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어데블의 꿈

THE DEVILS AND THE DEEP BLUE SKY

전설적인 모터사이클 스턴트맨 이블 크니블이 점프에 실패해 추락했던 스네이크강 협곡. 40년이 지난 지금 후배 스턴트맨들이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1974년 9월 8일. 별이 그려진 점프슈트를 입은 이블 크니블이 미국 아이다호주의 스네이크강 협곡에 나타났다. 그의 주변을 둘러친 울타리에는 농부부터 가정주부, 히피족, 바이커, 보이스카우트에 이르기까지 온갖 계층의 관중 1만여명이 자신의 영웅을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고자 몰려들었다.

크니블은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을 타고 점프 묘기를 부리는 전설적 스턴트맨으로, 전날부터 운집한 관중들은 간이화장실을 불태우고 맥주트럭의 지붕을 뜯어냈을 만큼 흥분해 있었다.

이런 혼잡한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크니블은 계곡 가장자리에 쌓아올린 45m 높이의 흙더미로 올라가 철제 발사탑에 당도했다. 이 구조물 위에는 로켓모양을 한 ‘스카이사이클(Skycycle) X-2’가 놓여 있었다. 하단에는 바퀴가 달려 있고, 측면에는 크니블의 이름이 금색으로 적혀 있었다.

그는 환호하는 팬들을 돌아보는 대신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홀(笏)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지금껏 그가 해왔던 점프 묘기 중 가장 위험한 시도를 곧 시작하겠다는 신호였다.

크니블은 모터사이클을 타고 수십m 길이로 늘어선 자동차를 뛰어넘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큰 스케일의 묘기를 갈구했고, 급기야 폭 490m의 스네이크강 협곡을 점프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당시 이 묘기를 중계한 ABC 방송의 리포터가 발사탑에서 선 크니블에게 이렇게 물었다. “지금 두려우신가요?”

그는 눈의 초점이 흔들렸고, 숨도 거칠게 쉬고 있었지만 태연해 보이려 애쓰며 답했다.
“사람은 단순히 ‘존재’하기 위함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크레인에 매달려 56도의 발사각으로 맞춰진 스카이사이클의 조종석에 착석했다. 스카이사이클의 아래에는 큰 구덩이가 파져 있었는데, 그는 그 구덩이가 ‘나를 보고 미소짓는 저승사자의 얼굴 같았다’고 표현했다.

발사대 근처에는 스카이사이클을 개발한 밥 트루액스도 서 있었다. 그는 미국 최초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SBM) ‘토르’와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폴라리스’의 개발에 참여한 유명 로켓 과학자였지만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번 이벤트가 사전에 언론에 노출될 것을 염려한 후원사측이 스카이사이클의 테스트를 단 1회만 허용했고, 그 테스트는 추락으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아나운서의 카운트다운에 이어 스카이사이클이 흰 연기를 뿜으며 발사됐다. 하지만 발사와 거의 동시에 관중들은 뭔가 잘못됐음을 알아챘다. 착륙용 낙하산이 너무 일찍 전개된 것이다.

스카이사이클은 우측으로 빙글빙글 회전했고, 바람에 의해 뒤로 밀려 나갔다. 결국 연료를 소진한 스카이사이클은 낙하산에 매달린 채 계곡으로 떨어져 바닥에 충돌했다. 다행히 크니블은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자존심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게다가 2007년 69세의 나이로 별세할 때까지 겁을 먹어서 낙하산 전개 스위치를 일찍 눌렀다는 루머에 시달려야 했다.

크니블의 협곡 점프 40주년을 얼마 앞둔올 여름. 밥 트루액스의 아들인 스코트 트루액스가 필자를 태우고 점프 장소로 향했다. 1974년 당시 6살이었던 그는 탈모에 시달리는 중년이 돼 있었다. 발사탑이 위치했던 흙더미 옆에 차량을 세운 그는 흙더미 위로 올라갔다. 경치는 환상적이었다. 크니블이 빠졌다면 분명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을 스네이크 강도 여전히 수백m의 발아래 길게 뻗어 있었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이런 곳을 뛰어넘으려 했던 크니블을 미쳤다고 여기겠지만 열성 팬들의 생각은 다르다. 크니블의 계획이 실제로 실현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5개팀이 크니블의 점프를 재현하려고 노력 중이다. 스코트 트루액스도 그중 한 명이다.

직접 팀을 꾸려 2010년 타계한 부친의 스카이사이클을 복원해낸 그는 올해가 가기 전에 이 협곡에서 부친과 크니블의 도전을 성공시킬 계획이다. 조종사로는 ‘해저드 마을의 듀크 가족’, ‘러시 아워’ 등의 영화에서 활약했던 할리우드 스턴트맨 에디 브라운을 섭외해 놓았다.

이 프로젝트에 성공하려면 엄청난 용기에 더해 정교한 과학기술의 도움이 필요하다. 창고에서 만든 로켓으로 계곡을 뛰어넘는 것은 종이비행기를 타고 달에 가려는 것만큼 힘겨운 시도인 탓이다.
“역사적 치욕을 회복함으로써 크니블의 명예를 회복하고,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작년 가을 아이다호주 보이시의 시청사 회의실에서 본격화됐다. 그 자리에는 레드불의 지원을 받는 유명 베이스 점퍼인 마일즈 데이셔와 프로 스카이다이버 스코트 스미스도 참석했다. 에디 브라운과 함께 앉아 있던 트루액스의 앞에는 에드 베클리가 있었다. 63세의 나이에도 150㎏의 몸무게를 자랑하는 베클리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모터사이클 광팬’이라 칭하는 텍사스 출신의 스턴트맨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안의 얼굴을 한 트로이 하트먼이 도착했다. 미 공군사관학교를 중퇴한 뒤 자동차를 타고 항공기에서 뛰어내리거나 불붙은 낙하산을 메고 떨어지는 등의 쇼를 펼치며 유명해진 인물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스턴트 세계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목표, 즉 스네이크강 협곡을 점프해 횡단하는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스미스는 당시를 회상하며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점프는 탈출 마술의 1인자인 후디니가 실패한 마술에 재도전하는 것과 같아요. 그 상징성 때문에 그토록 열심히 매달리는 겁니다. 성공 가능성은 두 번째 문제예요.”

이렇듯 여러 팀들이 경쟁을 하면서 아이다호 주정부는 스네이크강 협곡에서 묘기를 펼칠 권리를 경매에 부쳤다. 이날 도전자들이 시청사 회의실에 모인 것도 바로 경매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경매가 시작되자 5만 달러였던 입찰가는 순식간에 치솟았다. 첫 탈락자는 마일즈 데이셔로 65만8,000달러에서 포기를 선언했다. 트루액스는 최대 100만 달러를 베팅할 생각이었지만 호가가 85만 달러를 넘어서는 순간 손을 뗐고, 트로이 하트먼도 86만 달러에서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스코트 스미스와 에드 베클리였다.

이날 참가자 중 베클리는 단연 가장 엉뚱한 사람이었다. 21살 때 크니블의 묘기를 처음본 뒤 모터사이클 점프에 매료돼 버렸다. 특히 그는 크니블의 화려한 삶도 동경했다.
“한 다큐멘터리에서 크니블이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하더니 두어 시간 뒤에 비키니를 입은 10여명의 아가씨들에 둘러싸여 있더군요. 당시 저는 버려진 농지에 살면서 퇴비로 쓸 대변이나 푸던 신세였죠. 크니블의 삶을 보며 지금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후 베클리는 ‘죽음의 라이더’라는 모터사이클 스턴트 단체에 들어가 하루 150달러를 받으며 트럭과 사람들을 뛰어넘는 묘기를 펼쳤다. 발에 TNT를 매달고 폭파시키거나 불이 붙은 수백m 길이의 볏짚 터널을 통과하기도 했다. 나름 실력이 쌓인 그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욕심에 누가 더 많은 자동차를 뛰어넘는지를 겨루는 묘기 경쟁에 발을 들였고,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이나 슈퍼돔에서 공연했을 만큼 인지도를 쌓았다. 하지만 그는 물론 당대의 누구도 크니블의 기록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즉 베클리에게 이 경매는 수십 년의 숙원을 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에게는 돈 많은 후원자도 있었다. 사업가이자 목장주인 그의 애인이었다. 그녀는 경매 현장에서 큰 소리로 베클리를 독려했다.
“절대로 지면 안 되요! 이건 당신의 소원이었자나요!”

결국 스미스는 최종 입찰가로 94만1,000달러, 베클리는 그보다 2,000달러 많은 94만3,000달러를 제시했다. 이날의 최종 승자는 베클리였다. 그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스네이크강 협곡을 찾아가 크니블의 발사장을 돌아봤다.
“협곡을 굽어보던 중 누군가가 등에 손을 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게 크니블의 영혼이었다고 믿어요. 마치 그대로 밀고 나가라고 말하는 듯 했죠.”







스네이크강 협곡에서 돌아온 트루액스는 자동차를 창고 앞에 세웠다. 필자가 기다리는 동안 그가 창고 문을 열었고, 다소 휑뎅그렁한 작업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부로 들어가자 1974년 스카이사이클을 운반했던 ‘슈퍼밴’이 복원돼 있었고, 벽에는 ‘D-95일’이라 적힌 보드가 붙어 있었다.

그랬다. 트루액스는 경매에서 패배한 이후에도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필자와 만난 바로 전날 밤 스카이사이클 X-2를 완성해냈다.
“모두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죠.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스카이사이클은 창고 뒤의 붉은색 단상 위에 놓여 있었다. 냉전 시대의 비밀병기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미사일처럼 생긴 외관에 개방형 조종실이 있었고, 꼬리 부분에는 3개의 안정 핀(fin)이 보였다.

트루액스에 따르면 크니블은 모터사이클에 날개를 붙여서 스네이크강 협곡을 점프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부친이 그런 설계로는 점프에 성공할 수 없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부친의 취미는 드래그 레이싱카를 위한 증기기관 설계였어요. 그래서 로켓 모터사이클보다는 로켓 십(ship)을 권했죠. 결국 부친의 실력을 신뢰한 크니블은 모든 설계와 제작을 맡겼습니다.”

트루액스는 부친이 직접 그린 설계도를 보여주며 이렇게 덧붙였다.
“부친께서는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제품을 용도에 맞게 개량해서 사용하는 걸 선호했습니다.”

때문에 트루액스와 크레이그 아담스가 이끄는 스카이사이클 제작팀 역시 동일한 방식을 사용했다. 전방의 동체는 ‘알바트로스’ 수상비행기, 후방 동체는 B-50 폭격기의 연료탱크를 개조해 만들었다. 안정 핀의 경우 고장난 헬리콥터에서 떼어낸 부품을 썼다.
“수소와 산소를 연소시키는 일반적 로켓엔진과 달리 저희는 240℃의 고온증기를 분출해 추력을 얻습니다.”

필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트루액스와 아담스는 무거워 보이는 원형 부품을 스카이사이클의 후방에 밀어 넣었다. 안정 핀을 고정시켜주는 장치라고 했다. 그런데 부품의 볼트 구멍이 제대로 맞지 않았다.
“이런 건 정말 사소한 문제예요. 몇 시간이면 고칠 수 있죠. 정작 중요한 문제는 오작동을 일으키며 크니블의 도전을 실패로 귀결시켰던 낙하산의 설계랍니다.”

아담스의 설명에 의하면 1974년의 오작동은 증기가 배출되면서 저압의 기저항력이 발생, 배기노즐 옆에 있던 낙하산 용기의 뚜껑이 제거되면서 일어났다. 그래서 아담스는 낙하산 용기를 새로 설계했다. 뚜껑이 한층 견고하게 고정되도록 크기를 10분의 1로 줄인 것이다.
“이에 더해 안전성 제고에 반드시 필요한 몇 가지 설계가 변경됐습니다. 이외에는 원래의 설계를 작은 것 하나까지 철저히 고수했어요. 예컨대 트루액스의 부친이 그랬듯이 엔진 속 증기의 분출을 특정 시점까지 막아줄 차단장치는 강아지 사료 뚜껑을 썼습니다. 카운트다운이 완료되면 금속판이 이 뚜껑을 때려 구멍을 내면서 증기가 분출됩니다.”








트루액스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필자는 경매의 승자인 베클리를 보기 위해 텍사스주 애빌린으로 향했다. 그를 만난 곳은 한 비포장도로 레이싱 트랙에서였다. 그는 팀원들과 함께 이날 저녁 경주대회에 앞서 펼쳐질 스턴트 묘기를 준비 중이었다.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8대의 트럭을 뛰어넘어야 했다.

이 묘기를 통해 자신이 스네이크강 협곡점프에 성공할 수 있을 만큼 실력자임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그는 시작도 하기 전부터 실패한 것과 다름없었다. 할리데이비슨의 카뷰레터에서는 연료가 샜고, 스피드건을 담당한 팀원은 사용법을 몰라 갈팡질팡했다. 할리데이비슨의 속도계가 얼마나 정확한지 알아야만 사전에 시뮬레이션한 속도에서 정확히 점프를 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는 얼마 전부터 안전 경사로를 사용하고 있었다. 착륙지점의 경사로를 연장해 마지막 차량 2대를 덮었는데, 그가 너무 일찍 착륙하게 될 경우에 대비한 안전 조치였다. 하지만 모터사이클의 정비를 맡고 있는 트래비스 스미스는 그리 믿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았는지 베클리에게 가급적 안전 경사로에는 착지하지 말라고 했다.
“이것 좀 보세요. 너무 허약해서 사람이 걸어가도 무너질 것 같아요.”

결국 베클리는 경사로 담당자를 불러 각목을 더 구입해서 보강하라고 지시했다. 사실 베클리가 관객들 앞에서 모터사이클 점프를 해본 경험은 단 한 번뿐이다. 올해 3월 뉴멕시코주에서 열린 몬스터 트럭 경주대회에서였다. 그 경기장은 모터사이클이 충분하게 가속할 수 있을 정도로 길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점프대까지 가는 콘크리트 바닥에 콜라시럽을 뿌렸다. 지면을 끈적거리게 만들어서 타이어의 접지력을 높여 추가 가속력을 얻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의도와 달리 지면은 더 미끄러워졌고, 그는 안전 경사로에 착지했다. 큰 충격이 가해지며 경사로는 박살이 났고, 베클리는 튕겨져 나갔다. 이 사고로 그는 갈비뼈 6개가 부러졌고, 한쪽 폐가 찌그러졌으며, 신장 파열과 뇌진탕까지 입었다. 출혈이 멈추지 않아 헬리콥터에 실려 긴급히 병원으로 후송돼야 했다.

이 정도의 사고라면 기가 죽을 만도 했지만 그는 4주일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한지 3일 만에 스네이크강 협곡 프로젝트 관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오하이오주로 날아갔다. 그리고는 수주일 동안 로켓 바이크 제작자를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 나섰다.

베클리의 낙점을 받은 사람은 폴 스텐더였다. 그는 지붕에 로켓엔진을 올린 기괴한 모양의 자동차로 유명세를 탔는데, 그의 작품 중에는 불 뿜는 야외화장실과 시속 590㎞로 질주하는 스쿨버스도 있었다.
“스텐더의 노하우가 진정한 로켓 바이크의 개발에 도움이 될 겁니다. 저는 로켓 십 따위는 타지 않을 거예요. 그런 건 배짱 없는 사람들이나 타는 거죠.”

스텐더가 내놓은 설계는 모터사이클을 로켓 모양의 프레임으로 감싸고, 전방과 후방에 안정 핀 역할을 하는 보조날개를 부착한 것이었다. 조종사는 몸을 깊숙이 숙인 채 탑승하게 되며, 추진력은 후방의 과산화수소 로켓엔진을 통해 얻는다.
“몸을 깊숙이 숙인 채 탑승해야 해서 다이어트까지 하고 있어요. 덕분에 지금은 체중이 118㎏로 날씬해 졌답니다.”

다만 경쟁자들은 베클리의 계획에 회의적이다. 일례로 베클리는 발사대 대신 올림픽 스키점프대 모양을 한 172m 길이의 반원형 경사로를 로켓 바이크로 내달려 점프할 예정이다. 이를 놓고 경쟁자들은 베클리가 굳이 새롭고 복잡한 방식을 시도하려 한다고 지적한다. 비교적 검증된 설계를 활용, 1년 이상 작업해 온 트루액스와 비교되는 행보라는 것. 이런 지적을 언급하자 베클리는 이렇게 응수했다.
“말로 비판하는 것은 쉬워요. 저희 설계도 다른 팀만큼 충분히 검증된 것입니다. 어찌 보면 더 많은 검증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죠. 적어도 계곡 아래로 처박혔던 설계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올 여름까지 그가 바이크의 제작을 시작조차 하지 않자 스미스는 필자에게 이런 의견을 피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베클리 팀은 실패할 것으로 보입니다. 도약대에는 오르지도 못할 거예요.”

애빌린의 레이싱 트랙에 베클리가 뛰어넘을 트럭들이 세워졌을 무렵 필자는 도약대의 아랫자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24m 가량 떨어진 착지 지점의 안전 경사로를 바라보던 중 두 경사로가 일직선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관계자에게 이를 지적했더니 베클리에게 그 사실을 알렸고, 베클리가 직접 찾아와 위치를 점검했다.
“당신 말이 맞는 것 같네요.”

그리고는 담당자에게 지시해 도약대의 끝을 좌측으로 수 m 옮겼다. 몇 분 후 베클리는 할리데이비슨과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스탠드를 가득 메운 관중들은 함성을 질러댔다. 완벽한 점프처럼 보였지만 실제는 아니었다. 그는 올 3월의 점프와 마찬가지로 안전 경사로에 착지했다. 다행히 경사로가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착지지점이 가장자리에서 불과 수 ㎝ 안쪽이었다. 조금만 짧았어도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한 순간이었다.
“그래도 공연이 무사히 끝나서 기쁩니다. 까딱 잘못했으면 9시 뉴스에 나올 뻔 했네요.”







올 여름 아이다호주에 머무는 동안 트루액스는 필자에게 보여줄 곳이 있다며 슈퍼밴에 태웠다. 그리고는 한동안 비포장도로를 달려 잔디가 깔려 있는 한 공터에 차를 세웠다. 내려보니 15m 앞에 스네이크강 협곡이 있었다.
“여기가 어디죠?”
트루액스가 답했다. “저희 팀이 점프를 하게 될 장소입니다.”

그는 1개월간 위성사진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이곳과 반대편의 사유지를 5만 달러의 저렴한 가격에 임대했다고 밝혔다. 베클리에게 크니블이 점프를 했던 상징적 장소는 내줬지만 프로젝트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가 내린 차선책이었다.

그때 현지의 업자가 다가와 차량의 보닛 위에 발사대의 청사진을 펼쳤다. 두 사람은 이 청사진을 참조해 거리를 계산하고, 발사대의 지지대를 설치할 지점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표시를 했다.
“이제 몇 주일 후면 협곡 건너편을 향해 26m 높이의 발사대가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이렇게 트루액스 팀의 계획이 차근차근 진행되는 것과 달리 베클리 팀은 계속해서 불협화음을 내고 있었다. 지난 5월 폭스(FOX) 방송이 베클리와 트루액스의 프로젝트를 다룰 ‘세기의 점프’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베클리는 폭스 측에 400만 달러의 협찬을 요구했다. 그러나 폭스는 이를 거절했고, 베클리는 도약대의 건설을 시작하지 않았다. 이후 7월말 폭스는 이 프로그램의 제작 계획을 아예 취소해 버렸다.

베클리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의 말을 전했더니 그는 올해는 힘들어졌지만 내년에는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미디어 파트너가 누가될지는 몰라도 이 프로젝트를 반드시 성공시킬 테니 두고 보세요.”

스미스와 데이셔, 하트먼 역시 내년에는 어떻게든 점프를 시도하겠다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특히 올해 트루액스의 시도가 실패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때는 스네이크강 협곡 점프에 최초로 성공한 사람이 될 기회가 남아있을 것이니 말이다.

사실 크니블 역시 40년 전 자신의 점프를 생방송으로 송출해줄 방송사를 구하지 못했었다. 언론들은 그의 계획이 실현 불가능하며, 자살에 가까운 객기라고 폄하했다. 그러나 스네이크강 협곡 점프는 크니블의 정신, 즉 가장 모험적이고 스릴 넘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신념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만일 미 항공우주국(NASA)이 협곡 너머로 사람을 날려 보낸다면 사람들은 별로 놀라지 않을 것이다. 반면 제트엔진으로 움직이는 화장실을 만든 발명가가 그렇게 한다면 이는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젊고 유연한 모터사이클 스턴트맨이 익스트림 스포츠에서 공중제비를 넘는 것보다는 살찐 64세의 할아버지가 트럭을 뛰어넘는 것이 훨씬 스릴 넘치는 도전이다. 베클리의 표현을 빌리면 운동선수가 되는 것과 스릴 광이 되는 것은 다르다.
“점프 스턴트 분야의 사람들은 정말 대단해요. 작은 실수 하나로 죽을 수도 있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으니 말이에요.”

발사대의 위치를 정한 트루액스는 협곡에다가가 착륙지점의 목초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부친을 생각하는 듯 했다.
“저희 부친은 과묵한 분이셨죠. 한 번도 제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신 적이 없어요. 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가졌고, 아버지의 도전을 발전시킬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저는 행운아예요. 아버지도 분명 저를 자랑스러워하실 꺼라 믿습니다.”

트루액스는 크니블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말했다.
“결코 완벽한 분은 아니었어요. 크니블의 일대기를 집필한 레이 몬트빌이 지적했듯 그는 한때 삼류 도둑이었고, 바람둥이였죠. 그외에도 여러모로 형편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랬던 그가 바이크를 좋아하는 소년부터 프로 스턴트맨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크니블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실천에 옮겨 성공했습니다. 가끔씩 실패도 했지만 매번 다시 일어났어요. 이것이야 말로 모든 사람들이 진정으로 추구하고 싶은 삶이 아닐까요.”



스네이크강 협곡 점프 재도전 프로젝트




로켓 바이크
조종사: 에드 베클리
제작자: 폴 스텐더

동체 날개 달린 모터사이클. 추력 2.72톤의 과산화수소 로켓엔진으로 비행동력을 얻는다. 스로틀로 속도를 제어하며, 바퀴가 자이로스코프처럼 안정성을 높여준다.
도약대 172m 길이의 반원형 도약대를 달려 올라가 로켓엔진을 점화한다. 그렇게 시속 240㎞의 속도로 40도 각도의 도약대를 날아오른다.
비행경로 최고 시속 480㎞, 최고 고도 150m에 도달한 뒤 하강한다. 하강시 GPS가 내장된 조향 가능 낙하산이 전개돼 계곡 건너편 150~300m 지점에 착지한다.




로켓 십
조종사: 에디 브라운
제작자: 스코트 트루액스, 크레이그 아담스

동체 트루액스의 부친이 설계한 바퀴 3개 달린 ‘스카이사이클 X-2’를 복원해 사용한다. 240℃의 고온 증기를 500psi 압력으로 배출, 2.72톤의 추력을 얻는다.
도약대 크니블과 동일한 높이 26m, 길이 30.5m, 발사각 56도의 발사대를 쓴다. 시속 160㎞에서 발사대를 탈출하며, 발사순간 4.6G의 중력가속도가 가해진다.
비행경로 스카이사이클이 도달할 최고 고도는 903m, 최고 시속은 637㎞다. 발사 후 4.5초 뒤에 증기분출이 멈추면 낙하산이 전개돼 발사대에서 1.5㎞ 떨어진 곳에 착륙한다. 490m 1,460m




기저항력 (base drag) 기체나 유체가 바닥과 마찰하면서 발생하는 저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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