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에서 게임체인저로 ‘기술의 LG’ 이끄는 선봉장

베스트 코리아 브랜드 |⑩ LG화학

LG화학은 글로벌 화학시장에서 무서운 추격자였다. 새로운 기술 습득이 빠른 데다가 기술 진보 수준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최근 LG화학은 추격자 위치를 넘어서 시장의 판을 새로 짜는 게임체인저로 발돋움했다. LG화학은 화학기업 특성상 밸류체인 하단에 위치하지만 완성품 시장의 트렌드를 좌지우지한다. 위상 변화에 따라 브랜딩 전략도 바뀌었다. 직접 고객만을 대상으로 하던 LG화학의 브랜딩 전략이 이젠 모든 일반인을 겨냥하고 있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LG
화학은 2013년 광고 부문에서 화려한 한 해를 보냈다. 거의 모든 광고 관련 시상식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으며 자사의 브랜드 가치를 드높였다. 고객과의 파트너십이 주를 이뤘던 그간의 캠페인과는 달리 이번 캠페인은 일반인들까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호평을 받았다. 기업이 영위하고 있는 화학 산업의 가치를 평범한 이들의 일상에까지 확대했다는 평가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된 캠페인 ‘더 큰 하나가 되는 그림자’ 편도 나쁘지 않았다. 2인용자전거를 타고 있는 두 사람이 그림자에서는 더 커진 한 명으로 그려져 든든한 솔루션파트너로서의 기업 이미지를 강조했다. 그림자가 드리워진 지구는 LG화학이 글로벌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기업임을 표현했다. 당시로서는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간이 지나 LG화학이 좀 더 글로벌화된 이미지를 갖게 되자 LG화학은 좀 더 다른 접근을 고려하게 된다.

이전 캠페인들이 고객과의 파트너십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전체 브랜드 이미지는 협소하게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화학산업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LG화학이라는 기업이 무슨 사업을 영위하는지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일반인들에게 LG화학은 가깝고도 먼 기업이었다.

LG화학은 이 같은 현실을 직시했다. 새로운 캠페인은 화학산업과 LG화학의 가치를 알리는 일이 주가 되어야 한다고 내부 의견이 모아졌다. 조갑호 LG화학 대외협력 부문 총괄전무는 말한다. “2013년 LG화학 캠페인은 화학산업이 지니는 가치, 그리고 그 대표기업으로서 LG화학이 지향하는 바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직접 고객과의 관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일반인들까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가치를 확대하고자 했습니다.” ‘앞선 기술마다 LG화학이 있습니다’라는 LG화학의 새 캠페인은 그간 B2B기업들이 자주 사용해온 ‘기술력에 대한 강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기술력 강조’의 방법은 사뭇 차이가 난다.

기업들이 광고에서 자사의 기술력을 선전하는 것은 주로 과시용인 경우가 많다.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기업임을 강조해 일반 대중이나 고객사로부터 신뢰를 얻고자 함이다. 하지만 LG화학은 좀 다르다. LG화학은 화학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도움을 주고 있는지부터 설명한다. 그리고 자사 기술력에 대한 직접적인 치장 대신 ‘앞선 기술마다 LG화학이 있습니다’라고 에둘러 표현해 보는 이들의 긴장을 줄인다. 의미는 전달하면서도 자기 치장이 주는 불쾌감을 줄이려는 의도다.

새 캠페인은 구호나 문구의 선전효과도 상당했지만 그중에서 백미는 자사의 화학제품으로 구성한 자동차 모양의 이미지다. 이 이미지는 ‘사실은 여러분의 가장 가까운 곳에도 화학이 있습니다. 화학 관련 기술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만든 겁니다’라는 것을 은연 중에 암시하고 있다. 일상생활에 밀접한 소재인 자동차에도, 또 화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자동차 부품 하나하나에도 화학 기술이 쓰이고 있다는 암시를 눈치채는 순간 LG화학은 딱딱한 B2B기업에서 친근한 일상의 기업으로 거리가 확 줄어든다.

이 캠페인은 여러모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LG’라는 이름이 LG화학의 브랜드 가치를 이끄는 모양새였다. 이후 LG화학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LG화학’ 그 자체로 주목 받게 되자 차츰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기술력과 시장점유율로 LG화학이 세계 정상권 기업이 되자 LG화학은 오히려 LG라는 이름을 이끄는 LG그룹의 대표기업이 되었다. LG화학은 바로 이 시점에 기존의 B2B 고객 중심 캠페인에서 일반인 전체를 위한 PR캠페인으로 스탠스를 전환하는 ‘브랜딩 전략의 변화’를 꾀한 것이다.

LG화학의 이 같은 스탠스 변화는 일종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다. 물론 그 배경은 기술력이다. 어느새 LG화학은 ‘기술력의 LG’ 모토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업이 됐다. 글로벌 화학기업으로서의 위상도 상당하고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들도 다수다. 이들 개개 제품의 기술 개발 및 시장점유율 확대 과정도 매우 흥미로워 LG화학 브랜드 전체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도움을 준다.

LG화학의 시장 선도 제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일본의 10년 아성을 무너뜨린 LCD용 편광판이다. TFT-LCD용 편광판은 LG화학 정보전자소재 사업 부문에서 가장 큰 매출을 차지하는 핵심 제품이다. 정밀 코팅, 점착 등 필름가공기술과 광학설계기술이 집약되어 고부가가치 소재로 쓰인다. 머리카락 2~3개 굵기밖에 안되는 0.3mm 초박막 필름 안에 여러 장의 기능성 필름을 압축해 넣는 기술이 핵심이다.

LG화학이 처음으로 편광판 개발을 검토했던 1997년 당시 일본 편광판 업체들은 고수익의 편광판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 기술이전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LG화학은 전사적 R&D 역량과 자원을 집중, 3년 반 만에 독자적 기술을 바탕으로 LCD 편광판을 개발하는 쾌거를 이뤘다.

LG화학은 이후 지속적인 품질개선 및 기술개발 끝에 우수한 광학 특성뿐 아니라 일본 제품보다 훨씬 뛰어난 내구성 및 내열성을 가진 편광판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LCD 편광판을 국산으로 대체하게 된다. 급기야 2008년 4분기에는 세계 편광판 시장 부동의 1위였던 일본의 니토덴코 Nitto Denko 사를 제치고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에 오르더니 이후 현재까지도 왕좌를 지키고 있다. LG화학이 10여 년이나 먼저 시장에 진출한 일본 업체들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LG화학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3D FPR(필름패턴편광안경·Film-type Patterned Retarder) 필름 이야기도 흥미롭다. 현재 상용화된 3D TV 패널에는 FPR 방식과 SG(셔터글래스 Shutter Glasses) 방식 두 가지가 있다. SG 방식이 FPR 방식보다 먼저 나와 초기 시장점유율은 SG 방식이 FPR 방식을 크게 앞질렀다.

하지만 변화가 일어났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디스플레이서치 Displaysearch에 따르면 2012년 4분기부터 FPR 방식의 3D TV 패널 점유율이 SG 방식 점유율에 비해 지속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지난해 4분기 집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최근의 흐름을 볼 때 지난해 전체 점유율에서도 FPR 방식이 SG 방식을 추월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후발 주자임에도 FPR 방식이 SG 방식을 급격히 따라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지난 2010년 세계 최초로 3D FPR 필름을 개발한 LG화학의 공이 컸다. 사실 LG화학이 FPR필름을 개발할 당시만 해도 시장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SG 방식이 이미 상용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밸류체인상 산업 하단에 위치한 소재 업체가 전혀 새로운 방식의 기술을 개발, 완성품 시장의 트렌드를 바꾸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부담이 크다. 하지만 LG화학은 ‘고객의 편의성’에 초점을 두고 우직하게 기술을 발전시켜 나갔다.

SG 방식은 우수한 화질이 장점이기는 하나 눈의 피로도가 크고 충전이 필요한 비싼 안경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FPR 방식은 해상도는 조금 낮으나 시각적인 편안함과 간편성이 장점으로 꼽힌다. FPR 방식은 SG 방식의 단점이 불만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급격히 시장을 확대해 나갔다. 현재는 불과 2년 만에 전세를 역전시킨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LG화학은 3D TV 패널에서 FPR 방식과 SG 방식이 시장을 양분하는 것이 아니라 FPR 방식으로 완전히 기울 것으로 확신한다. LG화학은 “지난해 상반기 정보전자소재 부문의 실적이 계절적 수요 둔화에 따른 매출 감소에도 불구하고 2,159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전분기 대비 21.7%가 증가한 것이 그 증거”라고 주장한다. 3D FPR 사업 역시 20% 이상 상승했을 것이란 게 LG화학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관계자는 “이 같은 흐름이라면 수년 내 FPR 방식이 3D 패널의 대세로 정착될 것”이라 확언했다.

이 밖에도 LG화학은 ABS(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타이렌 Acrylonitrile Butadiene Styrene) 수지 및 전기차용 리튬 배터리 부문에서 시장점유율 1위 및 시장 선두주자로 이름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신시장에서의 기술 개발 역시 탁월하다. 높은 성장성으로 주목 받는 2차전지 분야에서 LG화학은 지난해 10월 시장의 판을 흔들 세 가지 제품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2단 이상 계단구조를 갖는 스텝드 배터리 Stepped Battery, 곡선 형태 IT기기에 최적화된 커브드 배터리 Curved Battery, 감거나 매듭을 묶을 수 있는 케이블 배터리 Cable Battery 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결과에 힘입어 LG화학은 글로벌 화학기업으로서의 지위도 공고히 하고 있다. LG화학은 미국 화학전문지인 C&EN(Chemical & Engineering News)이 선정한 ‘글로벌 TOP 20’에서 2009년 처음 순위권에 이름을 올린 이후 2012년에는 1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매출 등의 경영 사항이나 기술력 평가 외에 브랜드 자체가 가진 가치 평가에서도 LG화학은 최근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포춘코리아와 브랜드 컨설팅 기업 인터브랜드가 공동 발표한 ‘베스트 코리아 브랜드(BKB) 2013’에서 LG화학은 화학사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순위인 15위에 이름을 올려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광고 부문에서 수상 실적이 화려했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 발표에서는 훨씬 높은 순위가 점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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