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허브 꿈꾸는 홍콩 미술시장

서진수의 ‘미술과 경영’

최근 10년간 아시아에서 가장 뜨거운 미술시장은 단연 홍콩이었다.
글·사진 서진수 강남대 경제학과 교수 겸 미술시장연구소 소장


아시아 미술시장 가운데 홍콩과 싱가포르는 참 독특한 곳이다. 두 곳 모두 유통이 중심인 시장이다. 생산자인 작가가 없는데도 유통이 강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 도시가 갖는 강점은 역시 높은 소득 수준과 경제적 자유도, 경쟁력일 것이다. 2013년 조사에서 경제적 자유도는 홍콩이 1위, 싱가포르가 2위였고, 경제 경쟁력은 싱가포르가 1위, 홍콩이 2위를 차지했다.

홍콩과 싱가포르를 포함해 아시아 각국의 미술시장은 모두가 ‘아시아 미술시장 허브’ 또는 ‘아시아 미술시장 플랫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아트페어나 경매를 개최하고 있다. 미술시장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컨템퍼러리 미술의 이브닝 세일(고가 미술품 경매)을 보면 최근 10년간 아시아에서 가장 뜨거운 곳은 홍콩이었다. 홍콩에는 억만장자가 한국과 싱가포르를 합친 것보다 더 많다. 홍콩은 매주 주말이면 수억 원짜리 호화 파티가 열리고, 경마, 패션쇼 등 다채로운 향연이 펼쳐지는 금융, 무역, 명품의 도시이자 소비의 도시다.

홍콩에선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회사인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각각 1973년과 1986년부터 미술품 경매를 하고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메이저 경매를 치르고 있는 양대 회사는 최고가와 낙찰총액 경쟁을 벌이며 관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2013년 가을 경매에서 15개 섹션 경매를 치른 소더비는 5,527억 원, 크리스티도 같은 15개 섹션 경매를 치러 5,058억 원어치의 미술품 거래를 성사시켰다. 양대 경매회사의 한 시즌 낙찰총액이 1조 원을 넘는다는 것은 컨벤션 산업, 호텔관광업, 쇼핑, 소비재 판매 등 연관 산업 파급 효과 또한 엄청난 규모에 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미술품 경매는 규모가 작아 근현대 미술품, 고미술품, 해외미술품 등 3~4개의 섹션을 2~3시간 만에 끝마치는 데 비해 홍콩의 메이저급 경매회사들은 평균 4~5일간 계속 경매를 진행한다. 경매 분야도 중국의 고대 서화, 근대서화, 현대서화, 근대 아시아 미술품, 현대 아시아 미술품 주간 경매와 야간 경매, 동남아 미술품, 도자기, 보석, 시계, 와인 등으로 다양하다. 이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현대 아시아 미술의 야간 경매다. 아시아의 각종 언론매체가 총집결하고, 입장을 위해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도 마다치 않으며, 누구 작품이 최고가에 팔리고, 어떤 작품이 최고가 기록을 경신할지에 대해 모든 이들이 궁금해하는 경매다.

최고가 낙찰 경쟁은 회사 간, 작가 간, 국가 간에 이뤄지는데, 절대적으로 양이 많은 중국 작가들이 계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번갈아 가며 최고가 기록을 경신하고 있으며, 양대 회사는 인기작가의 최고 걸작 소싱에 사활을 걸고 있다. 회사의 자존심 싸움도 있지만, 대략 25%에 달하는 거래수수료가 회사 이익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명예와 실익을 위한 대결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현대미술품 경매에서 고가경쟁은 주로 중국의 장샤오강과 정판즈가 벌이고 있다. 2013년 10월 소더비의 40주년 기념 야간 경매에서 정판즈의 ‘최후의 만찬’이 1억 8,044만 홍콩 달러(239억 원)에 팔려 아시아 현대미술 최고가를 기록했다. 11월에 열린 크리스티의 아시아 근현대 야간 경매에선 정판즈의 ‘병원시리즈 3개 연작’이 1억 1,324만 홍콩 달러(150억 원)에 팔렸다. 2014년 4월에 열린 소더비의 근현대 아시아 미술 야간 경매에서는 장샤오강의 ‘혈연, 대가족 No.3’가 9,420만 홍콩 달러(125억 원)에 팔려 2008년 5월에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아시아 최고가를 세운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외로운 카우보이’의 낙찰가 1,516만 달러(158억 원)에 근접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지난 2년 동안 중국 대륙의 주요 경매회사들은 홍콩 지점을 설립하거나 홍콩 경매 진행을 통해 중화권과 아시아 경매시장의 판도를 바꿔왔다. 2012년 기준 7조 2,789억 원에 달하는 거대한 경매시장을 거느린 중국의 대표적인 경매회사 베이징 바오리와 중국 쟈더 등이 홍콩에 진출하면서 수십 년 동안 홍콩에 아성을 쌓아놓은 서구 경매회사들과의 시장점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2014년 봄 경매에서 베이징 바오리는 11억 홍콩달러어치를 팔고, 중국 쟈더는 3억 4,700만 홍콩달러어치를 낙찰시키며 본격적인 홍콩 시장 진입에 나섰다.

홍콩에서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홍콩이 열리고 있다. 2008년 홍콩아트페어로 출발한 회사를 세계 최대 아트페어인 스위스의 아트바젤이 2011년에 인수해 245개에 달하는 화랑을 유치하고 있다. 아시아 화랑들은 가고시안, 화이트큐브, 페이스, 레만머핀, 페로탱 등 서구 유수의 화랑들이 참여하는 아트바젤 홍콩에 참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고 있다. 한국의 KIAF, 일본의 아트페어 도쿄, 중국의 아트베이징보다 늦게 설립된 홍콩아트페어가 서구 대자본과 40년이 넘는 아트페어 경영 노하우를 가진 아트바젤과 만나면서 세계 5대 아트페어에 진입했으며, 2013년에만 6만 명에 달하는 관객을 모은 바 있다. 큰 컬렉터이기도 한 스위스 은행 UBS가 스위스 바젤뿐만 아니라 미국, 홍콩 등 아트바젤이 개최하는 모든 아트페어의 장기 파트너가 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아트바젤 홍콩은 든든한 후원자까지 얻게 되었다.

아트바젤홍콩에 참가하는 아시아 국가의 화랑 수는 중국, 일본, 인도, 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대만 순이다. 2014년 국내 화랑 중에선 국제갤러리, 학고재, 아라리오 갤러리, PKM 갤러리, 리안 갤러리 등 10곳이 참가했다. 2014년까지 5월에 치르던 이 행사는 2015년부터는 3월로 시기를 변경할 예정이다. 스위스 바젤의 아트바젤이 6월에 열리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화랑을 고려해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아시아 각국의 아트페어 개최 시기도 연동해서 바뀔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에서 열리는 미술 시장의 시기도 경매시장은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아트페어는 아트바젤 홍콩이 우선적으로 결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트바젤 홍콩의 성공은 아시아 미술시장 공략을 위한 플랫폼을 찾던 서구의 화랑들을 홍콩으로 불러 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3~4년 사이에 월세 1억 원에 달하는 고가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지점을 차린 가고시안, 페로땡, 레만머핀 등 쟁쟁한 화랑들이 홍콩을 향하고 있다. 홍콩은 서구 자본과 아시아 자본이 만나 경쟁하는 아시안 게임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국내의 경매회사들도 독립적으로 홍콩에 진출하거나 아시아 국가들과 연합으로 홍콩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옥션은 베이징 진출에서 후퇴한 후 홍콩 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K옥션도 연합경매를 통해 소자본으로 홍콩 시장을 두드리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홍콩이 내세우는 딱 한 가지 기치는 ‘제로 세금’이다. 영업의 자유가 최대로 보장되고 비용 외에 세금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홍콩의 자유무역 체제를 십분 활용함으로써 세금을 계속 올리는 싱가포르와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실제로 미술시장 관계자들은 작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통관을 홍콩의 강점으로 꼽고 있다.

미술시장을 통해 고부가가치 산업을 키우고 있는 홍콩은 중국 작가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 인도 작가의 작품들이 자유롭게 거래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쪽으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국내 미술시장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의 작가와 미술품 유통관계자들도 각국의 부와 예술작품이 대규모로 유통되는 홍콩 시장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홍콩은 아시아 미술시장에서 이미 레드오션이다.


서진수 교수는…
강남대 경제학과 교수로 2002년부터 미술시장연구소를 개소해 운영하고 있다. 또 아시아미술시장연구연맹(AAMRU)의 공동창설자이자 한국 대표로 아시아 미술시장의 공동발전과 체계적 연구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 ‘문화경제의 이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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