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춘코리아 CEO 500]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

정통 엔지니어 출신 CEO 기술경영으로 턴어라운드

한때 M&A 시장의 계륵이었던 SK하이닉스가 환골탈태했다. 만년 적자에 시달리던 과거를 벗고 SK그룹의 새 성장동력으로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용병술과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의 기술 경영이 빛을 발하고 있다.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2월이면 SK하이닉스가 SK그룹에 편입된 지 2주년이 된다. 그 동안 놀라운 변화가 이 회사 내에서 이뤄졌다. 편입 1년차였던 2012년에도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던 SK하이닉스는 지난해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특히 2분기와 3분기에 사상 최대 실적을 잇달아 경신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반도체 시장 점유율도 2012년 7위에서 지난해 4위로 3계단 뛰어올랐다. 10년 이상 채권단 관리를 받으며 주인 없는 설움을 겪어야 했던 하이닉스 임직원에겐 오랜 세월 쌓인 통한을 씻어내는 실적이었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그룹사 중 가장 독보적인 성과를 이뤄냈다. 영업이익이 그룹 내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 결과 시가총액 역시 그룹 내 최고로 치솟았다. 1월 9일 기준 코스피 전체 상장사 가운데 3위(27조5,900억 원)를 기록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인수 이후 1년 넘게 손실을 면치 못하자, 업계에선 밑 빠진 독에 물 붓는다는 냉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SK하이닉스는 실적으로 이 같은 우려를 말끔하게 씻어냈다.

경영 목표의 변화

SK하이닉스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건 기술 경영의 힘이었다. 엔지니어 출신 CEO를 발탁한 SK그룹의 용병술과 기술 경영을 구현해낸 박성욱 사장의 합작품이었다.

2012년 SK하이닉스를 인수한 SK그룹은 당시 경영체제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2010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아오던 권오철 전 사장(현 고문)에게 회사 경영을 맡기고 그룹 내 안착을 우선 추구했다. 하지만 1년 뒤 실적이 개선되지 않자 과감한 변화를 감행했다.

SK그룹은 지난해 2월 박성욱 전 연구개발총괄 이사를 새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박 사장은 지난 1984년 (구)현대전자 반도체연구소에 입사한 이후 미국생산법인 담당 임원, 연구소장, 연구개발제조총괄을 역임하는 등 연구개발과 제조를 망라하는 다양한 경험으로 회사 내 최고 기술전문가 위치에 올라 있었다. 권 고문이 재무통이라면 박 사장은 기술통인 셈이었다.

수장의 변화는 SK하이닉스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가 달라졌음을 보여주었다. 인수 이전 하이닉스의 최대 과제는 인수합병, 즉 회사를 잘 파는 것이었다. 그것이 채권단의 최대 요구이기도 했다. 권오현 사장은 그 과제를 가장 잘 달성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SK의 날개를 단 이후에는 SK하이닉스의 과제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SK하이닉스의 한 관계자는 말한다. “재무 리스크가 사라진 만큼 선두업체와 기술 격차를 줄이는 게 SK하이닉스의 전사적인 관건이 되었습니다. 엔지니어 출신 임원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됐죠.” 당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다양한 변곡점에 이르러 있었다. 불확실한 글로벌 경영환경이 지속됨에 따라 산업 재편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었다. 미세공정이 한계에 달한 상태였기 때문에 SK하이닉스는 차세대 메모리 제품도 시급하게 준비해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래 기술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준비도 해야 했다. 한마디로 ‘기술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었다.

박 사장은 2009년 3월부터는 사내이사로 다양한 경영활동에 직접 참여한 바 있어, 향후 SK하이닉스의 성장에 필요한 요소인 기술 리더십을 갖춘 최선의 적임자로 평가되고 있었다. 게다가 정통 ‘하이닉스맨’이라는 무게 중심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박 사장은 기대에 부응했다. 취임 후 기술개발을 이끌며 회사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여러 차례 기여했다. 열린 소통으로 선후배 간의 신망도 두텁게 쌓아갔다.

경영 전략의 변화

박 사장은 달라진 경영목표를 분명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술력 확보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과 반도체 산업의 극심한 불황으로 대부분의 업체가 투자를 축소하는 상황에서도 박 사장은 시설 확대와 연구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박 사장의 능력은 조직 혁신에서도 빛을 발했다. 핵심 기술 인력을 영입하고 조직을 효율적으로 개편했다. 미래기술연구원을 사장 직속으로 편입시키고, 8월 이천 본사 연구개발센터에 ‘분석 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IT상업의 융복합화가 심화되는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조직에도 변화를 주었다. 마케팅 본부 내 컴퓨팅 조직과 모바일 조직을 통합했다. 전원이 없는 상태에서도 데이터를 자유롭게 저장하고 삭제할 수 있는 고품질 낸드플래시 솔루션을 확보하기 위해, 플래시 개발본부에 속해 있던 솔루션 개발 기능을 별도의 본부로 확대해 위상을 강화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SK하이닉스는 2013년 다양한 제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급성장하는 모바일 D램 분야에서 20나노급 8기가비트(Gb) LPDDR3 D램과 6기가비트(Gb) LPDDR3 제품을 세계 최초로 잇달아 개발했다. 연말에는 20나노급 8기가비트(Gb) LPDDR4를 개발해 시장 선도를 위한 발판도 마련했다. 업계 최소 미세공정인 16나노를 적용한 64기가비트(Gb) MLC 낸드플래시도 본격 양산해 경쟁력을 더욱 강화했다. 실리콘관통전극 TSV(Through Silicon Via) 기술을 적용한 초고속 메모리 HBM(High Bandwidth Memory) 제품을 업계 최초로 개발하기도 했다.

잇단 제품 개발이 SK하이닉스에 던져준 의미는 상당히 컸다. 박 사장은 “예전엔 시장 수급에 따라 쫓아가는 ‘추격자’였다면 지금은 시장의 변화를 먼저 읽고 만들어가는 ‘선도자’ 체질로 변했다”며 그 의미를 확인했다. 이 외에도 박사장은 지난해 램버스와 포괄적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해 경영 리스크를 줄였고, 세계 반도체 최대 시장인 중국 시장에서 시모스 이미지 센서 사업을 강화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제품 개발과 시장 확대 전략은 놀라운 실적으로 성공 시그널을 보냈다.지난해 2, 3분기 사상 최대 분기실적을 올렸다. 증권가는 4분기에도 영업이익이 시장 예상치를 상회할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 김영찬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4분기 매출액은 중국 공장 화재의 영향으로 전분기 대비 16.9% 감소한 3조3,900억 원, 영업이익은 31.3% 감소한 8,000억 원이 예상된다”며 “화재 영향을 감안하면 양호한 실적이며, 우시 공장은 1월 내 가동률 정상화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9월 중국 저장성 우시에 있는 반도체 공장 화재로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취임 1년 차 박 사장에게 닥친 큰 악재였다. 하지만 박 사장은 복구를 서둘러 손실을 최소화시키고 실적 우려를 극복할 수 있었다.

SK하이닉스가 사상 최고 실적을 올림에 따라 큰 보상도 뒤따랐다. 지난 연말 그룹 임원인사에서 대거 승진자가 배출됐다. 그룹 전체 141명의 승진 인사 중 30%가량을 차지하는 43명의 승진이 SK하이닉스에서 이뤄졌다.

경영 환경의 변화

증권가는 올해도 SK하이닉스의 성과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영찬 연구원은 “올 1분기에는 공장 가동률이 정상화되고, D램 가격이 강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여 영업이익이 전분기 대비 12.3% 증가한 9,000억 원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김 연구원은 또 “스마트폰, PC, LCD TV 등 IT 완제품 수요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모바일 D램, 낸드 등 메모리 수요가 크게 성장할 것”이라며, 2014년 SK하이닉스 연간 이익이 전년대비 21.3% 늘어난 4조1,000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박 사장은 “2014년에는 ‘위기’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며 경각심을 요구하고 있다. 박 사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우리를 둘러싼 사업환경이 여전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2014년은 절대적 위기이기도 하고 또 다른 편으론 역사적인 기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반도체 시장은 예년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점쳐진다. 시장이 공급자 우선으로 바뀌었다. D램 시장은 현재 3개 주요 업체 위주로 재편된 상태다. 10여 개 업체가 무분별하게 공급을 늘리고 시장점유율 경쟁을 하던 치킨 게임의 시대는 지나갔다. 하지만 수요 증가세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시장에 안정적 수급이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 긍정적인 시각도 지배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박 사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업계를 둘러싼 경영환경은 여전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거시 경제의 불확실성이 제거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SK하이닉스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시장상황과 경영환경의 변화를 면밀히 살펴 조정하고 지속적인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특히 PC 중심에서 모바일로 패러다임이 변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최고 성능의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고객에게 적기에 제공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공정기술의 미세화를 극복하기 위해 3D 낸드플래시와 P램, Re램, STT-M램 등 차세대 제품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3D 낸드플래시는 시장성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올해 혹은 내년에 양산할 계획이다. PC램은 IBM과, Re램은 HP와, STT-M램은 도시바와 각각 전략적 제휴를 맺고 공동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업계에선 차세대 메모리의 상용화가 2015년 이후 진행될 것으로 예상한다. SK하이닉스도 이 시기에 맞춰 적기에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탄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성공스토리를 올해도 계속 써내려 가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SK하이닉스에 넘쳐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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