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의 로봇 구조대원 선발대회

DARPA 로보틱스 챌린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연약한 인간 대신 강력한 로봇이 사고를 수습했다면 그 여파가 지금처럼 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현재 미국 펜타곤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이처럼 위험천만한 재해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로봇 개발을 위해 세계 최강 로봇 연구팀을 한곳으로 불러 모아 경진대회를 펼치고 있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말 진행된 트라이얼 대회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피해국인 일본 연구팀의 로봇이 최고 득점을 얻었다. 과연 올해 파이널 대회의 우승 트로피는 어떤 로봇에게 돌아갈까.



DARPA의 로보틱스 챌린지(DRC)는 다양한 자연 및 인공적 재해상황에 인간을 대신해 투입되거나 인간 구조대원을 지원할 수 있는 재난구조로봇 개발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로봇공학 연구팀들이 자신이 개발한 로봇과 로봇 제어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진검승부를 펼치고 있다.

각 팀들은 매우 짧은 기간 내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센서, 인간-기계 제어 인터페이스 등을 개발해 DARPA가 정한 재해 상황에서의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전문 재난구조대원의 역할을 수행해야하는 만큼 DRC 참가 로봇들의 요구능력은 극히 까다롭다. 웬만한 수준의 연구팀은 참가 자체도 불가능할 정도다.

DRC는 총 3개의 이벤트로 진행되는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에 중점을 둔다. 작년 6월 가장 먼저 진행된 ‘버추얼 로보틱스 챌린지’에서는 가상공간 내의 모의 로봇이 3가지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하는 능력을 평가했다.

작년 12월 20일과 21일 양일간 플로리다주 소재 레이싱경기장인 홈스테이트 마이애미 스피드웨이에서 개최된 ‘DRC 트라이얼’의 경우 재해 상황을 재연한 세트에서 한 번에 하나씩 총 8가지 임무를 수행하며 로봇의 기동성과 조작성, 손재주, 인지능력, 조종제어 메커니즘을 평가받았다.

그리고 올해로 예정된 마지막 이벤트인 ‘DRC 파이널’에서는 실제 재해현장에서처럼 모든 임무를 연속적으로 통과해야 한다. 심지어 로봇과 조종사 간의 통신이 악화된 상황에서의 능력도 평가된다. DARPA는 이렇게 DRC를 통해 확보된 기술들이 향후 로봇공학의 지형도를 바꿔놓을 것이며,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훌륭하게 임무를 완료하는 자율 로봇 탄생의 기반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이번 대회의 최종 우승팀 1팀에게는 세계 최강 로봇 연구팀이라는 영예와 함께 200만 달러의 상금이 지급될 예정이다.



인간이 대형 자연재해와 인재에 무력하다는 사실은 역사에서 무수히 입증된 바이다. 때문에 인간의 구조·복구 작업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반면 로봇은 방사선이 넘쳐나거나 붕괴 우려가 있는 빌딩 잔해 속에서도 활약이 가능하다. 인간 구조대원의 약점을 보완해줄 최적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것.

다만 공상과학 영화 속 로봇과 달리 오늘날의 로봇 대부분은 재해지역을 자유롭게 활보할 능력도, 위험상황을 해결할 능력도 구비하지 못하고 있다. 울퉁불퉁한 지형을 이동하거나 문을 여닫는 일,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조차 힘에 부친다. 이 점에 맞춰 DARPA는 DRC를 계기로 미래 재난구조 로봇에 필요한 혁신적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연구개발 열기를 북돋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DARPA는 발생시기와 장소, 결과의 예측이 어려운 재해상황에 적응할 수 있도록 4가지 핵심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로봇을 원하고 있다. 열악한 재해현장에서 이동이 가능할 만큼 고도의 기동성과 손재주를 가진 로봇,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기존 도구들을 사용할 수 있는 로봇, 별도의 전문적 교육 없이도 조종할 수 있는 로봇, 그리고 인간 조종사의 지시 및 센서가 입수한 정보에 따라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부분적 자율성을 갖춘 로봇이 그것이다.

이중 DARPA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능은 기동성과 조작성, 손재주다. 예측 불가능성을 띠고 있는 실제 세계에서 운용되는 로봇은 과거에 접해보지 않은 환경에서도 효과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고도의 재프로그래밍 작업 없이도 인간의 공구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통신 상태가 불량해져 인간이 일일이 동작을 제어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작동을 계속해야 하므로 일정수준의 자율성도 필수적이다. 인간 조종사가 문을 열라고 명령하면 나머지는 스스로 알아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기반해 DRC 트라이얼에서 테스트한 8개 과제는 차량 운전, 지형 극복, 사다리 오르기, 잔해 제거, 문 열기, 벽체 절단, 밸브 잠그기, 소방호스 결착이었다. 과제를 이렇게 정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다름아닌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근거로 삼았다고 알려진다.

당시 사고현장에 축적된 수소가스를 대기 중으로 배출하기 위해 대응팀이 급파됐지만 인간은 견딜 수 없는 수준의 방사선 때문에 임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며칠 후 폭발로 이어졌다. 그와 같은 위험하고 긴박한 상황에서도 인간 대신 제 임무를 다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 대응팀이 극복해야 했던 코스를 고스란히 재현한 것이다.



DRC 참가팀들은 A에서 D까지 4개 트랙으로 분류돼 자웅을 겨룬다. 트랙 A와 트랙 B팀은 제안서 검토를 거쳐 DARPA의 연구 지원금을 받았다. 로봇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개발하는 팀이 트랙 A, DARPA가 제공하는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에 소프트웨어만 탑재해 경쟁하는 팀이 트랙 B다. 제안서 검토는 2012년 4월부터 10월까지 이뤄져 트랙 A의 7개팀이 각각 180만 달러를, 트랙 B의 11개팀이 37만5,000달러씩을 수령했다. 트랙 C와 D는 사전 연구 지원금을 받지 못한 팀들이다. 소프트웨어
만 개발하는 트랙 C팀들은 경쟁에서 승리할 경우에 한해 연구 지원금과 아틀라스 로봇의 사용권이 제공된다. 하드웨어도 개발하는 트랙 D팀은 연구 지원금을 얻을 자격은 없는 반면 파이널까지 올라가 우승한다면 200만 달러를 챙길 수 있다.

그동안 진행된 상황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13년 5~6월 펼쳐진 트랙 B, C팀 대상의 버추얼 로보틱스 챌린지에서는 트랙 B 10개팀, 트랙 C 16개팀이 예선을 통과했고 이중 7개팀이 연구 지원금과 아틀라스 로봇의 사용권을 확보했다.

같은 해 7월에는 트랙 A팀 대상의 핵심 설계 검토를 통해 6개팀이 추가 지원금을 받았고, 11월에는 트랙 A~D팀 전체를 상대로 안전성 및 성능 인증을 실시해 트랙 D의 4개팀이 추가로 통과하면서 DRC 트라이얼에 참가팀이 17개 팀으로 확정됐다.

최종 파이널 대회에서는 트라이얼 성적 상위 8개팀이 맞붙게 되며, DARPA는 이들에게 각각 100만 달러의 연구자금을 지원했다. 우리나라의 KAIST도 국가대표급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HUBO)’를 개조한 ‘레인보우’를 들고 트라이얼에 참여했지만 안타깝게도 결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정확한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파이널 대회에서 참가팀들의 기술수준은 트라이얼 때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 있을 것이 확실하다. 전초전을 치른 만큼 각자 취약했던 부분을 적극 보강해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애물 제거나 밸브 잠그기 같은 작업은 우습게 처리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때에도 복잡하고, 인간과의 교감이 필요한 임무는 조종사의 개입이 필요할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DARPA는 DRC가 인간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진정한 의미의 구조로봇 탄생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 DRC 파이널 우승후보
파이널 대회 참가권을 얻은 8개팀의 로봇 4종의 특징을 간략히 알아본다.


섀프트
HRP-2 기반 이족보행로봇

DRC 트라이얼 우승자. 작년 12월 구글에 인수된 일본 섀프트의 작품으로 이 회사의 휴머노이드 로봇인 HRP-2를 DRC의 임무에 맞춰 개량했다. 신장 1.48m, 중량 95㎏, 자유도(DOF)는 30이며, 팔을 벌렸을 때 너비가 1.3m다. HRP는 인간형 로봇 프로젝트의 약자로서 1997년 시작된 혼다의 P3 프로젝트가 모태였다가 1998년부터 일본 경제산업성 등의 지원을 받아 카와다공업이 주도적으로 완성했다. HRP-2는 2003년에 발표된 이 프로젝트의 최종성과물이다. 현재 섀프트는 인지, 계획, 동작 생성 및 제어, 사용자 인터페이스 등이 통합된 지능형 로봇 커널을 개발할 계획이다.





카네기멜론대학 국립로봇공학센터(NREC)
침프 (CHIMP)

신장 157.4㎝, 중량 181㎏, 너비 3m의 침프는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복잡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개발됐다. 이를 위해 인간과 유사한 크기와 외관, 작업 반경, 체력, 손재주 등을 갖추고 있다. NREC는 제어방식의 과도한 복잡성을 피하고자 동적 안정성보다는 정적 안정성에 중점을 뒀다. 그 일환으로 다리에 무한궤도를 장착, 걷는 것에 비해 균형제어에 들이는 노력을 대폭 줄였다. 특히 침프는 360도의 주변 상황을 감지해 조종사의 상황인식 능력을 높여주며, 난이도가 낮은 작업은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 작업속도 증진과 통신장애에 대한 대응성이 뛰어나다. 영장류의 움직임을 모방, 2족 보행과 4족 보행이 가능하다는 점도 차별화된 특징이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
로보시미언 (RoboSimian)

유인원에서 영감을 얻은 4족 보행 로봇. 화성탐사 로버 등의 개발 경험을 통해 JPL이 확보하고 있는 설계·시스템·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이 접목돼 있다. 4개의 다리와 각 다리마다 부착된 3개의 손가락 덕분에 매우 안정적인 균형 제어 능력을 발휘한다. 개발팀에 따르면 로보시미언 개발의 3대 원칙은 모듈화와 손재주, 현장 적합성이었다. 자유도(DOF) 28로 기동성과 조작성, 손재주가 좋으며 로봇을 접어서 부피를 줄일 수도 있다. 신장은 두 다리로 일어섰을 때 164㎝며, 중량은 배터리 포함 108㎏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아틀라스 (Atlas)

군용 4족 보행 로봇 ‘빅독(Big Dog)’으로 유명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이전모델인 ‘펫맨(PETMAN)‘ 로봇을 DARPA의 요구에 맞춰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강력한 유압 액추에이터를 장착, 팔다리로 벽을 잡은 채 바닥을 밟지 않고 지면의 틈새를 건너갈 수도 있다. 신장은 1.8m, 중량은 150㎏이며 파이널 참가팀 중 5개팀이 아틀라스를 하드웨어로 이용해 대회를 치르게 된다. 과거 아틀라스가 파편에 얻어맞고도 한 다리로 균형을 유지하는 모습의 동영상이 공개돼 화제가 된 적도 있다.



▶ DRC 트라이얼의 과제
DRC 트라이얼 참가 로봇들은 총 8개 임무를 수행했다. 각 임무마다 최대 4점의 점수가 부여돼 총점은 32점이었다.


1. 차량 운전
다목적 차량을 운전해 여러 장애물이 놓인 코스를 주행. 장애물과의 충돌 없이 목적지에 도착해 하차한 뒤 결승점까지 이동.

2. 지형 극복
잔해물이 놓인 코스를 자력으로 이동해 완주.

3. 사다리 오르기
DARPA가 정한 규격의 사다리를 자력으로 올라가기.

4. 잔해 제거
입구를 막고 있는 잔해 더미를 치우고 내부로 진입.

5. 문 열기
미는 문, 당기는 문, 도어클로저가 부착된 문을 열고 내부로 진입.

6. 벽체 절단
공구를 사용하여 벽에 그려진 그림을 따라 벽체를 절단해 구멍내기.

7. 밸브 잠그기
최대 3개의 밸브를 잠가서 파이프 누출을 차단.

8. 소방호스 사용
소방호스 노즐을 들고 소화전까지 이동해서 노즐을 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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