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초정밀 이터븀 원자시계

오차율 1억년당 1초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경기에서 금메달 후보인 네덜란드의 얀 스메이컨스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한 뒤 전광판을 주시했다. 기록은 1위와 불과 0.01초 뒤진 69초32였다. 이렇듯 스포츠 경기에서는 정확한 판정을 위해 0.01초, 혹은 0.001초의 시간까지 가늠할 수 있는 정밀측정시스템이 요구된다. 그런데 이 정도의 정밀도는 과학계, 특히 원자시계 연구분야에서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한다.




최근 국내에 독특한 뉴스 하나가 전해졌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시간센터 유대혁 박사 연구팀이 차세대 표준시계로 주목받고 있는 ‘이터븀(Yb) 원자 광격자 시계’를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했다는 소식이었다.

이터븀 원자시계는 기존의 세슘(Cs) 원자시계를 대체할 새로운 표준시계로 주목받는 광시계의 일종으로, 이번에 유 박사팀은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이터븀 원자시계의 개발에 성공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시계의 오차는 1억년당 1초에 불과하다. 정확히 말해 1초당 나타날 수 있는 오차가 2.9×10-16초로서, 무려 1억년이 지나야만 약 0.91초의 오차가 발생한다.

이터븀 광격자 시계의 기본 원리는 이렇다. 이터븀 원자들을 진공 체임버에 넣고 전후, 좌우, 상하의 6개 방향에서 레이저를 발사한다. 그러면 원자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지면서 움직임이 제한돼 냉각이 이뤄진다. 이후 또 다른 레이저로 빛의 격자를 만들어 일정 숫자의 이터븀 원자를 가둔다. 그리고 원자의 고유진동수와 동일한 진동 주파수를 가진 레이저를 발사함으로써 정확한 1초를 측정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광격자 시계에는 이터븀, 스트론튬(Sr), 수은(Hg) 등 레이저를 통해 포획이 가능한 원자들이 활용된다. 이터븀은 상대적으로 에너지 구조가 간단해 연구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와 관련 유 박사는 “현재 각 나라마다 서로 다른 원자를 이용해 광격자 시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특정 원자를 이용한 광격자 시계의 원천기술을 확보하면 향후 다른 원자를 활용한 연구도 한층 용이해지기 때문에 기술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광격자 원자시계는 원자의 고유진동수가 클수록 정확도도 높아진다. 특정 시간동안 움직임이 더 많아야 시간을 더욱 미세하게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줄자의 눈금이 촘촘할수록 길이 측정의 정밀성이 높아지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예컨대 이터븀은 고유진동수가 약 518㎔(1초당 518조2,900억회)로 현재 국제표준시계로 채택된 세슘 원자의 초당 90억회와 비교해 5만 6,000배 이상 정밀하다. 참고로 원자를 굳이 레이저 격자에 가두는 이유는 원자가 자유롭게 움직일 경우 정확한 주파수 측정이 어려운 탓이다.

유 박사는 “이번 연구 성과는 1초에 대한 정의를 바꿀 수 있는 광격자 시계의 개발을 국내 자체 기술로 성공시켰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광격자 시계에 대한 오차범위를 더욱 줄이고 통해 객관성을 확보, 누구나 인정할 국제표준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극도의 정밀성을 추구하는 시간 표준 연구가 과연 우리의 삶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까. 이 기술은 가깝게는 휴대폰과 GPS에서부터 멀게는 항공우주분야 같은 최첨단 산업에 필수적으로 활용된다. 지금까지 이 분야에서만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7회나 배출됐다는 사실이 그 중요성을 방증한다.

구체적으로 휴대폰 네트워크는 데이터를 정확히 전송하기 위해 하루 100만분의 1초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다. 때문에 이동통신 기지국에는 자체 원자시계를 구비해 놓은 경우가 많다. 이렇듯 정밀한 시간 측정 없이는 통화 자체가 엉망진창이 될 수 있다.

GPS도 마찬가지다. GPS는 20여대의 위성네트워크에 의존하는데 각 위성마다 여러 대의 원자시계가 내장돼 있다. 덕분에 위성이 지상의 GPS 기기에 정확한 시간 신호를 보낼 수 있으며, GPS 기기는 이 신호가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을 측정해 자신의 현 위치를 파악하게 된다. 인공위성의 시간 측정이 부정확하면 GPS 기기의 정확도도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주탐사선 역시 원자시계를 내장, 위치정보를 주고받는다. 정확한 원자시계 없이 유인탐사에 나선다면 자칫 우주미아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외에도 원자시계는 물리법칙 검증 연구에 쓰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가속운동을 하면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2012년 노벨상 수상자인 미국의 데이비드 와인랜드 박사팀은 이온 광시계의 이온을 가속 운동시켜 시간이 느리게 가는 현상의 관측에 성공한 바 있다.



이터븀 원자시계 작동 메커니즘

1. 투입
진공상태의 광격자 분광기에 기체형태의 이터븀 원자들을 투입한다.



2. 냉각
여섯 방향에서 원자와 강하게 공명하는 레이저를 발사한다. 그러면 원자들이 레이저에 밀려 한 덩어리로 모아진다. 이때 원자의 물리적 움직임이 제한되면서 원자가 초저온으로 냉각된다.



3. 격리
냉각이 완료되면 새로운 레이저를 발사해 격자 구조를 만든 다음, 원자들을 소규모 나눠서 각 격자 속에 가둔다. 이는 원자 간의 충돌에 따른 주파수 변화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4. 자극
시간측정 레이저를 발사한다. 레이저의 주파수를 이터븀 원자의 고유진동수와 동기화하여 원자를 자극한다. 대다수 원자가 자극됐을 때 레이저의 진동수를 측정하면 원자의 고유진동수를 알 수 있다. 이렇게 극도로 정확한 시간 측정이 가능하다.



이터븀(Yb) 원자의 고유진동수. (1초당)
518,295,836,590,865회



[ANOTHER] 원자시계

세슘 시계
극초단파를 사용해 세슘 원자를 자극
오차: 1억년당 1초
고유진동수: 초당 90억회
원자수: 1,000만개

스트론튬 시계
레이저를 사용해 스트론튬 원자를 자극
오차: 3억년당 1초
고유진동수: 초당 430조회
원자수: 2,000개

수은 이온 시계
레이저를 사용해 수은 이온을 자극
오차: 10억년당 1초
고유진동수: 초당 405억회
원자수: 1개

양자 논리 시계
레이저를 사용해 알루미늄 원자를 자극하면
베릴륨 원자가 그 자극을 기록
오차: 37억년당 1초
고유진동수: 1,100조회 원자수: 2개





고유진동수 (natural frequency) 자기장, 전자파 등의 외부요인을 완벽히 차단한 진공상태에서 원자가 1초 동안 진동하는 횟수.
광격자(optical lattices) 시계 광시계의 일종. 레이저를 이용해 원자들을 포획·냉각한 뒤 또 다른 레이저로 만든 격자 속에 원자를 가둬서 진동수를 측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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