 무산된다. 이와 관련 OPCW의 홈페이지에는 “모든 비준국은 순환 원칙에 따라 이사국이 될 자격이 있다”는 규정이 적시돼 있다. 몰래 화학무기를 보유한 국가가 이사국이라면 그 사실이 드러나더라도 거부권 행사를 통해 강제사찰을 막을 개연성이 상존한다고 할 수 있다.

수단,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리비아, 러시아, 세르비아 등 현재의 OPCW 이사국만 해도 인권 보장이나 화학무기 확산 방지에 대한 정책을 제대로 수립해 놓지 않는 나라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화학무기는 산업용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것으로 은폐하기가 비교적 쉽다. 이 때문에 OPCW의 사찰이 빛 좋은 개살구라는 불평이 나오는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OPCW는 꽤 잘 속는 듯하다. 일례로 리비아가 화학무기를 폐기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OPCW는 크게 기뻐하며 리비아를 CWC의 성공사례로 소개했다. 정말로 리비아가 화학무기를 전부 폐기했을까. 가다피 독재 정권이 붕괴되고 들어선 리비아 신정부는 자국 내에서 다수의 비밀 화학무기 공장과 화학무기 완제품, 원재료들을 찾아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OPCW는 비준국들의 주요 화학 공장에 접근이 가능한데, 이것이 첩보 활동의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고양이에게 맡긴 생선

이는 결코 가능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 그런 국가들이 있었다. 1997년에 OPCW에 가입한 이란이 대표적이다. 이란은 OPCW 가입이후 화학무기 창고를 개방하지 않아 비난을 받고 있지만 이사국 지위를 꿰차고 있으며, 지난 2009년 프랑스는 이란인 OPCW 사찰관이 멜리 어그로케미컬 컴퍼니에 취업한 사실을 적발하기도 했다. 살충제 제조사인 이 회사는 이란을 위해 신경작용제 원료를 구입해 준 혐의로 유엔의 제재를 받고 있던 터였다.

화학무기 확산을 감시해야할 사찰관이 오히려 화학무기 확산의 방패막이가 되어버린 셈이다.

한 번은 OPCW가 골치아픈 회원국들을 적절히 다스리지 못해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는 내용의 외교전문이 내부고발 전문매체 위키리크스에 의해 공개된 적도 있다. 2010년 작성된 이 외교전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미국의 90일간 화학무기 폐기 진행상황 보고서 2건 때문에 이란이 국제 정치 무대에서 더욱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화학무기 폐기가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음을 지적한 이 보고서 덕분에 이란 등의 국가들이 자신의 화학무기 폐기 지연을 정당화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였다.

OPCW를 골치아프게 하는 나라는 이란만이 아니다. 미국 역시 자국 화학무기 시설에 대한 OPCW 사찰관들의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제임스 마틴 비영리 연구센터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사찰관 안내에 있어 편협하고 원칙주의적이며 모순적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또 OPCW에 약속했던 적절한 장비와 교육훈련을 제공하지 못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미국은 1998년 10월 OPCW의 사찰과 감독을 독점적으로 면제하고 제한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킨 뒤 유아독존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이렇듯 비준국들이 OPCW를 악용해 다른 나라의 화학공장들을 염탐하고, 기밀 정보를 빼 내 자국의 화학무기 프로그램을 발전시킨다는 것은 이란의 사례만 봐도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OPCW는 원대한 목표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문제를 내포한 불완전체의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PCW가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화학무기를 통제해 세상를 더 평화로운 곳으로 만들겠다는 설립 취지 때문일 것이다. 이번 노벨 평화상 선정의 배경에도 이러한 그들의 목소리를 더욱 강화시켜 주려는 뜻이 있으리라 판단된다.

그러나 아무리 뜻이 좋아도 이를 실행하는 사람들이 공존이 아닌 자신의 이해득실에 더 치중한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OPCW가 일부이기는 해도 화학무기 보유국들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켜 주는 역효과를 낸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앞으로 POCW가 이런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해결해내지 못한다면 역사는 올해 노벨상 위원회의 결정에 냉소를 보내게 될 것이다.


주요 화학 무기 공격 사례

제1차 세계대전 (1914~1918)
1899년 헤이그 선언과 1907년 헤이그 조약을 통해 전쟁에서 화학무기 사용은 국제법상 불법이 됐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총 12만4,000톤의 화학무기가 쓰였다. 가장 먼저 화학무기를 사용한 국가는 프랑스였으며, 이에 맞서 독일, 영국 등 주요 참전국들도 화학무기로 맞섰다. 1차 대전 중 화학무기에 의한 전자사는 총 8만5,000명, 부상자는 117만6,500명에 달한다.



제2차 세계대전 (1939~1945)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 국가인 일본과 독일이 화학무기를 대량 사용했다. 일본은 1938년부터 구토 작용제, 1939년부터 겨자가스로 중국군과 민간인 게릴라를 공격했다. 또한 제731부대, 제516부대 등의 생화학전 전문부대들은 화학무기의 성능개선을 위해 포로를 대상으로 생체실험까지 자행했다. 일본군의 생화학전에 의해 전사한 중국인의 숫자는 무려 60만명으로 추정된다. 독일 역시 화학무기로 유태인 600만명을 포함, 소수민족 1,200만명을 학살했다. 그러나 두 국가 모두 화학무기로 반격할 가능성이 있는 서구 강대국 군대에는 화학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동서 냉전시대 (1945~1991)
베트남 전쟁 당시 1961~1967년 미군은 남베트남군의 주활동무대인 정글을 초토화하고자 다이옥신이 주성분인 고엽제 4,500만ℓ를 살포했다. 살포면적은 2만4,000㎢로 남베트남 국토의 13%에 해당했다. 1997년 월스트리트 저널의 발표에 따르면 이러한 고엽제 살포로 기형아 50만명이 태어났다고 한다. 미국의 경쟁상대였던 소련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게릴라들을 상대로 대량의 화학무기 공격을 가했다.



이란-이라크 전쟁 (1980~1988)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는 미국, 서독,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에서 도입한 기술로 개발한 화학무기를 전투에 대거 사용했다. 이라크의 화학무기 공격으로 전사한 이란 군인의 수는 1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민간인 피해는 집계조차 되지 않았다. 이라크는 종전 직전인 1988년 자국 내 쿠르드인 마을을 화학무기로 공격, 5,000명을 사망케 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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