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활을 건 인텔의 ‘경영 콤비’

INTEL'S DO-OR-DIE DUO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Brian Krzanich와 르네 제임스 Renee James는 둘 다 인텔의 CEO가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지금 이들은 힘을 모아 인텔의 스마트폰 사업 진출이라는 난제에 도전하고 있다.
by MICHAL LEV-RAM


지난 4월 말 토요일 아침, 인텔 이사회 멤버들이 캘리포니아 하프 문 베이 Half Moon Bay의 리츠칼튼호텔 회의실에 모여들었다. 복도 양 끝에 보안요원들을 배치한 채, 이사회 멤버들은 곧 있을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분석하고, 관련 질문을 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 이사회는 수개월 전부터 수차례의 면접과 심사 등을 통해 새로운 CEO를 찾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후보들은 이번 최종 관문에서 주어진 시간 내에 최대한 자신을 어필해야 했다. 현직 인텔 회장이자 전직 인텔 최고행정책임자(CAO) 앤디 브라이언트 Andy Bryant의 주도하에 10명의 이사진은 최종후보를 3명으로 압축했다. 2명은 인텔에 오래 몸 담은 내부인사였고, 나머지 1명은 외부인사였다.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을 앞둔 최종 후보들 중 승자는 포스트 PC시대에 대응하는 인텔의 사업 전환을 책임지게 되어 있었다.

현재 인텔은 매출 533억 달러를 자랑하는 초대형 반도체기업이다. 인텔의 대규모 공장들은 하루에 150만 개의 칩을 생산해 낸다. 전 세계 PC 10대 중 8대에는 인텔의 고성능 (그리고 마진이 높은) 프로세서들이 탑재되어 있다. 유일한 문제는 PC분야를 혁신하려는 인텔의 지속적 노력에도, PC 수요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시장분석기관 IDC에 따르면, 작년 전 세계 PC 출하량은 4% 감소했고, 2013년 말까지는 1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문제는 모바일로의 전환이 세계적 추세라는 점이다. PC는 유행이 지났고,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인기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기기, 운영체제, 프로세서, 아키텍처 등 새로운 모바일 관련 산업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2015년경에는 전 세계 태블릿PC 출하량이 PC를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샌퍼드 C.번스타인 Sanford C. Bernstein의 분석에 따르면, 불행하게도 인텔의 전 세계 태블릿·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1%에도 못미친다. 티리아스 리서치 Tirias Research의 설립자 짐 맥그리거 Jim McGregor는 “인텔은 모바일 업계에서는 주요 기업이 아니다. 그저 최대의 기술업계(모바일)에 진출하려는 후발주자일 뿐이다”라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2012년 말 CEO 폴 오텔리니 Paul Otellini는 예정보다 2년 이른 2013년 봄에 사퇴하겠다고 발표해 이사진을 놀라게 했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확실한 규범체계로 유명한 인텔에서 후임 CEO를 선정하는 일은 언제나 대단히 신중하고 세심한 계획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후보자들의 수가 평소보다 적었다는 게 한 이사회 측근의 전언이다. 또 기존과는 달리 외부 출신 CEO를 고려해 보라는 압력이 가해졌다. 내부인사를 CEO로 승진시키는 것은 인텔 기업문화의 뿌리 깊은 관행이었다. 그러나 일부 이사들은 인텔이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장에서 부진한 이유 중 하나가 이런 ‘편협함’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인텔 출신 최종 후보 두명?전직 최고운영책임자(COO) 브라이언 크르자니크와 전직 소프트웨어 책임자 르네 제임스?이 공동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로 발표한 것이었다. 몇 주전 그들은 경쟁보다는 협력이 CEO 발탁 확률을 높이고, ‘외부인’의 영입 가능성을 낮춘다는 결론을 내렸다(인텔이 확인해 주진 않겠지만, VM웨어 CEO 팻 겔싱어 Pat Gelsinger와 모토롤라 모빌리티 Motorola Mobility의 전 CEO 산제이자 Sanjay Jha가 외부 후보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산타 클라라 Santa Clara 본사에서 가진 제임스와의 공동 인터뷰에서 크르자니크(53)는 “우리는 인텔의 미래에 대해 거의 비슷한 비전을 갖고 있었다. 결국 우리와 외부인사들 간의 경쟁이었다”고 말했다. 제임스(49)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녀는 “우리는 외부인사가 CEO가 된다면 인텔이 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우리 둘이 모두 뽑히거나 둘 중 아무도 뽑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사내에서 BK로 잘 알려진 크르자니크는 인텔에서 30년간 근무했고, 대부분 제조부문에서 일했다. 제임스는 1988년 인텔에 입사했지만 맥아피 McAfee와 윈드 리버 Wind River 같은 소프트웨어 자회사를 이끌며 빠르게 승진을 거듭했다. 이 두 경영자는 이사진 앞에서 실시할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데 몇 주를 투자했다. 그들의 전략은 분명했다. PC부문을 비롯한 사업별 총괄 매니저들이 직접 CEO에게 보고하도록 체계를 간소화하고, 주력 사업을 고성능 인텔 코어 프로세서에서 태블릿 및 스마트폰용 저전력 프로세서 아톰 Atom으로 전환하고, 관련 제품의 생산을 늘린다는 것이었다. 또 그래픽 칩, 통신용 칩처럼 모바일 친화적인 부품들을 자체 휴대폰 및 태블릿 제품군 생산에 통합시키겠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이사회는 각각의 후보자들에게 질문 공세를 시작했다. 그날 저녁 이사진 10명은 호텔 식당에서 비공개 후보 심사작업에 들어갔다. 밤에는 잠을 자러 해산했다가 이튿날 아침 뜨거운 논의를 재개했다. 일요일 12시경 크르자니크는 이사회의장 브라이언트로부터 하프 문 베이로 다시 오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당시 크르자니크는 딸이 출전한 농구 대회 결승전을 관람하고 있었다. 그는 하루이틀 만에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티셔츠, 반바지, 스니커즈를 입은 채로 하프 문 베이로 차를 몰았고, 그곳에서 자신이 인텔의 6대 CEO로 선임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CEO가 되기를 원했지만, 동시에 두려웠고 큰 기대도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CEO 자리에 앉으면 무슨 일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제임스를 사장으로 임명해 달라고 이사회에 요청한 것이었다(올해 제임스는 처음으로 포춘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순위’ 27위에 올랐다). 사실 이 조치는 제임스에 대한 감사의 표시일 뿐만 아니라 인텔의 전통에 대한 존중의 표시였다. 오텔리니 시절 전까지는 인텔의 최고 경영자 자리는 항상 2명이 공동으로 맡아왔다. 크르자니크는 제임스의 보고를 받지만, 제임스도 기업 전체의 보고를 받는 위치였다. 크르자니크는 100만 달러를 연봉으로 받았다. 현금 보너스와 650만 달러 가치의 스톡옵션을 고려하면 그의 올해 연봉은 최대 1,000만 달러에 이를 것이다.

사실 인텔의 전통을 더 엄격히 따른 건 크르자니크를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였다. 그의 선임은 논리적인 결정이었다(오텔리니와 그의 전임자 크레이그 배럿 Craig Barett은 모두 CEO에 오르기 전 COO를 역임했다). 뉴멕시코 주 앨버커키 Albuquerque 공장에서 엔지니어로 인텔에 첫 발을 디딘 크르자니크는 매사추세츠 Massachusetts 반도체 공장의 매니저로 승진했고, 2012년 COO가 되기 전까지는 제조부문을 총괄하는 수석 부사장을 맡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크르자니크는 인텔 안팎에서 많은 지지자를 얻었다. 유명 벤처 캐피털리스트이자 전직 인텔 영업부 임원이었던 존 도어 John Doerr(크르자니크와 함께 태양열 기업 미아솔 MiaSole의 이사회 멤버로 활동했다)는 “그는 대단히 멋지고, 사려 깊고, 침착하고, 결단력 있는 사람이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크르자니크가 PC 전문가라는 점이다. 결국 인텔의 핵심은 PC이며, 이는 인텔에서 오래 근무한 다른 경영자들도 모두 동의하는 사실이다. 크르자니크는 “인텔은 20년 동안 (PC부문 최대 라이벌) AMD와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이런 경쟁 구조하에선 0.5 메가헤르츠(MHz)의 성능차도 (소비자 평가와 판매에서) 엄청난 차이로 이어진다. 인텔의 구조와 DNA는 모두 이를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이사진은 제임스와 크르자니크의 협력이 인텔의 유전자를 바꿔주길 기대했다. 사실 제임스를 신임 사장으로 선임한 것은 인텔에서 전에 없던 새로운 결정이었다. 단순히 제임스가 인텔 기업 역사상 가장 높은 직책을 맡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부문 출신이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는 인텔의 제품들이 모바일 제품, 특히 구글 안드로이드 같은 새로운 운영체제에서 조화롭게 작동하기 위해 필수적인 부문이었다. 그럼에도 인텔의 고위직 중에는 소프트웨어부문 출신이 드물었다.

제임스는 ‘공격적이면서도 내성적인 무리들’로 묘사되던 남성중심의 기업문화에서 승승장구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녀는 “물론 쉽지는 않았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로 힘들었다. 기회가 부족하거나 멘토를 찾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나를 힘들게 했던 건 강인한 남성은 영웅이 되지만 강인한 여성은 나쁜 여자가 된다는 드러나지 않는 미묘한 편견이었다”고 말했다.

쾌활하고 자신감 넘치는 그녀는 직보(直報)를 하는 부하라기보다는 크르자니크의 동료 같은 인상을 풍긴다. 그녀는 입사 초기, 인텔의 전직 CEO이자 전설적인 리더 앤디 그로브 Andy Grove에 의해 사내 출세가도로 여겨지는 기술 비서(Technical Assitant)로 발탁되어 4년이 넘게 그 역할을 수행했다(‘앤디의 사단(Andy’s Army)’ 참조). 그로브(77)는 제임스에 대해 “고집이 셌고, 멈출 줄 몰랐고, 성격이 급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대단히 박식했다. 그 친구의 에너지가 부럽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녀의 에너지가 인텔에 새 생명을 불어 넣기에 충분하다고 모두가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많은 투자자들은 경영진의 더 많은 변화를 기대했다. 미국 투자은행 파이퍼 제프리 Piper Jaffray의 애널리스트 거스 리처드 Gus Richard는 인텔이 새로운 CEO를 발표한 그날 클라이언트들에게 직설적인 내용의 메모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크르자니크의 배경을 볼 때 그는 인텔의 구조변화를 이끌만한 시장감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현재 크르자니크와 제임스의 협력을 감안하면 이런 평가는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애널리스트나 경영학 전공 학생들이 구조적 변환기의 리더십에 관해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하는 인텔 출신의 경영자가 있다. 바로 앤디 그로브다. 그는 한 번만 더 잘못된 결정을 내렸더라면 인텔이 완전히 몰락할 수도 있었다고 말하곤 했다. 1996년 발간된 그의 저서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Only the Paranoid Survive)’는 거대한(때로는 자사 경쟁력을 약화시키기도 하는) 시장변화를 마주한 기업들을 위한 경영지침서다. 1980년대 초 그로브가 인텔 사장이던 시절, 핵심사업이었던 메모리칩 부문은 일본 업체들과의 경쟁으로 큰 위기에 처해 있었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제안을 했다. 엄청난 출혈을 감수하면서 끝까지 경쟁하는 대신 메모리칩 사업을 완전히 접고, 마이크로프로세서라는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자는 것이었다. 1986년 진행한 주력사업 전환은 막대한 고통이 뒤따랐다. 7,000명의 직원을 해고해야 했고, 매출액 13억 달러 중 1억 7,000만 달러 감소를 목도해야 했다. 하지만 그로브는 IBM을 설득해 당시 인기를 얻던 IBM PC제품들이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내장하도록 했다. 그 결과 인텔은 전례 없는 고속 성장을 할 수 있었다.

그로브의 표현을 빌리면, 인텔은 다시 한번 ‘전략적 변곡점’에 다다른 상태다. 인텔은 이번 사업전환을 어떻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지 고심하고 있다. 도어는 “모바일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지금까지 기술업계에서 발생한 최대 사건이다”라고 말한다. 인텔이 그동안 모바일 시장 진출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최근에는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았다. 오텔리니 시절 인텔은 계속 지키지 못할 공약을 남발했다. 2009년 초 인텔은 이듬해 아톰 프로세서 기반의 시스템-온-칩(system-on-a-chip) *역주: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진 시스템을 하나의 칩에 구현한 기술집약적 반도체 무어스타운 Moorestown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할 것이라 발표했다. LG전자가 제작을 담당하기로 했지만 이후 계획이 전면 취소됐다. 결국 무어스타운은 넷북과 자동 기계장치에 탑재되는 데 그쳤다. 2010년에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 오텔리니는 노키아와 협력해 리눅스 Linux 기반의 스마트폰 운영체제 미고 MeeGo를 개발하려 했다. 하지만 노키아는 1년 만에 이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폰 Windows Phone으로 방향을 틀었다(최근 노키아의 휴대폰 사업부는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됐다). 모바일 친화적인 기능에 투자하고, 이를 통합하려던 노력은 계속 'ZBB'로 끝났다. ‘ZBB’란 ‘제로베이스 예산(Zero-Based Budgeting)’의 약자로 재원을 고갈시키는 프로젝트를 일컫는 사내 특수용어다(제로베이스 예산의 다른 예를 알고 싶다면 ‘하인즈 쥐어짜기(Squeezing Heinz)’ 기사를 참고하라). 크르자니크는 오텔리니 재임시절에 대해 “매출 550억 달러를 실현할 소중한 기회를 갖고 있었다면, 이를 날려버리지 않도록 신중을 기했어야 하지 않았을까”라고 평가했다.

왜 인텔 같은 최첨단 글로벌 기업이 그런 기회를 놓쳤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주요한 원인은 크르자니크가 시사한 것처럼 인텔이 성공에 도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PC사업에서 수익을 짜내고, 무어의 법칙(Moore’s Law) *역주: 메모리 용량이나 CPU속도가 1.5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에 따라 최첨단 칩 생산 기술에 투자를 하는 동안 세상은 크게 변모했다. 모바일 시장은 인텔의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성장했고, 성능이 뛰어나면서도 전력소비가 낮은 칩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당초 인텔의 프로세서들은 콘센트에 전원을 꽂아 사용하는 기기용으로 개발됐다. 하지만 새로운 경쟁 칩들은 작고 가벼운 모바일 기기용으로 제작됐다. 때문에 배터리 지속 시간이 더 길고, GPS, 광대역 통신(3G와 LTE), 블루투스, 근거리 무선통신(NFS) 등 주요한 모바일 기능들이 내장되어 있다.

인텔은 오랫동안 PC 및 서버 칩 분야 1위 자리를 놓고 라이벌 AMD와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하지만 모바일 환경에는 보다 다양한 단계에서 경쟁이 존재한다. 영국 ARM 홀딩스는 모바일 프로세서 기술을 ‘판매하는’ 업체다. 뿐만 아니라 CDMA 원천기술 보유업체 퀄컴 Qualcomm, 그래픽 카드 전문 제조사 엔비디아 Nvidia 등 소위 ‘팹리스(Fabless)’라 불리는 기업들은 반도체 칩을 설계만 하고 생산하지는 않는다. 이런 기업들은 아시아의 반도체 공장을 이용해 제품을 생산한다. 인텔은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고 ‘x86’이라는 별도의 칩 아키텍처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실상 진퇴양난에 빠진 격이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같이 가장 인기 있는 휴대폰과 태블릿은 모두 인텔이 아닌 ARM사의 칩을 기반으로 구동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들은 인텔 주가에 즉각 반영됐다. 지난 10년간 인텔 주가는 23% 가까이 떨어졌다. 같은 기간 퀄컴과 엔비디아의 주가는 각각 200%, 177% 폭등했다. 그리고 ARM의 주가는 무려 8배나 올랐다(물론 인텔의 시가총액은 1,140억 달러로 ARM의 220억 달러와는 비교가 안된다).

크르자니크와 제임스는 5월 16일 열린 연례 주주회의에서 새로운 CEO로 소개된 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인텔의 최고경영진 12명을 멘로 파크 Menlo Park의 로즈우드 샌드 힐 Rosewood Sand Hill 호텔 회의실로 소집했다. 이곳에 모인 경영진은 이후 약 이틀에 걸쳐 ‘전략적 필수사항’ 여덟 가지를 설정했다. 모두가 각자의 과제를 부여받았다. 다음 달 회의에서 어떻게 전략적 필수사항을 실현하고, 그 결과를 측정할지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했다. 다음 달 크르자니크는 인텔의 큰 구조변화에 대해 설명한 내부메모를 발송했다. 크르자니크와 제임스가 이사회에서 발표했던 내용처럼, 주력 제품군의 대부분은 CEO의 직접 감독하에 놓이게 됐다. 이런 변화 때문에 오랫동안 인텔의 조직 총괄책임자를 지낸 데이비드 펄뮤터 David Perlmutter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보고체계를 간소화하고 책임을 강화해 빠르게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장에서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한 조치였다. 제임스는 “폴 오텔리니는 인텔에서 많은 업적을 이뤘지만, 주로 과거의 성공에 입각한 결정들을 내려왔다. 그러나 모바일 시장에선 다른 요소들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태블릿 부문에서 인텔은 아톰 칩을 탑재한 베이 트레일 Bay Trail 플랫폼을 개발해 가벼운 휴대용 제품들 사이에서 꽤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도시바, 아수스, 레노버 같은 제작업체들은 모두 베이트레일을 기반으로 한 태블릿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첫 제품은 연말쯤 출시될 예정이다(인텔은 머지 않아 100달러 이하의 아톰 기반 태블릿이 출시될 것이라 말하지만, 가격은 대략 200달러 선에서 형성될 전망이다).

인텔은 모바일 경쟁력을 제고하려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태블릿 분야에서의 성공은 인텔이 PC시장에서 누려온 높은 수익성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스마트 시계, 인터넷과 연결된 안경 같은 차세대 빅 트렌드를 놓칠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크르자니크와 제임스는 9월 10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 회의에서 쿼크 Quark 프로세서를 공개했다. 쿼크는 착용 가능한 기기나 산업용 사물인터넷 *역주: 생활 속 사물들을 유무선 네트워크로 연결해 정보를 공유하는 환경 애플리케이션 전용으로 제작됐다. 새롭게 출시될 쿼크 칩은 아톰에 비해 크기는 5배 작지만 전력 효율은 10배나 더 높다. 크르자니크와 제임스는 청중들로부터 질문을 받기도 했는데, 과거의 인텔이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선뜻 질문을 하려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곧 개발자들은 하나둘 인텔의 새 전략, 제품 로드맵, 그리고 쿼크의 가능성에 대해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RBC 캐피털 마켓의 애널리스트 더그 프리드먼 Doug Freedman은 “인텔은 쿼크를 통해 초저전력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또 현재 개발 중인 미완성 제품을 상품화 하려는 의지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쿼크가 성공한다 해도 착용 가능한 기기의 시장규모가 충분히 성장하기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또 오늘날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새로운 모바일 컴퓨팅 폼 팩터 Form Factor *역주: 컴퓨터 하드웨어의 크기, 구성, 물리적 배열을 의미한다 부문에서 인텔이 주도적 입지를 확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동시에 인텔의 가장 큰 문제는 공장가동률을 최대한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인텔의 대량 생산시설은 인텔의 최대 자산이면서 최대 아킬레스건이다(대량 생산시설을 건설·가동·유지하기 위해선 수십억 달러가 소요된다). 이런 시설의 재정적 타당성은 칩을 대량으로 찍어 낼만한 충분한 수요를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맥 그리거에 따르면, 현재 인텔의 생산 시설 가동률은 정상치를 훨씬 밑돌고 있다(인텔은 이에 대한 언급을 거부했다).

크르자니크와 제임스는 지속적으로 공장을 가동시키기 위한 대체 수입원을 찾고 있다. 바로 다른 기업들을 위한 맞춤형 칩 제작이다. 사실 최초로 인텔의 생산시설을 외부업체에 개방한 이는 오텔리니였다. 하지만 크르자니크와 제임스는 (경쟁사의 칩을 제작해야 할 수도 있는) 파운드리 사업 *역주: 다른 업체가 설계한 반도체를 생산해서 공급해주는 사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고려할 것임을 시사해 왔다. 파운드리로의 전환은 쉽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인지도 모른다. 크레딧 스위스 Credit Suisse의 존 피처 John Pitzer는 최근 한 보고서에서 “‘더 작고, 더 빠르고, 더 저렴한’을 강조하던 무어의 법칙은 40년 넘게 첨단산업의 핵심이었다. 무어의 법칙과 관련해 인텔은 기술, 재정, 규모상 ‘유일한 기업’이라는 이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핵심 사업은 물론 파운드리 사업에도 점차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물론 생산시설을 경쟁 업체들과 공유하는 것은 (인텔의 수익 증가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x86’ 아키텍처가 다시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없음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최소한 현재의 개인용 컴퓨터에선 그렇다. 또 인텔의 비즈니스 구조와 PC시대에 누렸던 높은 수익률을 유지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파운드리 사업은 그만큼 수익성이 크지 않다. 크르자니크와 제임스가 파운드리를 적극 검토한다 해도 그들이 실제로 수용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크르자니크는 “처음부터 우리는 떠나가는 소비자들을 억지로 PC로 다시 끌어오기보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 상황이 어려운 것은 맞지만, 인텔의 자산을 잘 활용하면 그리 두려워할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텔의 몰락을 예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인텔은 과거에도 존망의 위기에 처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한 단계 더 높이 성장했다. 더 큰 성공을 거둔 (그래서 더 자만한) 기업일수록 지배할 수 있었던 혹은 지배해야 했던 시장에서의 패배를 인정하고, 차선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 결국 크르자니크와 제임스는 앞으로 몇 년간 고통스러운 변화의 시기를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다행히 인텔의 신임 CEO와 사장은 과거의 경험 덕분에 그런 일에 능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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