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앨럼의 딥씨 챌린저호

THE BALLAD OF RON ALLUM
엔지니어 론 앨럼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을 지구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로 내려보낸 방법.

2012년 3월 26일 저녁 10시. 밝은 녹색의 길쭉한 심해 잠수정 1대가 서태평양 해상에서 부상했다. 그 순간 주변에 머물고 있던 머메이드 사파이어호의 갑판에서 80여명의 지원팀이 엄청난 환호성을 터뜨렸다. 잠수정을 갑판 위로 끌어올려 해치를 열자 할리우드의 전설적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이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또 다시 박수갈채와 환호가 쏟아졌다.

카메론 감독은 방금 전 지구상에서 가장 깊은 바다인 마리아나 해구의 해저면을 탐사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이로써 그는 마리아나 해구의 해저면까지 독자 잠수에 성공한 최초의 인물이 됐다.

7시간에 걸친 잠수를 통해 그는 세계 최고의 해양탐험가들도 해내지 못한 성과를 거뒀다. 그가 칠흑 같은 해저에서 촬영한 신비로운 영상들은 8월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딥씨 챌린지 3D’에서 만나볼 수 있다.

혹시 할리우드 영화감독이 심해 탐험가로 변신한 스토리가 별로 흥미롭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심해에 갈 수 있었는 지로 주제를 돌려보자. 뉴스에서 다루지 않았던 얘기들은 당신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 내용의 중심에는 갑판 위의 사람들 사이에 수줍게 서 있던 다부진 체격의 은발 사내가 있다. 카메론 감독의 오랜 친구인 론 앨럼이 바로 그 주인공. 65세의 호주 출신 방송기술자인 론은 해양과학 학위는 물론 기계공학을 배운 적도 없다. 그의 유일한 학위는 직업학교 졸업장뿐이다. 그럼에도 수석엔지니어로서 이번 탐사에 쓰인 유인 심해장수정 ‘딥씨 챌린저(Deepsea Challenger)’호의 설계와 제작에 참여했고, 7년의 노력 끝에 완성해냈다.

전문지식도 없는 무명의 엔지니어가 어떻게 전 세계에 10대도 개발되지 않은 수심 6,000m 이상 잠수가 가능한 유인 심해잠수정을 개발할 수 있었던 걸까. 이는 3,000만 달러 규모의 과학연구 프로젝트와 자동차 윤활유, 주방용 케이크 믹서 등이 뒤섞인 복잡하고 신기한 이야기다.



2005년까지 론은 잠수정 건조에는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이전 10여 년간 그는 호주 중부 사막의 한 지하 동굴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면서 만난 앤드루 와이트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자와 일하며 촬영에 필요한 카메라 장비들을 제작해주고 있었다. 와이트는 그 장비로 악어와 상어, 화산 같은 위험한 자연 생태계를 촬영했다.

카메론 감독과는 지난 2001년 인연이 닿았다. 그가 독일 전함 비스마르크호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와이트를 고용했고, 론도 기술지원팀의 일원으로 합류하게 된 것. 카메론 감독이 기억하는 론의 첫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 도저히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호주 사투리가 너무 강했거든요.”

하지만 론의 진가는 곧 드러났다. 촬영지원 선박에서 전기적 문제가 발생하자 고장 난 회로기판 5개로 완벽한 성능의 회로기판 1개를 제작해내는 등 촬영팀의 온갖 골치 아픈 문제들을 처리하는 해결사로 등극했다.
“한 번은 광섬유 케이블 박스를 감쌀 생분해성 포장재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선박의 식당에서 구한 빵으로 만들어주더군요.”

이윽고 2004년 카메론 감독은 3D 다큐멘터리 ‘에이리언 오브 더 딥’의 촬영을 위해 소형 잠수정 2척을 구매하면서 론에게 전자시스템 및 추진장치의 개조를 맡겼다.
“론은 처음 듣는 순간에는 너무도 엉뚱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지켜보면 볼수록 그 해법의 우수성과 정밀성이 조금씩 드러나게 되죠.”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동안 카메론 감독은 론에게 자신의 어렸을 적 판타지를 들려주곤 했다. 잠수정을 타고 마리아나 해구의 가장 깊은 곳에 내려가 보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카메론 감독은 결국 과학연구와 영화촬영을 겸한 마리아나 해구 탐사 프로젝트를 구상하기에 이른다. 여기에는 그간의 심해 촬영 경험이 많은 영감을 줬다.

2005년 영화 ‘아바타’의 제작에 착수할 때쯤 론은 카메론 감독으로부터 마리아나 해구 탐사에 투입할 딥씨 챌린저호의 건조를 부탁받는다. 할리우드급 영화 촬영이 가능한 3D 카메라와 LED 조명시스템, 그리고 과학연구 샘플 채취용 유압식 로봇 팔을 부착한 유인잠수정이었다.

마리아나 해구 탐사는 바다 속의 에베레스트산 등정에 비견될 만큼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이전까지 마리아나 해구의 해저면에 도달한 유인 잠수정이 ‘트리에스테(Trieste)’호 단 1척 뿐이라는 게 그 방증이다. 1960년 1월 22일 스위스의 탐험가 자크 피카르와 미 해군의 돈 월시 대령이 이 잠수정을 타고 20여분간 해저면을 탐사했는데, 사전에 만반의 준비를 갖췄음에도 약 11㎞의 수심에서 20만톤에 육박하는 수압에 노출된 트리에스테호의 선창에 금이 가는 등 여러 위험한 상황을 겪었다.

이런 기술적 문제에 더해 엄청난 비용도 카메론 감독과 론이 풀어야할 숙제였다. 유인 심해잠수정의 건조는 갑부들도 버거울 만큼 큰돈이 들기 때문이다. 일례로 세계 정상급 유인 심해잠수정인 일본 ‘신카이 6500(shinkai 6500)’의 경우 잠수능력이 6,500m지만 무려 6,000만 달러의 건조비가 투자됐다.



특히 두 사람은 예기치 않은 경쟁자를 만나기도 했다. 2005년 미국의 억만장자 모험가인 스티브 포셋이 마리아나 해구 탐사에 도전장을 던진 것. 그는 이미 심해잠수정의 설계를 마쳤다고 주장하며, 미 항공우주국(NASA)을 위해 원격조종 잠수정을 개발하기도 했던 유명 해양엔지니어 그레이엄 호크스에게 잠수정 건조를 의뢰했다.

혹여 포셋이 먼저 탐사에 성공한다면 카메론 감독의 도전은 빛이 바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론은 아직 설계도는커녕 변변한 작업장조차 없었고, 시드니에 있는 자신의 집 세탁실에서 수동 압력펌프를 이용해 고밀도 배터리시스템의 성능을 측정하는 것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론과 카메론 감독은 딥씨 챌린저호의 설계 초기부터 정통적 방식과는 거리가 먼 파격을 꾀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잠수정은 수평방향으로 설계되고, 새가 활공하듯 이동한다. 반면 딥씨 챌린저호는 마치 거대한 1회용 라이터처럼 수직으로 설계됐다. 덕분에 잠수속도가 한층 빠르다. 수중에서는 소형 추진장치의 도움을 받아 마치 해마처럼 움직인다.

기본 구조 역시 일반 잠수정과 많이 다르다. 두 사람은 고가의 티타늄 외피를 채용하는 일반적 심해 잠수정과 달리 딥씨 챌린저호의 선체 거의 전부를 기포(氣泡) 강화 플라스틱으로 제작하고자 했다. 이는 에폭시 수지에 미세한 유리구슬을 박아 넣어 부양력을 높인 소재로서 스스로 압력을 조절할 수도 있다. 그리고 조종실로 쓰일 강철 소재의 원형 체임버를 선체 내부에 위치시킨 뒤 조명장치와 배터리, 카메라, 추진장치 등을 부착하는 형태의 설계를 구상했다.

실제 제작에서 직면한 첫 과제는 최적의 기포 강화 플라스틱을 찾는 것이었다. 론은 다양한 샘플을 테스트해봤지만 대부분이 1㎠ 면적당 1,160㎏에 달하는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버렸다. 수개월간 좌절을 거듭한 론은 아예 원하는 성능의 기포 강화 플라스틱을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에폭시 수지에 유리구슬을 골고루 분산시킬 수만 있다면 강력한 내구성을 부여할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고 한다.

“곧바로 여러 종류의 가스가 충전된 캐니스터와 유리구슬을 주문하고는 쇼핑센터로 가서 각 재료들을 배합할 케이크 믹서를 구입했죠. 500달러나 하는 최고급 제품을 골랐답니다. 그로부터 수개월의 실패를 감내한 끝에 제 압력 테스트를 통과한 소재가 탄생했습니다.”
다음 도전과제는 조종실 체임버였다. 크기를 작게 해서 중량 최소화를 꾀하는 동시에 키가 188㎝나 되는 카메론 감독과 각종 조종장치를 넣을 충분한 공간 확보가 필요했다.

론은 멜버른의 금속공학자에게 의뢰해 7톤짜리 잉곳 2개를 압축해서 직경 2.1m, 두께 13㎝의 반구(半球) 2개를 제작했고 이를 용접해 체임버를 완성했다. 그리고 구조공학자 필 더빈을 찾아가 선체와 체임버를 컴퓨터 모델링해 응력을 측정한 후 체임버를 미국 펜실베이이나주립대의 응용연구소로 보내 최종 내압 시험을 마쳤다.

이렇게 론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시드니에 마련한 185㎡ 넓이의 작업실에서 부지런히 일했다. 아바타의 촬영과 편집에 한창이던 카메론 감독도 틈틈이 잠수정의 기술적 사양을 연구하고, 스카이프를 이용해 론과 원격회의를 가졌다.




그러던 2010년 5월 론은 한 공업단지 내에 작업장을 구하고, 정식으로 잠수정 제작팀을 꾸렸다. 이때 합류한 특수효과 엔지니어 데이브 골디는 론이 케이크 믹서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저는 세계 최고의 작업장과 최신 가공기계를 예상했죠. 그런데 현실은 큰 오두막집 수준의 작업장에 불과했어요.”

심해의 엄청난 수압 하에서 작동되는 정밀기기의 개발을 위해 제작팀은 무수한 기술적 난제들을 넘어서야 했다. 예를 들어 잠수정의 선체와 조종실 체임버는 수중에서의 압축률이 다르다. 1㎠당 1,160㎏의 압력이 가해지면 기포 강화 플라스틱 선체는 길이가 6.4㎝ 줄지만 체임버는 그보다 적게 줄어들기 때문에 구조적 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 론은 유연한 폴리에스테르 끈을 활용해 체임버를 선체 내에 매다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냈다.

잠수정의 관측창도 론의 골머리를 썩였다. 두께 30㎝의 원뿔형 투명 아크릴을 강철 창틀에 끼워 넣었는데, 테스트 도중 계속해서 금이 갔던 것.
“아크릴과 창틀 사이에 바른 윤활제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것 같았어요. 미국 기계공학자협회가 추천한 제품이었는데도 말이에요. 그래서 자동차 부품 상점으로 달려가 차량용 윤활유를 잔뜩 사와서 시험했습니다. 14달러짜리 스프레이식 윤활유인 ‘드라이 글라이드’가 완벽히 저희가 원하는 역할을 해주더라고요.”

이윽고 2011년 초 카메론 감독은 마리아나 해구 탐사 프로젝트를 공식 발표했고, 론의 작업팀 규모도 더 커졌다. 많은 사람들이 추가 영입돼 소나와 통신장비, 유압시스템의 개선을 도왔다.

그해 4월에는 카메론 감독과 론의 긴장감을 높인 사건도 있었다. 영국 버진그룹의 창립자이자 억만장자인 리처드 브랜슨 회장이 지난 2007년 불의의 사고로 포셋이 숨지면서 중단됐던 그레이엄 호크스의 심해잠수정 개발을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게다가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도 마리아나 해구 탐사를 위한 최첨단 심해잠수정 ‘딥서치(Deep search)’호를 개발 중이라고 공표하면서 심해 잠수정 개발 경쟁이 다시 불붙었다.



2011년 11월 카메론 감독은 아무도 모르게 시드니로 날아가 론의 작업장 인근에 사무실을 임대했다. 이후 4개월간 그는 한 배관창고의 회의실에 딥씨 챌린저호의 부품들을 갖다 놓고 매일같이 전략 회의를 열었다. 카메론 감독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저희는 아주 평범해 보이는 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창고 문을 항상 열어놓았지만 누구도 뭘 하는지 알아채지 못했죠. 특히 매일 창고 주변을 돌아다니고, 레스토랑과 카페에도 들렸는데 저를 알아본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2012년 1월의 마지막 주, 딥씨 챌린저호는 야음을 틈타 시드니의 해군시설로 옮겨졌다. 그리고 1주일 뒤 엔지니어와 로봇공학자, 생물학자, 영화제작자로 구성된 지원팀과 함께 해저 파이프라인 검사선 머메이드 사파이어호에 실려 첫 잠항시험을 성공리에 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실제 도전뿐이었지만 그때 악재가 찾아왔다. 론을 카메론 감독에게 소개해준 앤드루 와이트 감독이 2월 4일 헬리콥터 사고로 사망한 것. 큰 충격을 받은 두사람은 프로젝트를 취소할 생각까지 했지만 유족들이 속행을 강력히 권유하면서 몇 주후 2,000㎞ 떨어진 마리아나 해구로 출항하기에 이른다.

역사적인 3월 26일. 카메론 감독은 마리아나 해구의 해저면에서 트위터를 사용한 최초의 사람이 됐다. 그는 조종실 안에서 이런 트윗을 보냈다.
‘지금 세상에서 제일 깊은 바다 밑에 도착했습니다. 바닥에 닿는 느낌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네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날의 도전은 아무 문제없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머메이드 사파이어의 통제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론은 잠수정의 로봇 팔과 샘플 투입구가 고장 난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카메론 감독은 영국 런던에서 열릴 타이타닉 3D 시사회 참석차 마리아나 해구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곧바로 떠났다. 추가 도전을 위해 3일 후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악천후 때문에 더 이상의 탐사 진행이 불가능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과 롤렉스가 2,000만 달러, 카메론 감독이 1,000만 달러를 투자한 탐사는 그렇게 종료됐다.

그러나 카메론 감독은 그 일이 재난적 상황까지는 아니라고 말한다. 일부 표본이 유실됐지만 68종의 신종 해양생물을 찾아냈으며, 향후 심해 해양생태학의 큰 진전을 이룰 발견도 있었다. 또 다큐멘터리 ‘딥씨 챌린지 3D’의 제작에 필요한 동영상도 나름 충분히 확보했다.

현재 딥씨 챌린저호는 미국 우즈홀 해양연구소(WHOI)에 넘겨졌다. WHOI는 지난 5월 뉴질랜드 앞바다에서 800만 달러짜리 무인 심해잠수정 ‘네레우스(Nereus)’를 잃어버린 충격을 뒤로하고 론과 함께 딥씨 챌린저호를 업그레이드 중이다. 특히 론은 자신이 개발한 기포 강화 플라스틱을 ‘아이소플로트(Isofloat)’라는 이름으로 특허 출원했으며, 이를 산업용 및 군용으로 판매하고자 카메론 감독의 지원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아이소플로트는 물에 뜨는 방탄 소재랍니다. 이미 호주 국방부에서 구입을 해갔죠.”

카메론 감독에게 있어 이런 론은 무관의 공학천재다.
“저는 늘 말합니다. 화성에 단 한명만 데려갈 수 있다면 론을 선택할 거라고요. 그는 비행 중인 우주선도 고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앞으로 두 사람이 또 다시 심해 탐사를 위해 뭉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려면 일단 카메론 감독이 최소 3편의 영화를 아바타 만큼 흥행시켜야 한다. 다만 론에게 딥씨 챌린저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험이다. 필자가 마리아나 해구에 들어가보고 싶은지 묻자 그의 눈이 반짝였다.
“가슴 벅찬 심정으로 그 날을 기다립니다.”

95% 인류가 아직 탐사하지 못한 바다의 비율. 이는 수심 6,000m 이상의 심해가 전체 해저면적의 98%에 달하기 때문이다.





심해과학
카메론 감독은 마리아나 해구 탐사를 통해 세계 최초의 마리아나해구 단독잠수라는 영예 외에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수시간 분량의 영상을 촬영했고 퇴적물과 미생물, 갑각류의 표본을 가져온 것. 이번 탐사의 수석연구자인 캘리포니아대학 더그 바틀렛 박사가 그동안 미 전역의 연구팀이 표본을 분석해 밝혀낸 성과를 알려줬다.

자이언트 아메바
제노피오포어는 현미경이 아닌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거대 단세포생물로 사람의 손 크기까지 자란다. 미국 스크립스 해양연구소 팀이 카메론 감독의 샘플에서 찾아냈는데, 이는 역대 가장 깊은 수심에서 발견된 것이다.

미생물 매트
마리아나 해구에는 지각판이 지구의 맨틀로 파고드는 섭입대가 있다. 이곳의 샘플에서 많은 단세포 유기체가 발견됐다. 연구자들은 이들이 해저면의 화합물을 먹이로 삼는다고 추정한다. 이처럼 햇빛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서식하는 유기체들은 생명유지의 필수조건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증진시켜 줄 수 있다.

베개 용암
카메론 감독은 파푸아뉴기니 근해에 있는 수심 8,320m의 뉴브리튼 해구에서 시험잠수를 했었다. 당시 과학자들은 고운 모래로 된 평평한 해저를 예상했지만 실제는 울퉁불퉁한 베게용암(pillow lava)들이 나타났다. 이 용암의 성분분석을 통해 뉴브리튼 해구의 생성과정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코코넛?
카메론 감독이 수집한 60여종의 갑각류 표본 중 1마리의 조직에서 실로-이노시톨이 발견됐다. 바틀렛 박사에 의하면 주로 코코넛에서 발견되는 성분이어서 연구진이 꽤 놀랐다고 한다. 연구팀은 이 갑각류가 수압을 견뎌내기 위한 방편으로 실로-이노시톨을 합성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여긴다.





제노피오포어 Xenophyophore.
실로-이노시톨 scyllo-Inosit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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