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비는 국내 토이북 시장의 개척자다. 지난 2003년 설립된 뒤 연이어 좋은 책을 내 놓으며 엄마들 사이에서 ‘국민 아기책’으로 불릴 정도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오형석 애플비 대표를 만나 애플비의 인기비결을 들어봤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사진 한평화 포토그래퍼 studiomuse.net
서울시 마포구 창전로에 위치한 애플비 사옥 3층. 사무실 한쪽 벽면 책장에는 영유아 서적들이 가득 차 있다. 오형석 애플비 대표가 헝겊으로 만든 빨간색 무당벌레 인형을 꺼내 들었다. 바스락거리는 무당벌레 날개를 펼치자 간단한 내용의 글이 써 있다. 오 대표가 말한다. “애플비가 만든 ‘무당벌레는 내 친구’입니다. 국내에서 처음 만든 헝겊책이죠. 2004년 출시했는데 지금까지 36만 부가 넘게 팔렸습니다. 영유아기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든 대표적인 토이북입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사이에서 애플비는 친숙한 이름이다. 갓 돌이 지났거나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아기들을 데리고 장난감 고르듯 책을 살펴보는 엄마들의 모습은 시내 대형 서점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풍경이다. 그리고 이들 중 대다수가 애플비에서 만든 책을 고른다. 단순한 모양과 원색을 사용한 책, 만지면 소리가 나거나 다양한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장치를 넣은 책, 의성어 및 의태어와 생활 속에서 들을 수 있는 다양한 소리를 들려주는 책, 인형을 내장해 엄마와 아기가 역할 놀이를 할 수 있는 책 등 애플비는 다양한 놀이책을 만들어 엄마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엄마의 마음,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오 대표는 2003년 애플비를 설립했다. 부친(오세경 계림북스 회장)이 1970년 세운 어린이 전문 출판사에서 일하던 오 대표는 영유아를 위한 전문적인 출판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영유아 책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읽고 있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부터 책을 친근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당시엔 영미권 영유아 도서가 국내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었어요. 좋은 책들이지만 우리 정서와 맞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정서를 담아서 잘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계림북스와는 별도로 애플비를 설립했어요.”
오 대표는 애플비 설립을 준비하면서 해외 도서전을 빠짐 없이 찾았다. 꾸준히 시장조사를 하면서 다양한 해외 영유아 서적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오 대표가 말한다. “우리도 독특한 아이템을 만들면 소비자가 반드시 알아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어머니와 아이들의 문화, 정서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유아도서를 출간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영유아 도서 시장은 다른 연령대보다 트렌드에 민감하다. 따라서 빠른 개발과 다양한 콘텐츠 발굴이 중요하다. 애플비는 매년 약 100종의 신간을 출간한다. 그동안 펴낸 도서는 1,000종이 넘는다. 영유아 발달에 효과적인 책을 만드는 건 쉽지 않다. 특히 영유아 용품은 엄마들의 까다로운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애플비가 국민 영유아 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처음부터 엄마들이 고민하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책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애플비는 편집장을 비롯 편집팀 전원이 아이를 둔 엄마로 구성되어 있다.
애플비에서 만드는 모든 도서는 ‘내 아이가 자라면서 필요한 것들, 책을 볼 때 아쉬운 점들, 책을 이렇게 만들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오 대표가 말한다. “저희 회사는 편집팀뿐만 아니라 타부서 직원들도 임신을 하면 많은 축하를 해줍니다. 그리고 출산 후에 꼭 회사를 다니라고 당부하곤 하지요. 아이디어가 나오면 팀원들 간 구체화를 위한 의견 교환이 이루어지고 시제품을 만들어 실제로 집에서 아이들에게 보여줍니다. 또한 교육전문가와 실제 사용자인 엄마들의 의견을 수렴해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을 거쳐 출간하고 있습니다.”
좋은 책은 소비자가 먼저 알아봐
애플비는 특별한 마케팅·홍보 활동을 하지 않는다. 엄마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만들어내 자연스러운 입소문으로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소비자와의 소통은 애플비가 국민 유아책 브랜드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애플비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궁금한 점이나 아쉬운 부분을 회사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리던 엄마들이 먼저 나서서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오 대표가 말한다. “소비자의 다양한 의견을 모니터링하고 소통에 힘을 쏟았습니다. 커뮤니티 멤버들과 교류를 통해 기존 도서를 보완해 출간한 사례도 있어요. 대표적인 게 사운드북 랄랄라 시리즈입니다. 엄마들의 요청으로 온·오프 버튼을 새로 달고 동요에 맞는 율동을 책에 그려 넣는 등 업그레이드 했어요.”
애플비는 유통 채널도 다양하다. 국내 유아출판 업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애플비 책만 공급하는 지사 22곳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마트, 홈플러스, 코스트코 등 대형마트와 밴더를 거치지 않고 본사가 직접 거래하고 있다. 오 대표가 설명한다. “애플비는 처음부터 유통 루트 다각화를 모색하지는 않았어요. 우수한 콘텐츠를 담은 책을 생산하다 보니 거래처 MD들이 먼저 관심을 보이더군요. 2006년에는 GS 홈쇼핑에서 먼저 홈쇼핑 판매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방송 시작 35분 만에 제품이 매진됐어요. 현재까지도 홈쇼핑 사상 전후무후한 유아상품 최다 매진 기록(87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애플비는 2006년 홈쇼핑 방송 후 전년대비 115%로 크게 성장했다. 오 대표는 도서전 참여, 교육박람회 참여 등 도서 브랜드로서의 입지 강화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통 채널을 넓힐 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애플비는 2003년 설립 이후 작년까지 약 10배 성장해 연 매출 300억 원을 올리고 있다. 국내 영유아 출판 시장 규모는 대략 1조 원 정도로 추정된다. 오 대표는 국내 영유아 출판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예전같은 성장세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출산율 저하와 장기 불황 여파가 있습니다. 애플비도 지난해에는 판매 부수가 소폭 감소했어요. 또 대형출판사들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춘추전국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앞으로는 누가 좀 더 시장친화적인 새로운 책을 내는지가 더 중요해졌다고 생각해요.”
애플비만의 튀는 아이템으로 승부
국내 유아책 시장 규모가 줄어들고 경쟁자가 늘어난 상황에서 애플비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 중이다. 수출 확대도 그중 하나다. 오 대표는 매해 국제 도서전을 탐방하며 본격적인 수출 시기를 점쳐왔다. 수출은 지난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오 대표가 설명한다. “애플비 초창기 시절 해외도서전을 가보면 정말 부러운 아이템들이 많았어요. 요즘은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상황입니다. 현재 토이북 완제품을 책의 본고장인 영국, 스웨덴, 스페인, 폴란드, 러시아, 일본, 중국, 대만, 태국 등지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북경도서전 참여를 시작으로 지난해 11월에는 ‘랄랄라 시계놀이’를 국내 최초로 한국과 중국에 동시 출간 형태로 출간했다.
애플비는 도서에 머무르지 않고 영유아 교육을 위한 아이템에 한해 제품 카테고리를 늘릴 계획도 가지고 있다. 지난해 애플비는 글로벌 1위 완구 업체 피셔프라이스와 공동 기획 제품을 내놓았다. 피셔프라이스 캐릭터를 책에 접목해 촉각볼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든 책이다. 피셔프라이스가 다른 나라 업체와 공동 기획물을 내놓은 것은 호주파이브 마일즈, 미국 리더스에 이어 애플비가 세 번째다. 오 대표가 말한다. “피셔프라이스 측에서 먼저 제안이 왔어요. 애플비의 콘텐츠와 피셔프라이스의 글로벌 유통망이 내는 시너지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해외 진출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오 대표도 두 아들을 둔 아빠다. 애플비가 만든 책이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마음 속에 자연스레 녹아 있다. 영유아 서적 시장에도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하지만 좋은 책을 만들겠다는 다짐에는 변화가 없다. 오 대표가 말한다. “새로운 시도를 계속 이어간다면 치열한 경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어요. 애플비만이 만들 수 있는 독특한 아이템으로 승부를 낼 겁니다. 그러면 좋은 책을 보급하겠다는 애플비의 목표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