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듈형 조립식 스마트폰 시대가 온다

완제품 아이폰과 갤럭시 S 대신 프로세서나 배터리, 스크린만을 구입하는 시대가 오면 어떻게 될까?

작년 10월 모토로라가 ‘아라(Ara)’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모듈형 스마트폰의 개발. 사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스크린과 프로세서, 배터리, 카메라, 키보드 등의 모듈을 직접 선택해 표준형 프레임에 조립하는 신개념 휴대폰이다. PC를 DIY하듯 스마트폰을 DIY 하는 것이라 이해하면 된다. 구글이 모토로라를 레노버에 매각하면서도 아라 프로젝트만은 남겨뒀을 정도로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으며, 이르면 오는 4월 그 실체가 공개될 전망이다. 공식 시판되기에 앞서 개발자들에게 먼저 공급될 것이지만 말이다.

아라폰은 분명 대단히 혁신적이며,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다. 아이폰의 등장 이상으로 강력한 패러다임 변혁을 촉발할 개연성도 크다. 반면 아라폰의 개념은 휴대폰 제조사들에게는 절망적 상황 그 자체다. 이들은 현재 소비자들이 약 2년 정도의 주기로 휴대폰을 통째로 교체하도록 종용하는 다소 의도적인 진부화를 통해 번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구글은 안드로이드라는 오픈소스 기반 운영체제(OS)를 개발, 애플이 독점적 지위를 누렸던 스마트폰 시장을 ‘아이폰 vs 안드로이드폰’의 양강 구도로 바꿔놓은 전력이 있다. 이런 오픈소스의 최대 장점은 누구나 제품의 아키텍처에 접근, 최고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안드로이드 OS 개발 이후 중소 소프트웨어 개발팀도 대형 기업 못지않은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휴대폰 제조사와 소비자 모두를 놀라게 할 뛰어난 앱들이 꾸준히 양산되고 있다.

그러나 오픈소스 하드웨어는 물리적인 설계·제작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구현이 훨씬 까다롭다. 휴대폰 케이스를 열어서 고장 난 부품 하나 교체하는 것조차 아무나 하기 힘들지 않은가. 바로 이 같은 물리적 장벽이 독자적 품질관리 조직을 보유, 모든 것을 직접 제어할 수 있는 대기업들에게 휴대폰 시장이 좌우되는 구조를 만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 장벽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3D 프린터의 보급에 따라 중소 업체들이 하이엔드급 하드웨어 제작에서 두각을 나타낼 기반이 마련되고 있는 것. 이제는 소규모 작업실에서도 CAD 소프트웨어로 설계를 한 뒤 3D 프린터로 부품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시제품을 만들 수 있다. 또한 기업들의 독창적 제품 개발을 돕는 도 있다. 예컨대 신생 제조업체 보육기업 HAXLR8R은 제조사와 중국 광둥성 선전 지역의 공장들을 연계시켜 저렴한 제품생산을 돕는다.

이 점에서 아라폰과 같은 모듈식 휴대폰의 미래는 밝다. 언젠가는 완제품 아이폰과 갤럭시 S 대신 프로세서나 배터리, 스크린만을 구입하는 시대가 올 것으로 확신한다. 그리고 그때는 휴대폰 제조사들의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와 제조사가 모두 승리자가 되려면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에서 그랬던 것처럼 제조사들 스스로 오픈소스 하드웨어를 수용하고, 적극 육성해야 한다.



진부화 (陳腐化, obsolescence) 신제품 출시, 기술 발전 등 외부요인에 의해 기존 제품의 가치가 낮아져 기능적 문제가 없음에도 사용연한이 단축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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