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식 크로노그래프의 시조 항공시계의 정점에 서다

시계 브랜드 이야기 ⑮ 브라이틀링
BREITLING

브라이틀링 Breitling은 항공시계 분야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 브랜드다. 현대식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를 최초로 선보인 데다가 COSC 인증을 거친 무브먼트만 사용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브라이틀링은 항공시계 마니아들에게 꿈의 시계 브랜드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1952년, 브라이틀링이 아주 이상한 시계를 하나 론칭했다. 일반인이 보기에 이 시계는 눈금과 숫자가 너무 많았다. 보기에 따라선 시계가 아니라 금고 회전열쇠나 복잡한 비행기 계기반을 닮은 듯도 했다. 고가 시계들의 주된 트렌드가 드레스워치 혹은 클래식워치였던 점을 고려하면 강렬한 메카닉풍의 케이스도 썩 호감형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시계의 등장에 특정 직업군의 사람들은 몹시 열광했다. 이들에게 이 시계는 지금껏 보지 못한 신세계이자 만능키였다. 이들은 이 시계를 내비게이션 컴퓨터라고 불렀다. 파일럿들을 위한 전천후 항공시계 Navitimer의 등장이었다.

Navitimer는 현재 시간 표시 기능을 그대로 유지한 채 거리 환산, 환율 계산, 곱셈, 나눗셈, 평균속도 계산 등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시계였다. 이 시계가 나온 시기가 1950년대임을 고려하면 당시 사람들에겐 충격적인 기능이었던 셈이다. 이후 Navitimer는 브라이틀링과 다른 시계 브랜드들의 레벨 차이를 언급할 때 자주 등장하는 약방의 감초 같은 모델이 됐다.

브라이틀링, Above the others

위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브라이틀링은 항공시계 분야에서 최고의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힌다. 항공시계 마니아들 사이에선 ‘Above the others(다른 브랜드보다 앞선)’ 찬사를 받을 정도로 압도적인 네임밸류를 자랑한다. 브라이틀링의 날개 로고는 항공시계 마니아들에게 정점의 상징이자 꿈의 엠블럼으로 통한다.

브라이틀링은 1884년 레옹 브라이틀링 Leon Breitling(1860~1914)이 스위스 생티미에 Saint-Imier 에서 창업했다. 레옹은 자신이 만들 시계가 사치품이 아닌 고기능성 시간 측정 기기로 대접받길 원했다. 브라이틀링의 모토가 ‘전문가를 위한 시계’가 된 배경이다. 때문에 초기 브라이틀링에서 나온 시계들은 기능성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결과 이들 시계는 연구실이나 산업 현장 등에서 계측기로 많이 활용됐다.

정확한 계측 기능으로 시장의 신뢰를 쌓은 브라이틀링은 1892년 스위스 시계산업의 성지 라쇼드퐁 La Chauxde-Fonds으로 시계 공방을 옮기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당시엔 비행기 개발 열풍이 한창이었는데 이에 따라 시계제조업체들도 비행에 유용한 여러 장비를 만드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었다. 브라이틀링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비행 장비 중에서는 크로노그래프 시계(스톱워치 기능을 갖춘 시계)가 특히 중요하게 여겨졌다.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를 내놓다

이 같은 당시의 분위기는 브라이틀링이 대규모 시계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브라이틀링은 창업 초기부터 정확한 크로노그래프 기능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와 비교하면 당시 브라이틀링의 네임밸류는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었다.

브라이틀링이 현재와 같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시계 브랜드가 된 직접적인 계기는 1915년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를 내놓으면서부터다. 레옹 브라이틀링의 아들 가스통 브라이틀링 Gaston Breitling (1884~1927)은 이전까지 회중시계나 대시보드 형태로만 존재했던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손목시계로 이전해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가스통은 1923년 기존의 단일 버튼 형식의 크로노그래프 시계에 독립된 크로노그래프 버튼을 추가해 또다시 화제가 됐다. 가스통이 개발한 크로노그래프 시계는 독립된 푸시 버튼으로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별도로 조작할 수 있었다. 이 시계는 단일 버튼 형식의 크로노그래프 시계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편의성이 뛰어났다.

현대식 크로노그래프 시계의 아버지

가스통의 아들 윌리 브라이틀링 Willy Breitling (1913~1979) 역시 크로노그래프 시계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1932년 경영권을 물려받은 그는 1935년 가스통이 개발한 시계에서 리셋버튼마저 따로 떼어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크라운, 스타트·스톱, 리셋 등 총 3개 버튼이 달린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를 출시한 것이다.


당시 윌리가 만든 이 시계는 현대식 크로노그래프 시계의 원형으로 불린다. 시계 측면에 3개 버튼이 달린 크로노그래프 시계들은 대부분 이 모델의 후예라 생각하면 된다. 현대식 크로노그래프 시계의 아버지로 윌리 브라이틀링을 꼽는 이유다. 윌리의 이 발명으로 현대의 크로노그래프 시계 사용자는 필요한 부분의 시간을 따로 떼어내 측정할 수 있게 됐다. 가스통이 1923년 개발한 시계까지만 해도 시작 > 멈춤 > 리셋 기능밖에 없었으나 윌리가 리셋 버튼을 독립시킴으로써 시작 > 멈춤 > (다시) 시작 > 멈춤…(반복)…리셋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눈부신 성장 그리고 쿼츠파동의 위기

시대를 앞서 간 발명으로 이후 브라이틀링의 브랜드 가치는 수직상승했다. 1939년 영국 Royal Air Force에 항공용 크로노그래프 시계를 납품한 것을 시작으로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브라이틀링의 시계를 공식 항공시계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브라이틀링의 브랜드 가치를 폭발시킨 도화선 역할을 했다. 공중전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일이 많아지면서 항공시계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던 브라이틀링의 가치 역시 덩달아 뛴 것이다.

브라이틀링의 고공행진은 1960년대까지 계속된다. 특히 기사 서두에서 나온 Navitimer의 인기가 대단했다. Navitimer는 파일럿들에게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항공시계 마니아들에게는 꿈의 시계로 칭송받았다. Navitimer는 1962년 미국의 우주비행사 스콧 카펜더 Scott Carpenter 와 함께 지구 궤도 비행에 성공함으로써 대기권 밖으로 나간 최초의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로 기록되기도 했다. 세계대전마저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던 브라이틀링이었지만, 이런 브라이틀링도 1970년대 쿼츠파동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암울한 시대 상황과 함께 3대 오너였던 윌리가 심각한 질병에 시달리면서 브라이틀링의 사세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급기야 1978년에는 작업장을 완전히 폐쇄하는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내몰렸다.

브라이틀링의 구세주 어니스트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브라이틀링에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Sicura 시계회사의 소유주 어니스트 슈나이더 Ernest Schneider였다. 1979년 4월 어니스트는 윌리로부터 브라이틀링 경영권 일체를 인수하는 계약을 통해 4대 오너에 이름을 올렸다.

어니스트는 마이크로 전자공학 전문가이자 아마추어 파일럿이었다. 때문에 그는 항공시계 명가인 브라이틀링의 명성을 그대로 이어나가고자 했다. 또 자신이 마이크로 전자공학 전문가였던 만큼 브라이틀링에 당시 시계업계의 대세였던 쿼츠 무브먼트도 도입하고 싶어 했다. 브라이틀링의 새로운 오너로 딱 알맞은 인물이었던 셈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 나갔다. 이탈리아 엘리트 비행팀인 프리체 트리콜로리로부터 제작을 의뢰받아 1984년에 론칭한 Chronomat 시계는 단숨에 항공시계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어니스트는 또 2001년 표준 쿼츠보다 10배나 더 정확한 슈퍼쿼츠를 도입해 화제가 됐다. 브라이틀링은 최근에도 Cockpit B50 등과 같은 슈퍼쿼츠를 탑재한 고기능성 시계 모델들을 선보이고 있다.

브라이틀링에 날개를 달아준 슈나이더 家

어니스트는 브라이틀링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받는 건 1999년 100% 크로노미터화 선언이다. 크로노미터는 ISO3159 기준에 합격한 시계에만 주어지는 고정밀도 국제 시계 인증이다.

브라이틀링은 COSC(Controle Officiel Suisse des Chronometres·스위스 공식 크로노미터 검증 기관) 인증 무브먼트만을 사용하는 세계 유일의 시계 브랜드다. COSC는 세계 크로노미터 공식 인증단체 중 가장 저명한 기관으로 인정받는다. 창립 때부터 이어져 온 정확성 DNA를 어니스트가 공식화한 셈이다. 이는 브라이틀링의 브랜드 가치 제고에 큰 도움이 됐다.

어니스트의 아들이자 현재 오너인 테오도르 슈나이더 Theodore Schneider 역시 브라이틀링의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그동안 브라이틀링은 세계적인 시계 브랜드임에도 자사 무브먼트가 없다는 지적을 종종 받아왔다. 이에 테오도르는 2000년대 들어 무브먼트 개발에 착수, 2009년 브라이틀링 최초의 자사 무브먼트 Calibre 01을 론칭했고 이후 Calibre 04, Calibre 02, Calibre 05 등을 순차적으로 개발했다.

브라이틀링은 무브먼트 개발 역사가 짧음에도 이들 무브먼트의 놀라운 정확성과 신뢰도로 시계 마니아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브라이틀링 가(家)에서 브라이틀링 브랜드를 싹 틔우고 꽃피웠다면 슈나이더 가(家)에선 그 꽃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브라이틀링의 날개 로고가 새삼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크로노그래프가 중요한 이유

초기 비행기들은 비행 거리가 무척이나 짧았다. 효율적이지 못한 기체 구조와 저효율 엔진 탓에 연료 소모가 많았던 데다 기술 부족으로 연료가 얼마나 남았는지 체크가 잘 안됐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비행 도중 연료가 떨어지는 대형 참사를 막기 위해선 비교적 연료가 충분할 때 회귀해야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파일럿들이 사용했던 방법 중 하나가 비행시간을 체크하는 것이었다. 기체별로 ‘이 기종은 연료를 가득 채웠을 때 몇 분간 날 수 있다’ 식의 카드를 작성해 비행시간의 반은 가는 데에, 나머지 반은 돌아오는 데에 쓰도록 참고하는 식이었다. 이 방식은 비행시간을 정확히 체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했다. 때문에 당시 시계업계에서는 스톱워치 기능을 갖춘 크로노그래프 시계가 큰 주목을 받았다. 최근까지도 남아있는 ‘크로노그래프 시계를 잘 만드는 곳이 좋은 시계 제조사’라는 인식은 이 때문에 생겨났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