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 INTERVIEW] 김종경 한국원자력연구원장

‘세계 정상급’을 넘어 ‘세계 최고’를 지향

최근 우리나라가 네덜란드 연구용 원자로 개선사업의 국제 경쟁입찰에서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돼는 쾌거를 이뤘다. 이는 1959년 미국으로부터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 원자력 연구를 시작한 지 55년 만에 처음으로 유럽국가로의 기술수출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런 성과의 배경에는 바로 국내 원자력 기술 연구개발을 선도하고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자리 잡고 있다.

김종경 원장은 “국제무대에서 국내 원자력기술의 우수성이 인정받고 있다”며 “앞으로도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혁신을 거듭함으로써 세계 3대 원자력 강국 도약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Q. 어느새 취임 6개월이 지났습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제가 늘 관심과 애정을 가졌던 기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올 1월 취임 후 내부 책임자의 시각에서 살펴보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다양하고 막중한 미션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살펴볼 엄두도 나지 않았던 일들을 처리하며 6개월을 숨 가쁘게 달려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성과들도 맺었습니다.

단연 최대 성과는 지난 6월 네덜란드가 국제 경쟁입찰로 발주한 ‘델프트공대 연구용 원자로 출력 증강 및 냉중성자 설비 구축 프로젝트’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최종 선정된 것입니다. 이외에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국제기구가 발주한 방사성 폐기물 처리 기술개발 과제의 수주에도 성공한 바 있습니다. 이렇듯 국제무대에서 우리 기술력이 인정받고 있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덧붙여 원자력 안전연구 분야에서 연구원이 보유한 거대 실험장치 ‘아틀라스(ATLAS)’를 활용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이 참여하는 국제 공동연구에도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원자력연구원의 궁극적 지향점은 기술 자립이 아닙니다. 세계 ‘정상급’을 넘어 세계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아직은 가야할 길이 더 남아 있습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수장으로서 모든 구성원들이 이 목표를 향해 한층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연구개발을 해나갈 수 있도록 제도와 시스템, 예산, 인프라들을 개선해 나갈 것입니다.



Q. 네덜란드로의 연구용 원자로 기술수출이 갖는 가치를 설명해주세요.

지난 2009년 수주에 성공한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 건설사업은 대한민국의 사상 첫 원자력 시스템 일괄 수출로 기록되며 연구로 분야의 기술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에도 그리스의 5㎿급 연구로(GRR-1) 1차 냉각계통 개선 자문 사업, 태국의 2㎿급 연구로(TRR-1) 계측제어계통 교체 자문 사업, 말레이시아 연구로(RTP) 계측제어계통 개선사업 등을 수행하며 입지를 다져왔습니다.

이번 네덜란드에서의 성과는 이보다도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유럽은 프랑스의 ILL, 독일의 FRM-2 같은 세계 최고 성능의 연구로가 존재하는 곳으로 기술력에 있어 최고를 자부하는 지역입니다. 그런 유럽에 국내 기술을 수출한다는 것은 우리 기술이 곧 세계 최고로 인정받았다는 뜻이 됩니다.

특히 세계적 원자력 기업인 프랑스의 아레바(AREVA)와 독일 누켐(NUKEM), 러시아 니켓(NIEKET) 컨소시엄과의 경합에서 이겼기에 그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 네덜란드는 현재 운영 중인 연구로(HFR)의 노후화로 인해 신규 연구로인 ‘팔라스(PALLAS)’의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할 예정입니다. 이번 사업 수행의 성공 여부에 따라 팔라스 프로젝트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Q. 전 세계 연구로 시장은 어떻게 전망하고 계십니까?

전 세계에 현존하는 연구로는 총 246기로 집계됩니다. 이중 60%가 40년 이상 경과된 노후 모델이기에 향후 20년 내에 발주될 신규 및 기존 연구로 대체수요가 30~50기로 추정되는 등 연구로 시장 전망은 매우 유망합니다.

현재까지 새로운 연구로 건설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수립됐거나 국가적 차원의 움직임이 감지된 국가만 해도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제르바이잔, 네덜란드, 태국, 말레이시아 등 6개국에 이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네덜란드로의 기술수출이 우리나라의 원자력 브랜드 인지도를 제고시켜 프랑스, 아르헨티나와 함께 세계 3강 연구로 기술국으로서 관련시장을 주도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또한 이는 연구로 시장을 넘어 상용원전 수출에서도 긍정적 영향이 예견됩니다.



Q. 국내 원자력 기술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주신다면?

원자력 시스템, 즉 원전을 설계하고 건설하는 능력은 원자력 선진국들과 견줘도 손색이 없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가 미국, 프랑스, 일본을 제치고 한국형 원전인 APR-1400 4기를 도입키로 결정한 것도 APR-1400이 현존 원전 중 가장 성능이 우수하고, 안전하면서, 경제성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안전 연구 분야의 경우 일부는 세계 선두권에 올라섰지만 아직 기술 격차가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방사선 응용 기술 분야 역시 따라잡아야 할 격차가 존재합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은 원자력 기술 선도국으로 분류됩니다. 이에 발맞춰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원천기술 개발과 해외시장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올해는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JRTR) 건설사업과 관련해 연내 운영허가를 신청하는 한편, 방사성 동위원소의 자급을 위해 2017년까지 부산 기장군에 건설되는 수출용 신형 연구로의 기본설계 완료와 건설허가 신청이 예정돼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순수 국내 기술로 독자 개발된 중소형 원자로 ‘스마트(SMART)’의 건설 타당성 조사에도 착수할 계획입니다.



Q. 스마트 원자로의 수출도 원활히 진행되고 있는지요?

스마트 원자로는 지난 2012년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인가 승인을 받은 일체형 원자로입니다. 미국 등 경쟁국 대비 4~5년가량 앞서서 개발을 완료한 것입니다. 다만 표준설계인가 승인이후 한국전력공사가 주도하는 ‘KEPCO 컨소시엄’을 통해 수출 등 후속사업에 나설 계획이었으나 KEPCO 컨소시엄이 대용량 원전 수출에 집중하면서 스마트의 수출에는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한국원자력연구원을 중심으로 스마트 원자로에 대한 국제학술회의 발표와 기술 전시, 그리고 잠재 수요국과의 협의 등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말레이시아, 캐나다 등 많은 국가들이 관심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지난해 정부와 산업계가 스마트 원자로 수출 전담 기구를 운용키로 의견을 모았으며, 금명간 민간기업 중심의 전담법인 ‘스마트 파워(가칭)’를 설립해 수출을 본격화할 방침입니다.



Q. 4세대 미래형 원전의 연구 상황은 어떻습니까?

4세대로 불리는 미래형 원전의 개발은 한국원자력연구원의 핵심 미션이자 원자력 안전 강화를 위한 또 다른 노력입니다. 구체적으로 4세대 원전은 현재 가동 중인 원전보다 안전성은 물론 경제성과 자원재활용성, 핵확산 저항성을 한 단계 끌어올린 원자력 시스템입니다. 지난 2001년 한국과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원자력 선진국들이 힘을 모아 ‘제4세대 원자력 시스템 국제포럼(GIF)’을 창설한 가운데 우리나라는 소듐냉각고속로(SFR)와 초고온가스로(VHTR)에 연구개발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중 SFR은 사용후 핵연료를 재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과 더불어 기존 원자로 대비 향상된 안전 특성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일례로 기기의 오작동이나 고장으로 원자로의 온도가 크게 상승하면 스스로 출력을 제어돼 정상 상태로 돌아가는 ‘고유안전 특성’을 지닙니다. 소듐 냉각재의 끓는점인 880℃까지 대기압 상태를 유지하는 덕분에 고압운용에 따른 안전상의 위험이 없다는 것도 강점입니다.

VHTR은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수소의 생산에 활용 가능한 원전으로서 안전 특성 역시 매우 우수합니다. 일단은 냉각재로기체 헬륨을 사용, 원자로 안에 물이 없는 만큼 수소 폭발이나 증기 폭발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한 헬륨이 화학적으로 안정된 불활성 기체며, 방사성화 되지 않아 방사선 누출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이외에도 열출력 밀도가 낮아 사고가 나더라도 외부의 복사냉각만으로 잔열의 제거가 가능해 전원 및 냉각재 상실 상황에서조차 원전의 안전을 지킬 수 있습니다.



Q. 국제적 위상 증대와는 달리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원자력 산업계 비리 사건 이후 원자력 안전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많이 낮아진 듯합니다.

연구개발기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연구를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당연히 원자력에 대한 신뢰회복을 위해서도 세계 최고의 안전기술 개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의 안전 연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의 고온·고압 환경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예측해 실험으로 모의한 결과를 토대로 설계 개선 등 안전성 향상 방안을 도출하는 열수력 안전 연구, 원전 설계기준을 초과하는 중대사고 발생 시 나타날 수 있는 현상들을 파악해 대처방안을 모색하는 중대사고 연구가 그것입니다.

1990년대 이전까지는 두 분야 모두 전반적으로 원자력 선진국보다 몇 걸음 뒤처져 있었지만 지속적 연구개발과 핵심 실험설비의 구축·운용에 힘입어 2000년대 들어 핵심 영역의 경우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습니다.



Q. 사용후 핵연료와 관련해 진행 중인 연구프로그램은 없습니까?

현재 사용후 핵연료의 재활용을 위한 기술적 대안인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최근 세계 최초로 파이로프로세싱의 모든 공정을 공학 규모(연간 10톤)의 일관공정으로 모의할 수 있는 시험시설인 ‘프라이드(PRIDE)’의 구축도 완료했습니다. 일부 공정을 실험실 규모에서 실증 시험하던 기존 시설과 달리 산화물 연료 투입부터 최종 우라늄 잉곳과 폐기물 고화체 제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위공정의 종합적 모의 시험·평가가 가능합니다.

향후 프라이드를 활용, 파이로프로세싱의 고효율화 및 고용량화를 추구할 예정입니다. 이와 더불어 한-미 핵연료주기 공동연구를 통해 실제 사용후 핵연료를 이용한 실험자료를 확보함으로써 오는 2020년까지 파이로프로세싱의 기술성, 경제성, 핵확산 저항성을 검증한 뒤 국민적 동의를 거쳐 실증시설을 구축할 방침입니다.



Q.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연구원의 역할은 무엇인지요?

방사선 융합기술을 통한 신사업 창출과 한국형 강소 방사선 기기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창조경제 실천계획에 따라 출연연의 사명이라 할 수 있는 원천기술 연구개발에 충실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장기적 관점에선 국정 과제 수준의 큰 틀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구용 원자로 수출과 중소형 원자로인 스마트 수출, 방사선 응용기술 연구, 원자력 융복합 기술연구 등이 중점 과제에 속합니다.

또 단기적 실천 계획으로는 비발전(比發電) 분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의학적 진단 및 치료, 신소재 개발, 생명공학적방사선 응용, 비파괴검사 등 방사선 이용 기술과 융합기술이 이에 해당하는데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할 신성장 동력의 하나입니다.



Q. 벤처 지원과 기술이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압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국내 원자력 산업체의 모체가 됐던 것처럼 이제는 원천기술 개발과 개발된 원천기술의 이전을 통한 중소기업 활성화에 이바지할 때입니다. 이에 정읍에 위치한 첨단방사선연구소 실용화연구센터를 중심으로 벤처클러스터를 조성, 이전된 기술의 효율적 상용화에 만전을 다할 것입니다. 그리고 출연연 공동기술지주회사를 통해 연구소기업을 2개 이상 신규 설립하고, 원자력 기술 창업 기업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제2 원자력 밸리 조성과 제3 원자력 밸리기획에 착수할 계획입니다.

원자력 발전소의 현장 애로사항 해결에 주력해온 ‘바로바로 기술지원 센터’의 경우에도 지원대상을 벤처·중소기업으로 확대하는 등 다각적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Q. 기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2011년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원자력계에 찬바람을 몰고 왔습니다. 원자력 안전에 대한 우려가 급등하고, 신뢰가 저하되는 상황에서 원전 납품 비리 사건이 국민적 불신의 벽을 더욱 높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국가 원자력 연구개발의 중추인 한국원자력연구원에게 새로운 시작을 종용하는 큰 교훈이라 생각합니다. 불신의 벽을 넘어서 국가와 국민의 안전과 번영, 그리고 행복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국내 원자력 분야를 이끄는 대들보로서, 국가 제1호 과학기술연구소로서 자긍심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과학기술 혁신과 창조경제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갈 것입니다.




김종경 원장 프로필

학력
1978~1980 미국 버팔로 뉴욕주립대학 원자력공학 학사
1980~1982 미국 미시간대학 대학원 원자력공학 석사
1982~1986 미국 미시간대학 대학원 원자력공학 박사

경력
1986~1987 한국에너지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 유치과학자
1987~현재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정교수
1999~2013 한국원자력산업회의(KAIF) 이사
2000~2009 우수공학연구센터(ERC) 소장
2012~현재 OECD 원자력기구(NEA) 국제원자력데이터뱅크 한국 담당 연락관
2013~현재 한국원자력학회장
2014~현재 한국원자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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