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TUNE KOREA 500] (35위) 한화생명보험

‘1등 고객 동반자’ 기치 아래 새 보험 브랜드 가치 창출한다

차남규(59) 한화생명보험 사장은 전에 없는 중책을 맡고 있다.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생명 브랜드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 그에게 부여된 미션이다.
차병선 기자 acha@hk.co.kr


10월 9일은 한화생명보험(이하 한화생명)이 전 대한생명에서 현 한화생명으로 이름을 바꾼 지 1년째 되는 날이었다. 한화생명은 이를 기념해 10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행사를 열었다. 창립 61주년이지만 새 이름 1주년에 더욱 초점을 맞춘 기념식이었다.

행사의 호스트는 차남규 대표이사 사장이었다. 차 사장이 5월 단독 대표이사로 오른 뒤 처음으로 주관한 연례행사였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새 사명에 이어 새 경영체제까지 갖춘 한화생명의 새로운 분위기가 돋보이는 자리였다.

차 사장은 정통 한화맨이다. 1954년 생으로 부산고,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차 사장은 1979년 한화기계에 입사하며 한화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이후 한화정보통신, 여천NCC, 한국베어링, 골든벨 상사 등 계열사를 두루 거쳤다. 한화그룹이 전 대한생명을 인수한 2002년에는 한화생명 관리총괄 임원으로 자리를 옮겨 금융계열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차 사장이 재계에 드러나기 시작한 건 2007년 한화테크엠 대표이사를 맡으면서부터다. 당시 김승연 한화 회장은 “향후 5년 내 그룹 매출의 40%를 해외에서 벌어야 한다”는 글로벌 경영전략을 천명했고, 이에 따라 상사 출신 인사들을 그룹 내 요직으로 대거 발탁했다.

차 사장은 골든벨 상사 등에서 무역영업 업무를 담당하며 풍부한 해외지사 근무 경험을 갖고 있었다. 또 한화생명이 중국에 진출할 당시 한화그룹 중국본부장을 역임하며 국제적인 역량도 쌓았다. 한화테크엠 대표로 선임된 차 사장은 수출 실적을 크게 올리며 2008년 철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2009년 다시 한화생명 보험영업총괄 부사장으로 옮겨왔고, 2011년 2월에는 신은철 한화생명 고문(당시 부회장)과 함께 각자 대표에 오르기도 했다. 한화그룹 측은 차 사장 선임에 대해 “영업총괄을 맡아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현장과 밀도 높은 커뮤니케이션을 펼쳐 대한생명 보험영업의 기틀을 새롭게 다진 공로를 인정받았다”며 “경영의 안정성과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고, 베트남 보험영업 확대와 중국보험시장 진출 등 글로벌 경영 확대에도 힘을 쏟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차 사장의 선임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동안 한화생명을 이끈 건 외부에서 영입한 보험전문가들이었다. 2002년 인수 직후엔 신한생명 대표이사 출신인 고영선 전 사장이 수장에 올랐다. 그러나 고 전 사장은 1년 만에 경질됐다. 당시 보험업계는 고 전 사장이 양호한 경영성과를 냈음에도 제조업 중심인 한화 그룹의 경영 스타일과 맞지 않아 경질된 것으로 풀이했다. 뒤 이어 삼성생명 출신인 신은철 고문이 대표이사로 선임되어 회사를 운영했다.

신 고문이 외부 출신이라면 차 사장은 정통 한화맨이다. 내부 출신인 차 사장이 전면에 부각되며 김 회장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업계는 분석했다. 2011년 인사 당시 한화손해보험 CEO도 삼성 금융 계열사 출신인 권처신 전 대표에서 한화손보, 한화증권, 대한생명 등을 두루 거친 박석희 대표로 바뀌었다. 익명을 요구한 보험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보험사는 한화그룹의 캐시 카우예요. 김승연 회장 역시 다른 재벌들처럼 조직 장악력을 키울 필요가 있었을 겁니다. 특히 김 회장이 비자금 의혹 수사를 받는 중이니 김 회장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할 필요가 있었겠죠.”

한화생명이 투 톱 체제로 바뀐 뒤 신 고문은 대외 활동을, 차 사장은 내부 경영에 주력했다. 차 사장은 수익성 높은 보장성 보험판매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론 은퇴, 고소득, 해외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경영에 박차를 가했다. 급부상하는 은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연금이나 장기간병 등 은퇴 관련 상품 경쟁력을 강화했다. 또 대도시 전문직, 중산층 고객 확보를 위해 고효율 전문 설계조직을 증강했으며 해외 진출도 가속화했다. 한화생명은 2009년 생보사 최초로 베트남에 진출해 첫 현지영업을 개시했고, 2012년 12월에는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도 본격적인 영업에 착수했다. 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현지 생보사인 물티코 지분 80%를 약 140억 원에 인수하는 등 동남아시장 진출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영실적은 어땠을까? 2011년 연결재무제표 기준 수입보험료(매출)는 11조3,364억 원으로 2010년에 비해 0.83% 늘었다. 성장폭이 의외로 적었다. 이로 인해 교보생명보험에게 생명보험업계 2위 자리를 뺏겼고 포춘코리아500 순위도 2010년 36위에서 2011년 44위로 밀려났다. 수입보험료 14조6,479억 원을 기록한 교보생명은 2010년 38위에서 2011년 33위로 다섯 계단 상승했다.

당기순이익(연결재무제표 기준)은 경쟁사를 상회했다. 한화생명의 2011년 당기순이익은 5,119억 원으로 전년 대비 7.8% 증가했다. 같은 해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의 당기순이익이 전년대비 각각 50.7%, 8.7%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큰 성과를 올렸다고 할 수 있다. 실적 향상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우선 수익성이 높은 보장성보험을 중심으로 신계약 매출이 늘었다. 또한 금융시장이 안정화되면서 자산 운용수익이 증가했다.

외형 면에서 교보생명에게 뒤진 실질적 책임이 이전 경영진에게 있는지 아니면 새롭게 조각된 투 톱 체계나 차 사장에게 있는지 명확히 구분하긴 어렵다. 어쨌든 투 톱 체제 아래 한화생명은 2012년 경영실적을 한층 개선시켰다.

한화생명의 2012년 연결재무제표 기준 수입보험료는 14조6,117억 원으로 전년대비 28.7% 늘었다. 한화생명은 2011년 44위에서 2012년 35위로 9계단 올라섰다. 교보생명(33위·매출 14조6,269억원)을 턱 밑까지 추격하며 재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2011년 11계단 차이에서 1계단으로 순위 차를 대폭 줄였다. 교보생명의 수입보험료는 0.01% 감소했다.

한화생명이 거둔 당기순이익은 4,909억 원으로 전년대비 4.1%감소했다. 이는 4분기 제도 변경에 따른 일회성 비용 발생에 기인한다. 4분기에 제도 변경(손상차손 인식기준 변화)에 따라 일회성 비용이 약 800억 원 발생했다. 일회성 비용을 제외하면 보험 자체의 손익은 전년보다 개선됐다. 실적 개선의 최대 요인은 역시 고수익 상품인 보장성 보험이다. 2011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보장성 보험의 인기가 이어지면서 업계가 전반적으로 호황을 누렸다.

2012년 10월 한화생명은 구 대한생명에서 한화생명으로 사명을 바꿨다. 한화그룹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그동안 한화 측은 사명 변경을 지속적으로 추진했지만, 2대 주주인 예금보험공사의 반대에 부딪쳐왔다. ‘대한생명’의 브랜드 가치가 더 높고, 한화생명으로 개명하면 기업 가치가 떨어져 공적자금 회수가 어려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한화 측은 다른 주주들을 설득해 사명을 바꾸고 ‘한화’ 브랜드로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마침 2012년은 한화생명창립 60주년, 한화그룹 편입 10년을 기념하는 해여서 상징적 의미가 더 컸다.

그러던 중 2013년 5월 신은철 고문이 갑작스레 사임을 표했다. 한화생명 측은 “신 고문이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물러났다”고 설명했다. 신 고문은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뒤 현재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 고문 퇴진 이후 단독 대표이사로 회사를 이끌고 있는 차 사장은 지금 회사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 10월 10일 창립기념일 행사에서 차 사장은 ‘고객의 1등 동반자’라는 슬로건을 강조했다. 차 사장은 말했다. “오늘은 한화생명이 새 이름을 얻은 지 1년이 되는 날입니다. 지난 1년이 고객서비스 1등을 위한 원년이었다면 앞으로는 이를 더욱 다져가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차 사장은 또 “규모 경쟁에 연연하지 않고 성장가치가 가장 높은 1등 보험사가 되겠다”고 밝혔다. 저금리 등 경영 여건이 녹록지 않은 만큼 내실경영에 주력하겠다는 뜻이다. 차 사장은 보험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보험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화생명 인수 당시부터 한화생명에 몸담아온 전문 경영인이다. 새 이름 1주년을 맞은 한화생명이 앞으로 어떤 역사를 만들어 나갈지는 한화맨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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