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치 윈도 태블릿이 정체된 시장에 활력소 될까

CLOSER LOOK

8인치 윈도 태블릿PC(이하 태블릿)가 시장에서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물량이 동나 못 팔 정도다. 기존 태블릿과 무엇이 다르기에, 시장이 주목하는 것일까?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사진 김태환 포토그래퍼 circus-studio.net


2010년 말 국내에 아이패드가 출시된 이래 적잖은 비즈니스맨이 태블릿을 구입했다. 가벼워 들고 다니기에 좋았다. ‘내가 가진 노트북은 너무 무거워. 태블릿이 있으면 짐도 줄고 업무 효율도 높아질 거야’라고 스스로를 현혹하며 지갑을 열었다.

재계도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해 적극 도입했다. 주요 대기업에서는 태블릿을 임직원에게 제공하고, 모바일 결재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보험사에서도 태블릿 전용 앱을 개발해 재무설계사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비즈니스 파트너나 고객들에게 ‘첨단’ 이미지를 더해주는 후광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3년여가 지난 지금, 태블릿에 대한 관심은 전만 못하다. 업무 활용도도 기대만큼 높지 못하단 분석이 나오고 있다. 먼저 인터넷 트래픽을 분석해보자. 시장조사업체 컴스코어는 2011년 흥미로운 자료를 발표했다. 사람들이 뉴스 사이트 접속에 이용하는 기기를 시간대별로 분석한 결과, 오전 출근 시간대엔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일반 PC보다 조금 높았던 반면, 업무시간대를 장악하는 건 역시 PC다. 오전 10시 이후 6시까지는 데스크톱과 노트북 PC 이용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다시 퇴근 이후 밤 시간대엔 태블릿 이용률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한편 말해 태블릿이 업무에는 실제 사용되지 않는다는 뜻이고, PC를 대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물론 심야 이용자 대부분이 집에서 태블릿으로 야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해석이 달라지겠지만, 일단 그런 전제는 비현실적이다.

기업마다 태블릿을 업무에 활용하고자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대부분 시도에 그치고 활성화 되지 않았다. 한때 태블릿으로 결재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언론에 자랑하던 모 대기업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있음이 확인됐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업무 활용도가 낮기 때문이다.

대부분 국내 회사가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 윈도 OS를 기반으로 업무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등 MS오피스를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MS오피스의 라이벌이자 국내 관공서에서 채택해 쓰고 있는 한컴오피스 역시 윈도OS용 프로그램이다. 기업 내 인트라넷 역시 윈도OS 기반 위에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iOS기반의 아이패드나 안드로이드OS 기반의 태블릿과 호환성이 떨어진다. 호환이 되더라도 다소 불편한 과정을 거쳐야 된다. 결국 태블릿은 비즈니스맨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는 국내 태블릿 시장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글로벌 시장과는 반대로 움직였다. 시장조사기관 HIS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태블릿 디스플레이 출하량을 보면 2012년 1억5,500만 대에서 2013년 2억6,000만 대로 69%나 성장했다. 미국의 태블릿 PC 판매량도 약 4,200만 대로 전년대비 64% 늘었다. 현재와 같은 추이를 유지한다면 2015년에는 데스크톱PC 시장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달리 국내 시장은 축소되고 있다. 통신사의 태블릿 가입자 추이를 보면, 2013년 5월에 73만2,714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감소하고 있다. 2013년 11월 가입자는 65만5,659명이다. 와이파이 Wi-Fi 버전을 포함한 2013년 국내 시장 출하량은 115만 대, 매출 6,509억 원으로 전년대비 각각 8.2%, 16.3% 하락한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다소 정체됐던 국내 태블릿 시장에 지난 연말부터 희망이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윈도8.1 OS를 사용하는 8인치 태블릿이 출시되며 시장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12월 에이서가 ‘아이코니아 W4’ 500대를, 레노버는 ‘믹스2(Miix 2)’ 500대를 내놓았는데, 한 달이 안 돼 모두 팔렸다. 레노버 믹스2 는 출시 36시간 만에 ‘완판’되는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물량은 아니었지만, 주목을 끌기엔 충분했다. 판매 실적에 고무된 한국MS는 1월 서울 종로 본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해의 전략 상품 중 하나로 8인치 윈도 태블릿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김영욱 한국MS 개발자 플랫폼 사업총괄 부장은 말한다. “윈도 태블릿은 PC와 동일하게 윈도 OS와 오피스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어 태블릿에서도 사무용 PC와 똑 같은 업무를 보려는 사용자들에게 적합합니다. 이번에 출시된 8인치 윈도 태블릿은 기존 10인치 안팎의 제품보다 더 가벼워지고 배터리 용량도 커졌을 뿐 아니라, 아톰 쿼드코어 CPU를 채택해 일반 PC와 동일한 수준의 성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10인치 이하의 윈도 태블릿에는 오피스 2013 홈&스튜던트가 무료로 탑재되어 있어 구매욕을 더욱 자극했다.

과연 8인치 윈도 태블릿이 정체된 국내 태블릿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시장에서 대세가 될 수 있을까? 한국MS 측은 그렇다고 말한다. 근거로는 3C를 제시한다.

첫째, 콘텐츠(Content)다. 윈도 태블릿은 기존에 PC로 소비하던 모든 콘텐츠는 물론 새로운 앱 형태의 콘텐츠를 한 디바이스에서 모두 활용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사이즈에 대한 평가도 좋다. 오디오, 영상, 전자책, 게임, 앱 등 모든 걸 즐길 수 있는 최적의 크기라는 평가다. 사실 크기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뉘는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삼성, 아마존에 이어 애플도 2012년부터 8인치 제품을 내놓은 걸 보면 8인치가 시장에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하는 걸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콘텍스트(Context). 즉, 상황정보다. 태블릿을 이용하면 단순한 정보를 나열할 뿐 아니라 상황을 복합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태블릿은 PC와 다르게 다양한 센서를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태블릿 가격은 노트북보다 저렴하지만 GPS, 자이로스코프 등 각종 센서를 내장하고 있다. 센서가 취합한 정보는 클라우드로 모아지고, 서버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용자에게 의미 있는 정보를 새로 제공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뭐니뭐니해도 윈도 기반(Case in Windows)이라는 점이다. 기존 윈도에서 사용하던 프로그램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윈도 태블릿만이 가진 장점이다.

8인치 윈도 태블릿을 향해 시장이 보여준 초기 신호는 분명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불씨 단계. 불꽃이 활활 타오르기까진 풀무질이 필요하다. 윈도스토어를 강화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윈도스토어는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이에 대해 한국MS의 김영욱 부장은 “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인 데다, 윈도 태블릿 사용자가 늘수록 윈도스토어가 활성화되는 건 시간 문제”라고 답한다.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도 과제다. 지난 연말 판매량은 얼리어답터 수요로 평가된다. 일반 소비자에게까지 수요가 확산되는 건 또다른 문제다. 소비자들은 태블릿에 대해 ‘업무에 부적당하다’는 경험을 이미 한 차례 겪은 바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윈도 태블릿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가 낮은 것도 국내 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 제품력만으로는 시장 흐름을 뒤바꿀 수 없다. 과거 비디오 시장에서 VHS가 베타를 압도한 게 대표적 사례다.

최근 MS는 새로운 CEO를 영입하고, 창업자 빌 게이츠가 경영일선에 복귀하는 등 절치부심하고 있다. 8인치에 승부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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